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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6일 목요일

동성혼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

동성혼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
김기호교수(한동대)

서 론
정치철학자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말과 같이 동성결혼(同性結婚, Same-sex marriage)의 문제는 오늘 날 유대교-기독교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최대의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1) 지난 2015년 6월 미국 대법원이 Obergefell v. Hodges 판결에서 동성혼(同性婚)을 합헌(合憲)으로 결정을 하면서 성(性) 혁명은 역사상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로 간 주해왔으며 복음주의 기독교는 동성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이미 20개국이상이 동성혼을 헌법적 수준에서 지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생각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동성혼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이 동성애(同性愛)에 대한 혐오감정(嫌惡感情) ‘호모포비아’(homophobia)는 정말로 비합리적인 공포심, 적개심, 혐오 감이 혼합되어 있는가?
크리스천들이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 없이 동성애와 동성혼을 정죄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성적 지향성(指向性)’과 ‘성별 정체성(正體性)’ 그리고 동성혼의 권리가 차별적 대우를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동성애 결혼과 이성애(異性愛) 결혼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인가? 혹은 동성 혼을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설정하는 것인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동성애자들의 요구대로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인 지향성이 추가되어 있지 않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다수가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사법계와 국가인권위는 선도적인 역할을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
필자는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 지향성과 행위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과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토대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복음주의적 신학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동성애는 명백한 죄이며 동성혼도 아담과 하와를 위해 창조주가 만든 결혼제도가 아니다. 성경의 결혼관은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이성애에 입각한 일부일처제이다. 이외에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동거, 불륜, 성매매, 수간 등은 모두 혐오스러운 죄에 해당된다고 본다.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보호와 동성결혼의 권리는 정의로운 요구는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을 권리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3)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은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결혼관이기도 하고 성경적인 결혼관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와 동성혼으로 양분된 미국 교계와 각각의 찬반 이유들을 살펴보고 마지막 결론에서 동성혼에 대한 한국교계의 대응원리와 대책을 복음주의적 신학과 목회자의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Ⅰ. 결혼과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견해
(1) 성경적인 결혼제도
동성혼의 문제는 성경의 결혼관을 통해 조명해야 한다. 에밀 브루너가 지적한 대로 결혼과 국가는 창조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결혼에 관한 창세기 1장과 2장의 본문은 남성과 여성의 창조와 이성애에 근거한 결혼제도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 최초의 부부로 일부일처의 원형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창세에 만드신 최초의 제도로써 인류의 타락이전부터 존속해온 유일한 제도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2-24, )
신약성경에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창세기 기록과 동일한 관점으로 결혼제도를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19:4-6)
예수님은 마태복음 본문을 통해 아담과 이브의 창조기사를 사실로 확인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타락하기 전부터 있던 결혼제도를 타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보존해야하는 제도로 풀이해주셨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각자의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가정을 형성해야 한다.
최초의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아담은 흙에서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본래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결혼제도를 통하여 재(再) 연합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단순한 친구관계도 단순한 동거인도 아니며 그들은 오직 ‘한 몸’이라는 표현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신비로운 관계를 이룬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는 것은 부부의 친밀함을 함축한다.
사도 바울은 남녀의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비유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남녀 부부의 하나 됨과 같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2) 결혼제도의 목적
예수님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의 우선적인 목적은 결혼한 부부의 상호간의 사랑과 협조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니라.”(창 2:18)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배필이요 친구요 협조자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장 1항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남자이든지 동시에 한 아내 이상을 가지거나 어떤 여자든지 동시에 한 남편 이상을 가지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결혼제도에서 또 다른 목적은 출산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은 출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출산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의 언약이 취소될 수 없기 때문에 출산은 결혼제도에서 본질적인 목적이 아니라 이차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성경의 가르침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로 창조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성별에 입각한 이성애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제도이고 부부의 정절은 하나님의 뜻이다. 동성혼은 성경의 이성애에 입각한 결혼관과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자연스러운 본성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고 한다. 이제 다음 장에서 필자는 성경의 동성애 본문을 찾아서 동성애에 대한 원래의 의미를 간략하게 탐구하고자 한다.

