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사이비 규정의 기준과 사례분석
허호익 목사(대전신대 교수, www.theologia.pe.kr)
1. 기독교 신앙의 다양성과 이단성
기독교 신앙의 원초적인 진술자이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명한 것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는 것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 것이었다. 이러한 복음 선교의 지상 과제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Ecclesia)인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모든 족속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려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왜냐하면 첫 세기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지도 지키지도 못하게 하려는 외적이 박해와 도전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세기의 기독교 신앙이 선교되는 과정에서 부딪힌 외적 장애 요인들은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로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박해이며, 둘째는 희랍 철학의 사상적 비판이고, 셋째는 유대교를 비롯한 이방 타종교들의 종교적 도전이었다. 따라서 선교의 활성화를 막는 복음의 외적 박해와 비판과 도전에 대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신앙의 재진술이 요청되었다. 이들 변증가들이 최초의 신학자들이었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교회 내에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복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신앙 유형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다양성 가운데는 어떤 것은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틀린 것, 나쁜 것, 거짓 된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분부한 것 중의 일부를 왜곡하여 다르게 가르치거나, 분부한 모든 것 중에 일부만 강조하거나 극단화하여 가르치는 자들이 파당을 이루어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회를 혼란과 분열에 빠뜨리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정통을 바로 정립하고 교회의 일치를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파당적인 이단에 대응하는 일이 시급하여진 것이다.
신약성서에도 이미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 내에 신앙의 혼란이 야기된 여러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어떤 사람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딤전, 1:3, 참조 딤전 6:3)
특히 딤전 1:3, 6:3에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다”라는 독립된 동사 헤테로디다스칼레오가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
이처럼 예수께서 분부한 그대로 가르치지 않고 그 일부를 극단적으로 가르치는 이들의 무리를 이단(heires)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스어의 하이레시스(hairesis)의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 ‘고집 또는 선택’을 의미하나 이것이 나중에 ‘당파 또는 종파’의 뜻으로 발전하였고, “정통적 신조에 대해 이설(異說)을 내세워 파당을 짓는 자”를 가리켜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무리를 지어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당을 짓는 자들’이 비난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분열이 교회의 일치와 신자의 형제애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이 당파심을 고집하는 개인은 ‘이단에 속한 자’로 지칭하였다.(딛 3:10).
성경에는 사이비라는 용어는 없지만 이에 해당하는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 언급들이 등장한다. 예수는 생전에 “그 때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1-22) 경고하였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 또는 ‘거짓 그리스도’를 요한문서는 ‘적그리스도(antichristo)라고 표현한다(요일 2:18, 22, 4:3, 요이 7).
성경의 가르침을 모두 종합해 보면 미혹을 받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주이심을 부인하거나, 예수가 분부한 모든 것을 ‘그대로 명확하게’ 가르쳐 지키지 않고 ‘다르고 틀리게 왜곡하여’ 가르치거나 아니면 예수가 분부한 ‘모든 것을 일관성 있게’ 가르쳐야 하는 데 그 중에 일부는 자기들이 선호하는 ‘일부만 극단화 하여’ 가르치는 무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아주 다양한 신앙의 유형이 등장하였고 그 중 어떤 것은 단지 정통교회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때로는 사소한 주제에 대한 신앙의 다양한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여 마녀사냥식의 이단 심문이 벌어지기도 하고, 교권 쟁탈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이단시비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규정된 교리들이 후대에 신학적으로 새롭게 평가되고 복권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에서 성부수난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나 몰트만과 같은 다수의 현대신학자들에 의해 십자가의 삼위일체론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루터와 칼빈도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면서, 인간이 어떻게 이단 사이비를 판별하고 정죄할 수 있느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자가 이단’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상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 미워하는 것과 살인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이단과 정통을 최후심판 때 하나님이 마지막 판단을 하실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신앙의 혼란을 막고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판단 기준은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인 규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교단마다 그 교회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교회법을 제정하여 신앙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무런 상대적인 교회법과 질서가 없는 무법천지의 무정부적 혼란은 더 심각하였다는 사실이 교회사를 통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특정 무리가 단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보편적인 기준도 없이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죄하여온 오류와 횡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편성을 뛸 수 있는 정통과 이단의 명시적인 기준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편타당한 기준을 제시하려면 기독교 신앙의 다양성과 일치성의 문제를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신약성서에는 다르다는 표현이 둘이 나온다. 물론 이 두 단어를 꼭 개념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이를 구분하고자 한다. 첫째는 allos라는 단어인데 영어의 another에 해당한다. 이는 단지 다르다는 뜻으로서 다양성을 의미한다. 둘째는 heteros라는 단어인데 이는 영어의 difference에 해당하는 데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는 뜻으로서 이단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서로 분열된 것은 교리와 제도의 다양성 때문이다. 