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방향을 고민하는 당회원들에게 드립니다>2
.....교회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변화에 대한 대응법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대신 믿음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보편적 가치를 심어가는 곳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초월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은 교회의 고유한 역할인 말씀과 성찬을 통해 건져 올릴 수 있는 진리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하며 난해한 세상, 유리파편처럼 깨져버린 개인주의 세상 속에서도 연대의식의 가치를 말할 수 있고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성찬은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성찬을 통해 산산이 깨져버린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가 거하시며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인도하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과 성찬은 세상을 위한 우리의 책임이 있다는 것도 가르칩니다. 권력과 탐욕에 자신을 빼앗기기보다 나눔과 섬김 정결함으로 자신을 채우라고, 남을 심판하기보다 신뢰하라는 요청이 성찬에 담겨 있음을 교회는 기억하고 상기시켜야 합니다. 이런 것이야 말로, 교회 밖에선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시대가 변하니 교회도 함께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변화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다가올 새 시대 속에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거나 어떤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 한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교회는 그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이미 우리 안에 이미 깃들어 있는 것이지, 갑작스레 도래하거나 맘대로 잡아당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이미 우리의 현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사귐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현재가 누군가의 과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미래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시간이 융합되는 집단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과거를 위로하고, 현재를 다독이며, 미래를 축복할 때 비로소 ‘거룩한 사귐의 공동체’인 교회가 됩니다. 교회의 진정한 변화란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의 축복 속에서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공유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교회가 교회된다는 것은 곧 각 개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자 개인에게 있어선 ‘참 사람됨’이고, 교회가 추구하는 최종목표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참사람으로 가는 길은 한 사람의 지혜로운 계획이나 독단적인 카리스마로 일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각자 부여받은 역할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고, 최소한의 것, 그러나 가장 래디컬한 직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고유의 역할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후에라야 참된 교회의 발전을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릅니다.
그렇게 존재의 이유와 역할이 분명하게 보인다면, 개인이건 조직이건 집단이건 각자 부여 받은 교회와 일상의 자리에서 시대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본보기가 교회에서 다양하게 출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창조적인 변화를 기쁨으로 환대하는 잔치를 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앞서 말한 대로 예언자적 감수성을 가져야 이룰 수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이 길은 시대를 거스르는 바보의 길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가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예언자의 믿음과 용기, 그리고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중직자로 세움 받는다는 것은 바로 이 길을 먼저 걸어가 볼 수 있는 거룩한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길을 걷고 있는 동지들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를 기쁘게 축복하며 기도해줘야 합니다.
교회의 과제는 현재 안에서 미래를 실현하고 장차 다가올 삶의 본보기로 사는 것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갈등을 화해로 바꾸고, 문제를 기회로 삼으며, 제도와 틀을 넘어 근본을 바라보며, 불가능에 맞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에나 성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중직자로 부름 받은 우리가 먼저 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을 수행하는 이유가 효율과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빛나고, 성찬의 감동을 나누기 위한 것임을 기억합시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히 사회 개혁가들의 길과 다릅니다. 사회운동가들은 목표가 세워지면 그 목표를 위해 전술과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전략에 따라 오늘의 가족을 내일의 적으로 바꿔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사상적 진보나 보수, 정치적 진보나 보수, 성향적 진보나 보수 같은 가름의 구분선과 상관없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지, 구획과 구분선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교회는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어느 한 쪽 편을 메어꽂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아우르며, 어떤 생각이든 이곳을 지나갈 수 있도록 시원스레 대문을 터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것들과 달리 바보들에게만 있는 그런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바보 같아 보이던 십자가 복음이 해골 그득한 산등성이에 세워진 이래로, 그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것을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증언자의 대열에 우리도 서길 바랍니다.
비본질적인 것은 비본질적인 것에 맡깁시다. 그리고 교회의 고유한 역할이 증대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읍시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교회의 지체로 부름 받은 우리가 서로의 다양성을 기쁨으로 수용하며, 서로를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존중하며, 각자의 직무에 충실한 믿음의 일군들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중앙루터교회의 여러분들이 이런 믿음을 함께 나누며 십자가 복음의 증언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2019.7.14.
중앙루터교회 당회원 워크샵에서
최주훈 목사 #메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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