(3)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평가
1) 구약성경과 동성애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동성애를 직접 언급하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19:1-11, 사사기 19:22-30, 레위기 18:22, 20:13이다. 그 외에는 열왕기 본문과 에스겔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소돔에 대한 평가적 교훈에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 소돔과 고모라
남색(男色)과 항문성교를 의미하는 ‘sodomy’는 구약성경 소돔성의 멸망에서 유래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소돔성은 아브라함의 간청으로 정한 최소한의 기준 ‘의인 열 명’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한 성읍이다. 소돔성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본문은 일관되게 소돔성 사람들의 타락을 기록한다. 창세기 13장에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고 기록했다.
주님은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21)고 하신다. 소돔성의 남자들은 롯의 집에 있는 방문자들과 성관계를 갖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그러나 반세기 전 베일리(Derrick Sherwin Bailey)의 주장과4) 이 베일리의 주장을 토대로 보스웰(Boswell)은 소돔은 동성애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고 동성애가 소돔 멸망의 핵심요인도 아니라고 주장한다.5) 소돔성의 남자들은 단순히 그 여행자들과의 교제를 원했을 뿐이지 동성애의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일리는 히브리어인 ‘야다’(yadah)가 성경에 943번 사용된 것 중에 불과 10회 만이 성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부 성경의 역본에 “we can have sex with them!”으로 표현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다.
서우(Soew)는 구약의 다른 본문들(렘 23:14의 끔찍한 일, 간음, 악행, 거짓말, 겔 16:50의 역겨운 일, detestable things)이 동성애에 대한 심판의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하며 심판의 원인은 끔직하고 역겨운 일들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베일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일단의 학자들은 ‘야다’(yadah)가 성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며,6) 스카조니(Scanzoni)와 모렌코트(Molenkott)는 고대 근동에서 지배의 수단으로 성립된 남성 강간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필자의 견해로는 서우(Soew)가 동성애를 심판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본다. 또한 에스겔서의 ‘역겨운 일’은 레위기의 동성애 금지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도 맞고,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 안에서 폭넓은 문화적 관행이 되었으며 그래서 그 성의 멸망을 피할 수 없게 한 악행의 핵심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 레위기 18장과 20장
레위기 18:22, 20:13은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으로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가증한 죄악으로 명문화 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친(親) 동성애 신학자들은 레위기 본문을 동성애 금지조항으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보스웰은 히브리어 ‘토바’(toevah)를 ‘본래 악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례적(祭禮的)으로 부정한 것을 지칭한다고 보아 레위기 본문은 이방종교의 우상숭배를 금지한 법이라고 주장한다.7) 그러나 보스웰의 주장의 약점은 ‘토바’(toevah)가 우상숭배에 관련된 행위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악한 것을 명백하게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8) 실제로 잠언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용례는 이방종교의 우상숭배와 무관하다.(잠언 3:32, 15:9) 설사 가나안 종교의 우상숭배와 연관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레위기 본문은 동성애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사형에 해당할 만한 죄라는 점을 너무나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 구약성경의 다른 본문들
여호수아 이후의 사사시대에도 동성애와 연관된 참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삿 19장) 소돔 남자들처럼 기브아의 불량배들도 한 노인의 집에 유숙하려고 온 레위인을 요구한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하니”(삿 19:22) 마지 막 부분을 HCBS 번역본은 그들이 동성애 성관계를 요구하였다고 보아 “Bring out the man who came to your house so we can have sex with him!”로 옮기고 있다.
