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6)_김세윤교수

2강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26)<2> 마가복음

1) 브레데의 메시아 비밀 이론(2)
이 이론이 불트만에 의해서 아주 영향력있는 이론으로 신학사에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학자들이 브레데의 ‘비밀 명령 이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마가복음에 실제로 나오는 비밀 명령들을 더 자세히 분석해 보니까,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항상 자신의 정체성을 널리 선포하라고 하기도 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5장에 예수께서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나서 그에게 동네에 가서 자신이 어떻게 치유했나를 널리 퍼뜨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비밀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비밀 명령을 내릴 때에도, 제자들에게 비밀 명령을 내릴 때와 악령들에게 내릴 때의 의도가 다릅니다. 악령들에게 내릴 때와 관련해선, 만일 적대 세력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지면 적대세력에 의해서 압도되고 만다는 고대의 사상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악령들에게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은 영적 전쟁을 하는 순간입니다. 제자들이나 예수의 치유의 덕을 입은 사람들에게 비밀 명령을 내릴 때는 그들이 예수의 메시아됨을 밝히려고 할 때에 당시의(정치적/군사적) 메시아 사상에 의해서 자신에 대해 그릇된 해석을 할까봐 비밀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메시아 사상은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당시의 메시아 칭호들(‘메시아’라, ‘다윗의 씨/아들’, ‘하나님의 아들’ 등)로 신앙고백을 하면 비밀 명령을 내리고, 자신을 알쏭달쏭하게 하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8:27-36에 제자들을 대표하여 베드로가 예수에게 “당신은 메시아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가 “이것은 인간으로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계시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고백을 수용하십니다. 그러나 곧 예수는 ‘메시아’라는 호칭을 버리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바꾸어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그 ‘사람의 아들’”로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죽임당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할 그런 ‘메시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종말의 구원자인 ‘메시아’임에는 틀림없으나, 당시의 유대인들이 염원하던 군사적 정복자/정치적 해방자로서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지배민족으로 높이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고, 다니엘 7장에서 예언된, 하나님으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이사야 42-53장의 예언대로 자신을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바쳐 하나님의 종말의 백성을 창조하는 메시아, 즉 다니엘 7:13에 나오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아들’”로서 죽임 당함이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 가르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원래 의도한 메시아적 고백에 반대되는 이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에 반발합니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을 정치적 왕 메시아가 되기를 열망하는 베드로의 요구에서 그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후(막 1:9-11) 정치적 왕노릇하는 메시아/하나님의 아들이 되라고 시험했던 사탄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십니다. 이렇게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이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애쓰신 것입니다.

2) 진정한 의미의 ‘메시아 비밀’ 이론(1)
그러므로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비밀 명령에 대한 이론이 마가가 지어낸 소설적 기법이 아니고 신학적 정당성을 가지고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브레데의 뜻대로가 아니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메시아 비밀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뿐 아니라 사복음서들 전체에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적 예수의 한 진면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 스스로가 자신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당시 유행하던 메시아 칭호들(‘메시아’라, ‘다윗의 씨/아들’, ‘하나님의 아들’ 등)을 피하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종말의 구원자임을 나타내십니다. 이런 간접적 자기 계시에 비밀스러운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하나님을 독특하게 “아빠”라고 부른다든지,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대권을 주장한다든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자임을 간접적으로 은근하게 주장한다든지 하여 자신이 ‘메시아,’ 종말의 구원자임을 나타냅니다. 이 속에 비밀스런 요소가 있습니다.
유대교의 메시아 칭호들로 자신이 불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이렇게 간접적인 방법들로 자신이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고, 오직 들을 귀 있는 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자신을 불렀는데, 이런 것들이 다 비밀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에 있어서 메시아 비밀이 성립됩니다.
예수께서 당시 유대교가 기대한 다윗 왕조의 재건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이 진정한 ‘메시아(종말의 구원자)’적 과업이 아니라고 보고, 도리어 죄문제를 해결하여 죄인들을 하나님 나라에 회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적 생명(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메시아(종말의 구원자)’적 과업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당시 유대교에서 통용되던 메시아 칭호들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피하고, 도리어 자신의 진정한 메시아 사상을 나타내는 다니엘 7장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쓸 수밖에 없었고, 이사야 42-53장의 주의 종의 노래들에 의거하여 자신의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서 바쳐짐을 자신의 메시아적 과업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 유대교의 메시아적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예수의 제자들에게까지도, 예수의 자기 계시는 비밀스러운 것, 곧 알쏭달쏭한 것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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