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인간론 강의안 - 이신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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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이신건
 
 
 
Ⅰ. 들어가는 말
 
칼 바르트는 1909년에 쓴 그의 짧은 논문 '현대신학과 하나님 나라의 일'(Moderne Theologie und Reichgottesarbeit)에서 현대신학 즉 그 당대의 이른바 문화개신교주의, 신개신교주의, 혹은 자유주의 신학의 주요특징을 요약하고(종교적 개인주의, 역사적 상대주의), 이 신학이 갖는 문제점으로서 인식의 상대성, 신앙표상의 복수주의 및 실천관련성의 결핍, 다시 말하자면 공동적이고도 일관적인 실천능력의 부재를 지적한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바르트는 그 당대의 신학의 이론적?실천적 한계성을 통찰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을 암중모색하려고 고민했음을 엿볼 수 있다.
 
본인도 여기서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이론적?실천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방식대로 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그 이론적?실천적 관점 아래서 규명해 보고자 한다. 그는 과연 그 이전의 신학이 갖는 이론적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는 과연 그의 신학을 통하여 교회가 다함께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실천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과 그 일'의 상관성을 추적하는 데 촛점을 맞추기로 하자.
 
 
 
Ⅱ. 신학사적 분기점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과 그 이전의 하나님이 나라 신학을 확연히 구분하는 분기점은 무엇이며, 무엇이 바르트로 하여금 그의 스승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로부터 갈라서게 만들었는가? 이 문제의 해명은 바르트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기획된 새로운 정통주의(Neo-Orthodoxie)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르트 자신의 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적-신학적 개념(표상,상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신학적 개념이기도 하기 때문에,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규명하기 이해서는 그의 신학을 새롭게 태동시키게 만든 신학사적 분기점을 확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⑴ 이른바 '철저한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에 의한 종래의 하나님의 나라 신학의 철저한 해체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구상한 하나님 나라의 꿈과 이상은 중세기의 천년왕국 사상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레씽(Lessing) 이래로 특히 독일남부 쉬바벤 지방의 성서주의(Biblizismus)의 구원사 신학으로부터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새로운 신학적?철학적 천년왕국의 인류사적 구상에 따르면, 인류사의 목표는 완성된 인간성, 도덕성, 이성의 목적을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었다. 신학이 철학과 손을 맞잡고 만들어 놓은 '범종말론적 꿈'(Paneschatologischer Traum)은 역사에 대한 진보적?낙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삼고 있었으며, 비록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 나라의 피안성을 인정하고는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실현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세계 내의 인간의 가능성에 두고 있었다(낙관적 인간이해). 칸트(I. Kant)가 '최고선'의 이상을 하나님의 나라와 분명히 동일시한 이래로 철학과 신학의 공생(共生)을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되었으며, 양자 간의 돈독한 연대 관계는 특히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인 궁극적 목표를 바라보면서 시민계급의 직업윤리를 세우려고 한 리츨(A. Ritschl)의 시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 같이 보였다.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신과 인간의 종합(Synthese) 위에 세워진 천년 왕국적 이상은 리츨의 사위인 바이쓰(1865-1914)에 의해 철저히 문제시되었다. 신학사의 지축을 뒤흔든 바이쓰의 연구(Die Predigt Jesu vom Reich Gottes, 1892)는 비록 67페이지라는 작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저서가 되었고, 옛것의 종말과 새것의 시작을 가져왔다. 바이쓰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가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으로 초세계적 실재로서... 이 세계와 배타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다... 예수의 사고 범주 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 내재적 진보에 관한 말이 전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종말론적?묵시적 하나님 나라 이해는 종교적-윤리적 욕구와 철저히 대립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초월적 표상은 세계내재적 진보의 목표와는 오로지 대립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세상과 공통되는 것이라곤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의 한 발은 이미 미래적인 것 속에 서 있다. 이로써 예수는 산상설교의 도덕교사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메시지를 가진 묵시문학적 열광주의자가 되었다.
 
쉬바이쳐(A. Schweitzer)에게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서 예수는 더이상 단지 당대의 종말론의 대변자가 된 것만이 아니라, 종말론적?묵시문학적 각본의 배우로서 심리적으로 이해되었다 :
 
"사방이 고요했다. 거기에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친다. 곧 그 뒤를 이어 스스로 와야 할 인자로 자각한 예수가 세계의 수레바퀴의 살에 끼워져서 그것을 움직이며 마지막 회전을 시키고 일반 세계사의 종말을 가져 오려고 한다. 그러나 바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는 거기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바퀴는 그대로 돌고 그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는 종말을 가져오는 대신에 그것을 파괴했다. 그런데 세계라고 하는 수레 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자신이 인류의 영적 지배자이며 인류역사를 자기의 목적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강하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사람의 갈기갈기 찢겨진 시체의 조각들이 아직도 그 수레바퀴에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승리이며 통치이다."
 
바이쓰와 쉬바이쳐가 주창한 소위 '철저한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은, 비록 참으로 철저하지 못했지만, 즉 철저히 종말론을 붙들고 나가지 못하고 이를 결정적으로 극복, 폐기하고 다시금 자유주의의 예수상으로 돌아갔지만,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의 중심적 의미의 발견은 최근의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 중의 하나로서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기독교에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신학, 교회와 경건, 신앙의 터전을 흔드는 지진과 같았고, "홍수가 나고 제방이 무너지는 것"(M. 켈러)과 같았다.
 
 
⑵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자유주의적?이상주의적 문화의 결정적 붕괴(윤리적 실패)
 
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낙관적 천년왕국의 지축을 뒤흔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칼 바르트는 그 당시의 경험을 스승들의 신학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계기로서 술회했다:
 
"그 해(1914년) 8월 초순은 적어도 나에게는 암흑의 날이었다. 93명의 독일 지식인들이 빌헬름 2세의 전쟁선포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지지서명을 발표했는데, 이 지식인들 중에는 이제까지 숭앙해 왔던 신학스승들의 이름(필자주:하르낙,제베르크, 헤르만 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윤리학과 교의학, 성서해석과 역사관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고, 더우기 19세기의 신학은 더 이상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바르트의 스승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결국엔 독일의 이기주의적 영토확장을 뒷받침해주는 세상 나라의 전쟁신학으로 귀착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학의 필연적 귀결이요, 그 이론적?실천적 실패의 징후였다. "자유주의의 역사는 미로였고 사도(邪道)와 미궁의 역사였다. 그 힘은 모순과 상호파괴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뛰놀았다."
 
이 날 이후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허구적 자유의 체계와 그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 붕괴와 더불어 절대적인 하나님, 철저히 이 세계에 대하여 낯설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새로운 부름의 소리를 들었다. 이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그는 성서 안에서 발견했는데, 이것은 그의 스승들이 가르쳐 주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기하고 새로운 세계'였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로부터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상대적?주관적 입각점(도덕의식, 종교체험, 역사의식)으로부터 절대적?객관적 입각점(인간과 세계에 대해 주체로서 자유로이 대면해 있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으로 돌파함으로써, 옛 신학의 잔해를 딛고 새 신학의 장을 열게 되었다.
 
 
⑶ 블룸하르트 부자(父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돌입
 
앞의 두 사건 만큼 그렇게 떠들석하게 대지각 변동을 일으킨 사건으로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한 곳에서 지각균열을 일으키면서 마침내는 온 지각을 뒤엎었던 사건의 하나는 바로 블룸하르트 부자가 일으킨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의 붕괴를 딛고, 아니 그 붕괴에 가속력을 주면서 등장한 이른바 변증법(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변자들 중에서 그들의 영향을 직접?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자들은 드물다. 마트뮐러는 말했다:
 
"종교사회주의와 변증법 신학이라는 20세기의 스위스에 탄생한 저 위대한 신학운동은 그 공통의 뿌리를 받 볼(Bad Boll)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증법 신학운동을 흔히 "하나의 블룸하르트 운동"(Eine Blumhardtsbewegung)이라고 부른다. 블룸하르트 부자가 찾고 구하고 증언한 하나님은 새로운 행위와 능력과 계시를 기대할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히 개개의 인간의 영혼 속이나 먼 하늘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고 그리고 우선적으로 인간의 생활 속에, 바로 이 지상의 인간의 실생활 속에서 찾고 기대하려고 했다.
 
아버지 블룸하르트(J. Chr. Blumhardt)는 뜻하지 않는 악귀 추방의 경험을 겪은 이후로 카리스마적 목사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그는 계속되는 회개와 치유의 역사의 한 복판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악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간의 투쟁, 승리자인 예수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실천했다. 그의 목회를 이어받은 아들 블룸하르트(Chr. Blumhardt)는 점차 부친의 수직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 수평적 하나님 나라 이해를 결부시켰고,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이 땅 위의 이상(사회주의적 삶의 방식)과 결합시켰다. 그의 메시지와 활동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철저한 기다림과 적극적인 서두름,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의 돌입과 이를 준비하고 촉진하며 이에 협력하는 인간의 역사변혁적 행동, 하나님 인식과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전적인 갱신자로서의 하나님, 이 세계를 위한 희망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바르트에게(그를 비롯하여 투르나이젠, 브룬너, 쿠터, 라가츠 등에게도) 심원한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Ⅲ.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⑴ 로마서 주석 제1판(1919)
 
로마서 주석 제1판에서 바르트는 특히 블룸하르트와 튀빙엔 대학의 천년왕국적 종말론자 토비아스 벡(T. Beck) 등의 영향 아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새 창조로 이해했다. 이 나라는 지금까지 존재해 온 제 가능성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진이나 발전이 아니라(자유주의 신학의 진보적?낙관적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 대한 부정!), 모든 시대들을 관통하며 모든 시대들의 신적 가능성을 출현시키면서 유기적으로 성장한다. 이 나라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거나 거기에서 안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며(부르즈아적?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 또 그렇다고해서 기존의 것을 파국적으로 제거하지도 않는다(레닌주의적?공산주의적 혁명에 대한 부정!).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자신의 나라로서 모든 기존 현실을 관통하며 모든 신적 성향과 가능성을 실현시키면서 성장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이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해 가능해졌고 그의 부활로 인해 현실화되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이 왔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화되었는가?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씨앗, 변혁된 자연 법칙의 원리, 새로운 세계의 결정핵, 새로운 인간과 사물의 유기체의 시초와 머리, 새로운 창조의 배아(씨앗)로서 죽음을 통하여 낡은 요소를 받아서 새로운 갱신된 세계를 조성해 낸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과 세상 및 인간 사이에서 상실된 유기적 일치 관계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재건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혁명으로서 모든 혁명의 혁명이다. 그리고 혁명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이다. 이 영은 기존 현실을 파괴하지도 않고 보존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킨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종류의 인간적 혁명 혹은 개혁의 시도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저항운동으로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혁명은 아무리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낡은 나라를 대변할 뿐이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로마서 주석 제1판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혁명을 위한 인간의 협력이나 참여조차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혁명은 물론 우리 밖에서(extra nos) 시작하지만, 우리 안에서(in nobis) 우리와 함께(cum nobis) 일어난다. 하나님은 아래로부터 활동하시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하나님은 지배구조 아래서 고통당하는 하층민들의 편을 들면서 억압받는 자들에게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인간소외, 인간의 우상생산(국가, 맘몬, 인물, 예술, 학문, 교회, 미덕 등의 우상화), 인간의 물화(物化)와 주인없는 권세들(자본, 국가, 군국주의)의 지배에 맞선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 길들여짐으로써, 하나님의 혁명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의 정치적 참여 속에서 이루어진다.
 
⑵ 로마서 주석 제2판(1921)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완전히 새롭게 쓰여지고 철저히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바르트를 하루 아침에 유명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로마서 주석을 다시 개작하게 된 동기는 특히 여러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접한 것에 있다. 오버벡(F. Overbeck)의 원역사(Ur-geschichte)의 개념으로부터 바르트는 역사적 회의주의를 배웠고(역사에는 무상과 타락의 법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초시간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Dostoyewski)의 소설들에서 바르트는 인간의 악마성, 진리의 파라독스적 성격, 기존 현실에 대한 철저한 회의 등을 수용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로부터 바르트는 많은 상징적 표현문구들만이 아니라 진리의 실존적?역설적 성격, 하나님과 인간의 철저한 구분, 계시의 순간적?사건적 성격 등을 배웠다. 그 밖에도 바르트는 플라톤(Platon), 칸트(Kant) 및 종교개혁자들(Luther, Calvin) 등으로부터도 새로운 통찰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의 철저한 초월성, 이질성, 배타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인간의 혼합, 인간적인 것의 신적인 고양(高揚), 인간 존재 안의 신적 존재의 개입(介入)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시간적인 시간, 비공간적인 영역, 불가능한 가능성, 부정 속의 긍정, 시간 속의 영원, 죽음 속의 생명이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왔다. 그는 역사의 의미이며 시간의 종말이고 오로지 역설(Kierkegaard), 승리자(Blumhardt), 원역사(Overbeck)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자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위로부터 수직적으로" 단절시키는 미지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의 가시성 내에서는 문제꺼리, 신화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은 입자 속에서도 땅에 도래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고상한 형태 속에서도 오지 않았다. 그것은 가까이 왔을 뿐이다. 그것은 선포되고 신앙될 수 있을 뿐, 낡은 것의 연속으로서 가까이 온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까이 왔지만 어디까지나 영원한 세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그것의 반사(反射) 안에 있을 뿐이다.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정적, 불가시적이고 은폐된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소멸, 만물의 종말, 차안의 동요와 소요, 파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유기적으로 성장하거나 건설되어지지 않는다. 그처럼 볼 수 있는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벨탑일 뿐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나름대로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머리카락의 넓이 만큼도 접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순간은 모든 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시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순간들의 초월적 의미, 모든 시간들의 성취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배타적으로 하나님 자신만의 일이라고 간주된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pro nobis) 일어나지만,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맞서서(contra nobis) 일어난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혁명, 하나님 나라의 일에 협력하지 못한다. 가장 철저한 혁명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오기는 커녕, 단지 기존적인 것을 기존적인 것으로 대체할 뿐이고, 새로운 형태의 악을 불러 들인다.(레닌혁명 비판!).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여기서 전적인 체념, 윤리적 행동의 상대화, 부르즈와 계급적 반동, 종말론적 비관주의를 장려하자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다른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을 절대적으로 다르게(새롭게)하는 하나님의 활동을 긍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할 수는 없지만, 기존질서 내에서 사회적 긍정, 억압, 독재에 맞선 개혁정치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시위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로마서주석 제1판에서와 같이 온갖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안에서 실천된다.
 