이 밖에도 신명기 23:17을 새 번역에선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남창이 될 수 없습니다.”로 개역성경은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美童, 카데쉬, 동성애자)이 있지 못할지니”로, KJV에서는 “There shall be no whore of the daughters of Israel, nor a sodomite of the sons of Israel.”(신23:17)로 옮기고 있다. 열왕기에서도 남색(男色)은 정죄 받는 큰 죄악이었다. “그 땅에 또 남색 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 상 14:24) 그리고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1-13)

2) 신약성경의 동성애 관련 본문
– 사도 바울의 견해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도 동성애를 큰 죄로 간주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보낸 서신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라고 말한다.
그리고 디모데전서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10)
– 기타 신약성경 유다서, 베드로서
바울의 서신 이외에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함이 심판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그리고 사도 베드로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도덕적 타락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이라고 밝혀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벧후 2:6-10)

3) 동성애자들의 성경의 동성애에 대한 내용 반박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자들은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죄로 간주하는 사도 바울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첫째, 그들은 사도 바울이 ‘동성애 성향’과 ‘동성애 탐닉 자’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완전한 동성애자는 여자와의 ‘올바른 성관계’ 를 처음부터 갖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성 애자들이 동성 배우자와 서로 사랑과 진정한 헌신의 관계에 있다면 바울의 정죄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동성애자에 대한 바울의 정죄는 인격적 본성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보스웰은 이방인들이 자연스러운 유신론적 성향과 성적인 성향을 포기했다는 것에서 바울의 비판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보스웰은 로마서 1:26,27에 서 자연스런 관계는 부도덕함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셋째, 동성애 금지는 시대와 문화에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가령 서우(Seow)는 바울의 비판이 모든 세대에 적용되지 않는 다고 주 장하며, 퍼니쉬(Furnish)는 바울의 전제는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9) 그들은 동성애가 우상숭배와 관련되었을 경우에 한해서만 죄가 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유다는 모두 동성애와 성적인 음란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원인이라고 공통되게 지적한다. 존 스토트는 디모데전서 1:10의 (불법한 죄의 예들) ‘간음하는 자와 남색 하는 자와’(for the sexually immoral and homosexuals)에서 ‘남색 하는 자’로 해당하는 헬라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말라코스’(μαλακός)는 남색의 상대자로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남성을 가리키고 ‘아르세노코이테스’는 동성애 관계에서 적극적인 남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를 가리킨다.10)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의 목록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일반적으로 남성 매춘부와 동성애 제공자로 여겨지는 ‘말라코이’(malakoi)를 포함시킨다. 디모데전서 1장에서는 ‘arsenkoita’와 ‘pornia’를 그 목록에 포함시킨다. 상술한 대로 성경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구절은 동성애를 금지하며 분명하게 죄로 규정한 것을 알 수 있다.
베일리는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의 저자들이 ‘성적 지향성’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성경의 진리를 시대에 따라 제한 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보스웰은 ‘말라코스’가 동성애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동성애를 죄로 지칭하는 성경의 본문이 상대적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그것이 친 동성애적 신학자들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죄의 지향성과 죄의 행동과 결과를 명료하게 구분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desire)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9)고 말씀하였다. 죄의 소원은 죄를 짓는 성향으로 보아도 된다. 동성애를 포함한 죄를 향한 성향(소원)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갖는 특성이다.