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Ⅱ)
요 점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여 지금 여기서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어떻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소원을 가질 것입니다. 이에대해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앞 과에서 배웠던 "예수를 믿으라"는 요구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지 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합니까?
마가복음 10:15에 보면?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의 최대의 특징이 뭡니까?
모두가 순진한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순진하다고 누가 그럽니까?
절대 안 그렇습니다. 요즘 국민학교 선생님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국민학교 학생들도
이미 성인용 잡지와 비디오를 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런 현장을 여러분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근래 가장 큰 쇼크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제 아들이 국민학교 1학년인데
어디서 배웠는지 존대말을 썩 잘합니다. 얌전하고 거친 말도 한 적이 없고 뭐라고
하면 금방 눈물이 글썽글썽 할 정도로 순진해 보입니다. 하루는 우리집에 함께 사는
신학생에게?요즘 애들이 왜 그렇게 상소리들을 잘하냐?그랬더니 그 신학생이 저를
이상하다는 식으로 보더라구요. 그래서?우리 애를 봐라! 어디 욕하는 것 봤느냐?라고
했더니 아주 저를 비웃었습니다. 자기가 한번 우리 아이에게?야! 너 욕 할 줄 모르지!?라고
했더니?아저씨! 내가 왜 할 줄을 몰라요??그래서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하더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애가 벌써 아버지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제 앞에서는 못하는 척 하는 것으로 저를 봐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답답할
노릇이 있습니까? 어린아이의 특징은 순진함에 있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어린이가 순진해 보이는 것은 악을 행할 힘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이다?악이 없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저지르는 힘이 적기
때문에 백원을 훔쳐가지 백만원을 훔쳐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 세계에서
백원은 쓸 데가 있어도 백만원은 쓸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천원짜리를 훔쳐가도
십만원짜리 수표는 훔쳐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진하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애들은 절대로 순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다른 데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애들은 자신의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마련치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이의 특징입니다. 순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남에 의해서 받아야 하는 존재,
그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이다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린아이같이 받들지
아니하면?여기서 받든다는 것은 영어로 수납입니다. 우리는 받든다고 하니까 높여
올리는 기분이 들지만 그게 아니라 시행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느냐 하면 통치권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느냐 안 임하느냐는 내가 그 명령을 받으면 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신자들의 매일의 싸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비교해 볼 때 주로 어떤 싸움으로
일관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명령과 그에 대한 항변의 싸움입니다. 내가 내 일에
대한 주권을 가지려는 싸움과 하나님이 하나님의 명령을 나에게 시행하기를 요구하는
것과의 충돌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우리는 종종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보다
매를 맞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배워야 할 중요한 사실은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은 그 통치권을 실행시키는 과정으로 이런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차원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이때 그의 나라는 통치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그의 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많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나라?와 그의?의?를 다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라가 빨리 내려오시고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같이 나로 하여금 의롭게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두 가지를 다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않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의 나라를 구한다라는 이 말을
주님 재림시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사실
독백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틀림없이 그 천국은 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아직 성경이 약속한 여러가지 재림 이전의 증거들이 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도 우리가 고달픈 인생을 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낮 하나님으로부터 이 요구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아니 내일 안 오는 것이 너무나 뻔한데 무엇 때문에
구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통치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됩니다.
신자의 신앙생활 중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데
나의 주인으로는 믿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인이냐의 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그러면 그가 하라고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믿기로 작정하십니까? 내가 보아서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분이 옳다고 하면
옳고 그분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그건 메주라고 믿기로 작정하십니까?
그것을 통치권에 굴복한다고 하며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권이 시행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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