 
⑶ 교의학 시대(1932-1968)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신학과 철학, 하나님과 인간을 종합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작업마당을 폭파한 효력을 끼쳤다. 인간이 생산해 내는 온갖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온갖 혼합주의를 축출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이 책은 잠자는 뭇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닭소리, 종소리가 되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상한 것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결별하여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운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서 주석 제1판과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의 위기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폐허, 진공을 남기는 듯 하였고, 시간-영원의 변증법이 하나님의 나라의 희망에 대한 기대를 채워 주기에는 너무 인색한 것 같았다. 머지 않아 바르트는 괴팅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을 더욱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전 체계를 심화?수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변증법적?수직적 종말론의 체계는 다시금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 아래서 성서적?수평적 종말론의 체계에 의해 대체?수정되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전환은 '바르멘 신학선언'의 제3항("... 교회는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고…")과 자신의 고백(KDⅡ/1, 716 이하: "...나는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피안성을 진지하게 여기느라 하나님의 오심 그 자체를 소홀히 여겼다... 어떻게 내가... 시간에 속하는 목적론(Teleologie), 진정한 종국을 향한 그 출발을 온갖 기교와 능변을 부려서 간과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 종말론적 전환 자체가... 반동으로서는 너무 강했다. 즉 독단적이고 전제적이었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전의 체계에서도 그러했지만, 특히 화해론에서는 더욱 분명하고도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구상되고 설명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지배,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격 안에서 온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를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이 혁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돌입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돌입, 하나님의 혁명은 인간과 세계의 급진적?전체적?보편적 변혁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혁명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나라의 혁명은 사회집단과 관습에 맞선 충돌 안에서 일어나서 모든 인간들의 상황변혁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율법적 강요의 전체주의 속에서가 아니라 은총의 전체주의 속에서 일어난다. 이 혁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인간도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하나님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다. 이 투쟁은 특히 인간의 소외, 물화, 관료주의화, 억압에 맞선 행동 속에서 구체화되며, 이 행동은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화해된 사회를 위한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행적 형태, 비유, 반영, 복사로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이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혁명인 화해의 인식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역할과 더 나은 사회질서의 수립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위한 적합성을 실증할 수 있다. 교회는 이론적?실천적으로 더 나은 화해된 질서를 향해 진군하는 전위대, 선구자로서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또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적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비록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세속적인 휴매니티, 우주의 빛들과 진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하며,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적?정치적 세속성의 진정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반사로 입증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의 정치적 차원과 내용적인 공통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의 인간참여는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에서의 영속적 체제변혁, 영속적 개혁정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Ⅳ. 맺는 말
 
바르트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려고 힘썼고, 예수의 실천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실천영역에 옮겨 놓고 스스로 실천해 보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망 직전에도 그의 친구 투르나이젠과의 마지막 통화에서도 "...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는 자신을 결코 절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복음을 새로이 가리키는 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세례요한의 손 이상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하나님과 이웃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 노력한 것을 나중의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해 주길 바랬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어떻게 더 수정?심화할 수 있었을런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는 다른 내용으로 이를 채우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마지막 해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하나님의 나라 신학은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그의 대답을 통해서 보다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통하여 훨씬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
 
 

이신건
 
 
1. 들어가는 말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dt), 그는 과연 누구인가? '크리스토프'란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블룸하르트'란 그의 부친의 이름에서 직접 따온 것이다. '블룸하르트'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신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특히 아들 블룸하르트는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이것이 이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고 목적이다.
 
칼 바르트의 말대로 신학사에서 이 사람을 다루는 것은, 신학의 개념에서 볼 때, 문제가 있는 시도이다. 그는 이론적인 작업에 참여하려는 의도를 전혀 갖지 않았다. 그는 실천의 사람으로서도 설교가라기보다는 목회자였다. 그리고 그는 목회자로서도 신학의 엄밀성에 그다지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그의 책, '19세기의 개신교 신학'(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 Jahrhundert, 1947)에서 블룸하르트를 당대의 영향력있는 신학자들 중의 하나로 당당히 취급하고 있다.
 
그는 후기에 그의 방대한 저서 '교회 교의학'(Kirchliche Dogmatik) 1/1에서 신학의 본질과 과제에 관해 원칙적인 언급을 하는 맥락에서 '비정규적 교의학'(Irreguläre Dogmatik)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그 대표자들 중에서 블룸하르트도 거론한 적이 있었다. '비정규적'이라는 말로 바르트가 의미한 것이 '비체계적'이라는 뜻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블룸하르트의 사상에는 분명히 일관된 체계가 있다. 단지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체계적으로 골똘히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경험을 철저히 체계적으로 숙고했고, 그 결과로 체계적인 신학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블룸하르트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의 의미를 간단히 한 마디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지만, 바르트의 말을 빌린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받볼(Badboll)에서 다시금 솟아오른 새롭고도 신약성서인 것을 우리는 '희망'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함에 관한 단순한, 너무나 종종 하나님 모독적인 발언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통치가 보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세상에 출현할 것을 바라는 희망이고, (불변하는 상황들 앞에서는 언제나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마는 그런 위로와 진정시킴과는 정반대로) 세상의 옛 상황으로부터의 철저한 '도움'과 구원을 바라는 희망이며, (자신의 영혼구원에 대한 이기적 염려, 종교적 초인들과 귀족정치를 길들이려는 모든 시도와는 정반대로) 모든 사람들, '인류'를 위한 희망이며, (이른 바 '종교적-윤리적' 생활의 순전히 영적인 이상과는 정반대로) 생활의 '육적인(leiblich) 측면'에 대한 희망이면서 동시에 죄와 슬픔만이 아니라 가난, 질병과 죽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에서 영적이기도 한 희망이다.
 
 
희망은 언제나 미래로부터 온다. 그리고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우리에게 오는 것이고, 언제나 우리에게 살아 있는 현실로 다가 온다. 그러므로 희망 속에서 과거의 블룸하르트는 항상 우리 곁에 다가 오고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래서 바르트도 말한다:
 
몰이해한 그의 적들과 감사에 가득찬 그의 숭배자들은 시간에 따라 침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서 무엇이 중심이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서 그 자신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미래의 승리를 위해.
 
이런 의미에서 20세기에서 '희망의 신학'의 본류는 바로 블룸하르트에게서 유래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는 현대신학에서 '희망의 신학'의 아버지이다. 그렇다면 희망과 미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미래의 승리는 무슨 과거에 대한 승리이며, 무슨 미래의 승리인가? 블룸하르트는 무슨 절망에 반기를 들고 희망의 외침을 부르짖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잠시 시선을 돌려 '신앙의 어머니'(칼빈)인 교회가 2천 여년 동안 걸어 온 길을 회상해 보자. 교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무엇이 중심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동터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희망, 어두운 과거를 물리치고 육박해 들어 오는 하나님의 통치의 희망이 아니었던가? 이 나라가 들어 오자 사탄의 나라가 흔들리고, 그의 세력 안에 있던 모든 지상 나라, 율법과 죄, 질병과 억압이 그 보좌에서 내팽겨쳐지고, 온 인류를 위한 새 임금의 등극이 선포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로 '하나님의 의'로 대체되고, '하나님의 의'가 '신자의 의'로 대체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그것은 교회 안으로 들어 갔다가, 결국엔 경건한 신자의 내면성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 이 속에서 유폐당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활개치게 된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시금 세상의 나라, 권력과 맘몬의 나라가 아니었는가? 그것은 새로운 율법과 죄, 질병과 억압의 세력이 아니었는가?
 
블룸하르트가 오늘 한 세기 이상이나 동떨어진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가 다시금 경건한 신자의 내면성 안으로 감금된 하나님의 나라의 과거에 대해, 하늘과 내세만을 위로로 삼고 현실에 절망하던 과거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를, 그 미래의 승리를, 모든 인류를 위한 승리를 크게 외치고 싸웠던 용사였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가 그의 부친에게서 새롭게 발견되고 경험되었던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더 진전시킨 생생한 발자취였기 때문이다.
 
2) 몸 말
 
(1) 부친 요한 크리스토프의 생애와 사상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부친 요한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 1805-1880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왜냐하면 이 둘은 단지 혈통적으로만이 아니라 사상과 활동 면에서도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은 부친의 길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독특한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아들의 길을 예비한 아버지의 역할은 아들 못지 않게 강조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요한 블룸하르트는 독일 남부 뷔템베르크(Wüttemberg)를 정점으로 한 경건주의(Pietismus)의 전성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히 경건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자랐다. 경건주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교리적, 논쟁적 설교는 성서적, 도덕적이 되고, 교직의 종교적, 윤리적 자각도 깊어졌다.
 
그리고 북부 독일의 경건주의가 주로 귀족계급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반면에, 남부 독일의 경건주의는 시민이나 농민 사이에서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하나의 힘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평신도의 자발성이 강조되고, 평신도의 교회참여가 권장되었다. 그리고 경건주의의 노력으로 성서가 모든 사람의 책이 되었고, 그리하여 성서주석이 교리나 철학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경건주의는 이 시대의 기독교 시민이 발견한 적극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경건주의의 영향 아래 자라난 요한 블룸하르트는 어릴 적부터 성서를 친숙히 대하고, 이미 12 세 때에 성서를 두 번 통독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어린 시절에 성서 안에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그것이 대한 동경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경건한 나'가 전면에 나타나는 것을 당시의 교회의 근본악의 하나로 보게 되었고, 신앙의 사적 성격을 비롯하여 모든 종교적 이기주의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경건주의가 죽은 정통주의의 경직성에 비하여 교리보다 인간의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모든 것을 인간에게 동화할 수 있는 것, 인간화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하려는 근대적 인간의 의도가 깔려 있다. 그리고 경건주의는 감정적, 신비적 태도와 세상과의 분리를 특징으로 갖고 있었으며, 바르트도 적절히 지적했듯이, 개인주의, 기계주의(Mechanismus, 필자 주: 하나님과 인간, 세상의 관계를 유기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개인적, 고립적 자세로써 구원을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당시의 경건주의가 갖는 한계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당시의 경건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요한 크리스토프는 1820년에 쇤타알(Schöntal)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의 기초수업을 받았고, 4년 후에는 튀빙엔(Tübingen) 신학교에 진급하여 5년 간 더 신학훈련을 쌓았다. 1829년의 졸업 후에 그는 여러 지역(듀르멘츠, 바젤, 입팅엔)에서 목회했다. 이 시기의 그의 목회자적 자세는 매우 경건주의적이어서 '하나님과 회개하지 않은 영혼'의 문제가 목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뫼틀링엔(Möttlingen)에서 예기치 못했던 대투쟁을 겪은 후부터 그는 경건주의의 좁은 한계를 깨트릴 수 있었다. '대투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일어났다. 그는 1838년에 33세의 나이로 주민 500 여명이 사는 작은 촌락도시 뫼틀링엔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임 1년 반이 지나서 그는 여러 질병을 앓는 고트리빈 디투스(Gottliebin Dittus)라는 자매를 접하게 되었다. 블룸하르트가 취임설교를 할 때, 그녀는 그의 눈알을 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반 후에 그녀의 집안에는 이상한 소리와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한다. 집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에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하여 들려 왔고, 블룸하르트와 같이 간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면, 소리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고 한다. 때로는 의자가 날라 올라간다든가 창문이 흔들리며 천정에서 모래가 쏟아졌다고 한다. 고트리빈 디투스는 자주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는데, 블룸하르트는 어떤 악령의 힘이 역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럴 때에 그는 주 예수의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녀의 귀에 "손을 모으고 '주 예수여 도와 주소서'라고 기도하시오"라고 외치자, 경련이 멎기도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곤 했다. 때로 그녀의 입에서는 악령의 말이 나오기도 하고, 험상궂게 그에게 덤벼들기도 했다.
 
1834년이 되자 그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모래, 유리파편, 피를 토하고 완전히 죽음 직전에 이르도록 정신착란에 빠졌다. 블룸하르트는 그녀의 비참함 앞에서 어둠의 세력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그가 어릴 적부터 성서에서 읽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인간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하나님의 힘의 개입이 일어나지 않는지 분노하고 초조하게 생각했다. 그는 암흑의 세력과 목숨을 거는 육박전을 감행했다. 그는 이 싸움에서 싸움의 주체가 그 자신이 아니라 주 예수임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주 예수를 앞에 내세우고 자신은 점차로 뒤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주님이신 그분에 대한 신뢰감이 깊어질수록 그의 마음에서는 " 전진하라, 예수가 뱀의 머리를 밟아 부수었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가장 깊은 못에 빠져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좋은 목표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는 오직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싸우려고 했다. 이제 디투스의 질병은 그녀의 두 자매에까지 확산되어 도를 더해 갔다. 그런데 1843년 12월 27일 한밤 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난 후에 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그날의 일을 그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녀(카타리나)의 목에서 몇 번인가 아마도 15분 정도 계속되었을까, 절망의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무서운 괴성이었다. 나는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드디어 감동적인 순간이 왔다... 새벽 2시에 소녀는 의자에 앉아 머리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앉아 있었으며, '사탄이 된 천사'로 불리워지는 자가 인간의 목에서 나오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음성으로 '예수는 승리자다, 예수는 승리자다'(Jesus ist Sieger!)라고 부르짖었다...
 