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그 죄의 성향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동성애적 지향성’을 알지 못했다는 비난은 ‘성경이 동성애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근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존 스토트는 친 동성애적인 성경본문 해석을 단호하게 오류라고 비판한다. 스토트는 “이런 주장이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성경자료를 이런식으로 다룰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 관행을 거부하는 것은 고립되어 있고 분명치 않아서 얼마든지 논리를 뒤집을 수 있는 몇몇 증거본문 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11) 그는 동성애 관행에 대한 성경의 부정적 인식은 창세기의 성욕과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동성애가 소돔과 고모라의 유일한 죄는 아니지만 그것을 포함한 심각한 죄들의 고착화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교훈이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금지는 창세기의 최초의 결혼제도에 연결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과 이성애의 결혼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Ⅱ. 동성혼에 관한 미국교회와 사회적 상황
(1) 미국 교계의 상황
1) 양분된 미국교계
동성애 성향과 동성혼 인정과 투쟁은 현대 사회의 중대한 이슈이다. 한동안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숨겨왔지만 이제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벽장에서 나와서 공공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동성애적 지향성을 차별금지법으로 보호하고, 헌법적 수준에서 동성혼의 합법성을 얻게 되어 더욱 거세게 사회전반에 확대되어가고 있다. 서구사회의 대부분의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자들이 있으며 동성애의 축제는 도시들의 정규행사가 되어버렸다. 동성애가 과거역사의 교회사에 엄격하게 다루어졌다는 것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 황제 저스티니안(Justinian)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교회의 감독 하에 참회를 요구한 온건한 입장이었던 반면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는 동성애자들을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12) 아직까지는 로마 가톨릭은 동성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제까지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개신교는 교단에 따라 동성혼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동성혼을 지지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내홍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교회 재산을 포기하고 탈퇴를 하고 있다. 특별히 미국에서 주요교단과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와 동성혼의 문제에 대해선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가령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미국 연합그리스도교회(UCC)13), 미 연합장로교회(PCUSA)14), 미 성공회15),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16), 미 침례교회(American Baptist)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교회(Disciples of Christ)는 동성애와 동성혼을 지지하는 주요교단들이다.
이에 비해 복음주의 진영은 동성애 성직 임명을 거부하거나 반대하고 있으며 동성혼을 성경과 배치되는 세상의 가치로 보고 허용하지 않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미국의 개신교단들은 가장 큰 교단인 미국의 남침례 교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침례교단들 그리고 하나님의 성회와 같은 오순절교단, 하나님의 교회, 나자렛교단을 포함한 성결계통 교단들 및 복음주의 신학을 가진 독립교단들이 동성혼을 반대하는 진영에 속한다.

2) 동성혼을 지지하는 근거 : 이성과 문화 중심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교단들은 일반적으로 현대사상, 현대과학, 문학, 예술에 개방되어 있으며 그것들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17) 그들은 각기 다른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와 동성혼을 위한 기도, 신학, 예전에서 강력한 유대감을 국내 수준과 국제 수준에서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인정하는 권위의 근거로는 성경, 전통, 이성(理性), 인권이다. 개신교의 주요한 교단들은 이 네 가지 권위적 근원을 통해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고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권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가치 있는 선물이며 성경과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게이(Gay) 신학자들은 이성을 동성애 문제에 대한 권위로 사용한다. 이성(理性)에의 개방성은 두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문화(文化)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의 이성(理性)은 인간의 행동의 패턴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탐구와 인류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 운 통찰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도 심리학자, 사 회학자,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의존한다는 특징이 있다.
