2. 히브리서의 예
2) 구조
(2) 그리스도인들의 목표(3-4장)②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전과 그의 안식에로의 길을 개척하였으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과 그의 안식에 이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믿음의 개척자요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확고히 붙들고,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한 순종의 길을 가야 합니다(4:14, 5:9, 12:1-13).
출애굽 구원의 처음을 체험한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은 약속된 가나안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의 순례길에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약속된 안식에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예는 하늘 안식에로 가는 순례의 도정 중에 있는 우리, 종말의 하나님 백성에의 경고를 위한 전형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자는 4:11의 강력한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서, 아무도 (이스라엘 같은) 불순종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3) 예수의 대 제사장직(4:14-10:18)
A. 이 가르침에 대한 준비
하나님의 종말 백성인 독자들이 정진해야 할 목표, 구원의 완성을 이와 같이 제시하고는 저자는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개척하고 완성한 그 구원의 길을 완주하도록 효과적으로 돕고 계신다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 복음 선포가 4:14에서 시작하여 10:18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핵심적 가르침을 위해서 저자는 이미 앞서 본 바와 같이 1-2장의 서론에서부터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본론의 장들에서 자신의 새롭고 독특한 복음 선포 양식인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을 시작함에 있어, 저자는 탁월한 설교가로서 배교에 대한 경고와 성숙한 이해 촉구를 간간히 끼워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유익합니다(대제사장 소개 2:17-3:1, 프로그램적 진술 4:14-5:10, 달램(요약) 6:9-20, 조직적 전개 7:1-10:8 등).
이와 같이 자신의 설교를 조직함으로써 저자는 독자들에게 거듭거듭 배교에 대해 경고하면서, 매번 이어서 달램(위안과 확신)을 주는데, 그 달램의 핵심이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입니다. 이러한 구조로 자자는 ‘배교는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다. 그런데 우리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면전에 서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사역을 하고 계심으로 그에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고 그때그때 필요한 은혜를 얻도록 담대히 나아가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4:14-16에 이렇게 프로그램적 진술을 하고는 5:1-10에 대제사장직을 정의합니다.
그리고는 즉각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설교가는 이 교리가 새 가르침이므로 성숙한 이해가 필요함을 촉구하고(5:11-14), 배교의 위험에 대한 경고(6:1-8)와 달램(6:9-20)을 다시 한 번씩 하고, 7:11부터 비로소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을 조직적으로 전개합니다.
B. 대제사장 예수(7-10장)
7장에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며, 그러기에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아론의 반차에 속한 레위 계열의 대제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대제사장임을 논증합니다.
저자가 이렇게 논증하는 것은 물론 유대교의 성전 제사 의식으로 돌아가려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배교를 말리고 기독교의 복음을 충분히 깨달아 신앙의 확신과 기쁨을 다시 회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저자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은 인간들로서 스스로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고, 영원성도 없는 자들이므로, 그들의 속죄의식을 통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완성(온전해짐)을 얻을 수 없음에 반하여,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다”(시 110:4)라고 ‘맹세’를 받아 하나님 존전에서 항구적으로 섬기는 대제사장이므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항상 구원할 수 있다고 논증합니다.
저자는 사도적 공통 케리그마가 선포하는 바, 즉 하나님께서 시편 110:1의 예언대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자신의 우편에 높이셔서 자신의 통치를 대행하게 했음을 독자들의 특수한 문제에 적용하여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제사장 사역으로, 즉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죄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셔서 하나님께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사역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도적 공통 케리그마를 이렇게 적용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편 110:1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네 우편에 앉으라”고 자신의 우편에 높이신 분(그리스도)에게 110:4에서 “너는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다”라고 선언하시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입니다.
8장에서는 모조품인 예루살렘의 성전의 원형인 하늘 성전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예레미야서 31:31-34의 예언대로 새 언약을 중보하셨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9장에서는 대구속의 날에 땅 위의 모조품 성전에서 인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일 년에 한 번씩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을 다 씻는 속죄제사를 드렸는데(레 16장) 그것으로 죄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원형인 하늘 성전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속죄제사로 드렸다는 것, 그리하여 그 제사는 한 번에 영원히 효과 있도록 드려진 제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새 언약을 발효시킨 제사였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10:1-18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증을 요약하고,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로 발효된 예레미야 31:31-34의 새 언약의 약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렘 31:34)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들(죄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10:17-18)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의식 때문에 원래 별로 효과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제사로 이미 실효를 완전히 잃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의식에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제사(종말론적인 속죄제사요 새 언약의 제사)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어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고,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응답(10:19-13:25)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저자는 이제 독자들에게 그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함으로써 구원의 완성(하늘의 안식에 이름-온전해짐)을 향해 신실하고 도덕적으로 순결한 신앙생활을 권면합니다. 믿음의 여러 영웅들의 모범을 따라, 특히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요 완성자”이신 예수(12:2)를 본받아서 그 순례의 길을 신실히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세윤 교수 | kcj@kcjlogos.org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