이윽고 악령의 위력과 힘은 순간순간마다 빼앗겨가는 듯이 보였다. 악령은 점차 조용하고 얌전해졌고, 차차 그 운동이 둔해져서 드디어는 전혀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멸되고 말았다. 마치 빈사상태의 사람의 빛이 사그라져 가는 것과 같았다.그러나 그것은 겨우 아침 8시 쯤의 일이었다.
 
 
이것은 2년 동안의 싸움의 결과로 크리스마스 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순간에 고트리빈도 함께 나았다. 이 날 이후로 고트리빈 일가는 긴 괴로움에서 해방되어 정상생활로 되돌아 왔고, 고트리빈은 일평생 블룸하르트 부인의 충실한 조수가 되었으며, 블룸하르트의 사역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은 그 이후의 블룸하르트의 사역에서 놀라운 각성과 참회 그리고 신유의 사건으로 계속 이어졌다. 완고한 농부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대성통곡했고, 꽉 메어진 시골교회의 열린 창문들 앞에서 병자들은 치유를 경험했다. 그리고 목사관에서 사람들은 성령이 다시 강림하기를 빌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이 그 당시에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었으며, 오늘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가? 한국교회에서 허다하게 일어난다는 신유현상, 전파매체와 영화 등을 통해서 그런 유사한 현상들을 자주 접하는 우리에게 그것이 새삼 새로운 의미를 주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 당시에 그 체험이 가진 의미는 순전히 유럽의 합리적, 교리적 전통에서 그 것이 매우 진기하고 의심스럽게 여겨진 데만 있지 않다. 그것이 그 당시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성, 실재성이 생생하게 체험된 사실에 있다. 그 때에 경험된 하나님은 삶에서 지친 사람들이 추구하는 피안의 종교의 하나님과는 달리 살아 있는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그의 나라도 개개인의 영혼이나 먼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삶 속에서, 바로 이 땅 위의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찾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블룸하르트에게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현실성, 삶의 전 영역에 미치는 하나님의 나라의 희망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체험은 블룸하르트 부자(父子)로 하여금 그 시대의 경건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체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경건한 인간을 넘어서서 이 세상 안에서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하나님의 용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바로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다:
 
투쟁의 승리는 이러한 상황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한다: 예수는 승리자다. 이 돌파는 경건주의의 한 복판에 있던 블룸하르트에게서 완전히 비경건주의적인 발견과 깨달음이었다. 예수와 인간의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예수와 인간이 처해 있는 어둠의 실재세력이야말로 이 투쟁에서 그가 경험했던 대립이었다.
 
자우터도 이 점을 적절히 평가하고 있다:
 
'예수는 승리자다!'라는 문장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블룸하르트는 그의 경건주의적 주변세계와 분명히 구분된다. 비록 블룸하르트는 죄지은 개개인의 회심이라는 사상도 확고히 붙들긴 했지만, 이것은 더 이상 일차적이며 최종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보편적 현실성에 종속되었으며, 양자는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방의 그리스도교의 궤도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구조적으로 '하나님과 영혼'의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블룸하르트는 또한 이로부터도 벗어났다.블룸하르트는 일차적으로 우주적인 파멸의 세력을 주목하는 '동방교회'의 관점에 관해 적절히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블룸하르트의 활동이 단지 좁은 테두리 내의 축귀운동, 회개운동으로 그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에게서와 같이 그의 사고와 활동, 선포와 목회의 중심이었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는 보편적이고도 포괄적인 희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는 다시금 힘있는 역사적 과정, 운동으로 나타났고, 만물의 갱신으로 끝나고야 말 승리로운 투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블룸하르트는 루터처럼 "내가 어떻게 하여야 은혜스러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 하여야 신음하는 피조물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종국적인 구원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에게서 다른 모든 질문은 이 질문에 종속되어 있거나 포함되어 있을지언정,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하고 더 크고 더 긴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그의 설교와 존재의 중심이 되었다.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종교나 교의, 영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다. 뫼틀링엔의 체험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큰 빛의 한 줄기일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나라이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른 기원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서 낮은 가치와 작은 중요성 밖에 갖지 않는다.
 
블룸하르트는 1880년 2월 25일에 아들에게 "나는 너에게 승리를 축복한다"고 말한 후에 조용히 영면했다. 그의 아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장례식에 참여한 조객 앞에서 "예수는 승리자다"라는 내용의 말을 전하고, "예수는 모든 원수를 무찔러 승리하는 승리의 임금"이라는, 부친이 승리의 싸움 가운데 지은 찬송가를 부르게 했다. 이로써 아들도 아버지가 승리롭게 싸운 싸움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셈이 되었다.
 
 
(2) 아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생애와 사상
 
 
아버지의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은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조수 혹은 동역자로 그리고 결국엔 아버지의 목회사역을 물려받은 아들 블룸하르트는 고트리빈 일가의 치유사건의 와중에서 태어났다(1842년 6월 1일).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며 암흑의 세력과 싸우는 현장의 한복판에서 자라났고, 13살부터는 부친의 설교를 항상 필기하기까지 부친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우라하, 튀빙엔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슈페크, 게른스바하, 듀르나우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69년에 부친이 사역하던 받볼로 되돌아왔다. 그때부터 죽기까지 그의 활동은 신학적 모토(구호)에 따라 대체로 4시기로 구분되어 설명될 수 있다: 1기; 예수는 승리자다(아버지의 계승자), 2기; 죽어라, 그리해야 예수가 산다(기독교적 육과의 싸움), 3기; 너희 인간들은 하나님의 것이다(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사회참여), 4기; 하나님의 나라는 다가온다(말기).
 
1. 예수는 승리자다(1869-1685년)
 
블룸하르트는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음을 기뻐했다. 이러한 큰 기쁨 속에서 그는 10년 동안 부친 밑에서 장사진을 이루는 사람들을 상담하며 치유사역을 행하였다. 그에게서도 여러 차례 병치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치유가 하나님의 나라의 표징에 불과하며 인간에게 궁극적 구원을 알려 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기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오해 때문에 그는 괴로워했다. 1기는 대체로 아버지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의 샘에서 복음의 생수를 퍼내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사로 자임했다. 그도 역시 아버지처럼 살아 활동하는 하나님, 승리의 예수에 대한 확신을 견고히 붙들고 나아갔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하나님의 나라를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의 도래 이래로 지상의 나라를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뒤흔들면서 궁극적인 승리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요, 인간은 이것에 대해 다만 방관자로 있지 않고, 싸움에 소집되고 징발당한다. 다만 그의 경우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나라의 긴장이 아버지의 경우에서보다 한층 더 증폭되고 첨예화되었으며, 인간의 소집과 징발도 더 절박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는 기존교회의 현실을 냉혹히 비판했다. 그의 부친은 교회와 평온한 관계를 유지했고, 교회와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그 반면에 그는 비록 일평생 목사로 불리긴 했지만, 교회의 테두리를 넘어섰다. 그는 강한 내면적 투쟁을 거친 후에 그리고 하나님의 길이 필연적으로 진보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의 강요 아래서 교회의 모든 외형적 형식을 돌파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교회는 항상 흘러가고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운동 대신에 경직된 것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항상 인간의 제도, 이론, 체계, 상징을 내세우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능력이요 현실이다. 그는 예수의 메시지가 교회사를 경과하면서 지나치게 적응되고 자명한 것이 되었으며 협소화되고 축소되었다고 느꼈다. 그리스도교는 점점 인간사회의 고통과 대결할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그는 복음의 원초적 음성을 추구했으며, 온갖 그물로 얽혀 있는 교회와 세계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직접성을 간구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상징체계와 제도화의 너머에서 그리고 그 위에서 '직접적인' 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블룸하르트의 강한 교회비판은 처음부터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진보를 위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자로서의 교회를 향한 비판이고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외침이지, 교회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참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그 당시의 교회는 하나님의 동맹자가 아니라 개인적 축복이나 위로를 추구하는 경건주의적 교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블룸하르트는 하나님의 나라의 진전을 방해하는 기독교적인 육(肉)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반신적 세력과의 싸움이 그의 부친에게서는 본질적으로 수직적인 차원에 더 강조점을 두었던 반면에, 아들에게서는 수직적 차원에 뿌리를 두면서도 점차로 더 강하게 수평적인 차원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2. 죽어라, 그리해야 예수가 산다(1886-1895년)
 
치유자, 하나님의 나라의 설교자 그리고 목회자로서 널리 명성을 얻게된 블룸하르트는 점차로 교회의 죄, 기독교적 이기심, 기독교적인 육(肉)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가 참으로 우리들 가운데 살아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 속에 있는 한층 더 나쁜 하나님의 나라의 적을 발견하고 이와 싸우기 시작했다:
 
모든 기독교적인 육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이 기독교적인 육은 늦기 전에 죽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영을 죽여 버린다... 지금 나는 주님이 우리들 곁에서 육으로 발생한 것을 죽이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고 계신 것을 기뻐하면서-그렇다, 기쁨을 가지고 보고 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좀 더 영적으로 나타나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밑바탕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것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기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먼저 드릴 것은 드리고, 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그리스도의 피 속에 바치자.특히 육적인 기반 위에 영적인 것으로서 생긴 일체를.
 
뫼틀링엔에서 일어난 승리는 주 예수의 승리이지 인간의 승리가 아니며, 오히려 거기서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의 무력함이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싸움으로부터 인간적인 영웅주의 같은 것이 생겨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들이 때때로 그것이 아버지 블룸하르트에게 주어진 특별한 종교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종교적 재능이 주목받고 존경받음으로써, 거기에 기독교적인 육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블룸하르트는 그러한 육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의 진전을 방해하는 요인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악령적인 것보다 인간 그 자체가 적이다. 특히 인간적인 이기주의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크게 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신앙에 의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맺는 나의 관계'(경건주의)가 아니라 '나와 맺는 하나님의 관계'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곤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곤궁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고난이 아니라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계획, 인간의 야망,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예수의 대의(大義)이다. 중요한 것은 구세주가 우리의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갈취하는 이기적 성향을 버리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기적 욕망과 만족을 위해 기적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봉사해야 한다. 그래서 블룸하르트의 초기의 목회구호 "예수는 승리자다"는 이제부터 "너희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산다"로 바뀌었다. '영광의 신학'의 유혹을 뿌리치고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블룸하르트가 "죽어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 무엇보다도 염두에 둔 것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죽어야 하고 가난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먼저 교회였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육, 인간적인 이기주의가 하나님의 은혜의 그릇으로 지상에 놓여진 교회 안에서 그 위력과 무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블룸하르트는 인간의 육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를 '종교'라고 부른다. 교회는 그러한 종교의 최고형태요, 따라서 그것은 항상 문제투성의 것이었다. 따라서 경건하면서도 악마적인 것으로서의 종교와 그러한 종교로서의 교회가 그의 신랄한 비판의 과녁이 되었다. 그가 문제삼은 것은 불경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경건하다고 자처하는 자였다. 경건한 인간은 회개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는 자기칭의(自己稱義)를 통해 이 세상의 교만 위에 또 하나의 종교적인 교만을 덧붙인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기반을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종교화된 교회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위한 유용한 백성이 되고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구원을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경건한 인간의 특별한 영역이 되고, 자기가 소유한 것을 자랑한다. 그러한 경우에 교회는 세속화되고 때로는 자신과 반대로 보이는 세속권력과 결탁한다. 그래서 블룸하르트는 교회를 향해서도 "죽어라, 그리해야 예수가 산다"라는 말을 던졌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본위의 교회체제를 배격할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블룸하르트는 그러한 종교로서의 교회와는 다른 어떤 것을 진지하게 희구했다. 그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가 구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 그의 나라와 그의 의였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는 단순히 하나하나의 인간의 영혼 속이나 먼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리고 일차적으로 인간의 삶 가운데서, 바로 이 지상의 인간의 실제생활 속에서 구하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만약 내가 늘 다만 천상적인 것만을 염두에 두고 지상적인 것에는 바른 자세를 가지고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천상적인 것마저 잃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네 사명은 더욱 지상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나 초지상적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들은 장차 무언가가 하늘로부터 갑자기 일격과 같이 모든 것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종교적 의식만 계속하고, 생활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 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여기가 우리들의 장소이다. 여기서 행복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피안에서도 무(無)이다.
 
 
3. 너희 인간들은 하나님의 것이다(1896-1905년)
 
블룸하르트는 1896년 10월부터 다시 새로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들어 오기 위한 열쇠요, 세상에서 진리를 구하는 우리들에게 도달하기 위한 열쇠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보신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는 세상에서도 생명을 본다. 그리고 생명은 인간의 빛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이때부터 1905년 경까지 이르는 소위 3기 전체를 대표하는 그의 주요 사상기조이다. 그는 이제부터 특히 '육으로 오신 하나님'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이 되었다. 하나님은 육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속에 있는 암흑과 싸우고 죄와 싸우고 그것에 대해 승리한다. 따라서 육을 입고 온 그리스도는 육 안에 있는 악마에 대한 최대의 적이요, 우리들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대항이요, 죄에 대한 싸움이다. 그리고 예수는 인간의 가장 깊은 비참에까지 내려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지 못하는 데는 어디에도 없다. 예수에게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높음과 낮음의 결합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지면에 깔려 있는 곳, 사람들이 그들을 죄인과 비천한 자로 부르는 곳, 사람들이 그들을 밟고 넘어 가는 곳, 거기에서 우리는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예수의 수육(受肉)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창조물에 미친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은 진정 하나님의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도 블룸하르트는 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2기의 비판이 하나님의 구원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종교, 종교가 된 교회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3기의 비판은 세속의 바다 한가운데서 종교적인 성스러운 작은 섬이 되려고 하는 교회의 존재양상에 대한 비판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들의 경건한 위선을 그만 두어라. 주 예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시 세상 가운데 산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외치고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다... 천지를 하늘로 바꾸려는 자는 도둑이요 살인자다. 땅이 우리들의 나라요, 여기에 우리들의 하나님은 계시고, 여기에 우리의 그리스도는 계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다시 사셨다.
 