둘째,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성경과 전통의 요소에 대한 비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은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그 들의 상황 속에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현대의 과 학과는 양립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는 고대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 으며 현대의 서구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노예제도, 절대군주제도, 여성비하와 같은 문화를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동성애에 대한 진술도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의 일부를 비판하는 것은 성경전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 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율법과 명령이 현대의 문화에 적용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저자들이 문화적 제약성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법과 사회제도로 부터 존중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성애자의 인권과 동성혼의 권리도 법과 사회로부터의 존중 이라는 차원에서 정당한 요구라는 것이다.18)
3) 동성혼을 반대하는 근거 :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반(反) 동성혼의 입장을 가진 복음주의 교단들은 인간의 이성(理性)과 전통을 권위의 근거로 삼는 주류 교단의 의견에 반대한다.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자들에게는 성경이 유일한 권위의 근거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와 문화(文化)를 초월하여 적용되어야 하며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순종해야 한다. 남침례교의 신조는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이고, 성경의 목적은 구원이며, 성경은 오류 없는 진리이다.”라고 진술한다.19) 이처럼 성경에 완전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성(理性)과 문화(文化)를 근거로 삼아 성경을 비판하고 성경의 저자들을 문화에 예속 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2) 교육계와 성적 지향성
미국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2014년 11월에 학교에서 보호되어야 할 권리 항목에 ‘성적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을 추가했고 2015년 5월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교육위원들이 투표한 결과 10대 1로 가결했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위원회가 압도적으로 가결한 이유는 ‘성 정체성’을 보호 하지 않을 우 연방정부가 카운티 교육국에 4,200만 달러의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단체는 LGBT 활동조직으로서 인권캠페인(Human Right Campaign)을 통해서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 법안(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SOGI 법안)을 신용, 교육. 고용, 연방예산, 주택, 법정의 모든 영역에서 ‘성 정체성’을 보호되어야 할 항목으로 추가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성 소수자의 보호라는 측면보다는 새로운 문제들을 생산하고 있다. 가령 성별 정체성에 따르면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졌을 경우에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면 학교의 수학여행 중에 여성 정체성을 가진 생물학적 남성이 여학생들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자는 것도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LGBT활동 단체들은 ‘차별금지 법안’이 보호할 항목에 ‘동성애적 지향성’을 삽입하기를 추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것이 성소수자의 차별을 없애고 성소수자에게도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동성혼 지지자들은 과거의 인종차별이 도덕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하는 것은 부도덕한 짓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활발하게 그들의 의견을 대중화 및 법제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보수적인 종교 단체들은 동성애가 차별금지 조항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동성혼이 법제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예산을 통해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대해 성 정체성을 반영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왜 그 것이 정당한 조치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자연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자연법을 어기는 정책을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러므로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적 특성에 의존하는 ‘성 정체성 차별금지’는 앞으로 종교의 자유, 경제적 자유, 아동복지에 관련된 많은 문제를 수반할 것이 자명하다.

(3) 동성혼 지지자들의 논리 : 동성혼 차별은 인종차별과 같다.
동성혼 지지자들이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인종차별과의 비유’이다. 동성혼 옹호자들은 올해의 대법원의 판결(Obergefell v. Hodges)은 낙태와 관련된 Roe v. Wade처럼 국민적 논쟁을 수반하지 않고 인종 간 결혼 금지를 철폐시킨 판례 Loving v. Virginia처럼 보편적인 도덕성으로 수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동성혼을 반대하는 것은 인 종 차별 주장처럼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차별금지법 조항에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권리’를 추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LGBT는 동성혼의 문제를 인종의 문제와 같은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전통결혼의 신념에 따라 혹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종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동성혼 반대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비도덕적인 사람들이기에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동성혼 합헌판결(Obergefell v. Hodges) 이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전통적인 결혼을 결혼제도의 본질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편협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가령 성적 지향성에 따라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에 비판하는 일반 시민들을 관용이 없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왜곡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결혼 지지자는 근거 없이 동성혼을 반대하고 성적지향성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하고 편협한 사람들인가? 그들은 동성혼에 대한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인가? 전통적인 결혼을 지지자들은 인종차별주의 자처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미국에선 Roe v. Wade 판결이후 미국 법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여성 혐오주의자(anti-woman)로 매도당하거나 구금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에서 합당한 지위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관용의 정신이 동성결혼 반대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가? 정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종교와 양심에 따라 사는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이것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에 의하면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에서 찾는다.20) 그는 유럽 교회의 쇠퇴는 정교분리가 실현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유럽의 기독교는 국가의 권력을 사용해서 종교재판을 했고 억압적인 국가기관으로 전락했다. 국가와 교회 는 분리를 통해 각각 최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4) 동성혼에 대한 반대 논거
1) 동성혼 반대와 인종차별은 동일한 도덕적문제가 아니다.
