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4일 수요일

하나님나라3 천국비유 박영선목사

천국 비유(Ⅱ)
 
지난 시간에 배웠던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관련된 비유를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천국이 이미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 눈에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비유를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을 통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33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비유를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은 우리말에 있지만 우리가 보통 쓰는 말로 하면 이스트입니다. 빵을 만들기
위하여 밀가루 속에 이스트를 넣을 때 몇대 몇의 비율로 넣습니까? 1:1로 넣지 않습니다.
밀가루가 한 자루면 이스트는 한 스푼 정도로 넣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스트를 넣으면
무엇이 무엇이 삼킨 꼴이 됩니까? 밀가루가 이스트를 삼킨 꼴이 되어서 이스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트를 넣었는지 아직 안 넣었는지는
넣은 사람 외에는 모릅니다. @U마치 천국이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은 누룩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와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천국은 마치 세상 속에 묻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습이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는 교회와 세상을 비교할 때 언제나 세상이 더 힘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가 그들을 부풀게 할 누룩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다음 44절에 가시면 비유가 이렇게 연결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 비유를 한번 풀어보십시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무엇이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것입니까? 천국입니다.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만들어 보십시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본문을 가지고
만일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한다면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다 핵심을 둬서 메시지를
만들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밭에 감추인 보화까지만입니다. 가서 샀다,
기뻐했다는 것은 이 비유에서는 핵심이 아닙니다. 소도구에 불과합니다.
 
기뻐하며 전소유를 팔았다. 이것은 상식적인 것입니다. 어떤 밭에 보물이 있는 걸
누가 알았습니까? 그럼 그 밭을 다른 땅보다 3배쯤 비싸게라도 사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 그 안에 보물이 있으니까」 그것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상식입니다.
늘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비유의 포인트는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밭에 감취었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제가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길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런데 금 목걸이, 금 반지, 보석 반지 등을 파는데 무조건 골라잡아 천원
합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어, 가짜구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것이 진짜 금보다 훨씬 번쩍거리고 훨씬 예뻤습니다. 가짜인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싸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똑같았습니다.
 
또 하나는 그것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문지에 싸놓고 하나는 보석 상자에 싸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집으시겠습니까? 신문지에 싼 걸 집으신다고요? 신문지에 싸
놓았으면 좋은 것일리가 없다는게 상식입니다. 좋은 것은 소중하게 보관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진짜 진주가 걸레에 싸여져 있단 말입니다. 보물이 왜 밭에 있습니까?
보석함 속에 들어 있거나 진열장에 있어야 누가 알아보죠. 그러나 밭에 있으니까
지나가면서 번쩍거리는 게 있어도「누가 유리를 깼구나」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밭에 널려 있으니까 오는이 가는이 다 보면서 유명한 시조처럼 「흙이 흙이
아니고 옥이 흙에 묻혔으니 오는이 가는이 다 흙이라 하는 모양이다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듯이 있거라」 그런 얘기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신비입니다. 밭에 있는 것이 무우나 배추였으면 오히려
알아 봤을 것입니다. 거기에 보석이 있는 바람에 우리는 아무도 그것이 보석일 것이라고
상상을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죠? 천국은 우리가 기대하는 천국의 모습과
방법으로 와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자는 이 비유에서
나타낸 것같이 그것이 보물인 줄 알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팔아서라도 그것을 삽니다.
 
