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란 말은 보통으로는 머리에 기름부음받는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은 자를 뜻하여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에게 이 말이 적용되었고, 심지어는 유다를 바빌론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사 45:1).
그러나 이른바 제2 성전 시대의 유대교(신약시대 전후의 유대교)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께서 종말에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실 구원자를 뜻하는 하나의 칭호로서 고유명사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메시아’(또는 문자적인 헬라어로 번역하여 ‘그리스도’)라고 할 때, 그 뜻은 예수가 ‘종말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종말의 구원을 실현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유대 백성이 기다리던 종말의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종말의 구원의 행위를 하신 구원자다.” 사도들이 이렇게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그의 ‘종말의 구원자’로서의 행위라고 선포하며,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나님의 종말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왜 사도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서로 다른 복음들입니까? 아니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께서는 그것을 단순히 선포하신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통치)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은 분으로서, 즉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통치)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했다”는 말의 구약적 배경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니엘 7:13-14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다니엘 7:13-14에 나오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 중에 하나님의 어좌 앞에서 천사들이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괴롭히는 이방 왕조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임받습니다. 시각적, 회화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우편에 앉는 자가 되다’는 말입니다. 성경 언어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상속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아들’을 성경 숙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성경 숙어로서 ‘아들’이란 말의 기본 의미는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은 이, 신적 능력과 신적 지혜와 모든 하나님의 속성들을 상속받아서 하나님 대신 통치를 대행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근동의 궁중의식으로 말하면 ‘하나님 우편에 앉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요새 언어로 말하면 부왕(왕에 버금가는 왕이라는 뜻으로 왕세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7:12-14의 나단의 신탁 전승이 구약 여러 곳에서 재해석되고 재적용되는데(가령 시편 2편, 89편, 134편, 이사야 2장, 9장, 11장 등), 그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아들)을 일으켜 다윗의 왕좌에 앉히고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자신의 통치를 대행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의 메시아적 대망의 가장 중요한 뿌리였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유대 백성이 계속 짐승 같은 이방 왕조들(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통치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순/아들”을 일으켜서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통치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메시아적 대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중요한 메시아 칭호들이 된 것입니다. 이 대망이 유대 민족이 주전 168년 경 시리아의 셀루키드 왕조의 혹독한 통치(유대교 말살 정책) 아래 고생할 때 다니엘 7장에서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짐승”같은 이방 왕조들을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단 7:18-24), 즉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바로 다니엘 7:13에 나오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 말한 것입니다. 사복음서들에 공히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한국어 성경에는 ‘인자’로 번역]이라고 합니다. 다니엘 7:14에 의하면 ‘그 사람의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임받습니다. 성경언어로 말하면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자신이 다니엘에게 환상 중 “한 사람의 아들”같은 이로 나타나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 즉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니엘 7:9에는 “왕좌가 놓이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이 부정확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단수 복수를 구별해서 쓰지 않는 것입니다. 단수 복수의 구별이 없다보니 의미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번역은 사실 “왕좌들이 놓이고”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정확히 읽으면 하나님의 어좌가 두 개 놓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에는 ‘옛적부터 계신 이’(하나님)가 앉아계시고,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위한 것으로서 그가 구름을 타고 나와서 그 어좌에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임받습니다. 고대 근동의 궁중의식에서 우편에 앉는다는 말, 즉 부왕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서 시편 110:1은 구약 본문들 중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신 것을 보고 이 시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사 자기 우편에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우편에 높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 됨,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분이 됨, 그래서 주 Lord가 됨’이라는 말입니다.
주 Lord라는 이름이 원래 하나님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이양받았으니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분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분이 된 것입니다(빌 2:9-11).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아버지와 그 전권을 상속받은 아들의 관계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의 숙어들 혹은 시각적, 회화적(그림)언어들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이런 숙어들과 그림 언어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김세윤 교수 | kcj@kcjlogos.org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은 이, 신적 능력과 신적 지혜와 모든 하나님의 속성들을 상속받아서 하나님 대신 통치를 대행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근동의 궁중의식으로 말하면 ‘하나님 우편에 앉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요새 언어로 말하면 부왕(왕에 버금가는 왕이라는 뜻으로 왕세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7:12-14의 나단의 신탁 전승이 구약 여러 곳에서 재해석되고 재적용되는데(가령 시편 2편, 89편, 134편, 이사야 2장, 9장, 11장 등), 그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아들)을 일으켜 다윗의 왕좌에 앉히고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자신의 통치를 대행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의 메시아적 대망의 가장 중요한 뿌리였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유대 백성이 계속 짐승 같은 이방 왕조들(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통치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순/아들”을 일으켜서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통치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메시아적 대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중요한 메시아 칭호들이 된 것입니다. 이 대망이 유대 민족이 주전 168년 경 시리아의 셀루키드 왕조의 혹독한 통치(유대교 말살 정책) 아래 고생할 때 다니엘 7장에서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짐승”같은 이방 왕조들을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단 7:18-24), 즉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바로 다니엘 7:13에 나오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 말한 것입니다. 사복음서들에 공히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한국어 성경에는 ‘인자’로 번역]이라고 합니다. 다니엘 7:14에 의하면 ‘그 사람의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임받습니다. 성경언어로 말하면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신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자신이 다니엘에게 환상 중 “한 사람의 아들”같은 이로 나타나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 즉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다니엘 7:9에는 “왕좌가 놓이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이 부정확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단수 복수를 구별해서 쓰지 않는 것입니다. 단수 복수의 구별이 없다보니 의미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번역은 사실 “왕좌들이 놓이고”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정확히 읽으면 하나님의 어좌가 두 개 놓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에는 ‘옛적부터 계신 이’(하나님)가 앉아계시고,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위한 것으로서 그가 구름을 타고 나와서 그 어좌에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임받습니다. 고대 근동의 궁중의식에서 우편에 앉는다는 말, 즉 부왕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서 시편 110:1은 구약 본문들 중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신 것을 보고 이 시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사 자기 우편에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우편에 높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 됨,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분이 됨, 그래서 주 Lord가 됨’이라는 말입니다.
주 Lord라는 이름이 원래 하나님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이양받았으니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분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분이 된 것입니다(빌 2:9-11).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아버지와 그 전권을 상속받은 아들의 관계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의 숙어들 혹은 시각적, 회화적(그림)언어들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이런 숙어들과 그림 언어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김세윤 교수 | kcj@kcjlogo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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