동성혼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동성혼의 문제는 인종 간 혼인금지의 문제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심리적인 성정체성은 생물학적인 인종과 동일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인 차이에 의한 차별을 정당화한 인종 간 혼인금지 조항은 철폐되는 것이 정당하고 필연적이지만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동성혼의 반대를 인종주의나 인종 간 결혼금지에 비유하는 것은 논리적 역사적 오류에 해당된다. 세계역사에서 인종 간 결혼금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 법안은 일종의 인종계급 카스트제도가 구현된 사회 안에서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남녀 간의 결합으로서의 결혼제도는 인류역사상 처음부터 있었던 규범이며, 위대한 사상가들과 동서양 종교들은 이성애에 입각한 결혼제도를 모두 인정해왔다.
대부분 유신론적 종교는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결혼을 자연적인 것으로 가르쳐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헬라철학, 어거스틴, 아퀴나스에 이르는 기독교 철학,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사상, 로크와 칸트의 근대철학,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같은 사상가들도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연합을 결혼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결혼에 있어서 인종을 고려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최근에 등장한 정치 공동체일 뿐이다. 근대 영국의 식민지들에서만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고 처벌한 것은 분명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한 것이었으며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적인 동기였을 뿐이다.
결혼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구별은 결혼의 핵심이다. 인종이 무엇이든지 남자와 여자는 결혼으로 연합할 수 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프랜시스 벡위드(Francis Beckwith)에 의하면 인종 간 혼인금지 법안은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선례가 없는 것으로 백인의 문화적 주도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지배 계급에 가까운 백인의 인종적 순수 혈통을 보존하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법에서는 합당한 결혼의 필수조건은 인종과는 전혀 관계없이 남성과 여성의 상보성에 의존한다.21)

2) 전통적인 결혼의 보호가 필요하다.
동성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것과 성관계는 결혼을 위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결혼을 약화시킨다. 동성혼은 인류의 오랜 역사동안 가져왔던 전통적인 결혼관을 파괴하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서의 결혼 이해는 자연법에 근거한 것으로 합당하며 성경적인 근거를 갖는다. 그러나 인종 간 결혼금지는 타당하지 않으며 어떤 성경적인 근거도 없다. 인종 간 결혼금지는 대개 사회의 억압을 위한 동기로 작용한 것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전통적인 결혼관은 억압 기제(機制,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가 아니다.
따라서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인종문제처럼 다루는 것은 어떤 역사적, 철학적 근거가 없다. 성적 지향은 결코 인종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 보호를 위한 법안(SOGI)를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성적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이 보호받는 항목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성적 지향성은 도덕적 평가와 연결되어 있다.
성적 지향성은 인종처럼 생물학적으로 분명한 것이 아니라 지나 치 게 애매하다.
성적 지향성은 전통적인 결혼제도를 약화시킨다.
특히 옥스퍼드 대학교의 존 피니스(John Finnis) 교수는 현대의 법체계의 차별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성’이라는 항목을 추가하는 것은 시민들이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의 서구사회에서 동성혼이 헌법적 수준에서 합법성을 갖게 된 것은 동성애자들의 주도면밀한 투쟁과 로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즈에 의하면 사회의 주요제도는 “정치의 기본법이나 기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사상의 자유 , 양심의 자유 , 경쟁적 시장, 생산수단의 사유 등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일부일처제 등은 주요한 사회제도의 예들이 된다.”22)
롤즈가 가족을 사회의 주요 제도로 설정하는 이유는 가족의 중요한 역할 때문이다. 가족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도덕적 정치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롤즈는 가족의 역할에 대해 아주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롤즈의 전기 저서들은 이성으로 구성된 일부일처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사회의 주요제도로 설명한다. “가족제도가 정의롭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그의 선을 귀하게 여김으로서 그들의 사랑을 명백히 표현할 경우 어린이는 그에 대한 그들의 명백한 사랑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23)
그렇지만 롤즈는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에 대해 또는 이성애적 가족이라는 전통적 견해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한다. 롤즈는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출생과 사망은 매우 중요하며, 출생을 통해서만 그 사회에 진입되며, 사망을 통해서만 그 사회에서 탈퇴한다.”고 말한다.24) 그는 일부일처제를 사회의 주요제도로 설정하였고 출생을 통해서만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주장을 통해서 전통적인 결혼관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롤즈는 그의 사상체계 안에서 일부일처제를 일관성 있게 주장하지 못하고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의무가 질서 있는 가족생활과 자녀교육에 일관된다면 동성애자들의 가족형태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25)
지난 2015년 6월 미국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서 가족에 대한 재정의(再定義, 단순히 두 사람간의 결합)는 이미 성(性) 혁명을 통해 무너진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성(性) 혁명을 통해서 이미 출생하는 아이들의 40%는 미혼의 여성에게서 태어나고 있으며 금번 동성혼 판결을 통해서 부친과 모친에게 생물학적 구분이 없다는 것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지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전통적인 결혼을 완전하게 붕괴시킬 것이다.