블룸하르트는 예수가 세상 한가운데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회의 벗이요, 전혀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사회를, 특히 가장 비참한 사람들을 꽉 붙들고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로써 그는 현실사회, 특히 인간의 거의 모든 삶의 차원을 지배하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관심도 간접적으로 표명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가 사회문제에 투신하기 직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 그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삶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사회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가 된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금지하는 '감옥법안'에 항의하는 집회에 아무런 고려도 없이,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없이 참석한 일이었다. 그의 목회지 받볼 인근의 산업도시 괴핑엔(Göppingen)은 제2의 산업혁명의 단계에 들어간 자본주의 사회의 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의 제반 모순이 드러나고 노동자 계급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자 1999년에 황제 빌헬름 2세와 정부는 노동자의 단결과 사회주의를 진압하는 악법을 공포했고, 노동자들은 괴핑엔에서 항의집회를 열게 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블룸하르트는 이 법안이 정의에 대한 범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며칠 후에 사회민주당이 주최하는 모임에 초대받아 자신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의 연설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했다:
 
대체 그리스도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낮은 곳에서이다. 그는 세리와 죄인의 한 패거리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그가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똑같이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한 생활이 나를 사회주의로 향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적 세계질서는 그리스도의 세계질서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생명을 빼앗지 않고 생명을 준다. 그는 혁명으로 피를 흘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질서를 요구한다.
 
 
이로 인하여 블룸하르트는 대중의 환호를 받았지만, 군주제의 독일에서 국가와 결합되어 있던 국가교회의 종무국의 권고에 의하여 목사직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도적인 사회민주당원이 되었다. 그리고 1900년에 그는 뷔템베르크 지방의회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게 되었다.
 
블룸하르트는 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활동을 감지했다. 그는 이 운동 속에서 예수가 새롭게 출현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도 역시 정의와 진리, 사랑과 생명이 담겨져 있는 인간성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은 심판을 알리는, 하늘로부터 번쩍이는 정의의 불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블룸하르트는 기존교회를 비판했다. 교회는 예수가 가르쳤던 것과 정반대로 가르친다. 거짓된 종교적 사고, 경건을 가장한 바리새적 세력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듯이, 현존하는 기독교는 복음과 대립,모순된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이기적으로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일과 대립된다. 자기의 평화만을 추구하고 기존적인 것에 매달리는 태도는 본래적인 복음의 세계변혁적 역동성과 대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독교를 지배자들의 종교로 오도해 가는 것에 대항하여 싸우며 승리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산업자본(맘몬주의)과 결탁하여 세계를 제패하고 파괴하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하르트는 6년 동안의 의회할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큰 길을 닦는 작업에 투신했다. 그는 무신론자들이 그들의 이념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곳에서도 그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의 심장 속에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 속에서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영과 진리가 있음을 때때로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사회민주주의에 가담하여 그 도덕적이고 성실한 무신론에게까지도 큰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회주의적 희망을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그는 협동조합과 같은 단체를 구성하여 농부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힘썼고, 왕에 대한 원내교섭단체의 충성서약, 화학비료에 의한 인공적 농업 등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민주당의 한계도 발견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자리에 야만적 폭력의 정신, 고립된 다툼과 투쟁, 교조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체제, 만성적 혁명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사회민주주의 안에 끊임없는 계급투쟁, 새로운 이기주의가 자리잡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민주당의 밑바탕에 이 세상의 임금이 지배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당의 명예를 탐욕적으로 원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사회민주당이 정치적 비인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건강도 좋지 않았고, 받볼의 사역도 계속해야 했기에, 재선의 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을 탈당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4. 하나님의 나라는 다가온다(1906-1919년)
 
4기는 1906년의 팔레스틴 여행 도중에 얻은 말라리아 병의 재발, 1910년의 이집트 여행 도중에 얻은 기후병의 악화, 1911년 여름의 심장발작 등 때문에 점차로 은둔 속으로 물러간 조용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에 그의 생활과 발언의 과격함은 점차로 물러가고, 조용한 기다림의 자세가 전면에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향해 서두르던 그가 이제 이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그것을 너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것은 항상 인간 의해서 접촉되지 못한 채 있다... 그것은 다만 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손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과거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변경시킨 것은 아니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인류의 땅 밑에서 거품이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오물이 표면에까지 넘쳐나와 화산처럼 폭발하여, 지진이 마을과 주민 전체를 몇 분 사이에 파괴해 버린 2년 전의 멧시나와 같이, 여기저기서 가공할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한가운데 있다. 이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이여, 들어라. 너의 내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심판을 통하여, 그러나 또한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목표했던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이 시기의 블룸하르트도 하나님의 나라의 진보(진전)를 위한 인간의 참여를 배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가운데서야말로 인간은 기쁨으로 그 진전에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우리들 인간을 통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능동적 인간이 되어야 하고, 더 의롭고 좋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전쟁도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자로서 나타나기 위한 기회에 불과하다. 전장에서는 대포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야말로 승리자다. 승리자 예수는 지극히고요하고 조용하게 세상을 통과한다. 인간의 역사에는 항상 하나님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의지와 지배는 일체를 꿰뚫고 진행하여, 최후에는 하나님의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고야 만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질 것이다.
 
1917년 10월에 그는 산책 도중에 갑자기 뇌졸증 발작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1918년 9월 설교 후의 저녁모임에서 이사야 49장 7-13절의 본문을 근거로 한 그의 설명은 그의 최후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이 이 약속의 빛 가운데 걸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이 약속되어 있고, 항상 지상의 빛이 된다. 우리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잊어 버리시고 만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우리들 곁에 계신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살아 있고 참되어서 우리들이 언제나 확신을 갖고 살도록 하신다. 모든 것은 그분의 지배에 복종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2년 후 1919년 8월 2일에 찾아왔다. 그의 비석에는 그의 부친이 지은 찬송가 한 귀절이 새겨져 있다. "예수의 승리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네. 온 세상은 모두 그분의 것일세." 이렇게 하여 아들 블룸하르트는 그의 부친 옆에 누워서 지금도 말없이, 그러나 우렁차게 하나님의 나라를 외치고 있다.
 
 
 
3. 맺는 말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그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와 그의 부친의 생애와 사상을 대충 훑어 보았듯이, 그들에게는 오늘날 새롭다고 말하는 온갖 종류의 신학운동, 교회운동 및 사회운동이 거의 다 용해되어 있다. 경건주의 신학, 신유(치유,축귀)의 신학, 성령의 신학, 희망의 신학, 세속화 신학, 정치신학, 해방신학, 종교사회주의, 민중신학, 종말론적-묵시주의적 신학 등 현대신학의 모든 경향들이 그들의 신학과 활동 안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다. 해 아래서 새롭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새로운가?
 
그러나 그들이 의미있는 것은 단지 그들 속에 온갖 사상들이 용해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진 않다. 많은 말을 하고도 힘있는 말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하나의 단순한 진리를 용기있게 말하지 못하여 횡설수설 많은 말을 늘어 놓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말들을 늘어 놓으면서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지만 진정 알아야 할 한 가지 진리를 놓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수없는 미사여구와 체계적인 사상을 펴 놓는다 하더라도, 한 가지도 실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참으로 블룸하르트 부자(父子), 특히 아들 블룸하르트는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많은 인기를 누리고, 많은 활동을 했지만, 거기에 전혀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사적인 그 무엇, 특수하고 카리스마적인 그 무엇으로 만들어, 이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목회성공, 대교회, 출세, 섹트, 교파, 인기, 물질 등-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위대성과 영원한 의미는 바로 다름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무능, 달변과 침묵, 서두름(Eilen)과 기다림(Warten), 성공과 실패, 인기와 비난 이 모든 것들을 오직 하나,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철저히 가르치고 실천했던 것, '하나님의 나라의 희망'에 집중시키고, 이를 집요하게 파악하고 철저히 실행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경건한 인간의 내면성, 견고한 제도적 교회 안으로 감금당하고 때로는 저 먼 피안으로 추방당한 하나님의 현실성, 그의 나라의 역동성과 변혁성을 다시 되살려 주었다. 바로 이 점에 그의 독특성과 중요성이 있다.
 
오늘 날 우리는 그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고, 그의 활동을 그대로 반복할 수도 없다. 단지 우리가 그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우리의 모든 은사들과 자원들을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시켜서 그의 사명,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상실한 자는, 그가 아무리 교회적으로나 세속적으로 명성을 얻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블룸하르트의 길,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벗어나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것도 결국엔 하나님의 나라에 맞서서!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님 나라 이해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님 나라 이해
 
이신건
 
 
 
들어가는 말
 
이른바 '신정통주의(Neo-orthodoxie)' 신학에 의해 결정적 타격을 입었던 18∼20세기 초엽의 독일 중심의 신학조류를 우리는 흔히 '자유주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신정통주의'라는 용어도 이 신학의 대표자들이 이러한 표현 아래 불리는 것을 기꺼이 환영한 것이 아니고 이 신학을 분류하려는 사람들이 붙여준 범주적 어법이듯이, '자유주의'라는 용어도 후대의 사람들이 특정한 신학경향이나 신학방법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꽤 모호한 용어이다. 그리고 '보수주의'라는 용어가 특정한 전통을 보수(保守)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채택하는 능동적·방어적 개념이지만,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자유로운 신학자들에게 흔히 붙여지는 피동적·공격적 용어이다. 그런데 공격받는 신학자들이 침묵하거나 방어하지 않을 때나 죽고 난 다음에라면, 으레 공격하는 사람들의 소리만이 크고 유리할 뿐이다. 또 공격하는 사람들은 더욱 선명하고 흑백논리적인 어법을 즐겨 사용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라는 표현은 오용되기 쉽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무조건 복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목소리를 내며 결집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복음의 근본을 방어하려고 등장한 '근본주의(根本主義)'처럼 어떤 공통된 신학을 표방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용어처럼 '자유주의'라는 용어도 꽤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을 광범위하게 지칭한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당대의 기계론적 유물주의, 허무주의, 정신사조의 혼란과 전통의 해체, 진보사상과 진화론 등의 도전 앞에서 복음을 새롭게 변증하려고 고심했다.(주1) 물론 이들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근대의 계몽철학적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그리하여 형이상학적 교의와 교회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기(liberal)' 원했다. 그래서 이들의 신학은 '자유로운 신학(Liberale Theologie)' 혹은 '현대학파(Moderne Schule)'라고 불리웠다.
 
바르트(K. Barth)는 이 신학의 근본사고가 인간중심적이라고 보았고, 이 신학이 물려준 학습내용이 '종교적 개인주의(Religiöser Individualismus)'와 '역사적 상대주의(Historischer Relativismus)'라는 공통분모 아래 묶여진다고 보았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 학파는 하르낙(A. von Harnack),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및 리츨(A. Ritschl)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역사적 현상으로 해석하거나, 압도적으로 종교적·도덕적인 특징을 띤 내적 체험의 사실로 보았다.(주2)
 
그리고 이 신학은 '문화개신교주의(Kulturprotestantismus)'라고도 불리웠다. 왜냐하면 이 신학은 기독교에서 이른바 낡은 형이상학적 교리의 외피를 벗기고, 기독교를 근대의 문화와 종합하려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함으로써 이 신학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독교적 경건성을 지닌 채 한 세기 이상 교회와 신학의 심성을 지배했다.
 
이제 필자는 앞에서 지적한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한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유보 아래 이 신학의 대표적 지도자들 가운데 세 사람(F. Schleiermacher, A. Ritschl, W. Herrmann)의 '하나님 나라(Reich Gottes)' 사상을 통해 이 신학의 핵심적 내용을 간결하게 조망하고 비판하려고 한다.
 
