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 월요일

기도란 무엇인가요?

- 기도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진심어린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인 동시에 우리의 의무입니다. 믿음 가운데 드리는 기도엔 영과 물질의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참조: 93/96
 
- ‘하나님의 명령이며 의무라는 게 무슨 말인가요?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은 거룩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위급한 모든 순간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참조: 8:5-13
 
- 기도에 약속된 영적인 복이란 무슨 말인가요?
 
기도할 때 영적인 복을 주신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 피조물을 향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 죄를 용서하시는 성자 그리스도의 칭의, 그리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며 치료하며 도우시는 성령의 거룩한 인도가 기도 가운데 임한다는 뜻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의심 없이 기도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십니다.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8:2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기도할 때 약속된 물질의 복이란 무엇인가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부족함 없이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때 부자 돼서 혼자 떵떵거리며 살라고 그런 복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물질의 복을 주시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 삶 속에서 그분의 이름이 드높아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기도 네 번째 간구에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26:39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언제 어디서 기도해야 하나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식사 시간과 잠자리에 들고 일어날 때는 꼭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역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장소는 교회건 집이건 직장이건 길을 가건 가릴 필요 없습니다. 모든 곳이 기도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꼭 자녀의 손을 잡고 하루 한 번 기도하길 바랍니다.
 
63:6-7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나요?
 
우리 자신과 이웃,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피조세계와 자연 환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딤전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어떤 말로 기도해야 하나요?
 
보통 기도 마지막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붙여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구절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자기 속에 있는 마음을 외마디 탄식으로 해도 되고, 그 마음을 성경구절이나 시편을 엮어서 해도 되고, 찬송가나 기도 책을 들고 기도해도 됩니다. 기도에서 어떤 말을 할지, 그리고 길고 짧고도 역시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거짓 없이 진심으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6: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7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모든 기도 중에 어떤 기도가 가장 뛰어난 기도인가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주기도).
 
*6:9-13, 11:2-4
 
- 주기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시작하는 말과 일곱 개의 간구 그리고 끝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주기도의 시작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이 우리의 참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분의 참 자녀임을 믿으라고 권유하십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아이가 사랑하는 부모에게 하듯,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 작업 중 <신앙의 대화: 루터의 소교리문답 해설 편역>, III 주기도
 
 
 
 

지구 6천년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나?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10. 지구 6천년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나?
 
지구6천년설을 도그마로 갖는 창조과학을 비판하면, 왜 성경을 부정하고 창조를 부정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지구나이 6천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지구연대를 가르쳐 주려고 할 이유도 없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경에, 지구는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럼 왜 창조과학은 지구나이를 6천년이라고 할까요? 그건 성경의 다양한 내용을 해석하고 종합해서 계산한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고대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6천년설은 창세기 족보를 계산하고 6일의 창조시간을 계산해서 대략 기원전 4000년 경에 천지창조가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고대창조론을 부활시킨 것이 창조과학의 젊은지구론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지구 그 자체의 창조에 관해서 언급되있지 읺습니다. 13절부터 나오는 창조기사는 빛의 창조를 시작으로 해서 인간의 창조까지 담겨있지만 지구의 창조는 없습니다.
 
물론 지구라고 하면 우리는 둥굴고 푸른 행성이 우주공간에 떠 있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그런 개념을 성경의 독자나 저자였던 고대인들이 갖고 있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구라고 하면 지표면의 땅과 바다나 대기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6일 창조기사를 보면 땅과 바다나 대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혼란하게 섞여있던 것들에 질서를 부여해서 땅과 바다와 하늘을 분리시키는 과정이 신학적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입니다. 물을 창조한 이야기나 땅을 창조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1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포가 나옵니다. 1절에서 지구를 창조한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자세히 읽어보면 6일창조가 시작되는 3절 이전에 2절에 이미 수면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면이 있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것이고 물이 모여서 물과 물밖의 공기를 가르는 경계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주공간에서 물은 수면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창세기 12절에는 이미 물에 덮힌 지구가 묘사되어 있는 셈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가 6천년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걸로 지구의 연대를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다시말하면 지구나 물의 창조는 이미 이루어졌고 그리고 나서 6일 창조가 있었다고 본다면 6일 창조가 있기 얼마나 오래 전에 지구를 창조했는지 혹은 물을 창조했는지 성경을 가지고 알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 태양은 6일창조 중에 창조되었으니 태양의 나이를 6천년이라고 주장한다면 성서신학자들에게 그리고 과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겠지만 그래도 말은 됩니다. 창세기 1장을 창조에 관한 과학적 서술로 읽는 것 자체가 신학적 비판에 직면하지만 그래도 그 입장에서 설명은 가능하다는 얘기이지요.
 
