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8일 목요일

1강. 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0)

<4>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구조

지금까지 우리는 서신들에 담겨 있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에 대한 가르침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이 선포하는 구원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복음이 요구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서신들의 가르침을 문자주의와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 정신(의도)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서신들을 잘 해석하기 위한 또 하나의 필요를 소개하면, 그것은 서신들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구조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고린도전서와 후서, 그리고 히브리서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 고린도 전후서의 예

1) 고린도 교회의 일반적 성격과 문제들

고린도의 첫 그리스도인들 다수는 하층의 이방인들 출신이었던 것 같습니다(고전 1:26-29). 그러나 그들과 더불어 부유층 출신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고(고전 10:27, 11:17-34)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도시 고린도의 이방인적 환경과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의 이방인적 과거는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문란한 성도덕, 우상숭배, 불신자들과 어울림, 분파주의, 지혜와 지식 자랑, 열광주의 등등.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은사를 그들의 헬라적 이원론적 사고로 이해한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 구원의 첫 열매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벌써 누리고 있지만 그 완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 거하는 성령이 이미 받은 구원의 첫 열매를 대표하고 미래의 완성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영과 물질(육)을 엄격히 가르는 헬라적 이원론에 젖어 있어서, 바울 복음의 이 ‘시간적 이원론’을 ‘본질적 이원론’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신들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하늘의 축복된 삶을 현재 완전히 획득하는 것으로 보고, 성령의 은사들이 이러한 견해를 확인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장차 도래하리라고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이미 얻은 것으로 믿고 지금 벌써 그 속에서 왕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고전 4:8).

그들은 또 자신들이 성령을 받아 육신의 제약을 벗어난 영적 존재들이 된 것으로 믿었습니다(고전 3:1).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의 몸이 부활하리라는 사상은 헬라적 이원론에 젖은 그들에게는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고전 15장).

그들은 세례 때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고 부활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의 은사들, 특히 방언과 같이 현저히 나타나는 은사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자신들이 받은 은사들을 서로 자랑하며, 교만과 멸시, 시기와 분쟁의 분위기를 만들고, 예배 때 방언과 예언을 경쟁적으로 해대어 일대 혼돈을 빚곤 하였습니다(고전 12-14장).

게다가 그들은 또 이방의 철학과 수사학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 우상숭배, 그리고 문란한 성도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감으로 말하는 성령의 은사들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헬라적 수사학이나 철학의 일종으로 오해하고, 서로 말 자랑과 지식 자랑 경쟁을 벌였습니다(고전 1:18, 4:18).

성령을 통하여 얻은 ‘지식’으로 그들은 우상(곧 이방인들의 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우상의 신전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참여하고 우상에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자유를 만끽했던 것입니다(고전 8:10). 그들은 그들의 영혼이 벌써 하늘의 구원을 얻었으므로 그들의 몸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인 시절의 문란한 성생활을 계속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문란한 고린도의 이방인들조차 할 수 없는 짓까지도 하게 된 것입니다(고전 5:1-11, 6:12).

이런 ‘열광주의자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다수를 형성하고 있었거나 목소리 큰 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대개 헬라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체험으로부터 그들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도 열광주의자들과 같이 영과 육의 헬라적 이원론적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들과는 반대로 극단의 금욕주의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육은 중요하지 않고 영혼만 중요하면 구원받는 것이라고 보고, 영혼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육신에 얽매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삼가고(고전 7장),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고기 먹기를 꺼려했습니다(고전 8-10장).

이 열광주의자들과 금욕주의자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전자는 그들의 지혜와 지식과 자유를 자랑하고 후자를 약한 자들이라고 멸시했으며, 후자는 전자를 육신적인 방탕자들이라고 비판하고 영적 교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분쟁은 아볼로와 베드로가 고린도를 방문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철학과 수사학을 자랑하던 고린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령의 영감으로 주어진 지식과 언변에 대해 열광하게 된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대단한 성경 해석 능력과 수사적 능력을 가진 아볼로를 위대한 선생으로 환영하게 되었습니다(행 18:24-28).

그러나 “연약한 형제들”(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금욕적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가르침을 더 좋아하며, 베드로를 자신들의 선생으로 삼았습니다. 이 아볼로파와 베드로파에 대항하여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원래 사도였던 바울에게 신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게다가 극단의 열광주의자들 가운데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교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위 세 파벌들은 바울, 아볼로, 베드로 등, 인간들의 가르침에 얽매여 있다고 멸시한 ‘그리스도 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고전 1:10-4:21).

고린도 교회는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분열되기도 하였습니다. 성만찬 석상에서 잘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어대며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그리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재확인하고 시위해야 할 성만찬을 분쟁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고전 11:17-33).


2)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서신 왕래 (1)

바울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편지들도 보내고 동역자들도 보내고 자신이 방문하기도 하며 엄청나게 애를 썼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린도전서 5:9에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 전에 썼던 편지를 언급합니다. 이 편지를 보통 “이전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 안의 부도덕한 자들이나, 악한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고는 그들이 일반적으로 우상숭배하고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그러니까 교회 밖의 세상의 이웃들)과 일체 교류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된 듯 합니다(고전 5:9-11). 이 편지는 완전히 상실된 것 같은데, 일부 학자들은 고후 6:14-7:1이 이 편지의 한 조각이라고 봅니다.



김세윤 교수 | jgw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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