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4일 목요일

세계관적 접근의 강점과 약점 -산더 흐리휸(Sander Griffio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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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ngths and weaknesses of worldview approaches
 
 
산더 흐리휸(Sander Griffioen)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명예교수 Prof. em. Free University, Amsterdam
 
  
 
I. 세계관의 특성 (FIRST AND SECOND CHARACTERISTICS)
 
 
세계관의 첫째 특성은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여지를 남긴 채 본질적인 것에 집중한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본질적인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자연의 힘의 산물이라고 믿는 것과 하나님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믿는 것은 일상 생활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또 사회(또는 어떤 다른 집단)이 개인적 관심보다 우위에 두느냐 마느냐는 것이나, 인간의 정신이 육체적 대사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관은 이런 문제들을 정리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일에 본질적인 문제들을 명료하게 만드는 일을 도와 준다.
 
세계관의 둘째 특성은 목적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 (purpose driven) 이다. 세계관은 행동을 지도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우주 내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밝혀주며, 나아갈 길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우선 순위를 정해준다. 이런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1930년대 초에 쓰여진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특성이 없는 인간(Man without Qualities)의 주인공을 닮게 될 것이다. 건축가인 울리치(Ulrich) 는 온 세상에서 가져온 자재를 가지고 자기 집을 지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겐 무엇을 택해야 할지 기준이 없어 첫 단계조차 해내질 못한다. 무슨 선택을 해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세계관은 무방주의(indifferentism)로 인해 마비되는 일을 극복하는 일을 도와준다. 세계관의 시대가 거대한 사회운동(사회주의, 자유주의, 파시즘, 다양한 기독교운동들)의 전성기와 맞물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그랬다.
 
  
II. 간주곡: 주목할 사항 (INTERMEZZO: WHAT TO LOOK FOR)
 
 
세계관을 위한 조망에는 대략 주목할 두 곳 즉 학문 세계와 사회가 있다. 그 조망은 두 곳 모두 숨겨져 형태와 드러난 형태 두 가지 모습으로 온다.
 
잠시 학문의 세계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세계관은 배경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 (research)를 예로 들어보자. 연구는 하나의 행위로서 무엇이 중요하고 아닌지는 언제나 연구자의 세계관에 의해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자연주의자는 특정 형태의 연구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선택은 완고한 인지학자의 것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세계관은 보통 기성의 관습과 표준적 절차에 심겨져 있다. 소수파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연구들은 흔히 그들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타협적 순응으로 나가는 성향이 있다.
 
사회 속에서는 세계관이 사회운동과 정당과 관련되어 아주 눈에 띄곤 했었다. 앞서 이미 사회주의, 자유주의, 파시즘, 다양한 기독교운동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엔 기술관료와 경영인(technocrats and managers)들이 지도적 역할을 한다. 이런 류의 지도자들은 드러내놓고 세계관이 충돌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숨겨져 있는 세계관의 조망에 주목해야 한다. 내 친구인 에그버트 스쿠만은 기술 속에 숨겨진 세계관을 찾아내는 일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도 좋은 연구가 행해진 바 있는데 예를 들면 손화철의 연구가 있다.
 
세계관의 큰 성과는 대중화된 과학의 영역에서 볼 수 있었으며 지금도 또한 그렇다. 그 첫째 전성기는 언스트 헥켈 (Ernst Haeckel) 세계의 수수께끼( Welträtsel Riddles of the World, 18951899)이었다. 이 책은 아메바로부터 인류(homo spines)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여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준다고 약속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누렸다. 그 책은 철학책으로는 최초로백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2006년에 출판되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Richard Dawkins's The God Delusion )만이 비교될 수 있는 성공이었다. 헥켈은 물론 도킨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어떻게 그토록 명백히 반인간중심적 방향이 본질적으로 그처럼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생각하게 만든다.
 
 
  