반면, 지구의 연대가 6천년이라는 것은 아무리 문자적 성경을 읽어도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견해입니다. 지구6천년은 성경을 그대로 읽어서 나오는 결론이 아니라 다양한 가정을 해서 나오는 주장이라는 겁니다. 가령 1,2,3절이 다 첫째날 일어난 사건이라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지구연대와 같은 과학지식을 찾으려고 하는 것부터가 성경을 잘못 읽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읽어도 지구 6천년설은 성경에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창조과학자들의 해석일 뿐이다.
 
참 다양한 창조론이 있습니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했지만 몇가지 꼽아보자면, 고대창조론, 간극창조론, -시대 창조론, 오랜지구 창조론, 자연적 (진화적) 창조론 등 다양합니다.
 
그러니 창조론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대화 II. 단세포에서 인간이?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9번째 - 어떤 대화 II. 단세포에서 인간이?
 
제가 겪었던 실화를 약간 각색하여 꾸며보았습니다.
 
A: 인간이 단세포에서부터 만들어졌다는 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의사인데요. 인간의 몸을 보면 너무나 신비로운 구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고 신비로운 생명체인 인간이 단세포에서부터 진화되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한교수: 그래요? ... 선생님은 어떻게 태어나셨나요?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서 단세포에서 부터 만들어진거 아닌가요? 선생님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몸은 단세포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
 
B: 하나님은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단세포에서부터 진화의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설명은 말이 안됩니다. 인간이 단세포에서부터 창조되었다는 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단세포에서부터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한교수: 그래요? ... 선생님은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나요? 스물살의 몸으로 창조하셨나요? 아니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고 착상되는 과정을 거쳐 창조하셨나요?
 
B: 물론 저는 단세포에서부터 세포분열을 통해 생명체가 되어 태어났습니다.
 
한교수: 그럼 선생님은 단세포에서부터 창조되었으니 존엄한 존재가 아니겠네요?
 
B:.......
 
한교수: 우리 인간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방법이 특별해서 일까요?

어떤 대화 I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8번째 어떤 대화 I
 
A: 저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면 성경에 지구가 편평하게 기술된 내용은 상징으로 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성경을 상징으로 해석하면 예수와 십자가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구가 둥글다는 은 진화론입니다.
 
B: 저는 천동설이 맞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분명이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세우사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해는 신방에서 나온 신랑같이...하늘 이끝에서 저끝으로 돌아가고" 와 같은 성경의 증언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움직이고 있음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천동설이 틀렸다는 지동설은 성경을 부정하며 예수와 십자가도 부정합니다. 지동설은 진화론입니다.
 
C: 저는 젊은지구론이 맞다고 믿습니다. 창세기 족보를 계산해 보면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약 6000년 전에 습니다. 그러니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고 주장하는 오랜지구론은 성경과 예수와 십자가를 부정합니다. 오랜지구론은 진화론입니다.
 
D: 창조과학의 젊은지구론이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랜지구론의 주장처럼 지구가 오래되었다면 원죄의 기원과 시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A에 대한 답변: .....(할말없음)
 
B에 대한 답변: .....(할말없음)
 
C에 대한 답변: .....(할말없음)
 
D에 대한 답변: 그걸 왜 과학자에게 물어? 과학자에게는 지구의 연대를 물어보라구. 과학은 그런거 밝히는 학문이니까. 오랜지구가 맞다는 걸 과학이 밝혔으면 신학 문제는 신학자에게 물어봐야지. 신학적 이해가 어렵다고 과학으로 밝힌 사실을 부정할 건가? 과학자에게 신학을 설명해내라니... 과학자들이 열심히 과학을 밝혀냈으면 신학자들이 열심히 신학을 밝혀내야지.

