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
김기호교수(한동대)
서 론
정치철학자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말과 같이 동성결혼(同性結婚, Same-sex marriage)의 문제는 오늘 날 유대교-기독교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최대의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1) 지난 2015년 6월 미국 대법원이 Obergefell v. Hodges 판결에서 동성혼(同性婚)을 합헌(合憲)으로 결정을 하면서 성(性) 혁명은 역사상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로 간 주해왔으며 복음주의 기독교는 동성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이미 20개국이상이 동성혼을 헌법적 수준에서 지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생각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동성혼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이 동성애(同性愛)에 대한 혐오감정(嫌惡感情) ‘호모포비아’(homophobia)는 정말로 비합리적인 공포심, 적개심, 혐오 감이 혼합되어 있는가?
크리스천들이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동성애와 동성혼을 정죄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성적 지향성(指向性)’과 ‘성별 정체성(正體性)’ 그리고 동성혼의 권리가 차별적 대우를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동성애 결혼과 이성애(異性愛) 결혼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인가? 혹은 동성 혼을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설정하는 것인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동성애자들의 요구대로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인 지향성이 추가되어 있지 않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다수가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사법계와 국가인권위는 선도적인 역할을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
필자는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 지향성과 행위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과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토대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복음주의적 신학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동성애는 명백한 죄이며 동성혼도 아담과 하와를 위해 창조주가 만든 결혼제도가 아니다. 성경의 결혼관은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이성애에 입각한 일부일처제이다. 이외에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동거, 불륜, 성매매, 수간 등은 모두 혐오스러운 죄에 해당된다고 본다.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보호와 동성결혼의 권리는 정의로운 요구는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을 권리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3)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은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결혼관이기도 하고 성경적인 결혼관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와 동성혼으로 양분된 미국 교계와 각각의 찬반 이유들을 살펴보고 마지막 결론에서 동성혼에 대한 한국교계의 대응원리와 대책을 복음주의적 신학과 목회자의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Ⅰ. 결혼과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견해
(1) 성경적인 결혼제도
동성혼의 문제는 성경의 결혼관을 통해 조명해야 한다. 에밀 브루너가 지적한 대로 결혼과 국가는 창조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결혼에 관한 창세기 1장과 2장의 본문은 남성과 여성의 창조와 이성애에 근거한 결혼제도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 최초의 부부로 일부일처의 원형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창세에 만드신 최초의 제도로써 인류의 타락이전부터 존속해온 유일한 제도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2-24, )
신약성경에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창세기 기록과 동일한 관점으로 결혼제도를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19:4-6)
예수님은 마태복음 본문을 통해 아담과 이브의 창조기사를 사실로 확인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타락하기 전부터 있던 결혼제도를 타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보존해야하는 제도로 풀이해주셨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각자의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가정을 형성해야 한다.
최초의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아담은 흙에서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본래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결혼제도를 통하여 재(再) 연합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단순한 친구관계도 단순한 동거인도 아니며 그들은 오직 ‘한 몸’이라는 표현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신비로운 관계를 이룬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는 것은 부부의 친밀함을 함축한다.
사도 바울은 남녀의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비유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남녀 부부의 하나 됨과 같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2) 결혼제도의 목적
예수님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의 우선적인 목적은 결혼한 부부의 상호간의 사랑과 협조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니라.”(창 2:18)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배필이요 친구요 협조자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장 1항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남자이든지 동시에 한 아내 이상을 가지거나 어떤 여자든지 동시에 한 남편 이상을 가지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결혼제도에서 또 다른 목적은 출산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은 출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출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의 언약이 취소될 수 없기 때문에 출산은 결혼제도에서 본질적인 목적이 아니라 이차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성경의 가르침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로 창조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성별에 입각한 이성애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제도이고 부부의 정절은 하나님의 뜻이다. 동성혼은 성경의 이성애에 입각한 결혼관과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자연스러운 본성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고 한다. 이제 다음 장에서 필자는 성경의 동성애 본문을 찾아서 동성애에 대한 원래의 의미를 간략하게 탐구하고자 한다.
(3)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평가
1) 구약성경과 동성애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동성애를 직접 언급하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19:1-11, 사사기 19:22-30, 레위기 18:22, 20:13이다. 그 외에는 열왕기 본문과 에스겔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소돔에 대한 평가적 교훈에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 소돔과 고모라
남색(男色)과 항문성교를 의미하는 ‘sodomy’는 구약성경 소돔성의 멸망에서 유래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소돔성은 아브라함의 간청으로 정한 최소한의 기준 ‘의인 열 명’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한 성읍이다. 소돔성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본문은 일관되게 소돔성 사람들의 타락을 기록한다. 창세기 13장에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고 기록했다.