우리가 무엇을 팔아서 이걸 사고 있는지 아십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바보가 되고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것으로 사람을 괄세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공부하면서 거듭거듭 확인하고 확인해야 될 문제가 있다면
이 사실 하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것으로 칭찬을 받거나 상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괄세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괄세와 어려움을 당할 때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합니까? 「하나님 너무 억울합니다」라는 기도를 하시기 전에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45절에 가시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5,46). 그 가치에 있어서는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소유를 다 팔아야 비로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나보다 부모나 자식이나
아내가 남편을 더 사랑해도 안된다」 참 심각한 싸움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 우리가 걷는 길이 이 진주를 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느냐를 일차적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만큼 값비싼 것이라는 시각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이 비유를 통해 재미있게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값진 것을 사기 위해서 쓸데없는 것 몇 개를 주고 파는 것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희생을 하라고도 하고 봉사하라고도
합니다만 사실 그 단어는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쓰고 있지 희생도 없고 봉사도
없습니다. 그것은 더 값진 것을 얻어내는 당연한 지불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원통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원통한 것이
있느냐라고 묻는 것은 우리가 어린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살고 있고 그 나라의 자녀로서 크고 있는 문제에서 우리가 지불하는 것, 우리가
얻는 것은 다 이미 자랑거리들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될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가 걷는 길이 무의미한 고난의 연속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누가 보고 있습니다. 훈련을 받는 것은 뽑혀진 사람만이
걷는 과정입니다. 마치 사관생도가 그들의 제복이 자랑이고 훈장이듯이 우리가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잠시라도 잊으면 금방 넘어집니다. 대부분의 신앙
문제에서 넘어지는 이유는 이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47절은 이렇게 마지막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7-50)
 
참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답니다. 고기를 잡을 때
"야, 요건 돌맹이다"고 가려내면서 그물질하는 것을 봤습니까? 그물은 일단 그 포위망
속에 든 모든 것을 훑어내는 법입니다. 끄집어 낸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고기와
사이다 병을 나눕니다. 그러나 지금은 천국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무조건 오십시오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는 꼭 신자만 있지 않습니다. 초대를 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물질을 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 없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때입니다.
 
이 문제를 설명한 대표적인 성경의 내용이 있습니다(마 22:1-14). 어떤 부자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손님들을 불렀더니 초청받은 사람들이 뭘 한다고 합니까? 오늘은
치과에 가야 되고, 오늘은 테니스 치러 가서 못 오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화가
나서 하인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장터에 나가서 누구든지 잡아다가 내 자리를
채우라." 그래서 누구든지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쫓아버려라.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바로 이 대목 때문입니다. 오라 그럴 때는 언제고
갑자기 쫓아냅니까? 분명히 절름발이도 좋고 소경도 좋고 가난해도 좋고 말랐어도 좋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쫓아내랍니다.
 
지금 천국의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설명입니다. 지금은 초대하는 때입니다.
심판하는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천국은 설득을 하러
왔지 갈라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왜 저런 사람이 장로가
됐나, 왜 저런 사람이 목사를 하나, 저런 사람들이 교회를 사고 팔고 이상한 짓 다
하는데도 벌을 받기는커녕 잘 먹고 잘 사나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은 심판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두어라!」그런 때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신비입니다.
 
지금은 초대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아닌 군화짝이 들어와 있고 꽁치 통조림이
들어와 있어도 우리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그가 생선인데도 불구하고 미꾸라지 노릇을 하거나 망둥이 노릇을 해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멸치같이 보이지만 그때 가서 용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기다려야 되는 때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상대방에게도 용서를,
자기자신도 역시 용서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남을 못 참기도 하고 자기를 못 참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10년이나 믿었는데 이것밖에 못 한단 말입니까? 못 하지요! 뭐가 잘나서
더 하시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참 기특한 것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세파트가 잘하면 어느만큼 잘하겠습니까? 신문 갖고 오라면 신문 갖고 오지 신문을
읽어 주겠습니까? 아셔야 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위치입니다. 왜요? 하나님
나라의 진행이 그 정도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그것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선포하시고 의를 다 드러내시는 그날은 더 이상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초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드러내는 순간까지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는 자만 구원을 얻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 즉시 죄인으로 낙인 찍혀
던져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기 위하여 감추다보니 우리는 고통과 이 불안전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까지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내일이 있으므로
내일 구원 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고통은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그 아픔을
참고 계신다는 사실에 놀라셔야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죽고 내가 안타까워하고 내가
답답해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답답해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들입니다. 천국은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맛보고
있고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놀라운 모습으로 와 있습니까? 얼마나
이상하게 와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실족하게끔 들어와 있는가 보시고 놀라셔야 됩니다. 그래서 주께서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우리는 복된 자라는 인식과 감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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