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8일 목요일
1강. 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2)
2. 히브리서의 예
1) 역사적 배경
이 서신의 독자들은 아마 고마 등에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로서 한편 유대 공동체에서의 소외와 이방세계에서의 핍박은 계속되고, 다른 한편 고대하던 주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첫 신앙의 열정이 식어간 사람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을 특히 괴롭힌 것은 죄의식에 따른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 상실이었던 것 같습니다(9:9, 10:2).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그들의 죄가 정결케 되었다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으로 그들의 과거의 죄를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세례 후 축적된 죄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과거 유대교에 있을 때는 새롭게 짓는 죄들을 성전의 제사를 통해 해결하곤 하였는데,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유대공동체로부터 추방된 자들로서 성전의 제사의 덕을 입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으므로, 세례 후에도 어쩔 수 없이 짓게 되는 죄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식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이에 장벽을 느끼고 그에게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교로 돌아가 유대 공동체에 다시 속하여 소외와 핍박도 면하고, 유대교의 속죄의례의 덕을 받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는 배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2:1-4).
이 서신의 저자는 과거 이 독자들의 목자였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 있으면서, 이들의 신앙의 위기를 듣고 이들에게 배교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교의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유대교에 월등히 우월함, 그리스도 복음의 충분성 등을 강해하여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주며 종말의 구원의 완성을 향해 신실히 정진할 것을 고취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신들의 실제적 어려움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를 몰라 배교의 기로에 서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한 편의 아주 탁월한 설교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그의 설교를 만들었습니다.
2) 구조
(1) 사도적 공통 케리그마(1-2장)
저자는 1-2장에서 먼저 독자들이 이미 받은 사도적 공통 케리그마를 요약함으로써 그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는 사도적 복음을 요약하되, 그들의 특별한 상황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펼칠 자신의 새로운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후자가 전자에 근거함을 보여 줍니다.
그중 1:1-4에서는 프로그램적 천명을 합니다.
과거 구약의 계시는 부분적이고 임시적인 것에 반해, 창조의 중보자요 지탱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는 종말론적 계시입니다. 그가 또 종말론적인 속죄제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우편에 등극해 천사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르셨습니다(1:7-2:10).
여기서 천명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1:3)은 장차 8-10장에서 그의 죽음이 대속의 날 제사(레 16장)와 새 언약의 제사(렘 31:31-34)였음에 대한 강해의 프로그램 제시입니다. 이 서신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제되어 있으나(13:20), 그 사건을 시편 110:1에 따라 그리스도의 높아지심과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저자가 독자들의 당면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앞에서 현재 대제사장으로서 사역하심에 자신의 복음선포의 초점을 맞추기 위한 포석입니다(4:14에서 10장까지 전개).
이 서두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뛰어남을 강조합니다(1:7-2:9). 저자는 유대교에서 모세의 율법이 시내산에서 천사를 통해 계시된 것이기에 위대하다는 교리(“천사들이 선포한 말씀”, 2:2, 행 7:38, 갈 3:19)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중보자요 지탱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 계시(복음)를 저버리고 유대교(천사들을 통한 계시)로 회귀하려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천사들은 영원하신 성자와는 달리 단지 섬기는 영들(1:14)이며, 그들을 통해 중보된 율법은 성자를 통한 계시(복음)에 대한 예비적인 것에 불과함을 강조하여 그들의 배교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를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2:1).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보자요 지탱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아들/상속자이시며 하나님 우편에 높임받아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되신 분이라고 강조한 저자는 2:10-18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시편 110:1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만유의 주로서 높임받으심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를 천사들보다 훨씬 우월하신 분으로 그리다가 시편 110편과 내용적으로 일부 통하는 시편 8편이 생각나서 그 시를 인용합니다(2:6-8).
저자는 이 시를 인용하여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잠시 천사들보다 낮은 인간으로 성육신하여 우리와 같은 처지에 와서 우리의 대표가 되셨음을 천명하여 자신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펼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2:14-18). 이렇게 저자는 사도적 공통 복음을 구약의 본문들에 의거 재해석하여 독자들의 필요에 맞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의 목표(3-4장)①
이렇게 독자들의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제사장 기독론/구원론의 형식으로 복음을 선포할 것을 천명한 저자는 그러한 복음 선포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3-4장에서 독자들이 그리스도인들로서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안식에 들어가는 것(4:1, 9), 또는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는 것”(6:19)입니다.
즉 하나님의 집에 당도하여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며 그의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지칭하여 우리가 “온전케 됨”/ “온전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완성에 참여함을 뜻합니다.
여기서 전제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힘입어 우리가 이미 구원의 첫 열매를 얻었다는 것; 그러나 아직 그 구원의 완성을 얻지 못했다는 것; 그러기에 구원의 첫 열매를 얻은 우리는 지금 구원의 완성을 향해 순례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도적 공통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하늘 성전 또는 안식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즉 우리를 “온전케 하기”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성육신하도록 하여 우리와 연대하게 하셨고 죽음에까지 고난과 순종의 길을 가도록 하셨으며(2:10-18, 5:5-10), 결국 자신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또는) 하늘 성전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8:1-2, 9:24). 즉 “온전케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가 가야 할 구원의 길을 먼저 가게 하심으로써 그 구원의 길을 뚫게(개척하게) 하여 “많은 자녀들”이 이 길을 따라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구원의 개척자”이십니다(2:10). 그는 “온전함”에의 길을 우리의 선구자/향도로 앞서 가셨고(6:20), 그리하여 그는 우리 믿음의 개척자요 완성자이십니다(12:2).
김세윤 교수 | kcj@kcjlogo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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