주님은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21)고 하신다. 소돔성의 남자들은 롯의 집에 있는 방문자들과 성관계를 갖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그러나 반세기 전 베일리(Derrick Sherwin Bailey)의 주장과4) 이 베일리의 주장을 토대로 보스웰(Boswell)은 소돔은 동성애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고 동성애가 소돔 멸망의 핵심요인도 아니라고 주장한다.5) 소돔성의 남자들은 단순히 그 여행자들과의 교제를 원했을 뿐이지 동성애의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일리는 히브리어인 ‘야다’(yadah)가 성경에 943번 사용된 것 중에 불과 10회 만이 성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부 성경의 역본에 “we can have sex with them!”으로 표현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다.
서우(Soew)는 구약의 다른 본문들(렘 23:14의 끔찍한 일, 간음, 악행, 거짓말, 겔 16:50의 역겨운 일, detestable things)이 동성애에 대한 심판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하며 심판의 원인은 끔직하고 역겨운 일들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베일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일단의 학자들은 ‘야다’(yadah)가 성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며,6) 스카조니(Scanzoni)와 모렌코트(Molenkott)는 고대 근동에서 지배의 수단으로 성립된 남성 강간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필자의 견해로는 서우(Soew)가 동성애를 심판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본다. 또한 에스겔서의 ‘역겨운 일’은 레위기의 동성애 금지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도 맞고,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 안에서 폭넓은 문화적 관행이 되었으며 그래서 그 성의 멸망을 피할 수 없게 한 악행의 핵심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 레위기 18장과 20장
레위기 18:22, 20:13은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으로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가증한 죄악으로 명문화 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친(親) 동성애 신학자들은 레위기 본문을 동성애 금지조항으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보스웰은 히브리어 ‘토바’(toevah)를 ‘본래 악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례적(祭禮的)으로 부정한 것을 지칭한다고 보아 레위기 본문은 이방종교의 우상숭배를 금지한 법이라고 주장한다.7) 그러나 보스웰의 주장의 약점은 ‘토바’(toevah)가 우상숭배에 관련된 행위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악한 것을 명백하게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8) 실제로 잠언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용례는 이방종교의 우상숭배와 무관하다.(잠언 3:32, 15:9) 설사 가나안 종교의 우상숭배와 연관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레위기 본문은 동성애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사형에 해당할 만한 죄라는 점을 너무나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 구약성경의 다른 본문들
여호수아 이후의 사사시대에도 동성애와 연관된 참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삿 19장) 소돔 남자들처럼 기브아의 불량배들도 한 노인의 집에 유숙하려고 온 레위인을 요구한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하니”(삿 19:22) 마지 막 부분을 HCBS 번역본은 그들이 동성애 성관계를 요구하였다고 보아 “Bring out the man who came to your house so we can have sex with him!”로 옮기고 있다.
이 밖에도 신명기 23:17을 새 번역에선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남창이 될 수 없습니다.”로 개역성경은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美童, 카데쉬, 동성애자)이 있지 못할지니”로, KJV에서는 “There shall be no whore of the daughters of Israel, nor a sodomite of the sons of Israel.”(신23:17)로 옮기고 있다. 열왕기에서도 남색(男色)은 정죄 받는 큰 죄악이었다. “그 땅에 또 남색 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 상 14:24) 그리고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1-13)
2) 신약성경의 동성애 관련 본문
– 사도 바울의 견해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도 동성애를 큰 죄로 간주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보낸 서신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라고 말한다.
그리고 디모데전서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10)
– 기타 신약성경 유다서, 베드로서
바울의 서신 이외에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함이 심판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그리고 사도 베드로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도덕적 타락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이라고 밝혀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벧후 2:6-10)
3) 동성애자들의 성경의 동성애에 대한 내용 반박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자들은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죄로 간주하는 사도 바울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첫째, 그들은 사도 바울이 ‘동성애 성향’과 ‘동성애 탐닉 자’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완전한 동성애자는 여자와의 ‘올바른 성관계’ 를 처음부터 갖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성 애자들이 동성 배우자와 서로 사랑과 진정한 헌신의 관계에 있다면 바울의 정죄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동성애자에 대한 바울의 정죄는 인격적 본성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보스웰은 이방인들이 자연스러운 유신론적 성향과 성적인 성향을 포기했다는 것에서 바울의 비판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보스웰은 로마서 1:26,27에 서 자연스런 관계는 부도덕함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셋째, 동성애 금지는 시대와 문화에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가령 서우(Seow)는 바울의 비판이 모든 세대에 적용되지 않는 다고 주 장하며, 퍼니쉬(Furnish)는 바울의 전제는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9) 그들은 동성애가 우상숭배와 관련되었을 경우에 한해서만 죄가 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유다는 모두 동성애와 성적인 음란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원인이라고 공통되게 지적한다. 존 스토트는 디모데전서 1:10의 (불법한 죄의 예들) ‘간음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for the sexually immoral and homosexuals)에서 ‘남색 하는 자’로 해당하는 헬라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말라코스’(μαλακός)는 남색의 상대자로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남성을 가리키고 ‘아르세노코이테스’는 동성애 관계에서 적극적인 남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를 가리킨다.10)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의 목록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일반적으로 남성 매춘부와 동성애 제공자로 여겨지는 ‘말라코이’(malakoi)를 포함시킨다. 디모데전서 1장에서는 ‘arsenkoita’와 ‘pornia’를 그 목록에 포함시킨다. 상술한 대로 성경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구절은 동성애를 금지하며 분명하게 죄로 규정한 것을 알 수 있다.