노아 방주 실험이 실패하면 안 믿을거니?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7번째 -노아 방주 실험이 실패하면 안 믿을거니?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하신 목사님과 그 아들을 만났습니다. 과신대 회원이기도 해서 더 반가왔습니다. 학교에 찾아오시는 분들과 종종 점심먹는 기회가 있는데 그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분은 대학생 때 창조과학에 감탄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실험한 내용이 담긴 기사를 봤답니다. 실험 결과, 방주는 물에 잘 뜨는 훌륭한 구조를 갖추었다는 그 기사를 보고,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정말 튼튼하게 잘 설계되어 있구나라는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당시 지도교수님께 드렸더니 지도교수님이 이렇게 묻더랍니다.
 
"만일에 방주가 물에 안뜨고 가라앉았더라면 노아의 방주를 안 믿을거니?"
 
그 질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 깊은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방주를 제작해서 바다에 띄웠는데 제대로 뜨지 않고 물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면, 그 구조가 공학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배로서 기능을 못하고 가라앉으면, 그랬다면 노아의 방주를 안 믿게 되었을까? 성경을 안 믿게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니더랍니다. 설혹 노아의 방주 실험이 실패로 끝났더라도 실험이 잘못되었거나 성경에 나온 길이 등등의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그 표현들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이 실패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주실험의 실패가 성경에 나온 방주를 완전한 허구로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방주 실험에 성공해서 방주가 물에 잘 뜬다고 해서 그 실험이 노아방주의 존재나 전지구적인 홍수를 증명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내용은 실험이나 과학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할 만한 그런 내용들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는 지구가 편평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천동설의 지구가 묘사되어 있으니 그걸 가지고 성경은 지구편평설과 천동설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심각해 집니다. 성경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오해했을 뿐이지요.
 
각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들의 지성과 상식으로 이해하고 기록한 하나님의 역사는 과학으로 증명되거나 반증될 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헛된 시도를 우리는 범주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그 지도교수의 한마디 질문에 이 목사님은 창조과학에 경도되었던 생각을 벗어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참 멋진 이야기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성경의 기록이 과학으로 증명되면 정말 신날까요? 반대로 성경의 기록을 과학으로 입증하는데 실패하면 성경을 그만 믿으시렵니까?

과학시대를 사는 목회자들의 고민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6 과학시대를 사는 목회자들의 고민
 
시카고, 앤아버, 코스타, 벤쿠버 등을 거치며 강의하고 목회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과학과 신앙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신대 운동을 하면서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와 교육내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비젼을 가져왔지만 이번에 목회자 모임에서 강의하면서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된 듯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취한 주요 입장이었던 창조과학은 이제 그 수명은 다 했습니다. 80년대에 창조과학이 출발할 때부터 관련 분야 과학자와 신학자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워낙 소수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를 내서 창조과학의 과학적, 신학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졌고 정보화 시대에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창조과학의 문제점은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독출판사들이 과학 관련 책들을 기획하고 번역출판한 것도 창조과학에 경도되었던 한국교회의 지적 토대를 바꾸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교회의 일선에 있는 목회자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크게 3 종류의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첫째, 여전히 창조과학을 지지하고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젊은지구론이 옳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입니다.
 
둘째, 창조과학을 가르쳤던 흑역사를 반성하고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셋째,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지 않고 피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세번째 부류에는 예전에 가르쳤던 창조과학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다른 대안이 없고 스스로 정리가 잘 안되어서 이 문제를 보류하는 분들도 있고 처음부터 창조과학 같은 접근을 별로 좋게 보지 않거나 관심이 없어서 다루지 않던 목회자들도 있겠지요.
 
각각의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첫째 부류는 지적성실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분들은 현대과학의 내용은 커녕 사실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해 보지 않은 분들입니다. 창조과학의 내용 그 자체가 어떤 내적 모순을 갖고 있는지 어떤 심각한 성경해석 문제와 신학적 문제가 있는지 공부해 본 적도 없는데 그냥 창조과학을 가르친다면 지적으로 불성실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요.
 
둘째 부류는 자신이 잘못 가르쳤음을 인정하는 분들입니다. 사실 목회자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라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가르친 것과 다르게 가르쳐야 하기에 수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길을 선택한 분들은 정말 용기있고 대단한 분들입니다.
 
