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서신 왕래 (2)
(2) 바울은 “클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편지를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 파, 베드로 파, 그리고 아마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고전 1:10-17).
(3) 얼마 안 있어 바울은 또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스데바나, 보드나도, 아가이고-고전 16:17)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들도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전하면서,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청하는 고린도 교회의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결혼(고전 7:1-40), 우상에 제사된 고기 먹는 문제(8:1-11:1), 예배 때 여성 복장 문제(11:2-16), 성만찬 시의 분란(11:17-34), 성령의 은사들(12;1-14:40), 부활(15장),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1:1-4).
(4) 바울은 우리가 “고린도전서”라 부르는 편지를 써서 이 문제들에 대해 응답합니다(고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쓴 두번째 편지였다). 에베소에서 주후 55년 초에 쓴 이 편지에서 바울은 성령주의자들에게 그들이 아직도 지상에서 육신과 죄에 노출되어 실존하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키고, 교회의 교제를 북돋우는 삶의 정신과 절도있는 삶을 권면함으로써 그들의 열광주의를 교정하려 하였습니다.
(5) 바울은 주후 55년의 오순절 뒤 곧 고린도를 방문하려고 계획하면서, 우선 디모데에게 이 고린도전서를 쥐어 보냈습니다(고전 16장).
(6) 그러나 그의 편지는 고린도인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디모데는 교회를 잘 타이르고 통합을 이루라는 바울의 지시들을 집행하지 못하고 맙니다.
(7) 그래서 바울은 그 문제들을 스스로 척결하려고 고린도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부 고린도인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큰 슬픔 가운데 에베소로 귀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방문을 “쓰라린 방문”이라 부릅니다(고후 2:1-5).
(8)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큰 환난 속에서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고후 2:4) 강경한 어조의 편지를 써서 디도의 편에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보통 “눈물의 편지” 또는 “혹독한 편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세 번째의 편지였는데, 보통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보나, 어떤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10-13장에 이 편지의 일부가 남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9) 에베소에서 바울은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의 외적 위해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고후 1:8).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고린도로부터 뱃길로 돌아오는 디도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싶어 그를 맞으러 드로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디도가 그곳에 나타나지 않자 그가 육로로 오는 것으로 깨닫고 마케도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디도를 만났습니다(고후 2:12).
(10) 디도는 바울의 혹독한 편지가 효과가 있어 고린도인들의 반란이 끝나고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권위에 반대하도록 한 주모자를 정죄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고후 7:6).
(11) 바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린도후서를 써서, (주후 55년에 아마 빌립보에서 쓴 편지로서, 실제로는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쓴 네 번째의 편지였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이 해결된 데 대한 그의 안도함과 고린도인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그를 적대했던 자를 용서해 주도록 권면하였습니다(고후 2:5-11).
바울은 기쁨으로 들뜬 마음으로 고린도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의 고난과 영광을 생생히 그려 표시하고(고후 3-6장), 전에 부탁했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마쳐달라고 상세히 충고하였습니다(고후 8-9장).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거둔 헌금을 가지고 마게도냐의 교회들 대표단과 함께 고린도를 거쳐 가면서, 아가야 교회들의 헌금을 전달할 아가야 교회 대표단을 대동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다시 고린도에 보내 그들의 헌금 사업을 완수하도록 하였습니다.
(12) 그러나 고린도에 또 하나의 위기가 벌어졌습니다. 바울의 헌금 사업이 오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외부에서 고린도에 온 방문객들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을 자랑하며,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파송되었음을 내세우며, 환상과 이적 등 자신들의 영적 체험들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위임받지 못한 가짜 사도라고 고린도인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들의 권위주의적인 행세, 고린도인들로부터 부양받을 권리 주장, 자신들의 놀라운 영적 체험에 대한 과시 등은 원래 세상적 능력의 표징들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던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잘 먹혀 들어갔습니다.
(13) 그래서 바울은 이 “거짓 사도들”의 주장에 맞서기 위해 고린도후서 10-13장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다섯 번째 편지였는데 후에 그의 네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에 부착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바울이 고린도후서 1-9장을 쓰고 난 후 조금 있다가 이 편지를 써서 고린도후서 1-9장에 덧붙여서 하나의 편지로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를 쓰는 데 여러 날 또는 여러 주가 걸렸는데, 바울이 고린도후서 1-9장을 쓰고 난 후, 고린도에 새로운 위기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받아서, 그는 새롭고 대단히 격렬하며 투쟁적인 어조로 고린도후서 10-13장을 썼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온 방문객들을 “다른 예수”를 선포하며, “다른 영”을 가지고 있고, “다른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고후 11:4). 자신도 그들이 내세운 사도의 자격 요건들에 비추어 그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사도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정한 사도의 표징들은 가문이나, 인간들에 의한 외적 위임이나, 심지어 성령의 놀랄 만한 체험도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과정 중에 당하는 고난이라고 설명합니다(고후 11:23, 12:11).
그래서 고린도후서 10-13장에서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세상적인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의 신학”에 맞서 자신의 고난으로 가득찬 사도적 삶을 예로 들면서 “십자가의 신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린도후서는 신약 성경 가운데 가장 개인적이고 감동적인 문서가 되었으며, 모든 교역자들에게 주의 종의 참 모습을 일깨워 주는 귀한 문서가 된 것입니다.
김세윤 교수 |
kcj@kcjlogo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