우선 교회의 제도만 보더라도 가톨릭의 교황제도, 정교회와 성공회 등의 감독제도, 장로교의 대의제도, 하나님의 성회 등의 회중제도, 궤이커 등의 무교회주의가 있다. 이러한 교회의 제도적인 차이를 서로 이단시했던 시대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떠한 교회제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이러한 제도들을 모두 교회사를 통해 생겨난 기독교신앙의 다양성의 표현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회는 끊임없이 신앙의 다양성 가운데서 일치를 추구하여 왔다. 251년 경 박해가 끝난 후 박해기간 동안 배교한 자를 교회가 받아들인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코르넬리우스 감독과 노바티안 장로 사이에 의견 대립이 격해 져서 결국 로마교회가 분열되었다. 감독은 교회는 밀과 가라지가 섞어 있는 죄인의 공동체이며 동시에 의인이 공동체이며 복음은 회개한 죄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총이므로 배교자라 할지라도 회개할 경우 교회가 수용해야 한다는 온건한 입장을 취하였다. 반면에 장로는 거룩한 교회에 죄인이 배교자가 들어 올 수 없다는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고 자신의 임장이 수용되지 않자 로마교회를 분열시키고 추종자들에 의해 감독으로 추대 되었다. 교회 중의 교회인 로마교회가 분열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키프리안은 ?교회일치론?이라는 책을 통해 비본질적인 신학적인 갈등을 이유로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분열은 잠시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배교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조목조목 주장함으로서 많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사도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 이후 다양한 교회의 본질적 일치를 위해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를 교회의 4대 표식으로 가르쳐 온 것이다. 키프리안은 비본질적인 사소한 신앙의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를 이단 사이비로 정죄하여 교회의 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극히 삼가야해야 하면 ‘다양성 가운데에서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회의 덕목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이다.
2. 기독교 신앙의 다양성과 일치의 공동분모: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기독교 신앙의 다양한 내용 중에서 어느 것이 이단적인 것이고 어느 것은 다양성의 표현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구분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신앙에 있어서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매사에 사랑으로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칼빈 역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립적인 것(adiapora)에 대해서는 자유하라고 가르쳤다.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오도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사실 교회사를 통해 보면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이단 사이비와 그 반대로 비본질적인 다양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부각시켜 이단 사이비로 정죄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기본 교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지향해온 정통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많은 교회가 공인하는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기준(sola fidei regular)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기준인 성경을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그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은 요약하는 일이 쉽지 않아 이 일이 신학의 일차적인 과제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의 시릴 (Cyril of Jerusalem)은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을 요약하여 신앙의 기준을 정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어떤 사람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을 읽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에 관한 , 전체의 교리를 단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암기해서 잘 간직 되어져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인간적인 집성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모은 가장 중요한 요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가 여러 세대를 거쳐 오면서 그 때 그때마다 필요한 신앙고백과 신조를 정하였으니 사도신경과 니케야 신조를 비롯한 고대 7개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 정한 신조,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스콧트랜드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 제2 스위스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 16세기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 및 바르멘 신학선언 등 보편적 개혁교회의 신앙 고백 등이다. 이러한 신앙고백들은 그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그 시대의 이단적 주장을 배격하고 기독교신앙의 기본을 바르게 정립하여 다양한 교회들의 본질적 일치의 공동분모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기독교 신앙의 기본교리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성경을 요약한 신조나 신앙고백 이 양자를 종합하여 전자인 성경은 기독교신학과 신앙과 삶의 1차 표준(norma normans)이며, 후자인 여러 정통적인 신조와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정통성을 위한 제2차 표준(norma normata)이라고 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 내용을 가장 널리 공인되는 것은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헌장이다. WCC는 1948년 암스테르담(Amstertam) 창립 선언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협력체”라고 정의하고 일치를 위한 공동분모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고, 성경에 의해 선포되었고 사도적 공동체에 의해 설교된 구원과 인류의 종국적 운명에 대한 신앙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을 사는 신앙”이라고 하였다. 그 후 여러 논의를 거쳐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개정한 헌장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성경이 증거 하는 바대로 주 예수께서 하나님과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협력체이다.”이 정의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대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세계교회가 공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일치의 공동분모가 가장 잘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과 사도신경과 WCC 헌장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 신앙은 크게 다섯 가지 기본 교리로 요약된다.
1)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2)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 성령을 믿습니다.