세째 부류는 현실적인 입장이지요. 사실 많은 목회자들이 창조과학의 대안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진화적 창조를 가르치기에는 본인들 스스로 공부할 내용이 많기에 일단 다루지 않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창조과학을 가르친 것이 문제가 있음을 알고 그만 가르치는 것만 해도 큰 발전입니다.
 
결국 목회자들의 숙제는 어떻게 지적 성실성을 담보하느냐입니다. 최근에 어느 목사님이 별의 수명을 언급한는 글을 올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분은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분입니다. 별의 긴 수명과 창조과학 젊은 지구론은 서로 모순되는데도 말입니다. 이 예가 보여주듯 목회자들이 과학을 배우기는 어렵고 더군다나 과학과 관련된 신학 문제들을 깨끗이 정리해서 목회 현장에서 가르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바쁘신 분들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선 세번째 입장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내용을 가르치기 보다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면 과학관련 주제들은 일단 피하고 전문가에게 물어보라고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창조과학을 가르쳐왔던 목회자라면 그저 침묵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하고 돌이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공부가 부족하고 어렵더라고 지적성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차근차근 공부하고 정리하고 어떻게 가르칠 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특히 그동안 잘못 가르쳐왔던 분들이 반드시 취해야할 태도입니다.
 
과학이 무신론의 증거라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과학이 틀린거라고 잘못 가르쳤던 창조과학의 방식을 넘어 이제는 과학은 오히려 창조를 드러낸다고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습니다. 그냥 가르쳐왔던대로 창조과학이 제일 명료하고 간단하니 그냥 그대로 가르치고 싶은 유혹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야합니다 이 땅에 많은 목회자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들이 그 길을 잘 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창조과학자들은 천동설을 믿으시나요?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5. 창조과학자들은 천동설을 믿으시나요?
 
창세기 1장은 고대근동 지방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에 기초해서 쓰였으니 그들의 상식을 진리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 그릇 안에 담긴 말씀을 잘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창조과학자들은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성경해석을 바꿔 가면서 과학과 타협하는 거라고 비판하며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과연 옳을까? 궁창 위에 물층이 있었다고 믿었던 고대 근동 사람들의 상식이 성경에 등장하니까 물층의 존재는 과학적 진리라는 그들의 주장은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담은 그릇까지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신학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을 그대로 읽어 믿어야 한다는 창조과학자들에게 함 물어보자
 
1. 창조과학자들은 천동설을 믿는가? 지동설을 믿는가? 성경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태양과 달이 지구 주위를 운동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창조과학자들은 천동설을 믿는가?
 
2. 창조과학자들은 지구편평설을 믿는가?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가? 성경은 지구가 편평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 창조과학자들은 지구편평설을 주장하는가?
 
3. 창조과학자들은 딱딱한 궁창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성경은 딱딱한 궁창에 해와 달과 별들이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지구대기권과 우주공간이 연결되어 있고 단지 공기의 밀도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과학적 사실인데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딱딱한 궁창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4. 창조과학자들은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지구가 창조되었다고 믿는가? 태양이 넷째날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그럼 창조과학자들은 지구가 먼저 창조되고 태양이 나중에 창조되었다고 믿는가?
 
5. 창조과학자들은 넷째날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기 위해서 태양과 다른 다른 별이 하나 있어서 태양 역할을 했다고 믿는가?
 
6. 창조과학자들은 빛이 창조되기 전에 물이 창조되었다고 믿는가? 창세기 13절에는 빛의 창조가 나오고 2절에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신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면 빛보다 물이 더 먼저 창조되었다고 믿는가?
 
잘 생각해보자. 성경은 자연사의 연대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다는 신학적인 말씀이다.
 
집 짓는 과정을 누가 물어보면 건축가는 골격 세우고 콘크리드 치고 외벽 만들고 지붕 덮고 전기와 배관 공사하고 인테리어 한다고 설명할거다.
 