I.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
 
슐라이어마허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19세기의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자의식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만들었다.(주3) 그는 신의식(Gottesbewußtsein)을 하나님 나라의 이상 안의 활동상태의 전체와 전적으로 관련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를 목적론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만들었다.(주4) 그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문화의 진보와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동일하다.(주5) 따라서 그의 신학은 윤리적 진보사상의 영향을 받은 관념주의(Idealismus)의 해석형태를 지닌다.(주6)「그리스도인의 윤리(Die christliche Sitte)」에서 슐라이어마허는 이 땅 위에 세워질 신국의 이상(理想)과 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13f).「신앙론(Glaubenslehre)」에서 슐라어마허는 경건한 의식에서 생겨나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발전에 실제로 기여하는, 하나님 나라 안의 활동이라고 말한다(3.Aufl, 53,55).「철학적 윤리(Philosophische Sittenlehre)」에서 슐라이어마허는 결국 하나님 나라를 자연과 이성의 완전한 교통(Durchdringung)과 일치(Vereinigung)라고 설명하기까지 한다(45f, 152f).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하나님 나라 이해에 윤리적 특징을 부여한다. 경건(Frömmingkeit)과 윤리(Sittlichkeit)는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본질인데, 이것은 가시적인 완전성의 최고단계로 발전하는 진보 속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목적론적 경건 혹은 윤리적 과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 발전과정은 이 땅 위의 인간의 모든 생활과 그 역사를 동반한다.(주7) 실로 그는 윤리적 발전을 '자연의 진화과정을 역전시키는 전진'(주8)이라고 표현한다. 이 모든 설명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인류의 진보적 발전의 마지막 상태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슐라이어마허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바탕에는 두 가지의 본질적 요소가 깔려 있다. 하나는 인간화(Menschwerdung)이해인데, 그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자연화(Naturwerdung)로 이해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사귐 안으로 받아들여진 인간들에 의하여 이룩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미 창조를 통해 만물은 하나님의 계시를 준비하고 이에 영향을 주면서 이 방향 속으로 관련을 맺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는 육신 속에서 일어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창조를 가능한 한 모든 인간의 본성(Natur)에 완전히 옮겨놓는다.(주9) 여기서 '창조를 인간의 본성에 옮겨놓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인간의 활동에 위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는 예수가 세운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고 이에 영향을 주면서 이 방향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창조는 '하나님의 세계통치'라는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 나라의 준비와 이의 시작과 발전적 실현 사이를 구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세계통치를 오직 한 목적, 즉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관련시키고, 이를 항상 동일한 것으로 본다. 그것은 "하나로서 하나를 지향한다. 우리는 개체를 전체의 한 부분으로 상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개체를 위하여 전체와의 상관성과 분리되어 있는 특별한 하나님의 원인을 상정하고, 개체를 하나님의 세계통치의 특별한 목적과 결과로 간주하여 다른 모든 것을 그 종속적 수단으로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모든 개체는 제약하면서도 제약받는 통과지점(Durchgangspunkt)으로 나타난다."(주10)
 
여기서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견해로 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원인성(Ursächlichkeit)과 세계통치는 직접적으로 서로 속해 있다. 2) 세계통치와 원인성의 마지막 목표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자연적 세계 안에서 전개되는 실체를 뜻한다.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의 모든 개별적 결과들은 그 실현의 수단으로서 이 실체에 종속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전능과 구별되는 세계 안의 '자연메카니즘'의 결과들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실과 같다.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의 불변적·무시간적·세계외적 존재와 가변적·시간적 존재 사이의 완전한 대립을 견지하면서도, 자연세계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세계는 역사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의 형태 안에서 하나님과 세계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세계도 시간적 존재로부터 영원한 존재로 넘어가게 된다. 창조물은 창조자와 화해되고,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된다.(주11)
 
그런데 하나님의 원인성은 신의식으로 경험되는 절대의존의 감정으로서의 직접적 자의식 속에서 드러난다.(주12) 이 하나님의 원인성은 유한한 인과체계와는 구분되지만, 이것과 동일한 규모(Umfang)의 하나님의 행동으로써 경험된다. 모든 유한한 존재가 하나님의 인과성에 종속하는 한, 하나님의 행동은 유한한 '자연의 상관관계'의 규모와 동일하다. 하나님이 모든 사건에서 협동한다는 것을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의 전능(Allmacht)이라고 부른다.(주13) 하나님의 세계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원인성은 사랑과 지혜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은 다른 것과 일치하려고 하고 다른 것 속에 존재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의 근본을 이루는 인간화 사건의 배후에 있는 마음은 오직 사랑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 본성의 일치는 세계통치의 주축(Angelpunkt)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설립을 의미한다. 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실현시키는 기술(Kunst)이다.(주14)
 
인간이 하나님 나라의 설립에 참여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의식'(神意識)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의식을 설명할 때, 슐라이어마허는 '경건'(敬虔) 혹은 '직접적 신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지식이나 행위라고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서 경건은 원초적으로 '감정의 결정성'(Bestimmtheit des Gefühls)을 의미한다.(주15) 감정은 다양한 모든 존재의 근저를 이루는 하나의 존재가 '자의식'에 의해 파악되는 원초적 바탕(Urgrund)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최상의 존재인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 직접적 자의식 속에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신의식은 모든 종류의 지식이나 행위와 분리된다. 왜냐하면 지식과 행위는 일치보다 대립관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감정'이나 '직접적 자의식'의 개념은 절대적 존재가 여기서 본래적 존재로서 현재화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주16) 신의식은 '절대적 의존감정'이기도 하다. 이 감정 안에서 더 높은 존재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추구가 일어난다. 이 감정은 자유감정과 대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자유감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일치의 감정이다.17)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생각에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로부터 유래한 강한 신비적 특징과 헤렌후트(Herrenhut)적인 영향이 깔려 있다.(주18)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 안의 활동상태를 모두 신의식과 관련시킨다.(주19) 즉 절대적 의존감정은 하나님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생각될 때만, 인간은 최상의 존재의 이상을 위해 활동할 수 있다.(주20) 인간 존재는 자유감정과 의존감정의 분리 과정 속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상호작용의 지배법칙 아래 있기 때문이다. 획득되는 모든 것은 이 법칙에 종속해 있고, 항상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창조의 목표로서 변할 수 없고 지속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세상과 인과체계를 깨뜨리고 이와 독립된 힘을 인간에게 줄 때에만, 인간은 창조적 임무를 위해 해방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과의 인과체계적인 상호작용을 지양시키면, 이렇게 고양된 경건 안에서 실천되는 행동은 하나님 나라의 촉진에 기여한다.(주21)
 
그런데 인간의 임무실천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죄다. 죄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을 저지하는 것, 육이 영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주22) 영과 육은 서로를 위하도록 구성되어 있고, 감각적 자연은 창조적 이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죄는 이 관계를 파괴한다. 물질적 자연이 인간의 영적 자발성을 위해 조직되었지만, 죄 때문에 영과 물질의 이러한 관계가 파괴됨으로써 신의식의 자유로운 전개는 저지를 받게 된다.(주23) 이러한 무신성(無神性) 혹은 하나님 망각의 상태는 신의식을 실제생활의 관련성 안으로 끌어오지 못한다.(주24)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해방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화(성육신)를 통하여 비록 과도적이지만 세계통치의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발전에 새로운 동인(動因)을 마련한다.(주25)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표상(表象)은 인간화와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맺는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의 인간화는 하나님 나라의 자연화이기 때문이다.(주26) 하나님의 나라는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 본성의 일치(결합)를 내용으로 삼는데, 이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모범적으로 나타났다. 이 일치는 완성된 신의식의 형태 안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자의식 속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주27) 내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 신의식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자요 새로운 전체적 삶의 창시자이다. 그가 일으키는 구원은 신의식 저지의 제거, 구원자의 신의식의 능력 안으로 죄인을 받아들이는 것, 신의식의 활성화(Belebung)이다.(주28)
 
그렇지만 구원자의 활동은 즉각적인 효력을 낳지 않는다. 그는 그의 모든 활동과 함께 역사 발전의 법칙 아래 있고, 이 활동은 그의 출현시점이 전체로 서서히 확대됨으로써 완성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출현시기로부터 진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고, 기독교 역사는 예수에 의해 시작된 신의식 저지의 제거가 꾸준히 점차로 가시화되는 역사로 볼 수 있다. 구원이란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의 발전,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 본성의 일치(성육신)가 모든 인류에게 파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그 이후 전체의 진보과정의 원형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완성된 인류의 원형이며, 그 안의 계시는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 본성의 영원한 일치과정의 원형으로서 모든 창조의 중심이다.(주29)
 
 
II. 리츨(A. Ritschl, 1822∼1889)
 
리츨의 하나님의 나라 표상은 칸트와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슐라이어마허로부터 목적론적 성격을 갖는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그도 성육신을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중심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는 신비주의를 공박하고, 그의 출발점을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자의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음에 두었다. 그는 슐라이어마허에게서 기독교의 윤리적 이해가 하나님 나라의 이상 아래서 올바르게 표현되어 있지 못함을 비판했다.(주30) 슐라이어마허가 구원과 인간의 윤리적 임무관계를 충분히 사고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 결함을 나타낸다고 그는 보았다. 왜냐하면 슐라이어마허는 어떤 경우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의식을 예수에 의한 구원과 관련시키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이를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관련시켰기 때문이다.(주31) 이 비판은 옳다. 왜냐하면 슐라이어마허는 구원을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친교 안으로 받아들여짐에 의해 가능해지는 신의식의 재강화로만 이해했고, 따라서 단지 간접적으로만 구원을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관련시켰기 때문이다.(주32)
 
그러나 리츨은 구원의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봄으로써, 양자를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 규정한다. 그는 구원을 '절대적 의존감정'을 회복하는 단순한 수단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의지와 구원은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칭의의 올바른 영적 이해는 하나님 나라의 목표를 내용으로 삼는다.(주33)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인간 활동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포기하고 그러한 근거를 역사적 사건에서 찾는 리츨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슐라이어마허보다 칸트의 하나님 나라 표상과 더 가깝다. 리츨은 반형이상학적 도덕철학자로 해석되는 칸트의 입장에 따라 기독교를 특별한 생활 이상의 실현을 지향하는 윤리적 종교로 이해한다.(주34) "기독교는 유일신론적으로 전적으로 정신적·윤리적 종교이다. 이 종교는 그 창시자의 구원 생애와 하나님 나라 설립의 생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녀됨의 자유 안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인류의 윤리적 조직화를 지향하는 사랑의 행동을 일으킨다."(주35)
 
리츨은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초세계적 미래성을 분명히 강조하고, 이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그 어떠한 기존하는 지상의 공동체형태도와도 동일시하는 것을 배격한다.(주36)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하나님 나라의 세계내재적 현재성도 똑같이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적 과정'과 그 '성장'에 관해서 말한다.(주37) 따라서 이미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상응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사는 자들도 있다. 물론 그 완성은 먼 미래에 있다.(주38)
 
리츨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직접적인 종교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세계 안에서 실현하려고 원하는 '최고의 선'이고, 절대적으로 신적인 '세계의 마지막 목표'이다.(주39)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를 원하는 윤리적 행동을 보여주는 인간의 종교적 태도의 요소도 갖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실현하는 최고의 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임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배는 오로지 인간의 순종의 실천에 의해 존속하기 때문이다."(주40) 그러므로 인간의 윤리성은 하나님 지배의 외형적 반사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윤리가 실천되는 바로 그것에 하나님이 지배한다.
 
인간의 임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사상은 하나님의 활동에 상응하는 자발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리츨은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행위와 이 실현을 촉진하는 인간의 행위를 구분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활동은 처음부터(apriori) 모든 인간의 협동을 배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인간의 활동은 단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반응(Rsaktion)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주41)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관련해서 리츨이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를 나눈 것은, 그가 분명히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게 하고 자신과 화해시키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고의 선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은 죄의 제거이다. 인간을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행동의 직접적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임무를 성취하는 윤리적 실행능력을 부여하는데 있고, 그 간접적 목표는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다. 이것은 모든 윤리성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인간은 단지 화해된 자로서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주42)
 
리츨에 따르면 죄란 도덕률(Sittengesetz)과 자유의 상호관계가 교란됨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 교란은 도덕법에 배치되는 자유의 남용에서 비롯된 것이다.(주43) 여기서 하나님을 도덕적인 세계 지배자로 보는 칸트의 생각이 드러난다. 칸트도 역시 하나님을 도덕률의 창시자와 옹호자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또한 세계의 마지막 목표의 달성을 옹호하는 자이기도 하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저항,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의지의 영역에서 죄는 의지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관계의 교란이다.(주44)
 
그리고 죄의 용서는 의지와 그 마지막 목표와의 이상적인 관계 회복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지막 목표는 최고 윤리성의 의미에서 인간의 정신화(Vergeistigung)이다. 인간은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목표실현에 봉사함으로써, 즉 인류가 하나되는 뜻에서 윤리적 정신들의 친교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동시에 그의 목표를 실현한다. 인간이 도덕률에 나타난 도덕적인 세계지배자의 의지에 순종할 때, 즉 하나님의 통치를 윤리 속에서 실현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자기목표는 인간의 자기목표가 된다. 바로 이러한 목표의 동일성의 회복은 리츨의 화해론을 지배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그의 창조의 영원한 목표이기 때문이다.(주45)
 
리츨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관점 아래 요약될 수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절대적으로 윤리적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을 위한 윤리적 임무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안의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이기 때문에, 인간의 윤리적 추구는 이 목적의 성취에 이바지한다.
 
2) 초세계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성육신과 더불어 시간 안으로 들어왔고, 예수의 활동 속에서 실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윤리적으로 완전한 인류의 원형(Urbild)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수가 창설한 종교적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수단이다. 이 공동체의 목표는 윤리적인 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안으로 더욱 더 완전하게 옮겨놓는 것에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데에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3) 리츨의 하나님 나라 이해의 또 다른 주요 관점은 하나님 나라의 발전이다.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내적인 현실이 되었지만, 윤리적인 것 안의 그 실현은 인간의 여전한 죄악 때문에 항상 접근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먼 미래에 있다.
 