III. 셋째 특성: 맹점 1 (THIRD CHARACTERISTIC: BLIND SPOT 1 )
 
 
셋째 특성은 맹점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맹점 1”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철학의 핵심에서 또 다른 맹점인 맹점 2”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셋째 특성을 살펴보자. 세계관은 전형적으로 자기반성적(self-reflective )이지 않다. 여기에 철학과 주된 차이가 있다.철학은 자기 반성을 계발한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강점임을 순간적으로 파악한다. 철학적 반성이 자리를 잡는 곳에는 행동이 정지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것을 잘 파악했다. “양심이 그토록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든다.” 약점은 모종의 순진함(a certain naivety)에 있다. 세계관은 어떤 특권화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이 이러 이러하다고 묘사하는 거침없이 방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계관의 시선은 인간이 세상 속에서 하는 행동이 그와 동시에 어떻게 바로 그 주체의 입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놓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18세기와 19세기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훗날 인간 행동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분류되기 시작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 주제는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 또는 사적 악, 공적 유익Bernard de Mandeville’s ‘The Fable of The Bees: or,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 (1705/1714)과 아담 스미스(Adam Smith) 숨겨진 손” 'hidden hand' (1759/1776) 의 법칙 이후 많은 오늘날의 출판물들에 이어져 왔다. 한 가지 예로 프랑스 철학자 핀킬클라우트(Alain Finkielkraut)1997년에 펴낸 인간의 실종Lost Humanity ( l’Humanité perdue)을 들 수 있다.그러나 이 과정에 큰 변화가 하나 일어났다. 19세기엔 이른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자비로운 질서(benign order )라고 가정해처음엔 낙관적인 분위기이던 것이 시무룩해진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프랑스혁명3부작(Eighteen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 1852)에서 그 새로운 분위기를 잘 포착한바 있다.
 
 
 
 
인간은 그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기뻐하는 대로 만들지는 못한다. 인간은 역사를 자기가 택한 상황 아래서 만들지 못하며 과거로부터전해져 이미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만들 뿐이다. 오래 전에 죽어버린 조상들의 전통이 살아 있는 이들의 두뇌를 악몽처럼 짓누르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계속 늘어나는 죽은 조상의 무게가 만연된 비관론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세속화된 문화는 조상숭배나 기독교적인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에 기댈 수가 없기 때문에 모종의 비관론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런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는 모두 세상 돌아가는 대로 갈 뿐 내가 뭘 하던 무슨 생각을 하던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또 거대한 도피주의를 목도한다. 사람들은 비관론을 피하기 위해 무역사적 삶의 방식(a-historical modes of living)으로 날아든다.” 예를 들면 가능한 성숙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최대한 철없는 사춘기 아이로 남아 있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철학의 주된 사명을 보게 된다. 그것은 자기 반성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거울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우리의 상황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IV. 넷째 특성: 바로미터 기능 (FOURTH CHARACTERISTIC: BAROMETER FUNCTION)
 
 
세계관은 나침반일 뿐 아니라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이 점은 오늘 할 수 있는 훨씬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할수 있는 한껏 설명해보려고 한다.
 
철학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비유를 들어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들이쉬는 것은 앞서 언급한 자기반성의 운동이다. 내쉬는 것은 한 철학적 관점과 거기에 수반된 전제들의 함축을 풀어내고 해설하는 운동이다. 중요한 것은 철학자는 자기 자신에만 아니라 인류의 상황 전반에 설득력 있는 진리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이를 철학의 보편적 의도라고 부르기로 하자.
 
바로 이 점에서 강점과 약점이 함께 한다. 바로 이 보편적 의도가 철학자로 하여금 다른 철학자들이 생각한 바를 정당하게다루는 일을 어렵게, 또는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그들의 철학적 반대자들에 대한 형편 없이 나쁜 해석자로 악명이 높다. 학생이 낸 석사학위 논문 속에서 거의 예외 없이 그들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언급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흔하다. 나는 이를 2의 맹점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세계관의 강점이 있다. 세계관은 철학보다 훨씬 더 관점 지향적(more standpoint-oriented)이다. 그것이 유명해지는 것은 주어진 관점(a given standpoint)으로부터 세계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항상 관점의 근본적 다원주의에 관한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바로 이것이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에 있어 세계관적 접근이 그리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V. 도전 (CHALLENGES)
 
 
모든 세계관적 접근은 두 가지 도전에 봉착한다.
 
(1) 방향: 오늘날 사람들은 주된 방향을 멀티미디어에 의존하려는 위험이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삶을 마주하는 근본적 선택에 대한 의식이 시들해진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내가 자신에게 정립해야 했던 일은 불가능한 일에 대한 인식을일깨우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존엄성을 방어하는 일과 극단적 진화론을 함께 엮을 수 없으며, 인권 옹호를 도교와 조화시킬 수 없다.
 
(2) Robert Musil 의 소설이 그토록 잘 포착한 무방주의가 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힘을 얻고 있다. 바로 이 점은 교육과정에서 세계관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3) 과학의 관습 내부에 숨겨진 세계관의 본질은 저항력을 기르기 위한 영적 분별과 더불어 기도와 금식을 필요로 한다.진실로 이런 일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일어날 수 없다! (17:21)
 
(4) 인간 행위에 미치는 죽은 조상의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무게에 대한 인식: 자기 반성을 격려하는 모든 훌륭한 철학은도움이 된다. 이 점은 특히 성경에 의존하여 그에 의해 형성된 기독교철학의 경우가 그렇다.
 
(5) 세계관 프로그램은 오늘의 다원주의를 대처함과 영을 분별하는 일을 돕는 일에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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