그런데 집 주인에게 물으면 1층에는 거실과 부엌을 넣고 2층에는 침실과 서재를 넣고 지하에는 놀이방과 창고를 넣었다고 설명한다. 똑같은 집을 설명하더라고 목적에 따라 다른 내용이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신학적 서사다. 창조과학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해석과 같은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읽고 싶은대로 읽으면서 성경을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말고 전문성을 가진 성서신학자들에게 배우자.

사람이 흙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은?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4. 사람이 흙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은?
 
성경은 사람이 흙에서 창조되었다고 증언하기 때문에 흙이 아닌 다른 방식의 창조는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흙이라는 표현은 과연 어떤 뜻일까요?
 
물론 그 흙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흙이 아닙니다. 진흙을 빚어서 도자기를 만들듯 하나님이 진흙을 빚어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흙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 "아파르"는 진흙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먼지라는 뜻입니다. 전성민 교수는 성서에서 아파르가 주로 죽음과 육체적 한계를 뜻하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인간을 진흙에서 빚어서 창조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최소한 성경적 주해는 아닙니다. 반면 창조과학자들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였다는 표현을 과학적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아파르를 그냥 흙이라고 보고 주장하는 것이죠. 성서신학자들이 보기에는 무리한 주장이겠습니다.
 
작년에 느헤미야 행사에서 대담 중에 전성민 교수님이 아파르 ()가 진흙보다는 먼지에 가깝다는 얘기를 하자 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탄소를 비롯한 다양한 원소들은 사실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별이 죽고나서 퍼진 인터스텔라의 먼지들에 의해 생물들이 만들어졌다고. 그래서 천문학에서는 인간은 별먼지 (star dust)에서 기원했다고 흔히 표현한다고 했습니다.그러니 사람이 흙에서 만들어졌다는 성경의 표현에서, 흙은 진흙이 아니라 별먼지로 이해할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성경의 아파르를 별먼지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해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교수님은 제가 그렇게 이해한다고 살짝 오해하신듯도 하지만 저는 성경의 단어들을 과학의 단어들과 일대일 대비해서 성경을 과학적 설명으로 읽는 것 자체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또 다른 예는 13절에 나오는 태초의 빛입니다. 이것을 우주배경복사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
 
단순하게 얘기해서 사람이 흙(먼지)로 지어졌다는 성서의 말씀을 인간이 별먼지에서 만들어졌다는 과학의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볼때 일관성이 있다는 정도로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성서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먼지(별먼지)에서 왔다는 천문학의 내용을 반증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진흙에서 창조되어야만 한다며 생물학을 반박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과학은 무생물, 즉 죽음과 한계를 상징하는 먼지에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성경의 내용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표현을 자기 나름대로의 그림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듯이 하나님이 인간을 그런 식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분명하겠으나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창조하셨는지 성경은 과학적 용어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과정은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책인 자연을 읽고 해석하며 과학을 통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링크된 동영상을 한번씩 보시기 권합니다.
 
한국교회탐구센터 에서 만든 유익한 동영상입니다. 함께 보고 토론할 좋은 자료이지요.
 
과학과 신앙에 대한 101가지 질문 -
 
https://www.youtube.com/watch?v=bW_6ZFw_AtE

창조과학과 종교적 경험 (과도기)_우종학

#과도기_이야기 3. 창조과학과 종교적 경험
 
코스타에 왔습니다. 작년 한번 걸렀더니 꽤 낯섭니다. 작년에 올 수 없었던 이유를 포스팅했었는데 그 글이 폭발력이 있어서 많은 분들께 메세지를 받았었습니다. 결국 창조과학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올해는 초청이메일이 와서 과학과 신앙 세미나 강의를 하러 왔습니다. 오늘 첫 강의입니다. 세미나 12를 연강으로 진행합니다. 내일도 한번 더 반복됩니다.
 