베일리는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의 저자들이 ‘성적 지향성’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성경의 진리를 시대에 따라 제한 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보스웰은 ‘말라코스’가 동성애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동성애를 죄로 지칭하는 성경의 본문이 상대적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그것이 친 동성애적 신학자들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죄의 지향성과 죄의 행동과 결과를 명료하게 구분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desire)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9)고 말씀하였다. 죄의 소원은 죄를 짓는 성향으로 보아도 된다. 동성애를 포함한 죄를 향한 성향(소원)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갖는 특성이다.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그 죄의 성향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동성애적 지향성’을 알지 못했다는 비난은 ‘성경이 동성애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근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존 스토트는 친 동성애적인 성경본문 해석을 단호하게 오류라고 비판한다. 스토트는 “이런 주장이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성경자료를 이런식으로 다룰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 관행을 거부하는 것은 고립되어 있고 분명치 않아서 얼마든지 논리를 뒤집을 수 있는 몇몇 증거본문 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11) 그는 동성애 관행에 대한 성경의 부정적 인식은 창세기의 성욕과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동성애가 소돔과 고모라의 유일한 죄는 아니지만 그것을 포함한 심각한 죄들의 고착화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이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금지는 창세기의 최초의 결혼제도에 연결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과 이성애의 결혼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Ⅱ. 동성혼에 관한 미국교회와 사회적 상황
(1) 미국 교계의 상황
1) 양분된 미국교계
동성애 성향과 동성혼 인정과 투쟁은 현대 사회의 중대한 이슈이다. 한동안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숨겨왔지만 이제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벽장에서 나와서 공공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동성애적 지향성을 차별금지법으로 보호하고, 헌법적 수준에서 동성혼의 합법성을 얻게 되어 더욱 거세게 사회전반에 확대되어가고 있다. 서구사회의 대부분의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자들이 있으며 동성애의 축제는 도시들의 정규행사가 되어버렸다. 동성애가 과거역사의 교회사에 엄격하게 다루어졌다는 것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 황제 저스티니안(Justinian)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교회의 감독 하에 참회를 요구한 온건한 입장이었던 반면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는 동성애자들을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12) 아직까지는 로마 가톨릭은 동성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제까지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개신교는 교단에 따라 동성혼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동성혼을 지지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내홍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교회 재산을 포기하고 탈퇴를 하고 있다. 특별히 미국에서 주요교단과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와 동성혼의 문제에 대해선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가령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미국 연합그리스도교회(UCC)13), 미 연합장로교회(PCUSA)14), 미 성공회15),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16), 미 침례교회(American Baptist)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교회(Disciples of Christ)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지지하는 주요교단들이다.
이에 비해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 성직 임명을 거부하거나 반대하고 있으며 동성혼을 성경과 배치되는 세상의 가치로 보고 허용하지 않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미국의 개신교단들은 가장 큰 교단인 미국의 남침례 교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침례교단들 그리고 하나님의 성회와 같은 오순절교단, 하나님의 교회, 나자렛교단을 포함한 성결계통 교단들 및 복음주의 신학을 가진 독립교단들이 동성혼을 반대하는 진영에 속한다.
2) 동성혼을 지지하는 근거 : 이성과 문화 중심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교단들은 일반적으로 현대사상, 현대과학, 문학, 예술에 개방되어 있으며 그것들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17) 그들은 각기 다른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와 동성혼을 위한 기도, 신학, 예전에서 강력한 유대감을 국내 수준과 국제 수준에서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인정하는 권위의 근거로는 성경, 전통, 이성(理性), 인권이다. 개신교의 주요한 교단들은 이 네 가지 권위적 근원을 통해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고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권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가치 있는 선물이며 성경과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게이(Gay) 신학자들은 이성을 동성애 문제에 대한 권위로 사용한다. 이성(理性)에의 개방성은 두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문화(文化)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의 이성(理性)은 인간의 행동의 패턴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탐구와 인류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 운 통찰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도 심리학자, 사 회학자,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존한다는 특징이 있다.