3) 종교의 자유는 천부적 기본권이다.
필자가 동성혼을 반대하고 차별금지 법안에 ‘동성애적 정체성’ 항목이 추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동성혼 지지법안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종교의 자유’와 ‘연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성혼지지’ 법안과 그에 따른 ‘혐오금지’ 법안의 제정은 결국 전통적인 결혼 문화를 편협한 것으로 보게 할 뿐만이 아니라, 종교행사의 자유, 종교적 신념의 보호,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경제활동의 자유 그리고 아동복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동성혼의 권리보다 종교의 자유가 더 상위의 가치이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동성애와 동성혼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의 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은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과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위임을 받았다.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예배할 자유와 신(神)에 대한 진리를 추구할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롤즈의 유명한 ‘정의의 두 원칙’에 의해서 보장되는 기본 권리에는 정치적 자유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사유재산권과 신체의 자유, 법의 지배라는 명목으로 부당한 체포 및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등이 포함되며,26) 국가의 중요한 책무는 당연히 양심과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우선적인 것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국가는 특정한 종교를 선호할 수 없으며 어떤 종교에 가입하거나 탈퇴한다고 해서 벌금이나 근신을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법은 한 종교에 대한 배교뿐만 아니라, 전혀 종교를 갖지 않는 것까지도 법률상의 죄로 인정하거나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가는 도덕적 종교적 자유를 지지하게 된다.”고 말한다.27)
롤즈는 ‘절차의 중립성’과 ‘목적의 중립성’ 중에서 그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절차적 중립성’을 지지한다.28) 중립성이 의미는 “국가는 어떤 특정한 포괄적 교리를 다른 교리보다 선호하거나 장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들로 하여금 특정한 신관을 수용하도록 하는 어떤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29) 그래서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녀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양심의 자유를 배우고, 배교가 법률상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30)
그렇다면 부모의 종교에 대한 배교마저도 법률상의 죄가 아님을 가르치는 것이 정치적 시민의 교육이라고 한다면 왜 자녀들이 부모의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 결별하고 이성애 결혼을 택할 수 있는 ‘동성혼에 대한 배교’는 생각도 못하게 하는가? 동성혼 지지자들은 차별금지 법안을 통하여 동성혼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적 독재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역시 동성혼의 합헌 결정보다는 오히려 ‘혼인제 폐지’를 통해서 아예 국가가 혼인제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31) 정부는 혼인문제를 사적인 영역에 남겨두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샌델은 동성혼이 개인의 자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혼이라는 결혼의 형식이 공동체의 인정과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성애의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되지 않아야 할 권리로 일단 규정하고 나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22
미국의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국의 논리를 좀 더 확대해 적용해본다면 성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논리는 성정체성에 따라 학교의 수학여행 기간 중에 생물학적 특징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방을 쓸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성정체성이 차별 금지조항에 들어가면 그 가치는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독재 적 지위’를 갖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을 비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가령 영국, 캐나다, 미국 등에서 동성결혼 주례를 거부한 목회자들에게 구금 형벌과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동성애 지향성과 동성혼의 지위가 독재적이라는 것을 말 해준다.

