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9)_김세윤교수

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9)<2> 마가복음, <3> 마태복음

4. 마가복음의 구조(2)

11:1-11 예루살렘 입성
11:12-14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
11:15-17 성전 시위
11:20-24 고사된 무화과나무를 통한 교훈
11:27-12:10 예수의 성전 시위에 따른 권위 논쟁
이런 것이 마가의 전형적인 ‘샌드위치 기법’입니다. 무화과 나무 이야기를 성전 시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기 위해 두 부분으로 찢어서 성전 사건 사이사이에 배치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은 무화과 나무 이야기와 성전 사건 이야기, 이 두 가지 이야기들을 이렇게 찢어 놓지 않고 한꺼번에 위치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 두 이야기들을 샌드위치식으로 서로의 사이사이에 끼워 넣음으로써, 예수가 성전 사건으로 시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매 없는 유대교/백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이 열매 맺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그들(악한 농부들)에게서 빼앗아서 예수가 새롭게 창조할 하나님의 새 백성(예수가 모퉁잇돌이 되어 새롭게 건설할 성전)에게 준다.” 성전 시위 사건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해석하도록 하기 위해서 샌드위치 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의 메시아 왕 됨은 로마의 가이사를 제거하고 스스로 가이사 같은 온 세상의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윗의 “집”(왕조)을 재건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성전-문자적인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짓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성전 시위 사건으로 표적적으로 예고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13장에 가서 명백히 선포합니다.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종말의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는 그 “사람의 아들”의 오심에 대해 예고합니다.
제5막에서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14:1-15:39). 고조되던 긴장은 재앙으로 끝이 납니다. 지금까지 얽히고 설킨 매듭이 한꺼번에 풀립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베다니에서는 예수가 머리에 기름부음 받음으로써 메시아 왕으로서의 등극이 표적적으로 이루어지고, 드디어 십자가에서 등극하는데, 그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하나님의 의로운 새 백성을 창조하는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이므로 그것이 그의 메시야적 과업을 완성하는 사건이기에 그의 십자가에 달려 죽음이 곧 그의 메시아적 등극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가 메시아 왕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 약속, 유월절 만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결의, 체포, 재판, 베드로의 부인, 사형선고와 십자가 처형 등등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죽음, 모든 이방인을 대표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한 로마 백부장의 고백, 이것이 클라이맥스입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예수의 장례가 있고, 빈 무덤의 묘사와 “예수가 부활했다”는 천사의 성포로써 종결됩니다.
마가복음의 구조 분석의 한 예를 들었는데, 이와 같이 마가복음 전체를 하나의 정교히 구성된 한 문학작품으로 보려고 하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양식 비평이나 편집 비평과 함께 이러한 문학 비평도 함께 해 볼 때 우리는 마가의 복음 선포를 더욱 깊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태 복음

1. 구조: 5개의 강론과 7개의 이야기

마태복음의 구조는 좀 더 쉽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5개의 강론들과 7개의 이야기들을 교직시켜 놓은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머리말과 세례 요한의 내용입니다(1:1-4:11). 첫 강론으로 5-7장의 산상수훈이 나타납니다. 메시아가 의(義)로 제자들을 부름, 이것이 첫 강론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로 8-9장은 메시아의 사역, 치유 활동, 제자들을 부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강론으로 10장은 메시아의 사역입니다. 12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선교하라고 하고 핍박을 받을 것을 예고합니다. 그 다음 세번째 이야기의 11-12장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거절되나 그를 받아들이는 제자들이 생긴 것을 서술합니다. 세번째 강론인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은 비유장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 이야기의 14-17장에서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제자들은 수용함을 다시 서술합니다. 네번째 강론인 18장은 예수가 새로 모으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의 생활지침을 주는 장입니다.
그 다음 19-20장은 다섯 번째 이야기로 메시아의 예루살렘 도성에서의 가르치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이야기로 21-22장에서 예수의 이스라엘에 대한 도전이 나오고, 23-25장이 다섯번째 강론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이며, 마지막으로 26-28장에서 일곱번째 이야기로 예수의 메시야적 예루살렘 입성, 성전 사건, 체포, 재판, 처형, 부활 등이 서술됩니다.
이런 구조로 일곱 이야기들과 다섯 강론들을 섞어서 조직해 놓았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아마 모세 오경에 수적으로 맞추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모형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예수를 제2의 모세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시내산에서 계시된 모세 율법의 완성으로 그리는 저자가 이렇게 다섯 개의 강론들로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한 것은 모세의 오경에 수적으로, 상징적으로 맞춘 것 같습니다.
5-7장의 산상수훈의 시작인 5:1에서 예수가 “산에 올라가” 앉아서 강론하다고 시작합니다. 이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았을 때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 율법의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을 예로 들면서, 예수는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 식으로 강론하여, 자신이 예비/임시 계시인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여 능가하는 종말의 온전한 법을 계시함을 보여 줍니다. 산상수훈은 예수가 모세의 옛 법에 대항해서 완성된 새 법을 선포하는 것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구조는 그 복음서의 신학적인 선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마가는 헬라의 비극 장르의 틀을 사용해서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전개했습니다. 마태는 모세 오경에 맞추기 위해서 5개의 강론들을 중심으로 하고, 그 사이에 이야기들을 배열시켰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 예수의 가르침들과 행위들을 꼭 그들이 일어난 역사적 순서대로 배열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공관복음서들에서도 예수의 같은 가르침이나 행위가 서로 다르게 배열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순서대로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고, 누가복음대로도, 마태복음대로도 아닙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의 신학적인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더욱 깊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문학적으로 조직하였기 때문입니다. 마태나 누가가 제일 먼저 쓰인 마가의 자료를 어떻게 고쳐 쓰기도 하고, 달리 조직 배열시키기도 하는지,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자료를 어떻게 편집하여 쓰는지 등을 살피는 것을 편집비평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편집 비평과 함께 각각의 복음서를 한 편의 정교한 문학작품으로 보고 문학 비평의 방법론 등을 동원하여 분석하는 것도 유익한 성경 읽기의 방법입니다(대개의 평신도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방법들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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