둘째,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성경과 전통의 요소에 대한 비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은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그 들의 상황 속에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현대의 과 학과는 양립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는 고대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 으며 현대의 서구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노예제도, 절대군주제도, 여성비하와 같은 문화를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동성애에 대한 진술도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의 일부를 비판하는 것은 성경전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 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율법과 명령이 현대의 문화에 적용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저자들이 문화적 제약성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법과 사회제도로 부터 존중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성애자의 인권과 동성혼의 권리도 법과 사회로부터의 존중 이라는 차원에서 정당한 요구라는 것이다.18)
3) 동성혼을 반대하는 근거 :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반(反) 동성혼의 입장을 가진 복음주의 교단들은 인간의 이성(理性)과 전통을 권위의 근거로 삼는 주류 교단의 의견에 반대한다.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자들에게는 성경이 유일한 권위의 근거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와 문화(文化)를 초월하여 적용되어야 하며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순종해야 한다. 남침례교의 신조는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이고, 성경의 목적은 구원이며, 성경은 오류 없는 진리이다.”라고 진술한다.19) 이처럼 성경에 완전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성(理性)과 문화(文化)를 근거로 삼아 성경을 비판하고 성경의 저자들을 문화에 예속 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2) 교육계와 성적 지향성
미국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2014년 11월에 학교에서 보호되어야 할 권리 항목에 ‘성적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을 추가했고 2015년 5월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교육위원들이 투표한 결과 10대 1로 가결했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위원회가 압도적으로 가결한 이유는 ‘성 정체성’을 보호 하지 않을 우 연방정부가 카운티 교육국에 4,200만 달러의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단체는 LGBT 활동조직으로서 인권캠페인(Human Right Campaign)을 통해서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 법안(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SOGI 법안)을 신용, 교육. 고용, 연방예산, 주택, 법정의 모든 영역에서 ‘성 정체성’을 보호되어야 할 항목으로 추가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성 소수자의 보호라는 측면보다는 새로운 문제들을 생산하고 있다. 가령 성별 정체성에 따르면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졌을 경우에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면 학교의 수학여행 중에 여성 정체성을 가진 생물학적 남성이 여학생들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자는 것도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LGBT활동 단체들은 ‘차별금지 법안’이 보호할 항목에 ‘동성애적 지향성’을 삽입하기를 추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것이 성소수자의 차별을 없애고 성소수자에게도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동성혼 지지자들은 과거의 인종차별이 도덕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하는 것은 부도덕한 짓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활발하게 그들의 의견을 대중화 및 법제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보수적인 종교 단체들은 동성애가 차별금지 조항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동성혼이 법제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예산을 통해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대해 성 정체성을 반영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왜 그 것이 정당한 조치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자연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자연법을 어기는 정책을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러므로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적 특성에 의존하는 ‘성 정체성 차별금지’는 앞으로 종교의 자유, 경제적 자유, 아동복지에 관련된 많은 문제를 수반할 것이 자명하다.
(3) 동성혼 지지자들의 논리 : 동성혼 차별은 인종차별과 같다.
동성혼 지지자들이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인종차별과의 비유’이다. 동성혼 옹호자들은 올해의 대법원의 판결(Obergefell v. Hodges)은 낙태와 관련된 Roe v. Wade처럼 국민적 논쟁을 수반하지 않고 인종 간 결혼 금지를 철폐시킨 판례 Loving v. Virginia처럼 보편적인 도덕성으로 수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동성혼을 반대하는 것은 인 종 차별 주장처럼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차별금지법 조항에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권리’를 추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LGBT는 동성혼의 문제를 인종의 문제와 같은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전통결혼의 신념에 따라 혹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종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동성혼 반대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비도덕적인 사람들이기에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동성혼 합헌판결(Obergefell v. Hodges) 이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전통적인 결혼을 결혼제도의 본질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편협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가령 성적 지향성에 따라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에 비판하는 일반 시민들을 관용이 없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왜곡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결혼 지지자는 근거 없이 동성혼을 반대하고 성적지향성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하고 편협한 사람들인가? 그들은 동성혼에 대한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인가? 전통적인 결혼을 지지자들은 인종차별주의 자처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미국에선 Roe v. Wade 판결이후 미국 법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여성 혐오주의자(anti-woman)로 매도당하거나 구금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에서 합당한 지위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관용의 정신이 동성결혼 반대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가? 정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종교와 양심에 따라 사는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이것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에 의하면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에서 찾는다.20) 그는 유럽 교회의 쇠퇴는 정교분리가 실현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유럽의 기독교는 국가의 권력을 사용해서 종교재판을 했고 억압적인 국가기관으로 전락했다. 국가와 교회 는 분리를 통해 각각 최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4) 동성혼에 대한 반대 논거
1) 동성혼 반대와 인종차별은 동일한 도덕적문제가 아니다.
동성혼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동성혼의 문제는 인종 간 혼인금지의 문제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심리적인 성정체성은 생물학적인 인종과 동일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인 차이에 의한 차별을 정당화한 인종 간 혼인금지 조항은 철폐되는 것이 정당하고 필연적이지만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동성혼의 반대를 인종주의나 인종 간 결혼금지에 비유하는 것은 논리적 역사적 오류에 해당된다. 세계역사에서 인종 간 결혼금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 법안은 일종의 인종계급 카스트제도가 구현된 사회 안에서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남녀 간의 결합으로서의 결혼제도는 인류역사상 처음부터 있었던 규범이며, 위대한 사상가들과 동서양 종교들은 이성애에 입각한 결혼제도를 모두 인정해왔다.
