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33)<3> 마태복음 (1) 특수주의와 보편주의(2) 그것은 이사야 66장 같은 데서 나타나는 사상으로서 바울의 선교 사상의 신학적 기조를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의 행위로 시온에 메시아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다메섹 도상에서 이 영광의 광체를 본 바울이 이 구원의 복음, 이 영광의 광채를 열방에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2-49장에서 예언된 주의 종으로서 “열방의 빛”이요 “구원의 전달자”로 세움받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갈라디아 사람들, 데살로니가 사람들, 고린도 사람들, 로마 사람들 등 열방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령 데살로니가인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려 돌아선 것입니다”(살전 1:9-10). 이런 바울의 신학이 마태복음에도 나타납니다. 예수가 여기 지금 시온의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모습으로, 초월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모습으로, 여기 시온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즉 시온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난 것입니다. 찬란한 별이 그 광채를 동방에 비춥니다. 그래서 동방의 현인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예물을 가지고 예배하려고 시온에 옵니다. 마태복음 28장까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 시온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을 보여 준 마태는 이제 20:16-18에서 예수가 제자들을 만방에 파송하여 이 시온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 열방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라는 것으로 자신의 복음서를 결말합니다. 2:1-12의 동방박사 이야기가 28:16-20의 사도적 대위임을 예고하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2:1-12과 28:16-20은 ‘inclusio’를 이룹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공생애 동안은 유대인들에게만 설교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나오는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의 복을 끼치십니다(8:5-13, 15:21-28 등). 그리고 예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은 심판을 받고, 도리어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그들로부터 빼앗아 열방에게 주겠다고 경고하십니다(8:12-13). 혼인잔치의 비유(22:1-14)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해서 유대인(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라고 먼저 초대하는데, 그들이 다 거절하니까 혼인잔치를 베푸는 주인이 종들을 큰 길과 작은 길에 보내서 앉은뱅이, 소경, 병자들, 하나님의 성전에 오지 못한 자들을 다 강권하여 끌고 오게 합니다. 원래 초대받은 사람들은 버림을 받고, 노인들과 창기들과 이방인들까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24:14에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된다고 예언합니다. 이런 것들이 보편주의입니다. 예수가 공생애 동안은 이스라엘에게만 보냄을 받았고 제자들도 이스라엘에만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냈는데, 마태는 결국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열방에 선포되어서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도리어 처음 초대받았던 이스라엘이 버림받는다고 묘사합니다. 그래서 특수주의와 보편주의가 대조를 이루는데 이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서 마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5:8-9까지 바울이 특수주의와 보편주의의 긴장을 잘 설명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14-15장에서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의 대립을 묘사합니다. “약한 자들”은 유대인들로 고기를 안 먹습니다. 고기가 다 우상 제물이라서 그 고기를 먹으면 우상숭배라는 죄를 짓는다고 생각해서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의 양심을 위해 형제 사랑으로 그들의 자유를 양보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의 결론에 가서 그리스도 사역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라고 당부합니다(롬 15:8-9).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 마디로 할례당, 곧 유대인들의 종노릇하셨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바울은 역사적 예수가 유대인들만 섬긴 사실을 여기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것이 특수주의입니다. 예수께서 이방에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할례당인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치유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께서 유대인들만 섬김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을 특별히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약속의 성취자로 오셨고, 이스라엘/유다의 메시아로 오셨으니, 그의 사역의 주 목적은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종노릇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가 이스라엘/유다만 섬긴 두 번째 목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롬 15:9). “모든 열방이 그의 자비를 인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만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 특수주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선택에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통해서 열방을 축복하겠다는 보편적인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창 12:2, 18:18, 22:18 등).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열방을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주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경적 특수주의는 ‘대표성의 보편주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방법입니다. 하나를 특별히 뽑되 전체를 위해서 그들의 대표를 뽑는 것입니다. 하나를 통해서 모두를 축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유대인들의 종노릇하심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주셨기 때문인데, 그(특수주의적인) 선택과 언약은 그들을 통해서 열방을 구원하시려는(보편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유대인들만을 섬겼으나,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새 백성의 핵을 만드셨습니다. 구약신학으로 말하면 “남은 자들”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12제자로 대표되는 새 이스라엘을 통해서 자신의 메시야적 구원(그의 자비)이 온 세상의 열방에게 미쳐,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런 설명들이 다 바울의 설명입니다. |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33)_김세윤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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