4) 그러나 리츨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예수의 선포에서 찾아보려고 시도함으로써, 바이쓰(J. Weiß)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에서 나중에 도달했던 결론(하나님 나라의 초월성, 이원론 및 하나님 나라의 돌입에 대한 기대)에 이르는 길을 예비했다. 바이쓰는 매우 날카로운 역사비판의 척도를 적용하여 당대의 지배적인 하나님의 나라 해석을 뒤흔드는 결과는 남겼던 것이다.(주46)
 
III. 헤르만(W. Herrmann, 1846∼1922)
 
헤르만은 한편으로는 칸트학파의 일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슐라이어마허의 제자였다.(주47) 그에 따르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로부터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피안(Jenseits)으로부터 온다. 이것은 인간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Gabe)이다. 당대 유대인들이 완전한 의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보상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예수는 잘못이라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의(義)는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의 자체를 축복(마5:6)의 내용으로 삼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함으로써 비로소 의로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의의 추구와 하나님 나라의 추구를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주48)
 
헤르만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을 그 시대의 경건한 유대인과 다르게 이해했다. 메시야 희망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피안으로부터 오는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차안(此岸)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지상적 소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연적인 생활의 단순한 증진으로 보지 않았고, 축복을 자연적인 생활기쁨의 완성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에게서 나오고 자신에게 이해될 수 있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정치적 희망과 뒤섞는 모든 시도를 배격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받게 될 최상의 생활은 자연적 욕구를 움직이는 차원 너머에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최고의 선으로 가시화하는 모든 수단을 배격했다. 이로써 그는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은 오직 선물로서 주어진다는 점을 말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묘사하지 않았다.(주49)
 
헤르만의 입장에 따르면, 예수는 우선적으로 윤리적인 선(善)의 순수한 의미를 선포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지의 친교 혹은 공동체 위에 세워진 의지, 내적인 자율(自律)이다. 이와 함께 예수는 우선적으로 의의 요구를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동일시하려고 했다. 인간 속에서 그러한 의와 신뢰 혹은 종교가 생겨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주장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 특히 인간 자신 속의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은 '경건한 신의식'이나 '도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Macht)이다. 우리가 이 능력에 실제로 복종하려면, 그를 순수히 신뢰하고 내적인 자율 속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선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에게 완전히 복종시킴으로써, 우리를 내면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혹은 예수의 견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인간에게 오는지는 이차적인 질문이다.(주50)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인격의 힘(Kraft)을 통해 인간을 내면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지배한다. 메시야는 마음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주51)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권능, 예수의 놀라운 권능, 그의 인격의 힘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은 죄인 안에서 실현된다. 중요한 것은 예수 출현의 인상(印象),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인간을 사로잡는 예수의 인격(人格), 자신의 활동을 통해 인간의 마음 속에 기억을 산출한 그의 인격의 상(像)이다. 그의 인격의 힘에서 우리는 첫 증인들이 경험한 바로 그것을 체험한다.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그와의 고유한 체험 안에서 하나님의 현실 앞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주5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체험하는 현실의 능력으로써 예수의 내적인 삶의 상을 파악할 수 있다. 예수의 인격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릴 수 있는 권능의 순수한 현상이 된다. 이것은 탐구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친숙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수를 그 자신의 내적인 삶에서 인식하지 못한다며, 자연에 대한 그의 놀라운 권능, 죽은 자를 살린 기적의 권능도 파악할 수 없다. 예수의 인격이 역사 안에서 참으로 효력을 끼치는 것은 역사적 증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정신적 생활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신약성서에서 참으로 예수의 상을 알 수 있느냐, 그에게서 우리가 경외와 신뢰 속에서 온전히 복종할 수 있는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오직 이것만이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이다.(주53)
 
V. 평가
 
앞에서 말한 세 신학자들의 입장을 다 함께 묶어서 평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개괄해 본다면, 이들의 신학은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현대인의 자의식 속에서 새롭게 파악하고 표현하려는 정당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적 유산을 파괴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단지 이를 변화된 문화의식 속에 이식하려고 고심했다. 그리하여 혼란한 정신세계에 새로운 통합성을 주고 기독교적 경건성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1) 이들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서양의 형이상학과의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종합하고, 기독교를 문화운동과 동일시 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립이 모호해지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신학의 주어가 아니라 술어가 되고 있다. 이 신학의 주어는 바로 인간 혹은 인간의 경건, 도덕, 체험이다.
 
2) 이들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는 진보적·낙관적 역사이해가 깔려 있다. 이들은 인간의 죄악성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문화와 역사의 절대적 진보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3) 비록 이들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현의 가능성을 세계 안의 인간의 가능성 위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자연, 역사를 인간의 손 안에 넣고 자신의 뜻에 따라 형성하려는 인간의 자율성, 하나님 나라의 세속주의적 구조가 드러난다. 이러한 천년왕국적 형이상학은 역사의 과정과 그 다음의 신학(요하네스 바이쓰, 칼 바르트 등)에 의해 추월당하고 의심스럽게 되었다. 새로운 신학의 방향전환은 현대의 주관주의를 극복했다. 즉 인간과 그의 생각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근거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표상, 실현방식과 완전히 일치될 수 없다.
 
4) 이들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압도적으로 도덕적·체험적 기독교 이해 위에 서 있는 주관주의의 특징을 띤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주관주의의 실현만이 아니라 그 종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학은 칼 바르트의 말대로, 쉽사리 개인주의와 상대주의에 떨어진다.
 
5) 이 신학에서는 하나님 나라 실현의 결정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발견한 이상적 인간의 원형(Urblid)이지, 인간에게 낯선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온 자가 아니다. 이 신학은 예수의 인격이나 선포 혹은 성육신에 더 강조점을 두고, 그의 구체적 생애와 활동,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현저히 축소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이 신학은 도덕이나 체험 등으로 경험될 수 있고 실용화될 수 있는 것만을 흥미있게 받아들인다.
 
6) 이 신학은 전체적으로 반지성적·반교리적·반도그마적 경향을 보인다. 즉 오직 인간의 주관에 의해 파악되는 것 혹은 인간의 주관을 사로잡는 것에만 흥미를 보인다. 그리하여 인간이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 자신이 발견한 도덕의식, 역사의식, 체험의식이다. 이 신학은 결국 자신을 추구하는 우상숭배의 모습을 띠고, 기독교를 자신이 이해하는 종교의 범주 안에 가두어 버리며, 인간성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을 희생시켜 버린다.
 
<목회와 신학, 1991년 7월호 >
 
 
 
1. 18, 19세기 독일 개신교신학의 역사적·종교적·철학적 배경에 관해서는 특히 F. Mildenberger, Geschichte der deutschen evangelischen Theologie im 19. und 20. Jahrhundert, Verlag W. Kohlhammer 1981과 H. Stephan-M. Schmidt, Geschichte der evangelischen Theologie in Deutschland seit dem Idealismus, Walter de Gruyter, Berlin 1973 참조.
2. E. Busch, Karl Barths Lebenslauf, München 1975, 58ff.
3. C. Walter, Typen des Reich-Gottes-Verständnisses, München 1961, 88.
4. K. Barth, Dis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 Jahrhundert, Zürich 1947, 389.
5. K. Barth, 상게서 388.
6. C. Walter, 상게서 88.
7. F. Schleiermacher, philosophische Sittenlehre ed. Kirchmann, Berlin 1870, 132.
8. 상게서 132.
9. Glaubenslehre II, 508(이하에서는 GII라고 표기함).
10. 상게서 510.
11. C. Walter, 상게서 91f.
12. Glaubenslehre I, 15ff(이하에서는 GI이라고 표기함).
13. 상게서 49ff, 248ff.
14. GII, 512.
15. GI, 6f.
16. F. Flückiger, Philosophie und Theologie bei Schleiermacher, Zollikon-Zürich 1947, 26ff.
17. GI, 169.
18. C. Walter, 상게서 95.
19. GI, 55.
20. 상게서 18.
21. 상게서 52f.
22. 상게서 316.
23. 상게서 361.
24. 상게서 70.
25. GII, 510.
26. 상게서 103, 115ff.
27. GI, 169.
28. GII, 94f.
29. 상게서 15ff.
30. A. Ritschl, Di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 Bd3. Bonn 1895, 8ff(이하에선 RuV라고 표기함).
31. 상게서 9.
32. C. Walter, 상게서 138.
33. RuV, 10f.
34. C. Walter, 상게서 138.
35. RuV, 13f.
36. 상게서 266f, 294.
37. 상게서 40f.
38. 상게서 32.
39. A. Ritschl, Unterricht in der Christlichen Religion, Bonn 1875, 51f.
40. 상게서 30.
41. 상게서 31.
42. 상게서 34f.
43. RuV III, 56.
44. 상게서 56f.
45. 상게서 282ff.
46. C. Walter, 155.
47. E. Busch, Karl Barths Lebenslauf, München 1975, 56.
48. W, Herrmann, Dogmatik, Gotha-Stuttgart 1935, 23.
49. 상게서 24.
50. 상게서 25.
51. 상게서 26.
52. 상게서 27.
53. 상게서 27ff. 

몸으로 얻는 영성_ 방선규

몸으로 얻는 영성
 
 
방성규
 
 
기독교 영성은 몸에서 시작해서 몸과 함께 가는 영성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에 이런 오해가 생긴다. "인도의 요가나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기와 어떻게 다른가? 그들도 특히 육체의 수련을 강조하지 않는가?" 이들 수련방법에 의하면 육체의 어떤 일정한 자세가 깊은 호흡을 하게 하고 그래서 정신이 집중되게 도와준다고 한다. 이들은 육체를 강조하면서 육체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고 한다. 이들의 말은 사실이다. '심신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의 정보들이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성에서 몸을 중요시하는 것은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훈련의 한 방법으로써가 아니다. 더 더욱이 어느 특정 육체의 자세가 영적 결과를 만들어 준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성에서 몸을 중요시해도 몸의 어느 특정한 자세나 훈련이 기독교 영성의 근원인 성령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깊은 호흡이 우리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만 이런 특정한 호흡을 해야 성령의 호흡과 합쳐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혹 이러 저런 신체적 방법을 기도의 자세에 도입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한계는 분명해야 한다. 어떤 육체적 자세도 성령을 마음대로 조정(manipulation)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 오랜 영성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하게 내놓을 육체적 수행방법이 없다. 인간을 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분은 오직 성령 자신의 의지이지 인간적 수행방법이 아니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몸으로 얻는 영성이라 하면 위와는 정반대로 오해하기도 한다. '영성'이라면 '비육체적,' '비현실적,' '초자연적' 현상으로 간주한다. 이런 오해 배후에는 영과 육의 이분법적 사고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즉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오직 영적인 것만 강조하고 육체나 사회는 무시하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을 초자연적인 신비현상쯤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그 오랜 역사에서 영과 육의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초대 교회는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와 싸움에서 기독교는 결코 영과 육의 이분법 구조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2세기 중반 교회가 로마 정부에 의해 순교의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영지주의는 육체적 순교는 무지의 소치라고 비난하였다. 육체적으로 순교한다고 무슨 영적인 각성이 되느냐는 것이다. 1940년대에 발견된 영지주의의 나그함마디 문서 중 [진리의 증언]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깨달음 없이 단지 육체적 죽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고 비난한다. 반면 교회의 감독이던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신앙의 문제로 순교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영적인 것만 강조하고 육체적 어려움은 피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신앙을 단지 영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한 것이 아니다. 또한 육체적 고통을 가하면 영적 성숙을 가져온다고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신앙은 육체적 차원과 영적인 차원이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 이야기를 보다 현장감 있게 들어보자. 신앙적인 문제로 체포 구금되어 고문 받고 배교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영지주의의 말은 참으로 미혹적이었다. 영지주의의 설명에 의하면 영적인 깨달음 없이 미련하게 순교를 택하느니 훗날 영적인 깨달음을 위하여 오늘 배교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신앙이란 마음으로 믿는 일이니 육체가 무슨 행동을 하든 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더 영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당장에 당해야 할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을 감안한다면 이 것처럼 솔깃한 유혹은 없었다. 그래 지금 예수 모른다고 하고 나중에 더 큰 일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 하나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나중에 더 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하면 하나님 편에서 보아도 더 이익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 입으로 소리 내어 고백하는 일이 요즈음 상황에서는 큰 의미 없이 오히려 소음으로 들릴지 모르나 순교의 상황에서는 정말 믿는지 아닌지가 판가름 나는 일이었다. 육체가 따라오지 않는 마음은 많은 경우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막 수도사들 이야기 혹은 수도원 이야기하면 비사회적, 비육체적 영성을 추구한다는 선입관을 가진다. 수도원적 영성을 영과 육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수도사들이란 세상살이에 염증을 낸 사람들이나 육체적 삶에 싫증은 낸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 이들이 영적으로 사는지는 모르지만 자신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가정을 포기한 비현실적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 이들이 아무리 영적이라 할지라도 결코 우리 현실에 사는 사람에게 주는 교훈은 없다고 단정한다.
 
틀린 생각만은 아니다. 수도원 역사에서 때로 비난받을만한 생각을 가진 적이 있고 행동도 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 당시의 마틴 루터가 목격한 수도원 훈련이 마치 구원이 인간적 훈련에 의해서 얻어지는 양 가르치고 있었다.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는 일들이 중세기에는 참회(penance)의 방법으로 처방되고 있었다. 마치 체벌 받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글의 목적은 기독교 영성의 뿌리가 되는 수도원의 영성이 무엇보다도 몸으로 시작하고 마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선 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해보자. 3세기 후반 아직 순교가 마지막 극에 달할 때 몇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신앙 생활을 이집트 사막에서 독신이나 집단적으로 한 것이 사막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독신적인 삶을 살았던 안토니와 공동체 생활의 수도원을 만들었던 파코미우스가 효시였다. 사막이 수도사들로 붐비게 된 것은 4세기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참된 기독인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순교에다 두었던 그 신앙적 힘과 의식이 희미해지는 시점에서 살아있는 순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성서의 가르침,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온전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이루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들의 열망은 기독교 영성의 역사에서 아주 근본적인 뿌리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들의 영성을 배우게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존되어 내려온 저서들 때문에 가능하였다. 우선 알렉산드리아 감독이었던 아타나시우스가 쓴 [안토니의 생애]가 있는데 후에 직전 라틴어로 번역된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명 받았다고 어거스틴의 자신의 [고백록]에서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은 [사막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이다. 원래 이 책은 어느 한 수도사가 쓴 책이 아니고 200-300년을 걸쳐서 모아진 내용들을 누군가가 편집한 책이다. 그 내용은 유명했던 수도사들의 단편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거나 이들이 했던 짧은 말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는 Apophthegmata Patrum(교부들의 짧은 경구 모음)이라는 제목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 책은 단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교부들의 이름에 따라 배열한 모음집도 있고, 주제별로 배열한 모음집, 또는 무명으로 순서 없이 배열된 모음집도 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의 한계는 이 책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남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애쓰지 않았기에 이 책은 수도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많은 것들 가운데 지극히 일부만 내려져 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사막에서 어떤 영적 훈련을 하고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만 가지고도 오늘 우리 시대의 삶을 재조명하고 변화시키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책에는 초대 교회의 기독교적 영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무한히 담겨져 있다. 이 글에서는 육체와 관련해 어떤 영적 이해를 하였고 훈련을 하였는지 살펴본다.
 