대부분 유신론적 종교는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결혼을 자연적인 것으로 가르쳐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헬라철학, 어거스틴, 아퀴나스에 이르는 기독교 철학,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사상, 로크와 칸트의 근대철학,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같은 사상가들도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연합을 결혼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결혼에 있어서 인종을 고려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최근에 등장한 정치 공동체일 뿐이다. 근대 영국의 식민지들에서만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고 처벌한 것은 분명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한 것이었으며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적인 동기였을 뿐이다.
결혼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구별은 결혼의 핵심이다. 인종이 무엇이든지 남자와 여자는 결혼으로 연합할 수 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프랜시스 벡위드(Francis Beckwith)에 의하면 인종 간 혼인금지 법안은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선례가 없는 것으로 백인의 문화적 주도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지배 계급에 가까운 백인의 인종적 순수 혈통을 보존하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법에서는 합당한 결혼의 필수조건은 인종과는 전혀 관계없이 남성과 여성의 상보성에 의존한다.21)
2) 전통적인 결혼의 보호가 필요하다.
동성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것과 성관계는 결혼을 위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결혼을 약화시킨다. 동성혼은 인류의 오랜 역사동안 가져왔던 전통적인 결혼관을 파괴하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서의 결혼 이해는 자연법에 근거한 것으로 합당하며 성경적인 근거를 갖는다. 그러나 인종 간 결혼금지는 타당하지 않으며 어떤 성경적인 근거도 없다. 인종 간 결혼금지는 대개 사회의 억압을 위한 동기로 작용한 것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전통적인 결혼관은 억압 기제(機制,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가 아니다.
따라서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인종문제처럼 다루는 것은 어떤 역사적, 철학적 근거가 없다. 성적 지향은 결코 인종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 보호를 위한 법안(SOGI)를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이 보호받는 항목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성적 지향성은 도덕적 평가와 연결되어 있다.
성적 지향성은 인종처럼 생물학적으로 분명한 것이 아니라 지나 치 게 애매하다.
성적 지향성은 전통적인 결혼제도를 약화시킨다.
특히 옥스퍼드 대학교의 존 피니스(John Finnis) 교수는 현대의 법체계의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성’이라는 항목을 추가하는 것은 시민들이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의 서구사회에서 동성혼이 헌법적 수준에서 합법성을 갖게 된 것은 동성애자들의 주도면밀한 투쟁과 로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즈에 의하면 사회의 주요제도는 “정치의 기본법이나 기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사상의 자유 , 양심의 자유 , 경쟁적 시장, 생산수단의 사유 등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일부일처제 등은 주요한 사회제도의 예들이 된다.”22)
롤즈가 가족을 사회의 주요 제도로 설정하는 이유는 가족의 중요한 역할 때문이다. 가족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도덕적 정치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롤즈는 가족의 역할에 대해 아주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롤즈의 전기 저서들은 이성으로 구성된 일부일처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사회의 주요제도로 설명한다. “가족제도가 정의롭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그의 선을 귀하게 여김으로서 그들의 사랑을 명백히 표현할 경우 어린이는 그에 대한 그들의 명백한 사랑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23)
그렇지만 롤즈는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에 대해 또는 이성애적 가족이라는 전통적 견해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한다. 롤즈는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출생과 사망은 매우 중요하며, 출생을 통해서만 그 사회에 진입되며, 사망을 통해서만 그 사회에서 탈퇴한다.”고 말한다.24) 그는 일부일처제를 사회의 주요제도로 설정하였고 출생을 통해서만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주장을 통해서 전통적인 결혼관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롤즈는 그의 사상체계 안에서 일부일처제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지 못하고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의무가 질서 있는 가족생활과 자녀교육에 일관된다면 동성애자들의 가족형태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25)
지난 2015년 6월 미국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서 가족에 대한 재정의(再定義, 단순히 두 사람간의 결합)는 이미 성(性) 혁명을 통해 무너진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성(性) 혁명을 통해서 이미 출생하는 아이들의 40%는 미혼의 여성에게서 태어나고 있으며 금번 동성혼 판결을 통해서 부친과 모친에게 생물학적 구분이 없다는 것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지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전통적인 결혼을 완전하게 붕괴시킬 것이다.
3) 종교의 자유는 천부적 기본권이다.
