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Ⅰ)
요 점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는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곤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내가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내가 믿는다"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요구라는 관점에서 "예수 믿으라"는 선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 우리가 '나는 예수를 믿어!'라는 선언을 할 때마다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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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껏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인 양면성을 갖고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래에야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지금 이 땅에
이 시대 속에 들어와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신비롭고 어렵습니다.
보는 자가 보지 못하고 듣는 자가 깨닫지 못하는 신비로운 형태로 이 땅에 들어와
있고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맛보고 있습니다. 그 맛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것들로 죄 사함과 영생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인격적인 사귐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요청되고 있는데 그 수준은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난 것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서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구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이 수준에 우리를 도달케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는
셈입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여태컷 제시되었던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요구
조건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중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임했고 그리고 완성으로 곧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든지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보든지 정말 이 세상은 망해야지 마땅하고 하나님 나라는
빨리 오셔야만 되게 됐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심판을 보류하고 계시는 것은 구원할
사람들을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고 구원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음을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구원을 얻을 백성들과 하나님의 나라에
입국시킨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선 로마서 10:9을 읽어주십시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구원을 얻는다는 얘기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공부해 온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영생을 얻는다, 구원을 얻는다는
다 같은 얘기였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주를 네 입으로
시인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6:31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것이 또 하나의 요구 조건입니다. 요한복음 20:31은
어떻습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이것을
기록한다고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끝내면서 기록합니다. 예수를 믿으라!
믿으십시오! 이 말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얘기들입니다.
우리가 믿음 문제에 대해서 가장 많이 혼동을 하고 있게 되는 이유는 이 "믿음"이라는
말을 잘못 생각하는 데서입니다. 믿으라는 말을 결단을 촉구하는 형태로 쓰기 때문에
믿음이 결단해야 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경이 믿으라고 얘기하는 데는 언제나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예수를 믿으라」얘기할 때는 예수를 안 믿어도 좋은데 믿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됩니다. 심각한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좇아갔던 길에서의 돌이킴은 세상으로 갔던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편차 수정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와야만 되는 길이란 말입니다
이것을「회개하라」고 하며「결단하라!」고 합니다. 간 것만큼 되돌아와야 합니다.
부산을 가야 되는데 평양가는 열차를 타고 황해도까지 넘어 갔습니다. 개성까지
갔습니다. 그러면 간 것만큼 되돌아와야 됩니다. 부산 갈 것을 개성으로 갔습니까?
개성에서는 간 길을 되돌아오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공존하는 곳이 털 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그러므로 믿으라는 얘기는
지금 방법이나 조건으로서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세상의 길과 겹치는 부분이 없는 전혀 다른 요구인가를 설명하는 데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 세상에는 어떤 것으로도 예수를 믿는 것과 결부되는 게 없습니다.
갖고 있던 어떤 것으로도 예수를 믿는 데는 더 나은 조건이 없습니다. 학식이 뛰어났다거나,
이스라엘 민족이었거나, 무엇이든지 인간이 가진 것으로써 예수를 믿는 데 한치라도
더 유리한 조건은 없다는 얘기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전도적 입장에서, 선교적 입장에서 방법론으로 쓰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쉬운 등식입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래 그 단어가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사용하셔야 합니다.
이 얘기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고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는 그 나라에 가는 데 조금도 겹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얘기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니 하나님이
제시하신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얘기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켜주셔서 얻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 때문에 구원을 얻지는 않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구원을 얻고 난 후에 "아하" 하고
깨달아서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식들이 부모의 사랑을 깨달은 날
비로소 이제부터 부모로 섬기겠노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은 옛날부터 자식인데
새삼스럽게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부모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똑같이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인식을 한다는 것과
그렇게 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훨씬 먼저고 깨닫게
되는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 나에게 이런 축복을 허락하셨고 여기까지 인도하셨구나,
그때 알아서 이제부터 효도를 해야지 이렇게 해놓고서 본인은 나는 이제부터 예수를
믿기로 결심을 했노라고 오해를 합니다. 그것은 본인의 열심이고 성장입니다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그를 자녀로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러면 오해하게끔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얘기를 쓰느냐 하면 그렇게밖에는
표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뭐라고 표현을 하시겠습니까? 제가 믿음에
대해서 누차 설명을 드린 것처럼 믿음은 방법론입니다. 우리의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의 방법입니다. 즉 우리에게 원인이 없는데 우리에게 결과를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네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 원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결과인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론을 얘기합니다. 원인이 없고 결과가 생기는 방법, 행위의
법칙이 아닌 것, 믿음의 법칙,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요구, 즉 예수 믿으라는 요구는 구원을 얻기 위한 선행조건으로서의
제시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0:38을 보십시오. "또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8,39). 여기서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요구 중에서 제일
어려운 요구가 죽으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된다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어떠한 타당한 생각과 본성과 자연스러운 것들,
내 생태적인 본질적인 어떤 감각도 무용화시켜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타당해 보이는
어떠한 생각도 이 길을 좇는 데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안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포기한다는 것, 이것이 사실 이 천국의 요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요구에로의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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