4)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5) 성경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처음 네 가지는 2000년 교회의 역사 중에 가중 중요하고 오래되고 기본이 되는 신앙기준인 사도신경에 나타나 있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와 신앙의 유일한 규범(sola fidei regular)으로 믿는 신앙은 사도신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사도신경이 형성된 때에는 아직 성경이 정경화 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이 정경화 된 후에도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둔 가톨릭 교회의 전통 때문에 종교개혁 이전까지 성경에 대한 바른 기독교적 신앙관이 확립되지 못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성서가 계시와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므로 ‘오직 성경’이라는 개신교의 원리가 기본 교리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성경과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주요한 대상에 포함된다. 사도신경에는 분명히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I believe holy catholic church)고 고백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명시한 것처럼 성경 66권을 “구원과 행위에 관한 한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고백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기독교 절대적 대상이고 이 신앙의 원초적인 계시가 기록된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텍스트(text)이며, 이 신앙을 전승하고 담지하여 온 교회공동체는 기독교 신앙의 컨텍스트(context)이기 때문이다.
바르트 역시 사도신경을 해설하면서 이 점을 착안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고, 교회는 상대적인 신앙의 대상이라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신경 원문에 “성부, 성자, 성령을 믿습니다(Credo in)라는 표현에는 in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고, “교회를 믿습니다”(Credo)는 표현에는 ‘in’이 빠졌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의 절대적인 내용과 상대적인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을 보다 잘 개념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절대적 신앙 대상 :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령을 믿습니다.
상대적 신앙 대상 : 교회를 믿습니다.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과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상대적인 대상인 것은 성경은 영감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위에 관한 한 절대 무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말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기록된 시대와 기록한 사람의 한계와 오류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말로 인간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는 현대적인 지식과는 모순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역설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어떤 구절을 선호하여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이단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천상의 영적 실체로서 선택받은 무리들의 공동체인 불가시적인 교회는 절대적(絶對的)으로 거룩한 교회이겠지만,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가시적인 교회 공동체는 세속적인 제도로서 죄인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의인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죄인의 공동체이고,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 되는 순간 폐기되어야 하는 한시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가시적인 어떤 특정 교회를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다른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면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바르트가 이처럼 절대적 신앙의 대상과 상대적 신앙의 대상을 구분하였지만, 이 다섯 가지는 본질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임에 틀림없다. 요약하면 기독교 신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경이 증거하는 바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믿고, 성경을 믿고, 교회를 믿는 신앙이다. 그 외의 여러 다양한 교리나 신앙의 주제들은 크게 보아 이 다섯 가지 기본교리에 부수되거나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정통과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도 이 다섯 가지 신앙에 대한 정통적인 기본교리에 근거하여 본질적으로 일치 하느냐 일치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이 다섯 가지 신앙의 본질적이고 정통적인 기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거나 극단화시키는 가르침은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다양한 교파들이 소속해 있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이 다섯 가지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모든 교회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일치하여야 할 공통분모라고 보기 때문이다.
3. 이단과 사이비 규정의 방법론적 기준
물론 성경에는 ‘이단’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만 사이비, 사이비성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이비라는 용어는 사이비 종교(pseudo-religion)에서 유래하여 기독교와는 유사하지만 기독교가 아닌 사이비 기독교(pseudo-christianity)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본 교단 경우 68회 총회(1983)에서 ‘사이비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82차 총회(1997)에 재출된 “이단 사이비 사이비성의 개념”에 관한 보고서에는 이종성, 신성종, 이수영의 견해를 소개한 후 다음과 같이 이단, 사이비, 사이비성을 규정하였다.