필자가 동성혼을 반대하고 차별금지 법안에 ‘동성애적 정체성’ 항목이 추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동성혼 지지법안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종교의 자유’와 ‘연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성혼지지’ 법안과 그에 따른 ‘혐오금지’ 법안의 제정은 결국 전통적인 결혼 문화를 편협한 것으로 보게 할 뿐만이 아니라, 종교행사의 자유, 종교적 신념의 보호,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경제활동의 자유 그리고 아동복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동성혼의 권리보다 종교의 자유가 더 상위의 가치이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동성애와 동성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의 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은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과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위임을 받았다.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예배할 자유와 신(神)에 대한 진리를 추구할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롤즈의 유명한 ‘정의의 두 원칙’에 의해서 보장되는 기본 권리에는 정치적 자유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사유재산권과 신체의 자유, 법의 지배라는 명목으로 부당한 체포 및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등이 포함되며,26) 국가의 중요한 책무는 당연히 양심과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우선적인 것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국가는 특정한 종교를 선호할 수 없으며 어떤 종교에 가입하거나 탈퇴한다고 해서 벌금이나 근신을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법은 한 종교에 대한 배교뿐만 아니라, 전혀 종교를 갖지 않는 것까지도 법률상의 죄로 인정하거나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가는 도덕적 종교적 자유를 지지하게 된다.”고 말한다.27)
롤즈는 ‘절차의 중립성’과 ‘목적의 중립성’ 중에서 그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절차적 중립성’을 지지한다.28) 중립성이 의미는 “국가는 어떤 특정한 포괄적 교리를 다른 교리보다 선호하거나 장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들로 하여금 특정한 신관을 수용하도록 하는 어떤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29) 그래서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녀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양심의 자유를 배우고, 배교가 법률상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30)
그렇다면 부모의 종교에 대한 배교마저도 법률상의 죄가 아님을 가르치는 것이 정치적 시민의 교육이라고 한다면 왜 자녀들이 부모의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 결별하고 이성애 결혼을 택할 수 있는 ‘동성혼에 대한 배교’는 생각도 못하게 하는가? 동성혼 지지자들은 차별금지 법안을 통하여 동성혼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적 독재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역시 동성혼의 합헌 결정보다는 오히려 ‘혼인제 폐지’를 통해서 아예 국가가 혼인제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31) 정부는 혼인문제를 사적인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샌델은 동성혼이 개인의 자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혼이라는 결혼의 형식이 공동체의 인정과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성애의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되지 않아야 할 권리로 일단 규정하고 나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22
미국의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국의 논리를 좀 더 확대해 적용해본다면 성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논리는 성정체성에 따라 학교의 수학여행 기간 중에 생물학적 특징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방을 쓸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정체성이 차별 금지조항에 들어가면 그 가치는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독재 적 지위’를 갖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을 비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가령 영국, 캐나다, 미국 등에서 동성결혼 주례를 거부한 목회자들에게 구금 형벌과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지위가 독재적이라는 것을 말 해준다.
Ⅲ. 동성혼에 대한 교회의 자세
(1) 기독교적 인간관은 타락한 본성을 전제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선한 본성과 타락한 본성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펠라기우스(Pelagius)와 계몽주의 철학은 선한 인성론과 자유의지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성경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원죄에 의해 타락되고 부패되었다. 따라서 타락한 이후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은 도덕적 자연스러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모든 종류의 죄악이 일어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It’s desire is for you, but you must master it.)말씀하셨다. ‘it’s desire‘는 다스림의 대상이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은 살인, 시기, 질투, 분당 등 죄악 된 욕구를 자연스럽게 느낀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의 욕구를 사람들이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가 되게 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다. 이성간 결혼에 대한 대안은 동성혼이 아니라 독신(獨身)과 성적 절제(節制)이다.
그렇다면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 하 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고 말한 직후에 바로 이어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고 했다. 그렇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복음의 능력은 사람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
(2) 동성애치료에 대한 공중보건 정책과 사회적 담론을 형성 해야 한다.
미국 정신의학사전에서 동성애가 정신병 목록에서 제외된 후 이제는 동성애를 자연스러움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어떤 치료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왜곡되고 잘못 된 이성애도 처벌과 치유가 필요한 것처럼 동성애적 성향이 아니라 동성애적 행동을 통해서 잘못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치유와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성(性) 범죄자들에게 주는 전자발찌를 동성애 범죄자들에게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죄의 성향은 이성애(異性愛)와 동성애(同性愛)를 막론하고 모두 적용되는 것이 바로 법의 지배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소아(小兒) 성애와 강간은 처벌의 대상이다. 동성애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는 시도는 사라져야 한다. 모든 동성애자가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는 아니고 모든 에이즈 환자가 반드시 동성애자도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와 에이즈는 분명히 밀접한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4년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에게서 에이즈 환자의 비율이 높게 증가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3)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는 천부적 인권이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고 동성혼을 거부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정부가 만든 권리가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天賦的) 인권에 해당된다. 동성애 지향성 보호법안과 동성혼을 반대할 수 있는 종교적인 자유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판단의 오류 가능성과 인식론적인 불일치로 인하여 관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이고 근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차별금지 조항은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게 한다. 동성혼이 한국에서도 허용되고 동성애 지향성을 보호하는 법안이 등장한다면 천부적(天賦的)인 자연권인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침해되고 종교의 자유는 주일에 교회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자유’로만 극히 제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배시간에 목회자의 설교도 심지어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4) 동성혼을 반대하는 교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선 돌이키지 않는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자에 대해 성경적인 가르침을 표명해야 한다. 현대 서구교회가 동성애를 용납하는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이성과 문화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가증한 죄로 말한다. 죄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오직 철저히 회개만이 필요하다. 존 스토트 목사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박사의 견해를 인용하며 이를 동조한다. “동성애 결합과 성경적 결혼을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교회가 아니다.”32)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복음주의 교회라면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안수하여 세울 수 없다. 만일 누구든지 성적인 죄로부터 회개하지 않는 다면 비록 성직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리더십의 지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성경은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더 엄격하게 말씀의 기준이 적용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능력으로 회심한 사람이 리더십이 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선포한다. 사람은 새롭게 될 수 있다.