[사막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영성은 몸을 통해서 얻는 영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몸이란 한 개인의 육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현실적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후에 사막에서 큰 영적 스승으로 추앙을 받던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난장이었던 그가 후에 큰 영적 스승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많은 훈련이 요구되었지만 특히 초기 시절에 한 깨달음이 그를 도왔다. 요한은 천사처럼 살고 싶어서 수도원에 들어와 오직 말씀만 읽고 기도하고 예배만 참석하고 싶어했다. 우리 이해와는 달리 수도원에서는 노동이 권장되고 있다. 그런데 요한은 오직 영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고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한 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하루는 공동체의 같은 선배 수도사를 찾아가 불러도 영 대꾸를 안 하는 것이었다. 분명 안에 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원했다. 그 선배 수도사는 요한에게 "요한은 천사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여기 공동체에 없노라"고 대답해 주었다. 또 어는 수도사는 여행 중에 이런 저런 수도원 공동체에 들러 훈련의 방법을 비교하고 자기 나름대로 비평도 하였다. 한번은 어느 수도원에 갔더니 낮에 전부 노동을 하고 신앙의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약간은 비난조로 왜 신앙적인 훈련을 안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 공동체 사람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 날 저녁 식사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르지 않아 참다 참다못해 저녁식사 안 하냐고 물었다. 공동체의 한 형제가 천사 같은 말만 하셔서 인간의 식사는 안 하시는지 알고 자기들끼리만 먹었다는 것이었다. 수도원 영성은 인간의 삶으로부터 시작하고 마감한다.
 
수도원 영성을 다음의 실제적인 육체적 습관과 본능과 연관하여 어떻게 훈련하였는가를 살펴보자.
 
1. 잠: 수도사들마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잠자는 시간을 조절하였다. 로마 황실의 자제를 가르치다가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와 수도 생활을 하던 알세니우스는 하루 1시간 잠이면 족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어떤 수도사는 14일 동안 서서 기도하면서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있던 둘레에 가시나무를 쳤다지만 모든 이들이 다 이렇게 생활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잠을 즐기지 못하도록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본능이 귀한 것이지만 죄에 빠진 인간에게는 늘 유혹의 근원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잠으로 인해 하나님 섬기는 일이 소홀히 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였다. 단순히 장수하고 건강하기 위해 수면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 의지가 원할 때 내 몸이 온전하게 드려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2. 식사: 대부분 금식을 많이 하였다. 어떤 이는 이틀에 빵 하나로 한끼만 식사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어 늘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자기 스승(남자는 abba, 여자는 amma라고 불렀다)에게 자기 고통을 말하였다. 스승은 하루에 빵 반쪽으로 한끼만 식사하도록 처방을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 웃기는 일이다. 이틀에 빵 한 개를 먹는 것이나 매일 반 개를 먹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러나 훈련 가운데 있던 수도사에게는 너무 중요한 일이었다. 그 수도사는 이 새로운 처방에 평안을 얻었다. 어느 수도사는 음식에 소금을 쳐 먹지 않는 전통의 공동체에서 병이 나서 빵에 소금을 쳐서 먹다가 스승에게 들켰다. 스승은 다른 수도사들을 부르며 당사자에게 소금을 먹고 싶으면 도시로 가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소금 한 톨도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영과 무관한 육체적 음식이 아니다. 탐식이 초대 교회에서 큰 죄악으로 여기는 이유는 식욕이란 본능에 숨겨져 오는 영적 훈련을 파괴하는 사탄의 유혹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음식과 우리 신앙과는 별로 중요하게 연관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잘 먹는 일에 신경 쓴다. 문화적으로 잘 대접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라 목회자들이 본의 아니게 미식가들이 되어간다. 분명 여기저기 아직 굶는 이들이 많은데 예수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비싼 음식으로 입이 고급이 되어 가고 있다.
 
3. 의복: 성경에 큰 죄인도 아니면서 정말 큰 죄인으로 여겨진 사람이 있다. 여리고 성을 함락한 후에 전리품을 숨긴 아간이다. 숨긴 품목 가운데 옷이 있었다. 문둥병을 고침 받고 고마워하던 나만 장군에게 가 거짓으로 속여 옷을 받아온 게하시도 있다. 이들에게 옷은 부끄러움을 가리는 기능이나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기능으로의 의복이 아니라 자기과시와 허영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 고급스러운 옷들이 있다. 부자동네 교회에 가보면 고급 옷으로 치장한 교인들이 참 많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모든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교회의 여인네들이 청문회에 나가 옷 때문에 거짓말하는 모습도 보았다. 값진 옷을 탐하는 것이 죄이다. 수도사들이 입는 옷을 어떤 아바는 이렇게 정의한다. 시장에 나가 버려서 3일 동안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옷이 수도사가 입을 옷이라 한다. 이 옷이 이 세상 하직할 때 그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이들은 좋은 옷을 입은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입을 세마포는 가격이나 미적 감각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단정히, 깨끗이 옷을 입을 필요가 있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사치나 허영으로 비쳐지는 옷을 기독교인들이 입어서 되겠는가? 옷도 신앙적인 의미가 충분히 지니고 있다. 단순히 외적인 멋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영을 담는 옷이어야 한다.
 
기독교 영성, 구체적으로 수도원 영성은 몸을 통해, 몸과 함께 시작하고 맺게 되는 그런 영성이다. 의식주라는 현실적인 삶에서 신앙이 우러나오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잘못된 영성이 되 버린다. 그러기에 아바 엘리야스의 "영이 몸과 함께 이중창을 부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은 헛될 것이다"라는 말은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한 교훈이 된다.

현대과학을 통해 본 생명과 인간 _장회익(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현대과학을 통해 본 생명과 인간


장 회 익(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오늘 제가 과학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종교모임에 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간단한 변명을 하고자 합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다." 아인슈타인의 표현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그 안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과학 없는 종교가 장님일까요? 장님이란 빛을 통해서 사물을 식별하고 확인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장님들 중에는 깊은 철학적 사고를 하고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눈뜬 사람 이상으로 세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 순간 현상 그 자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면에서는 떨어집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 역시 현상 자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그런 작업은 충분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광선을 통해서 사물을 확인하는 것처럼 종교에서도 과학을 이용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으로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라는 말도 해석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과학은 현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부분 부분을 확실하게 살펴나가는 면을 있지만, 바로 그렇게 부분에 부분 부분에 치중하기 때문에 전체를 조화 있게 보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한 쪽 다리가 길어지고 다른 다리는 짧아지거나 약해지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하는 종교와 상호보완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도 서로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한 편 종교와 과학을 비교해 보면서 느끼는 것은 둘 사이의 작업 진행 순서도 반대로 되어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선 과학을 볼 것 같으면 부분을 먼저 보고, 부분에서 확인한 것을 다시 엮어서 전체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종교는 오히려 부분보다는 전체의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고, 그리고 그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이냐 하는 부분으로 나갑니다. 이런 점들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과학 속에서 볼 때 생명과 또 생명의 중요한 부분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첫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과학기술이라는 말입니다. 과학하는 사람은 기술적 학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통상적으로 말합니다. 저는 이런 사고가 과학 본연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을 통해서 사물을 깊이 알고 그것을 활용하면 그것을 모르고 이용할 때보다 많은 활용을 할 수 있는 것 뿐이지, 과학 자체가 원래 활용할 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학의 본래 사명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파악하자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 점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또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살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물리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 어떤 분은 물리학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히 생명이나 인간을 이야기하려 하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리학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대해서 일반 사람들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조그만 일화를 이야기하면 어느 물리학자의 딸이 국민학교에 다니는데, 아버지가 무얼 하는 것인지, 물리학이 무엇인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방으로 뛰어들면서 기쁜 목소리로 물리학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생물학은 산 것을 다루는 것이고 물리학은 죽은 것을 다루는 것이다' 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물리학이 시체를 다루는 학문은 결코 아닙니다. 물리학은 생명 또는 생명이 아닌 것을 포함한 모든 물질적 대상에 대해, 그것 안에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확인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보려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물리학을 통해 생명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사실 제가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거의 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물리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전까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러한 물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납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위를 마치고 나서 생명에 대해 보다 깊이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학문의 방향을 바꾸어 보려는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5년 전쯤 유고슬라비아에서 과학 철학회의가 있었는데 어떤 분으로부터 생명철학에 대해서 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때까지 제가 생각했던 생명문제를 정리해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또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실상 그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기에 대해 저 말고 그 전에 물리학자로서 생명에 대해 상당히 깊은 직관을 줄 수 있는 책을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명한 물리학자이고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진 슈뢰딩거입니다. 그의 물음을 보면서 저는 문제를 조금 바꾸어 접근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단위는 무엇인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단위는 무엇인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생명을 하나하나 따진다고 할 때 무엇이 '하나의 생명'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단위 자체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작업이 그때까지도 또 그후에도 저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에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단위를 일단 생각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명의 단위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평범한 주제이기도 하고 몹시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평범한 주제라고 하는 이유는 누구나 생명의 단위를 다 알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을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이것이 생명의 단위가 아니겠느냐 또 또끼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이런 것이 생명의 단위가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을 언뜻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가령 사람을 하나의 생명이라고 할 때에 그 하나가 언제부터 생기느냐 하는 것을 잠깐 생각해 보아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령 모태에서부터 나오는 순간, 그것이 생명의 출발이냐 하면 이미 모태 안에서 1년이나 성장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출생하는 순간에 생명이 될 수 없다면 그러면 어느 순간이 생명의 시작이겠습니까? 생물학적으로는 모체에서 최초로 하나의 세포가 형성되는 순간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이 하나의 세포가 분열하여 둘로 갈라지고 둘이 다시 분열하여 넷으로 갈라지고, 이렇게 분열이 계속되어 몬 전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편 생명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 되게 하는 유전정보입니다. 이 유전정보는 잘 아시는 것 처럼 DNA분자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정보도 그 속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요즘 정보과학에서는 단위를 설정해서 그 정보의 양이 얼마다 하는 것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책에다 쓰는 정보와 비교해 보면 국립도서관 같은 대형도서관의 장서 100만권하고 맞먹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의 세포가 두 개의 세포로 갈라질 때는 처음의 세포를 완전히 복사해서 각각 나누어 가지게 되고 따라서 이들을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됩니다. 결국 하나 하나의 세포가 생명의 기본적 단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세포들이 잘 조직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단위는 세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세포가 생물의 진정한 단위가 될 수 있는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세포핵 속의 DNA의 유전자 정보입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생명의 단위가 세포가 아니고 DNA분자로 되어 있는 유전자라도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DNA분자들을 떼어놓고 생각해 봅시다. DNA는 조금 복잡할 뿐이지 하나의 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분리해 놓고 보면 먼지나 돌조각의 그것과 사실상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포라는 환경 안에 들어 있을 때 그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정보로서의 기능도 그때 가서야 발휘가 되지 밖에 내놓았을 때는 정보의 의미조차 상실하고 맙니다. 즉 정보라는 것은 일정한 여건 아래 있을 때 어떤 특정한 상황이 되면 그것이 본래의 기능으로 작용하지만, 그 여건을 벗어나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정보로서의 가치조차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DNA분자가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세포 안에 들어있어야만 한다는 대단히 강력한 조건이 대두됩니다. 그러면 그 세포 하나는 과연 생명인가?
 
