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4일 수요일

하나님나라11 - 하나님나라의 신비 (박영선목사)

하나님 나라의 신비
 
요 점
이미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이 이 땅에서 실행되고 있으되 그 통치권이 영광과 존귀를 다 드러내지 않고 발휘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에도 아직 극치를 기다리는 형태는 일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단의 권세가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백성들은 이 신비를 볼 수 있으며 그 나라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미래성과 현재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미래적으로 기다려야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게 들어와 있는가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속에 불만이 아직도 남아 있게 되는 것은
좀 재미없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들어와 있다라고 배웠기 때문에 말로는
하겠는데 우리 가정과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마태복음 13장을 보겠습니다. 10절에
보시면 이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0-12절)
 
여기 성경에 쓰여 있는 비밀이라는 단어는 비밀(secret)이 아니라 "신비"(mystery)라는
것입니다. 신비와 비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비밀이란 단어는
감추고 보여주지 않아서 모르는 것입니다. 이에반해 눈으로 보면서도 모르는 것이
신비입니다.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것입니다. 보면서도 모르는 것입니다. 낫 놓고
기억(ㄱ)자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할 때 이 본문을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지말고 천국의 신비라고 해야 합니다.
 
천국이 이 땅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군 방송(AFKN)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솰라솰라, 웃는구나, 솰라솰라, 화를 내는구나 합니다. 어차피 까막눈일 때는 A나 F나
R나 차이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인간은 까막눈입니다.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구체적인 것은 뒤에서 설명합니다.(마 13:14-17)
 
지금 우리가 구약시대의 형제들과 다른 점은 우리는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미래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듣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는 얘기는
천국이 임했는데도 보아도 못 보고 들어도 못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음에 천국
비유로 들어갑니다. 3절부터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 13:3-9)
 
이 비유의 이름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런 형태의 설교를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딴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착한 밭을 가지는 마음씨 좋은 어린이가 됩시다』누구나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한 것입니다.「돌짝밭이 되지말자, 마음이
완악해지지 말자」그것을 비교하기 위해서 이 비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것
같으면『밭의 비유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신비와 관련하여 보아야 할 이 비유의 중요한 대목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19-23에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뿌려지는 씨는
천국 복음, 즉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으며, 악한 자라는 것은
천국이 임했음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을 말합니다. 또한
그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죄에 오염된 세상의 여러 요소들입니다. 이로
인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는 세례 요한의 기대와 같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힘으로
나타나야 될 것 같은데 지금 들어온 모습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사단이 빼앗아갈 수 있을 만큼 그 힘을 감추고 있고 영광을 감추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감히 사단이 그 말씀을 빼앗아 가도록 놔두시는 입장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힘과 영광과 존귀를 감추고 던져 놓으셨다는데 천국의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얘기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약올랐습니까? 『뭐! 하나님을 믿어! 야!
내 주먹을 믿어라!』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생물 선생님들이 늘 하던 얘기였습니다.
그때 진화론이 한창 판을 칠 때였습니다.『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해? 임마, 내가
만들었다!』 이렇듯 몰상식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인생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저따위 몰상식한 사람을 봐 주시는가?」 그들이 「뭐 하나님을 믿어? 내 주먹을....하는
순간 문둥병에 걸려 손가락이 썩어들어가지 않다니, 신약시대라서 그런가?」그런 생각
안해 보셨습니까? 누가 우리에게『하나님이 어디 있냐? 보여 봐! 하나님? 웃기고 있네!
하나님이 내 동생이다! 임마!』라고 말할 때 그만 그 자리에서 이빨이 팍 삐뚤어진다든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내심 씻어버리지 못하는 불만의 요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저
개인에게는 축복하시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저 원수를 어떻게 좀 해 주세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능력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세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심리가 아니겠습니까?
 
그 나라는 능력과 영광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와 있는지
알지 못하며 더욱이 들어와 있으리라고 꿈도 안 꾸는 것입니다. 사단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는 데 힘을 발휘하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재물을 좇아가도 될
만큼 가치 없도록 팽개쳐지는 걸 하나님이 가만히 놔두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우리에게 오해될 소지가 있는 부분인가를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러나 준비된 마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음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얼마나 무서운 신비로 채색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가 얼마나
회개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무지몽매했는가? 하나님의 복음이
나에게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힘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믿으면서도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할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모셔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얼마나 망령되어 대접하곤 했는가를 생각하신다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등골이 서늘하지
않은 분은 문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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