결론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은 성경적인 결혼관에 따라서 살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 온건한 방식을 통하여 동성혼의 문제를 지적하고 성경적인 결혼은 자연법에 의거한 것이기에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진 유교를 비롯한 동조 그룹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도덕(道德)은 정치(政治)보다 앞선다. 한 남성(男性)과 한 여성(女性)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국가의 정책과 법으로 변경할 수 없는 자연법적 도덕성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담론화(談論化) 해야 한다.
(*) 글쓴 이 / 김기호 교수(한동대)
< 참고 문헌 >
1) Kevin Deyoung, What does the Bible really teach about Homosexuality? Wheaton, Crossway, 2015.
2) Duane Olson, issues in Contemporary Christian Thought,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1
3)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 Phillipsburg: 2004
4) 캐시 루디, 섹스 앤 더 처지: 젠더, 동성애,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변혁, 서울: 한울, 2012
5) 존 스토트,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서울: IVP, 2011
6) 플로랑스 마뉴, 동성애의 역사 서울: 이마고, 2007
7) Martha C.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8) Craig A. Williams, Roman Homosexual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9) Ryan T. Anderson, Truth Overruled: The Future of Marriage and Religious freedom,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2015.
0)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1)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1999
< 미 주 >
1) Martha C.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1999), 200
2) 국가인권위원회 관련법 30조 2항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2002년 7월에 생물학적 요인과 상관없이 심리적 정체성 장애를 인정하고 성전환자의 경우 호적상 성별을 정정하도록 하는 부산지법의 판결도 있었다. 그 후 2002년 12월 한 성전환자가 법적으로 변 경 된 성별을 갖게 된 적도 있었다.
3) John Stott, Same-Sex Partnerships?(Zondervan,1998) 제4장 참조 26
4) Derrick Sherwin Bailey, Homosexuality and the Western Christian Tradition(London:Longmans, Green, 1955)
5) Homosexuality: Not a Sin-Not a Sickness: Toward an evaluation of pro-Gay heological perspec
-tives, 80 & Russ Tate, John Boswell, Christianity, Social Tolerance and Homosexuality: Gray People in Western Europe from the Beginning of Christian Era to the Fourteenth Century, 90-97을 참고
6) 존 스토트,‘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서울: IVP, 2006) 510-512.
7) Boswell, ibid., 103.
8) R. E. Clements,‘Abomination in the Book of proverbs’in Fox, Michael et al(ed.), Texts, Temples, and Traditions: A Tribute to Menahem Haran(Winona Lake: Eisenbrauns, 1996), 211-225.
9) Victor Paul Furnish, “what does the bible say” in Geis, Caught in the Crossfire, pp. 57-66.
10)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26-30. 가톨릭 역본인 예루살렘 성경은 이 단어를“미동과 남색자 catamites and sodomites”로 표현한다.
11) 존 스토트,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517.
12)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133.
13)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는 1972년에 동성애자였던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목 사안수를 허락한 이후, 1980년 남녀 동성애자들을 목사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최초의 대교단 이 되었다. 1991년 UCC 총회는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가 성직자가 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압도적 표수로 결정하였다. 2005년에는 공식적으로 동성혼을 지지한다고 결의하였다. Mike Schuenemeyer,“Marriage Equality”United Church of Christ Web Site, November 4,2009,
http://www.ucc.org/lgbt/issues/marriage-equality/#Marriage_Equality_and_the_Ucc.
14) 대한민국의 선교에 크게 기여했던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는 1999년 레즈비언 제인 스파 (Jane Spahr)를 그 해의‘신앙의 여성’수상자로 지명하였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이 이혼모는 그 교단 을 섬기는 첫 번째 공공연한 동성애자이었다. 그리고 2015년 현재 미합중국장로교회는 동성혼을 지지하고 그에 반대하는 교회들은 교단을 떠나가고 있다.