“기독교의 기본교리 하나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교리에 영향을 끼쳐 기본교리를 훼손하게 된다면 ‘이단’이라 규정할 수 있고,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단과 다름없이 그 폐해가 매우 큰 경우에 ‘사이비’라 하고, ‘사이비’보다는 덜하지만 교류나 참여금지 등 규제가 필요한 경우에 '사이비성'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사이비성, 사이비, 이단이면서 반사회적이고 윤리적 문제가 있다면 ‘사이비종교’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통교회 안에서도 반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지 않으므로, 이단 사이비의 경우는 성적타락설과 물질구원론 등의 교리에 근거해서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이므로 윤리적인 문제와는 별로로 교리적인 문제로 취급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로 한기총에서는 ‘이단’은 본질적인 교리적인 문제로서, 성경과 역사적 전통교회가 믿는 교리를 변질시키고 바꾼 ‘다른 복음’을 말하며, ‘사이비’는 이단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반사회적 반윤리적 행위를 하는 유사 기독교를 말하며, ‘이단성’은 ‘사이비’란 용어를 이단성의 있음을 나타내는 정도의 측면에서 사용할 겨우 ‘이단성’이란 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단과 사이비를 규정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위의 이단 사이비 사이비성의 규정에는 “기독교의 기본교리”라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기본교리가 무엇인지 규명하여야 한다. 합동측의 경우 ① 성경의 정확무오를 부인, ②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 ③ 이신칭의(以信稱義)에 근거한 구원론을 부정, ④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이적을 부인, 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과 신앙개요를 믿지 않는 경우 이를 이단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본 교단에서는 이러한 기본교리에 대한 명시적이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제76회 총회(1991)에서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이 채택하였는데 그 내용 역시 합통측의 경우처럼 명확하지 않고 포괄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본 교단의 교리의 표준인 신구약 성경, 세계보편교회의 신조인 니케야 콘스탄티노플 신조(AD 381)와 칼케돈 신조(AD 451) 및 세계개혁교회 신앙고백전통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앙고백을 연구의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좀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기본교리의 주제들이 제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본교단의 이단과 사이비와 사이비성의 용어 사용과 그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 한기총에서는 이단과 사이비와 이단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합통 측에서는 이단과 이단성(사이비에 해당)이라는 용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훼손하여 야기된 그 폐해의 정도에 따라 이단과 사이비와 사이성이 규정된다고 하였으나 폐해 정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엄밀한 기준 역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를 제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단 사이비를 규정하기 위한 용어와 방법론적인 기준이 새롭게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첫째로 총회가 이단과 사이비와 사이비성을 구분하였으나 한기총과 합동측을 비롯하여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개념을 통합하여 이단과 이단성, 사이비와 사이비성으로 세분하고, 그리고 가장 하위 개념으로 신학적 문제성과 목회적 문제성과 윤리적 문제성의 기준도 포함하면 보다 정교한 개념의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 보편적인 교회가 정통적으로 공인하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가 명시되어야 한다. 명시된 기본적인 교리가 있어야 이를 기준으로 정통 이단 사이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고백된 내용과 WCC 헌장에 명시된 내용을 종합하여 앞서 설명한 다섯 가지 신앙의 대상, 즉 성부, 성자, 성령, 성경, 교회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로 명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합통측의 다섯 가지 기준보다는 보다 더 전통적인 근거가 명확하여 보편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아의 다양성 가운데의 일치를 지향하는 공통분모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이러한 다섯 가지 기본교리가 명시된다면 이 기준에 따라 이 기본교리 중 하나라도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여 이를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지키며 그러한 이단적 교리를 추종하는 파당을 만들 경우 분명히 이단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가시적 객관적 표식이 될 수 있다.
넷째로 파당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다섯 가지 기본교리 중 하나라도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여 가르칠 경우 ‘이단’이라기 보다는 ‘이단성’을 있는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단과 이단성을 파당적 주장이나 개인적 주장이냐로 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해 보는 것이다.
다섯째로 다섯 가지 기본적 교리 외에 이러한 기본적 교리에 부수되는 여러 정통적인 교리 중 일부를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거나, 전통적인 성례전이나 신앙 관행의 일부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파당을 만들어 불순한 동기로 거짓되게 가르치는 경우 사이비로 규정할 수 있다.
여섯째로 개인적으로 다섯 가지 기본적 교리 외에 이러한 기본적 교리에 부수되는 여러 정통적인 교리 중 일부를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거나, 여러 전통적인 상례전이나 신앙 관행의 일부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불순한 동기로 실제와 다르게 거짓되게 가르치는 경우 사이비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이비는 이러한 거짓된 가르침을 교리화 하여 파당을 이룬 경우이고 사이비성은 이러한 거짓된 가르침을 주장하는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로 기본적인 교리나 이에 부수되는 여러 정통 교리나 신앙 관행에 해당되지 않지만 보편적인 교회에서 아직 검정되지 않은 논쟁적인 신학적 주장을 복음의 진리처럼 일방적으로 가르쳐 물의를 일으킬 경우 ‘신학적 문제성’이 있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권신찬의 ‘사단선재설이나 하와의 교회 예표설’은 이러한 범주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여덟째로 말과 행위가 매우 비윤리적인 것으로 드러나 교회의 화평을 헤치고 물의를 일으킬 경우 이를 ‘윤리적 문제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짜 박사학위 수여나 공금횡령이나 성적 문란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에 관해서는 좀더 세부적인 목회자 윤리지침 등을 마련하여 그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홉째로 말과 행위가 매우 부적절하여 교회의 화평을 헤치고 크게 물의를 일으킬 경우 이를 ‘목회적 문제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단 : 파당을 이루어 기독교신앙의 기본교리(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성경, 교회, ) 중 어느 하나를 부인하거나 현저히 왜곡하여 가르치는 경우.
이단성 : 개인적으로 기독교신앙의 기본교리의 어느 하나를 부인하거나 현저히 왜곡하여 가르치는 경우.
사이비 : 파당을 이루어 기독교신앙의 기본교리에 부수되는 주요한 교리를 부인하거나 현저히 왜곡하여 가르치는 경우.