아침을 먹으며 여러 지인들과 창조과학과 종교적 경험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랜드캐년을 가거나 창조과학 강의를 통해서 교인들이 만나는 경험은 창조의 신비와 창조의 아름다움, 창조세계를 통해 느끼는 창조주입니다. 창조과학으로 은혜받았다고 하는 분들은 이런 종교적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함께 대화한 분들도 창조과학 비디오를 보고 창조의 신비를 느꼈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계기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들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창조과학에서 벗어났지만, 신앙을 갖게된 여러 힌트들 중의 하나가 창조과학이었던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는 것이죠.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창조과학이 거짓이면 창조과학을 통해 자신이 경험했던 그 놀라운 종교적 경험도 무너지는 게 아닐까라고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신비를 느끼고 창조주에 주목하게 되는 그런 종교적 경험은 창조과학의 논리의 세세한 내용이나 과학적 사실성에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그랜드캐년을 가서 직접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을 느끼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적 경험은 사실 지구의 연대가 만년이라는 창조과학의 논리적 설명을 통해서 그 결과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를 마주하면서 일반계시안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창조과학이 아니라 정통 지질학을 다루며 46억년의 지구연대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해도 동일하게 창조의 신비를 느끼는 종교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창조과학이라는 통로를 걸어가서 종교적 경험을 만났다고 해도 그 종교적 경험은 창조과학의 설명이 과학적인지 비과학적인지와는 별개의 체험일 수 있습니다.
 
20년쯤 전에 기독대학원생 수련회에서 우주론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창조과학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뜨거운 열기의 수련회 장소에서 한 자매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IVF의 추구자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때 창조과학 강의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열어준 여러가지 힌트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꺼내는 자매 앞에서 저는 떨렸습니다. 혹시 창조과학이 과학적으로 넌센스라는 저의 비판이 이 자매의 신앙을 무너뜨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는 창조과학이 자신에게 도움을 준 다양한 내용중의 하나였지만 지금 자신의 신앙이 창조과학에 의존하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즉 자신의 신앙의 성숙했고 복음에 대한 확신은 창조과학이 옳으냐 그르냐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창조과학을 비판한 내용도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과학적 진리에 침묵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과학적 설명이 다른 사람에게 신앙적 어려움을 주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던 겁니다.
 
사실 그녀가 경험했던 것은 창조세계의 신비로움과 창조주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즉 종교적 경험이었던 것이지요. 비록 창조과학의 설명이 비과학적이고 넌센스이지만 그것은 손가락에 불과한 것이고 그녀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창조과학 논리적 비약과 엉성함을 깨닫고 창조과학을 버리게 되어도 그 종교적 경험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묻는다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세포분열을 통해 태어났다는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그 사랑의 열매로 귀한 생명으로 너가 태어났다는 형이상학적 설명이 가능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으로 자신이 태어났다는 설명을 듣고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을 종교적 경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만일 부모가 무지해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과정으로 아이가 태어난다는 과학적 설명을 제대로 못하거나 혹은 틀리게 설명하더라도, 여전히 아이는 자신이 부모의 사랑의 열매라는 가치를 흔들림없이 쥐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창조를 통해서 만나는 것은 창조의 신비와 종교적 경험입니다. 그 경험이 창조과학을 통해서 왔더라도 그리고 창조과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버리더라도 창조주의 위대함이라는 종교적 경험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창조과학을 비판하고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창조의 신비나 창조주의 위대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과의 대화에서도 이 부분이 더 주목되어야 하겠습니다. 과학적 설명과 종교적 경험은 두개의 서로 다른 범주입니다. 범주오류가 과학과 신앙의 문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지요. 목회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창조과학비판이 그동안 교인들이 경험한 종교적 경험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을 잘못해석하고 잘못 읽어서 은혜받고 목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오늘 아침을 같이 드신 한 분의 증언이랍니다.^^) 목사가 된 후에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니 그때 자신이 성경을 잘못 이해했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때 받았던 은혜와 자신에게 목사의 소명이 주어진 과정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경험을 일으키는 하나의 촉매제였지만 잘못된 성경해석은 버려야 하는 것이고, 버린다고 해서 종교적 경험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과학을 버리기 불편해 하시는 분들은 창조과학을 통해 경험한 종교적 체험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과학을 버린다고 해서 창조주를 만난 종교적 체험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조과학말고 자연세계를 제대로 보고 과학을 통해서 더 놀라운 종교적 경험을 할수 있습니다. 창조과학 수준의 유사과학적인 내용으로도 창조의 신비와 창조주의 놀라움을 경험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었다면 과학을 통해 자연세계를 제대로 조명하고 들여다 보면 얼마나 더 크게 창조의 신비와 창조주의 위대함을 경험하게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