15) 2003년 6월 7일 미국 성공회는 주교 관구를 둘로 나누어서 뉴햄프셔의 교구에 공공연한 동성애자 인 진 로 빈손(V. Gene Robinson)을 뉴햄프셔 주교로 선출하였다. 13년 전의 결혼 서약을 어기고, 그의 아내와 두 어린 딸을 버린 후에 진 로빈슨은 게이로 등장했고 그는 남자 파트너와 함께 산다. 그를 주교로 임명하기 위해서 미국 성공회 내 두 단체의 표결이 필요했다. 주교단은 62대 45로 찬 성했고 평신도 사제로 구성된 단체는 128대 63으로 찬성을 했다. B.A. Robinson“Religious conflicts: The Episcopal Church, USA and Homosexuality,” Ontario Consultants on Teligious Tolerance, last updated 2007.9.22., http://www.religioustolerance.org/hom_epis.htm.
16) 2009년 미국 루터교(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America)는 676대 338로 동성애자가 성 직자로 사역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동성결혼 역시 지지하였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교회들은 교단을 떠났다. Mark S. Hanson, “churchwide Assembly Updat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2009.8.22. http://elca.org/Who-We-Are/Our-Three-Expressions/Churchwide-Orginization.
Office-of-the-Presi ding-Bishop/Messages-an-statement/090822.aspx.
17) Duane Olson, Issues in Contemporary Christian Thought, 204.
18)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5.
19) Southern Baptist Convention,“The Baptist Faith and Message,”sbcnet, n.d.,
http://sbc.net/bfm/bfm/bfm2000.asp#i.
20)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2005), 477.
21) Francis Beckwith,“Interracial Marriage and Same-Sex Marriage”
22) John Rawls,‘정의론’40. 이탤릭은 필자의 강조사항이다.
23) Ibid.629.
24) Rawls, Political Liberalism, 84-85. 27
25) Ibid., 467. 각주 60을 보라.
26) John Rawls,‘정의론’106.
27) Ibid., 289.
28) Rawls, Political Liberalism , 192-193.
29) Ibid., 193.
30) Ibid., 193.
31)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서울; 김영사, 2010) 354.
32)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 133
– 성적 지향(性的 指向, Sexual orientation) / 자신이 이끌리는 이성, 동성, 혹은 복수의 성 또는 젠더를 나타낸다. ‘성적 취향’이나 ‘성적 성향’이라는 용어도 종종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때의 끌림은 감정적이거나, 낭만적인, 성적인 끌림일 수도 있고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대다수의 심리학 혹은 정신의학 단체는 성적 지향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었다.(그러나 복음주의 교회와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성적 지향의 분류에는 크게 반대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이성애, 같은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동성애, 두 성 모두 또는 때에 따라 둘 중 한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양성애, 이분법적인 남성과 여성 외에도 모든 성에 이끌릴 수 있음을 뜻하는 범(汎) 성애, 성적 이끌림이 없음을 뜻하는 무(無) 성애 등이 있다. 이러한 분류는 때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이끌림이나 행동의 경향 및 강도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이성애는 종종 동성애로 오해받곤 한다. 젠더 퀴어나 간성에게는 동성과 이성의 판단이 모호할 수 있다. 법률 용어로서의 ‘성적 지향’은 처음에는 판례를 통해서 의미가 형성되었다. 동성애, 이성애 또는 양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에서 주로 사용한다.
– 성 정체성(性 正體性, gender identity) / 자신의 젠더에 대한 자각, 자아의식을 말한다. 성별 정체성, 성 주체성, 성 동일성이라고도 하며, 성적 정체성과는 다르다. ‘성 정체성’의 종류는 남성 정체성, 여성 정체성, 젠더퀴어적 정체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성 정체성이 신체성별과 일치하는 경우를 시스젠더, 성 정체성이 신체성별과 반대인 경우를 트랜스젠더, 그리고 시스젠더에도 트랜스젠더에도 속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가진 경우를 젠더퀴어라 한다.
– 성적 정체성(性的 正體性, sexual identity) / 스스로 어떤 사람에게 연애 감정이 생기는지 혹은 성적으로 끌리는지 자신이 판단한 것이다. ‘성적 정체성’은 더 정확히 말해 성적 지향 정체성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의 인정 또는 내재화를 뜻하기도 한다. ‘성적 정체성’과 ‘성적 행동’은 ‘성적 지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나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생각을 가리키는 정체성, 개인의 실제 활동을 가리키는 행동, 동일하거나 반대, 둘 다의 성별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연애적 또는 성적 이끌림 또는 둘 다에게 이끌리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성적 지향과는 구분된다.
기존에 ‘성적 정체성’의 형성은 성 소수자만이 겪는 과정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보다 현대적인 관점은 ‘성적 정체성’의 형성이 더 보편적이라고 보면서 현대의 다른 주류 정체성 형성과 이론의 넓은 영역 내부에 성적 정체성을 넣으려고 시도한다. 출처 / 위키백과 (주) 위의 내용 중 일부는 본지의 취지와 일치 하지 않습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