사이비성 : 개인적으로 기독교신앙의 기본교리에 부수되는 주요한 교리를 부인하거나 현저히 왜곡하여 가르치는 경우.신학적 문제성 : 신학적으로 논쟁이 되는 주장으로 교회의 화평을 헤치고 물의를 일으킨 경우.윤리적 문제성 : 비윤리적 언행으로 교회의 거룩성을 헤치고 물의를 일으킨 경우.목회적 문제성 : 부적절한 언행으로 교회의 화평을 헤치고 물의를 일으킨 경우.
물론 대부분의 이단들은 이단인 동시에 사이비인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신학적 윤리적 목회적 문제들 동시다발적으로 야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명확한 세부 규정이 있어야 ‘기본교리의 훼손과 그 폐해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며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다양성과 일치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이단과 사이비의 대표적인 사례 분석
그 동안 한국교회에는 무수한 이단이 등장하였다. 기독교이단종파연구소에서 1998년 조사한 이단은 모두 90 개이며, 2004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발간 ?이단사이비종합자료 2004?는 한기총과 가맹 교단에서 이단 또는 사이비 등으로 규정한 27곳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요약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이단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다. 탁명환(1986)은 7가지, 정동섭(1992)은 13가지, 김영한(1995)은 9가지, 심창섭(1997)의 16가지, 정행업(1997)은 11가지, 이종성(2000)은 9가지, 탁지원(2004)은 13가지, 그리고 배경식(2005)은 6가지를 제시하였다. 이들의 여러 주장에 공통되는 것들도 많지만 어떤 내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단의 규정하는 절대 기준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내용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단적 가르침의 내용을 나열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단을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을 방법론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한편으로 이단 규정의 기준을 방법론적으로 제시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본교단의 신앙고백서(1986)는 10가지 주제 즉, 성경,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인간, 구원, 교회, 국가, 선교, 종말로 구성 되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종성은 일곱 가지 교리 즉 신관, 그리스도관, 성령관, 성경관, 교회관, 인간관. 종말관을 전적으로 믿는 입장을 정통이라 하고 부분적으로 믿을 때 사이비라 하고 전체를 반대할 때 사이비 이단이라고 정의하였다.
정행업은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이단 사이비를 규정하는 기준을 계시론, 성경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제시하였고, 황승룡 역시 정경,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종말론과 관련하여 이단을 규정하였다.
이형기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원이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전통적인 교단들의 교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탁명환은 정통 기독교의 진리의 기준은 성경관, 신관, 메시야관, 성령론, 속죄관, 구원론, 교회관, 종말론, 계시의 충족성, 복음의 배타성, 윤리성의 문제라고 하였다. 김영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그리스도의 유일성(신성, 인성, 십자가의 대속, 부활), 삼위일체교리, 성령의 내적 증거, 교회의 증언, 이신득의 신앙을 정통 신앙의 기준이라고 하였다.
이 여러 주장에서 가장 공통되는 요소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의 계시론은 성경론에, 구원론은 기독론, 종말론은 신론에 포함될 수 있는 주제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내용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우리 교단에서 그동안 이단으로 규정한 사례들을 분류 검토하려고 한다.
1)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의 사례
(1) 신론적 이단
정통적인 신론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도신경에 근거해 있다. 그런데 이단들의 주요 특징 중에 하나는 교주를 신격하여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주장한다. 교회사적으로 보아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을 다른 신이라고 주장한 로마교회의 말시온 장로의 기독교 영지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탁지원은 그동안 한국교회에는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자처한 자가 2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
-노광공은 신도들로부터 여호와 이레(二來二), 이레 할아버지, 이레신명(神明), 심판주, 창조주, 재림주로 신격화되었다.
-박태선은 1980년 초부터 자신이 이 땅 위에 오신 5798세 된 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1985년부터는 예수나 성령이라는 용어도 제거하고 자파의 교명을 천부교회로 바꾸었다.
-박윤식(대성교회)은 자신이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동안 기도하다가 비밀 말씀을 받았다고 하여 지신을 말씀의 아버지라 주장한다.
(2) 기독론적 이단
정통적인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구세주이시며, 그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의 고난과 대속적 죽음과 육체적 부활을 가르친다. 그런데 스스로를 메시야 구세주로 주장하거나,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 인성을 약화시킨 가현설이나 인성을 강조하고 신성을 약화시킨 양자설은 모두 명백한 이단으로 규정된다. 탁지원은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자칭 메시야 또는 재림주로 자처한 자가 50여명이라고 한다.
-유명화는 예수가 자신에게 친림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말 이 곧 예수의 말씀이라고 방언(放言)하였다.
-백남주는 ‘새주(主)’ 를 자칭하는 여권사 김성도와 손 잡고 새주교회를 설립하였다.
