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6일 토요일

청년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어른세대의 시각에 대한 청년사역자로서 부탁의 말씀

청년을 바라보는 한국교회 어른세대의 시각에 대한 청년사역자로서 부탁의 말씀
 
1. 왜 이렇게 믿음이 없냐?
이런 시각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싶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믿음 없음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른 세대가 진리와 영으로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바른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전력하며, 모범적인 삶으로 세상에 빛이 되었다면, 과연 우리 청년들의 믿음이 이토록 약하여졌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않고, 성가대로 봉사하고 주일학교의 각종 스텝으로 섬기고 있으면 믿음이 좋은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교회 잘나오는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이 없다고 혀를 차기 전에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전수하기 위하여 전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보다 더한 믿음 없는 세대가 일어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2. 우리 때는 말이야
청년사역을 하는 동안 가장 흔히 들었던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른 세대가 청년일 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했다면 한국교회가 이같이 큰 어려움에 봉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시대가 급변하였습니다. 언제까지 교회의 청년들을 어른 세대의 추억의 틀에 가두어 둘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변했는데 청년들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교회도 진리 외에 여러 면에서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은 과연 어떠한 세상 속에서 사단의 공격과 싸우고 있는지를 분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올바로 세워 질 수 있도록 교회가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봉사하고도 불평 한 마디 없었다는 식의 논리로만 일관한다면, 결국 그나마 지금 교회에 남아 있는 청년들도 추억 속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3. 이해를 못하겠다.
간혹 어른들 중에 요즘 청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청년들의 문화나 가치관 혹은 신앙의 모습 등에서 전에는 교회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일 때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청년들도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고 그 때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른들은 청년 시절을 지나오셨지만, 지금의 청년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했고, 또 그들의 문화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잘못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세대가 달라 발생하는 차이점들은 굳이 억지로 이해를 할 필요가 없고, 공감을 하며 존중을 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 청년들보다는 어른이 먼저이다.
전에 어느 교회에서 청년들이 지낼만한 공간이 없어 그 공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른들이 절대 양보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놀고 있는 공간이어도 남전도회다 여전도회다 그런 표찰만 달려 있으면 절대 내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청년들 보다는 그간 고생한 어른들이 대접받아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지키시고 세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고 존중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여 세운 교회가 한 세대가 지나면 이제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교회에 청년이 없습니다. 한 가지 일례로 각 교단의 신학교마다 정원수를 채우지 못해 미달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실력 있는 목회자를 배출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청년이 없으면 누가 가장 손해입니까? 결국 교회가 손해 입니다. 한국교회는 날이 갈수록 점점 노령화 되고 있고, 청년들은 자꾸만 교회를 떠납니다. 청년들이 먼저여서가 아닙니다. 교회가 먼저이기에 때로는 청년들에게 양보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5. 투자를 해도 남는 것이 없다.
간 혹 예산계획을 보고 할 때 듣는 말씀 중에 하나인데, 제 솔직한 마음은 한국교회가 언제 제대로 투자나 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각 교회마다 청년들이 줄어들고 있고, 특히 지방의 교회들은 기껏 양육시킨 인재들이 직장을 따라 외지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내 교회만을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국교회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투자를 하는 것은 내 교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갈 다음 세대의 교회를 위해 청년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 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결국 교회가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투자로 여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6. 경건치 못하게
겉모습만 보면 사실 요즘 청년들이 경건하지 못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는데, 아무튼 진짜 경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힙합 스타일의 청년을 보면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은 경건과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교회에 예배하러 나올 때는 단정히 옷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혐오스럽거나 사치스럽거나 벌거벗지만 않는다면 스타일은 각자의 개성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경건의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참 된 경건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과 성품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세상의 탐욕과 쾌락과 폭력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을 훈련하기 위하여서는 청년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오히려 그들을 더욱 품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7. 청년은 교회의 일꾼
물론 요즘 교회의 어른들은 자녀들이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허구한 날 교회만 있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자기 자녀에게만 국한됩니다. 자기 자녀는 교회에 잘 나오지도 않는데 다른 청년들은 왜 교회에 봉사를 하지 않느냐고 야단을 치고, 교회 봉사도 안하는데 예산을 줄이겠다며 압박을 하곤 합니다. 물론 청년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서야 하고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세우신 대표적인 직분은 장로와 집사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청년들은 훈련되고 양육 받고 배워야 합니다. 청년들을 보면 좋을 때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때 보다 배우고 훈련받기에 좋은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히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인생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부디 청년의 때에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훈련 받을 수 있도록 온 교회가 마음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보편적 상황에 대한 글이며 현재 제가 속한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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