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일 금요일

역사로 본 성시화운동 1.성시(聖市)와 성시화운동이란 무엇인가?

<역사로 본 성시화운동 성시(聖市)와 성시화운동이란 무엇인가?> 김중락

 
영어의 ‘city’란 단어보다 더 번역하기 어려운 말도 없을 것이다. 이 단어는 우리말로 도시’, ‘국가’, ‘’, ‘도성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저서 De civitate Dei(The City of God)를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국()으로 번역하는 것도 이 같은 혼란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은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양의 고대도시 개념 때문이다.
 
고대 서양에서 도시와 국가의 구분은 모호하였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권국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테네나 코린토스 그리고 스파르타 같은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 도시들은 그 자체로 폴리스’(Polis)라 불리는 도시국가였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로마도 조그만 도시국가 로마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인들은 ‘city’라는 용어에 도시와 국가라는 이중적 개념을 부여하고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중세 도시들은 방어를 위해 도시를 두르는 성곽(Wall)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양에서는 주로 도시 그 자체를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물론 동양에서도 고대에는 이 국가를 의미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시는 거룩한 도시인 동시에 거룩한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역대의 미국 정치인들이 선거때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들은 동네(도시)를 미국이라는 국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와 국가는 역사적으로 치환 가능한 용어였다.
 
오늘날은 도시가 하나의 국가인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 한국의 각도시마다 기독교인들이 성시화운동 조직을 만들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성시는 국가보다는 도시를 가리키는 개념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운동도 전국적이고 결국은 성스러운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시화운동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와 국가를 성스럽게 만들자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모든 기독교인들이 협력해야 될 일이 아니던가? 아니면 이 운동이 방향을 바꾸어야 할까? 그 답을 역사에서 먼저 찾아보자.
 
역사는 기독교회가 탄생한 이후로 수많은 성시화운동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중세의 십자군이 세웠던 예루살렘왕국도 성시를 이루고잔 한 노력이다. 그리고 중세의 수많은 도시들도 나름대로의 성시를 지향하였다. 종교개혁시 칼뱅도 제네바를 성시로 만들고자 하였고, 17세기에는 스코틀랜드의 언약파 지도자들과 잉글랜드 청교도 지도자였던 크롬웰도 각각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성스러운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종교적 분파들의 성시화 시도가 있었다.
 
이들 성시화 운동은 모두 실패하였다. 그러면 이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역사적 성시화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보여진다. 먼저, 성시화운동이 기독교권익옹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은 기독교를 세력화하고 이 세력으로 세속정부에 압력을 넣어 기독교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손해보아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 운동에서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로 나타나고, 이익집단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복음의 문은 저절로 닫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운동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는 말씀이 설 자리가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까지의 많은 성시화 운동이 타종교인들의 개종을 강제화 하거나 그들을 제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이나 신앙고백이 다른 이들을 살해하고 박해한 적이 적지 않다. 십자군이 저지른 만행이나 에스파냐의 종교재판등이 대표적이다. 양심을 강제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수백년 동안 기독교 지역이었던 북 아프리카에 7세기 이슬람교가 들어오자 기독교가 뿌리조차 사라진 것은 강제화된 신앙이 얼마나 헛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성시화 운동이 성공하려면 역사적 성시화운동의 한계를 먼저 살피고 이들로부터 참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 성시화운동은 이전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성시는 피켓으로 무장하고 무리지어 시가행진하거나, 수만명 모여 세력을 과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앞으로 연재를 통해 역사적 성시화 운동을 하나씩 살펴보고 그 한계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이 연재가 현 한국 성시화운동의 방향전환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2011년 대구 성시화운동 특강을 수정보완 한 것임을 밝혀둔다.
 
 
-----
 
김중락 페이스북에서 퍼온 글임을 밝힙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