-통일교는 문선명이 재림주인 것으로 가르치면 예수의 이름 대신 참부모(문선명과 그의 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다.
-박윤식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기 때문이라 함으로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기독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초석은 예수께서 영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이 죄만 없으실 뿐이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예수의 인성과 성육신 신앙을 부인하고 있다.
-김기동은 예수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인데 오히려 예수님을 신이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하여 이단자 에비온파처럼 신성을 부정한다.
-이재록(만민중앙교회)은 자신을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깨끗한 피를 가졌기에 죽음이 피해간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예수님과 동일시하였다.
(3) 성령론적 이단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존경과 경배의 대상이다. 따라서 예수가 말씀의 화육(incarnation)이라면 자신의 예수가 보낸다고 약속한 보혜사 성령의 화육이라고 주장한 몬타누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며, 성령의 불가시적 사역을 지나치게 가시적인 사역으로 왜곡하는 것 역시 이단으로 규정된다.
-이삭교회는 교주 유재열을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라고 믿는다. 이는 한국판 몬타누스적 이단의 정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동방의 의인이요 참 구세주요 감람나무라 자처한 박태선은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는 권능이 있어 자신이 안찰하면 죄 때문에 생긴 병이 치유된다고 주장하였다.
-김기동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고 가르치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사실도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라는 말이 천사를 얻고’ 라는 말과 동격이라고 하여 모든 부분에서 천사일뿐이지 성령은 허수아비와 같다고 하여 성령의 존재와 신성을 부정한다. -김계화 씨는 자기가 환자의 환부에 손을 대면 손에서 불이 나가, 살이 찢어져 상처가 나고, 그 자리를 통하여 소위 암 덩어리가 녹아 나오게 하여 이를 끄집어내는 것을 ‘성령수술’ 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그러한 방식으로 치료되는 것도 아니므로 속임수를 사용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상고 해 볼 때 성령을 이런 방식으로 고치신 사레가 없으며 성령의 외과적인 수술을 주장하는 것은 성령론의 현저한 왜곡이다.
-빈야드 운동은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비성경적인 현상을 성령의 은사라라고 주장한다.
-이만희(신천지 교회)는 자신의 책을 ‘성령이 나를 통하여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일곱인으로 봉한 하나님의 책 계시록의 비밀이 개봉되어 만 천하에 공개되는 계시’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보혜사로 암시하고 있다.
(4) 성경론(계시론)적 이단
성경 66권 중 일부를 배제하거나, 성경 외에 직통계시를 주장하거나, 성경 외에 교주 등의 별도의 저술을 성경보다 중요하게 가르치거나, 성경의 일부 구절만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문자적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여 신앙의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는 이단에 해당한다.
-박태선은 자신을 새 하나님이라 주장하고 성경까지 없애라고 명령하였다.
-노광공의 동방교는 성경 외에 ?경화록?이라는 비밀경전을 가르친다.
-통일교는 문성명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원리강론?을 성경과 동일한 진리로 여김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윤식은 자신의 설교는 지리산에서 받은 계시임을 말하고 그 비밀은 주석에도 없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은 성경계시 외에 직통계시를 말하는 것으로 성경계시를 왜곡시키거나 부정한 것이다.
-이장림은 일반 예언가(노스트라다무스, 게이시 등)의 예언을 성경계시한 동등한 수준으로 보고, 어린 종’들을 중심으로 한 40여 명의 아이들이 받은 ‘직통계시’를 성경의 계시보다 상위의 계시로 본다.
-이만희(신천지 교회)는 마태복음 24장과 요한 계시록만이 새 언약이며 신약과 구약은 무효라 주장한다.
-이재록(만민중앙교회)은 한정애를 하나님의 여종이요 대언자라고 주장하고 자신이ㅢ 부흥집회의 말씀도 대언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직통계시하고 주장한다.
(5) 교회론적 이단
전통적인 교회를 부정하고 전도관이나 왕국회관과 같은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거나, 자신들의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절대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교회론에 입각해 볼 때 명확한 이단에 해당한다.
-박태선은 ‘기성교회 는 마귀의 전당이니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였다.
-통일교는 교회를 대체하는 공동체로서 ‘왕국회관’을 조직하였다.
-위트니스 리(Witness Lee)는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하며, 기성교회 목사와 예배등 대부분의 제도를 부정한다.