예컨대, 세포 하나도, 사람의 세포를 떼어서 놓고 보면 거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동물의 세포 하나를 떼어 잘 배영하면 그것이 동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그것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의 세포로서 조건부적 단위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생명의 진정한 단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사람 개체를 형성하는 몸 속에 세포가 들어 있을 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가요? 사람은 하나의 완전히 독립된 생명일까요? 이것도 마찬가지 논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 하나를 골방에 집어넣고 한달만 두면 거의 틀림없이 사람이 아닌 생존하지 않는 존재로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구라는 환경을 벗어나서 다른 우주공간에 10분만 있으면 이미 사람이 아닌 존재로 바뀌게 되지요. 그러므로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극히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더 큰 단위인 종이나 인류라고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개체보다는 훨씬 오래 수백만 년을 생존하는 단위가 되지만, 역시 한 종만 따로 분리시켜 놓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외적 여건에 의존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생명의 단위는 무엇이냐 하는 물음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네가티브 엔트로피(부엔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이다"라는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밥을 먹고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 우리가 밥을 먹어야 사느냐 하는 것을 우리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네가티브 엔트로피(자유에너지)의 공급이라는 해석과 같은 말입니다. 이러한 네가티브 엔트로피가 왜 보급돼야 하느냐 하면, 생명체라는 것은 이것이 존속되기 위해서는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면, 대단히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즉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외부에서 낮은 엔트로피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단위에 대한 물음에서 다시 살펴보면, 네가티브 엔트로피를 공급받을 수 있는 그 공급원을 포함하는 데까지 가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독립적으로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단위, 즉 생명이 지녀야 할 최소 규모의 단위는 무엇일까요? 우리 지구의 경우는 태양계가 될 것입니다. 뜨거운 항성(태양)과 차가운 행성이 있어서 항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유에너지를 공급받는, 즉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행성 사이의 특별한 조건에서 네가티브 엔트로피의 지속적인 공급이 있는 이것이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태양-화성, 태양-수성에는 생명이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유에너지의 공급원이 확보가 되어야만 비로소 독립적이고 더 이상 외부의 도움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진정한 단위가 이루어집니다. 자 이렇게 되면 우리 지구상에는 하나의 생명이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생명은 현대 과학의 추적에 의하면 35억년이 되었습니다. 즉 35억년 전에 지구상에 처음 생성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하나의 생명인 것입니다. 이 생명만이 진정한 의미의 본질적인 단위가 되는 생명입니다. 나 자신은 무엇이냐 하면 생명의 한 부분입니다. 부분적으로는 독자성을 상당히 부여받은 그러한 개체 생명이지만 생명의 나머지 부분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존재하는 상대적인 조건부적 존재이지 내가 생명의 진정한 단위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저는 이 진정한 하나의 생명을 global life라고 명칭을 붙여 보았습니다. 우리 말로 옮기기가 더 어려운데 현재는 '온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온생명과 비교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명이라고 불러왔던 것은 '개체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개체생명은 조건부적 단위로서 전체 생명에 연결되어 있다는 조건하에서만 생존가능한 것입니다. 또 이 개체생명을 중심으로, 개체생명 이외의 나머지 부분, 즉 온생명에서 한 개체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온 생명에서 한 개체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이 개체생명의 보생명(co-life)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이제 요즘 우리가 이야기하는 환경문제가 단순히 환경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환경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만이 하나의 독자적인 생명이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부분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체가 하나의 몸, 하나의 생명이고 나 혹은 우리 인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보생명' 즉 그것과 함께 완전한 생명이 되는 우리 몸의 나머지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현대 과학에서는 생명의 기원을 35억년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여기 모여있는 우리 전부는 나이가 35억살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우리를 우리되게 하는 것은 우리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유전정보라고 했는데 그 유전정보가 달라지면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가 될 수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전정보는 35억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걸러지고 다듬어져서 그 경험한 결과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들어와서 우리를 만들고 있으므로 우리는 35억년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생성한 최초의 세포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고 부모는 또 그 위의 부모에게서,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35억년 전의 생명의 기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나머지 생물들도 사실은 그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함께 갈라져 나온 우리의 몸의 다른 세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세포가 있지만 이들은 어느 시기에 서로 갈라져서 우리 몸의 다른 부분을 형성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사람의 경우에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공통 조상이 누구이고 어느 때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냐 하는 것을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모계를 따라 계산해 올라가면 대략 20만년 전 동남아, 또는 아프리카 북부 어느 곳인가에 살았던 어떤 한 여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여인의 후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여인의 이름을 이브(Eve)라고 부르지요. 그러니까 우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들의 촌수를 따져보면 대략 몇 천촌을 벗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개구리하고도 친척인데, 개구리의 DNA구조와 우리를 분석해서 조사해 보면 역시 50만촌이다, 혹은 70만촌이다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도 우리의 친척인데 촌수를 따져보면 한 5천만촌이거나 천만촌쯤 될 것입니다. 어쨋든 이러한 것이 우리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혹은 우리 몸의 또 다른 세포들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사실들입니다.
 
이 과정을 더 깊이 밝혀내기 위해서 진화과정을 연구하면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모임에서 진화론을 말씀드리기가 적당한지 모르겠는데, 특히 기독교 일각에서는 우리 존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화론을 고의적으로 도외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지를 밝히는 과정인 진화론은 마치 우리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느냐를 밝히기 위해 사회역사를 공부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진화의 역사는 우리의 문화사에 비해서 만배 정도 깁니다. 만배 정도 길뿐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예컨대, 본능은 어느 시기에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어 왔느냐, 그 다음 우리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또 어느 시기에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또 우리의 고차적인 이성은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 등 정신적인 문제까지도 상당히 의미 있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을 심장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두뇌에 있습니다. 우리의 본능도 우리 몸이나 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두뇌에 있습니다. 두뇌 속에는 모두가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왜 가슴이 뜨거워지느냐 하면, 일단 감정에 해당되는 두뇌 자극이 발생하게 되면 두뇌가 심장에 명령을 내려 체내의 혈액을 빨리 돌도록 만들기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두뇌라는 것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발전해 왔느냐, 또 그 기능이 어떻게 성장을 해왔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 모든 것을 추적해 볼 수 있어요. 두뇌 자체를 보면 대개 삼층 구조가 있는데 가장 안쪽에 본능을 지배하는 구조가 있고, 그 다음에 감정을 지배하는 구조가 있고, 마지막이 고차적인 이성을 지배하는 고조가 있습니다. 바로 이 구조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순서입니다. 그리고 이 두뇌의 지능의 크기도 고학적으로 추적할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동물이 지구상에 사는데 이것들의 지능이 다 달라요. 그러나 지능은 다르지만 지능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길 수 있는데, 우선 행동심리학적으로 그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두뇌가 크면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지요. 두뇌가 가장 큰 것이 지능이 높다면 지구상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존재는 고래가 될 것입니다. 고래 중에는 사람 두뇌의 열배 정도 되는 고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고래는 사람보다 지능이 낮습니다. 코끼리도 사람보다 두뇌가 크지만 지능은 낮지요. 그렇다면 행동심리학적으로 알아낸 지능의 수치와 딸 들어맞는 지능의 수치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동물의 두뇌를 신체의 크기로 나눈 수치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일치합니다. 정확하게는 두뇌를 신체크기의 2/3승으로 나누면 됩니다. 이것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즉 신체의 크기로 나누는 것보다 신체 표면의 크기로 나누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화석을 조사해 보면 많은 동물들의 화석에서 그것들의 두뇌 크기와 신체 크기의 비를 알 수 있고 지능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직계 선조의 지능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발달해 왔느냐를 알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세번에 걸쳐서 커다란 변화가 옵니다. 하나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본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단계에서 지능이 커집니다. 이 단계에서는 개구리, 도롱뇽, 악어 같은 파충류들도 함께 지능이 커집니다. 그 다음 지능이 크게 증가하는 단계가 감정이 형성되는 단계인데, 이때는 또끼나 돌고래 같은 고대 동물들이 다 우리처럼 지능이 커집니다. 세번째는 우리 인류의 두뇌만이 2,3백만년 전에 갑자기 커지게 되는 단계입니다. 사실은 2,3백만년전 그 시기 이전에는 우리 직계 선조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가 못 되었습니다.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는 돌고래였습니다. 돌고래의 선조가 우리보다 지능이 더 높았어요. 그런데 그 마지막 단계에 가서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의 이런 역사적 형성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볼 때 지구상의 생명은 사실은 하나의 생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제 다른 동식물도 우리와 같은 하나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하나의 생명 속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이냐를 생각해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은 같은 동료 생명체들 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독특한 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봅시다. 사람의 몸을 온생명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의 위치는 사람의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존재입니다. 사람 속에서 정신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 신경세포입니다. 이 신경세포들이 사방에 깔리고 특히 두뇌에는 많이 모여서 활동을 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다운 면을 나타내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이제 전체 생명 속에서,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가장 지능이 높은 인간은 전체 생명계의 중추신경계를 이루고 있고, 우리 각자는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위치는 막중한 중요성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우선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우리 온생명이 35억살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35억년된 존재라는 것을 최초로 자각한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한편 우리가 그것을 자각한 바로 현 시점이야말로 지구 진화사 중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로 그 생명 속에서 그 생명의 자의식이 최초로 발생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과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하고 달리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경세포라고 하는 것은 온 몸에 퍼져 있으면서 신경세포가 아닌 다른 어떤 부분에 어려움이 닥치면 즉시 그것을 본부 즉 두뇌로 알리는 신호를 보내줍니다. 본부에서는 아프다, 차갑다, 뜨겁다는 느낌을 받아들이고 손을 피한다든가 보호를 한다든가 등의 행동을 하게 되지요. 즉 신경세포라고 하는 것은 자기 몸 전체의 아픔을 느끼면서 보호하는 그런 기능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제 우리 참 몸의 다른 세포인 동료 동식물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아픔이 우리에게 느껴져야 비로소 우리의 중추신경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문제는 바로 우리가 이 생명 속에서 중추신경으로서의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대단히 불행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몸으로 보면 전체 생명 중에 일부 세포들이 암세포로 바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암세포라고 하는 것은 다들 알고 있듯이 우리 몸의 세포입니다. 우리 몸에서, 첫번째 세포에서 같이 갈라져 나온 동료 세포입니다. 동료 세포일 뿐 아니라 이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건강한 세포입니다. 단지 한가지 문제라면 자신의 위치를 살짝 망각하고 있는 것인데, 왜 망각했는지 그 이유는 우리가 잘 모릅니다. DNA 기록 속에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기록이 살짝 지워졌어요. 그것이 바로 암세포입니다. 그뿐입니다. 반면 내 손가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세포는 더 이상 여기서 더 번식을 해서 자라 올라가지 않는데, 이것은 수십억년을 내려오는 지혜 속에서 손가락이 되면 너는 더 이상 거기서 다른 것으로 번식하지 말고 네 위치를 다하라는 정보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정보가 살짝 지워지면 암세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암세포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 보면서 이게 참 살기 좋은 세상이구나, 영양보급도 잘 되는데 왜 증식하고 번영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증식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들로 보면 대단히 왕성하고 건강한 생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여기에만 있냐 하면서 다른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간이나 위장에 옮겨 붙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암이 퍼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아 며칠 안 남았구나' 이렇게 진단을 내리는 것이지요. 만약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온 생명을 바깥에서 볼 줄 아는 의사가 우리 생명을 보게 된다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 이제 35억년을 지나고 나서 비로소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막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암이 걸려 버렸구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바로 신경세포가 되어야 할 그 세포들이 이제 과학기술이라는 것에 눈을 떠서 우리 동료 세포들로 구성된 실체의 주요 부분을 마구 훼손시켜 가면서 증식, 번영을 하고 있는데, 이게 지구 전체를 뒤바꿔놓는 중증의 암이라고 판정을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기서 환경의 문제, 특히 공해문제를 상당히 다행한 것, 고마운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해문제라는 것은 우리의 몸에 퍼진 암 때문에 생긴 통증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암이 그런 것처럼 처음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잘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 공해를 통해 그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이제 우리가 잘못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을 이 공해문제를 통해 비로소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공해를 통해 통증을 느끼기 전에 얼마나 많은 우리 동료 동식물들을 멸종시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35억년을 같이 살아온 우리 동료들을 우리가 죽인 것입니다. 우리 전체 생명에서 잘라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예컨대, 손톱이 자라면 잘라내고 수염이 자라면 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자르고 다리를 절단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도로를 아스팥트로 포장하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또 자동차로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 많은 동식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바로 이런 행위일 것입니다. 내 다리를 한번 자르면 다시 생겨나지 못하는데 다리없이 휠체어에 올라타고 앉아 빨리 달리니까 좋구나 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환경문제를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 속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자각할 때에 비로소 그것에 대한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환경문제에 대치하는 방식은 이런 올바른 처방에 의한 것이 아닌 듯 합니다. 몸이 따끔 따끔하고 아프니까 병원에 안 가고 약방에 가서 진통제 먹으며 통증만 없애는 그런 일차적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가 생각됩니다. 만약 이렇게 해서 임시방편으로 공해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불과 며칠 안 가서 35억살 먹은 우리 생명의 끝이 온다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 생명의 존폐와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년, 백년, 천년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십억년, 백억년을 더 사는 존재입니다. 십억년, 백억년 동안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현재 지구상에 있는 제한 된 이 자원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과학이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과학을 마치 요술방망이처럼 착각합니다. 현대과학은 결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현대과학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지구의 자원뿐입니다. 그것외에 일부 자원을 다른 천체에서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비현실적 전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부수되는 새로운 쓰레기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그러므로 지구의 자원은 앞으로 수십억년을 함께 사용하여 살아야 할 자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불과 수십년 길어야 수백만 년에 없애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령 우리 집에 몇 백년을 내려오면서 우리 선조들이 책에다 기록으로 남겨놓은 많은 유산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것을 발견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는 마침 날씨가 추운데 좋은 연료를 발견했다고 좋아하며 10분만에 이 모든 것을 난로에 태우면서 잠시 즐기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바로 석유나 석탄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석유나 석탄은 수십억년 동안의 우리 선조들의 유해가 녹아서 만들어진 것인데 다시 재생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씨가 추우면 수십억년의 역사를 삽시간에 태워 없애며 '야, 따듯하고 좋다'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으로 비교하면 단 몇초만에 와장창 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것도 끝나가니까 대체에너지가 무엇이냐, 그러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몇십억년 동안 우리 후세들에게는 한방울 한방울의 석유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문화유산을 우리는 에너지로 생각하고 가져다가 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원을 활용한다든가 또 지구상에 살면서 앞으로 우리 문화의 방향을 정하면서 우리가 어떤한 존재인가 그리고 얼마나 살아야 될 존재인가에 대해 자아의식을 가져야 할 때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개인이 십년 혹은 이십년 더 살겠다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정도만큼이라도 온생명을 생각해야 비로소 환경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