-권신찬은 복음과 종교를 구별하면서 종교는 죽은 것이요 복음은 살리는 것인데, 기성교회는 종교요 자신들만이 복음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정통적인 교회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재록은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의 보좌가 내려 왔고 만민중앙교회 예배시 하늘의 천군천사도 함께 예배하며 새 예루살렘의 열쇠가 만민중앙교회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2) 한국교회의 사이비의 대표적 사례 분석
사이비는 “파당을 이루어 기독교신앙의 기본교리(신론, 기독론, 성령론, 성경론, 교회론)에 부수되는 주요한 교리를 부인하거나 현저히 왜곡하여 가르치는 경우”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부수되는 많은 교리들이 가운데서 한국교회서 이단으로 규정된 주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 구체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원론
정통적인 구원론의 대속적인 죽음과 이신득의에 근거해 있다. 이러한 구원론을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하는 경우는 사이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초석은 십자가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성경에 한 군데도 없다고 말하고 주장하고 구원이란 인간을 억누르고 있는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 함을 입는 것이며,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득의의 신앙을 부인한다.
-권신찬 등의 ‘구원파는 죄사함을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 면서 그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이며,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이는 구원을 영적 각성으로 보는 영지주의의 오류이다.
-이재록은 자신이 하나님의 좌편에서 심판날 성도들을 변호해 주고, 자신과 연결된 사람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인간론
인간론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창조하였다는 정통조적인 인간론을 부정하거나 현저하게 왜곡할 경우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이초석은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영혼을 하나 만 지으셨으며, 그 다음부터 그 영혼은 분리되어 가는 것”이라는 영혼분리설을 주장함으로써 영혼창조설을 취하는 정통개혁주의의 입장에서 벗어나고 있다.
-윗트니스 리(Witness Lee)는 영, 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 인간의 타락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여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다.
3) 시한부 종말론
성서는 이 세계의 종말을 가르치지만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며, 그 시기를 명시하여 가르치는 것을 정죄하였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종말신앙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경우 이므로 이단으로 정죄하기 보다는 그들이 주장한 시한이 종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비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장림은 1997년 7월과 1998년과 2000년 사이를 세계의 종말을 예언하였다.
-이재록은 “하나님께서 내게 재림을 알려 주셨다. ...휴거 될 것을 알려 주셨다.”고 주장한다.
-이재록은 마지막 심판 때에 자기가 심판장 되시는 하나님 좌편에 앉는다고 말한다. 하나님 우편에는 예수님이 앉으시고 자기는 좌편에 앉아 “심판 날에 주님 옆에서 성도들을 위해 변호해 줄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성례론
기독교의 성례나 전통적인 주요한 의식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경우 사이비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문성명의 생일을 성탄절로 지키며, 예수가 제정한 세례와 성찬을 시행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권신찬은 전통교회의 제도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축도 등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김한식은 목사안수를 받기 전까지는 ’선교사 라는 명칭으로 활동 하면서 평신도로서 첨례’(세례)를 집례했다. 김씨의 한사랑선교회에서는 ‘성도는 누구나 침례를 베풀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성례전은 어떠한 형편을 막론하고 평신도가 집례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에 의해서 집례 되어야 한다’는 우리 교단의 입장과 다른 것이다.
5) 신유론
신유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오직 말씀으로 병자를 치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유를 극단화하거나 왜곡하여 성령의 수술이나 생수의 치료등과 같이 기도 이 외에의 특수한 주술적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사이비에 해당한다.
-박태선은 요한복음 4:10에 근거하여 자신이 축복한 생수는 만병통치약으로 믿도록 강요하고 이 생수는 병뿐만 아니라 죄도 사하는 데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김계화는 할렐루야기도원 ‘생수터’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면 병에서 놓임 받고 회개의 영과 복음 전하는 영을 받는다고 한다.·
-김계화는 자기가 환자의 환부에 손을 대면 손에서 불이 나가, 살이 찢어져 상처가 나고, 그 자리를 통하여 소위 암 덩어리가 녹아 나오게 하여 이를 끄집어내는 ‘성령수술’을 시행한다.
-이재록은 ‘어떤 사람들은 (나의) 간증 책만 읽어도 그대로 막 치료 받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 사람들은 ‘사진만 안고 자도 치료받고, 꿈속에 나타나서 내가 안수해도 치료 받는다’고 주장 한다. 또 ‘내가 기도한 손수건만 만져도 치료 된다’고 하였다.
6) 성적 타락론
성적인 모티브에 따라 하와와 사탄이 성행위를 한 것과 인류가 타락했으며 이로서 사탄의 피를 가지게 되었고 구원의 이 피를 바꾸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교리화 하거나 이런 배경을 실제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성적 문란을 자행하는 경우는 분명히 사이비에 해당한다.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가정교회)는 아담의 타락과 인간의 원죄를 성적인 행음으로만 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대신 참부모인 문선명을 중심으로 한 혈통복귀가 인류구원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박윤식(대성교회)은 하화가 뱀과 성관계를 맺어 가인을 낳았으니 사탄(뱀)이 씨앗을 속인 것이라 ‘씨앗 속임’을 주장한다. 타락 후에 월경이 생겼으므로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라 가르친다.
-박태선은 여성을 안찰한다는 명분으로 소위 섹스안찰이라는 성추행을 서슴치 않았다.
7) 물질적 구원론
각종 명분으로 헌금을 강요하거나 헌금의 정도를 구원과 관련시켜 가르치거나 교인들의 헌금을 사업에 투자하고 교회가 직접 경영하여 참여하여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고 그 결과 물질적 풍요를 교인들과 나누는 것을 영적 구원에 상응하는 물질적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는 명백히 사이비에 해당한다. 박태선의 신앙촌이나, 통일교나 구원파의 각종 기업경영은 이런 범주에 속한다. F. 퇴니스가 구분한 것처럼 교회는 이익사회(Gesellschaft)가 아니라 공동사회(Gemeinschaft)이기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할 경우 그 본래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선은 덕소에 오토바이 공장을 설립하면 집집마다 자가용 1대, 피아노 I대, 전축 1대씩을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세 곳에 신앙촌을 세우고 신도들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박태선은 신앙촌의 재품과 더불어 특별생수권과 정기생수권을 구분하고 값을 다르게 매겨 판매하였다.
-통일교는 무수한 사업체를 경영하여 종교단체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1977년 1월에는 통일교 재단과 일화제약에서 100여 억을 탈세하여 간부들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문선명은 미국에 통일교를 종교단체로 설립한 후 여러 사업에 투자하여 많은 소득을 올리고도 납세를 하지 않아 구속이 되어 미국에서 18개월 실형을 받고 교도소 생활을 한 사실도 있다. 이에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미국대법원이 최종심에서 통일교는 종교단체를 빙자한 기업이므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권신찬의 구원파도 세모 등 사업에 교인들의 헌금을 투자하였다. 막대한 이권이 개입되자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5. 기독교 신학의 과제 : 정통신앙의 변증과 정립
종교개혁자 칼빈은 신학의 과제를 건전한 교리가 발 붙일 수 있도록 신앙을 잘 요약하고 사악한 교리를 자세히 비판하는 것으로 보았다.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두 가지로의 설명하였다.
첫째로 “나의 목적은 단지 어떤 기초적인 사실들을 전달함으로 그것에 의해 종교에 열심을 가진 사람들 참된 경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새로운 복음 운동(루터파의 종교개혁)에 대한 탄압을 시도한 ‘사악한 사람들의 격노로 건전한 교리가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변증과 탄원을 위해 당시의 프랑스 왕 프랑수아 폐하에게 “그들의 중상모략에 귀를 기울이시게 되지 않도록 우리를 중상하는 자들의 사악한 계획들을 자세히 개진해 올렸다”고 하였다. 칼빈은 신학을 신앙의 기초적인 사실을 요약을 참된 신앙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것이고 사악한 교리를 막아내고 건전한 교리가 발붙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입장은 카톨릭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하여 모인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 처음으로 신학의 과제와 기능을 세 가지로 공식 정의하였다.
① 계시의 진리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일.
② 교설(敎說)을 조사하여 오설(誤說)을 규명하며 단죄하고 정설을 옹호하는 일.
③ 권위를 가지고 계시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
이 정의를 보면 계시의 진리를 정의하고 오설을 단죄하고 정설을 옹호하는 세 가지로 요약되므로 칼빈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슐라이어마흐 역시 ?신앙론?을 통해 신학을 신앙의 학문으로 규정하고, 이어서 ?신학연구입문?에서는 신학의 분야를 크게 철학적 신학, 역사적 신학, 실천적 신학으로 나누었는 데, 특히 철학적 신학은 변증학과 변론학으로 구분하였다. 변증학은 외부로부터 기독교을 박해하고 도전하고 비판하는 일체의 것에 대한 변증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이고, 변론학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극단화와 왜곡에 대한 변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이라고 하였다.
현대와 와서 에밀 부룬너는 신학사에 나타난 신학의 세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첫째는 교회의 선교 과정에서 교회 안에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과 교회 밖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교를 논박하기 위한 투쟁(Struggle against false doctrine) 과정에서 기독교 신학이 형성되었다. 둘째로 처음 교회는 교리 교육(cathechetical instruction)과 세례 교육(preparation for Baptism)을 위해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요약하여 효과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셋째로 교회가 점차 성정하면서 성서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게 되고 따라서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성서해석(Biblical exegesis)의 방법들이 정교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기독교 신앙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변적 동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의 견해를 모두 종합해 보면 신학은 신자들의 신앙 교육적 동기와 반기독교적인 세력에 대한 신앙 변증적 동기, 이단적인 기독교 세력에 대한 신앙 정립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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