Ⅲ. 동성혼에 대한 교회의 자세
(1) 기독교적 인간관은 타락한 본성을 전제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선한 본성과 타락한 본성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펠라기우스(Pelagius)와 계몽주의 철학은 선한 인성론과 자유의지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성경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원죄에 의해 타락되고 부패되었다. 따라서 타락한 이후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은 도덕적 자연스러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모든 종류의 죄악이 일어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It’s desire is for you, but you must master it.)말씀하셨다. ‘it’s desire‘는 다스림의 대상이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은 살인, 시기, 질투, 분당 등 죄악 된 욕구를 자연스럽게 느낀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의 욕구를 사람들이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가 되게 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다. 이성간 결혼에 대한 대안은 동성혼이 아니라 독신(獨身)과 성적 절제(節制)이다.
그렇다면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 하 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고 말한 직후에 바로 이어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고 했다. 그렇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복음의 능력은 사람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

(2) 동성애치료에 대한 공중보건 정책과 사회적 담론을 형성 해야 한다.
미국 정신의학사전에서 동성애가 정신병 목록에서 제외된 후 이제는 동성애를 자연스러움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어떤 치료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왜곡되고 잘못 된 이성애도 처벌과 치유가 필요한 것처럼 동성애적 성향이 아니라 동성애적 행동을 통해서 잘못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치유와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성(性) 범죄자들에게 주는 전자발찌를 동성애 범죄자들에게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죄의 성향은 이성애(異性愛)와 동성애(同性愛)를 막론하고 모두 적용되는 것이 바로 법의 지배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소아(小兒) 성애와 강간은 처벌의 대상이다. 동성애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는 시도는 사라져야 한다. 모든 동성애자가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는 아니고 모든 에이즈 환자가 반드시 동성애자도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와 에이즈는 분명히 밀접한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4년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에게서 에이즈 환자의 비율이 높게 증가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3)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는 천부적 인권이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고 동성혼을 거부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정부가 만든 권리가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天賦的) 인권에 해당된다. 동성애 지향성 보호법안과 동성혼을 반대할 수 있는 종교적인 자유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판단의 오류 가능성과 인식론적인 불일치로 인하여 관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이고 근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차별금지 조항은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게 한다. 동성혼이 한국에서도 허용되고 동성애 지향성을 보호하는 법안이 등장한다면 천부적(天賦的)인 자연권인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침해되고 종교의 자유는 주일에 교회당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자유’로만 극히 제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배시간에 목회자의 설교도 심지어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4) 동성혼을 반대하는 교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선 돌이키지 않는 동성애와 동성혼 지지자에 대해 성경적인 가르침을 표명해야 한다. 현대 서구교회가 동성애를 용납하는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이성과 문화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가증한 죄로 말한다. 죄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오직 철저히 회개만이 필요하다. 존 스토트 목사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박사의 견해를 인용하며 이를 동조한다. “동성애 결합과 성경적 결혼을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교회가 아니다.”32)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복음주의 교회라면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안수하여 세울 수 없다. 만일 누구든지 성적인 죄로부터 회개하지 않는 다면 비록 성직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리더십의 지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성경은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더 엄격하게 말씀의 기준이 적용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능력으로 회심한 사람이 리더십이 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선포한다. 사람은 새롭게 될 수 있다.

결론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은 성경적인 결혼관에 따라서 살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 온건한 방식을 통하여 동성혼의 문제를 지적하고 성경적인 결혼은 자연법에 의거한 것이기에 전통적인 결혼관을 가진 유교를 비롯한 동조 그룹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도덕(道德)은 정치(政治)보다 앞선다. 한 남성(男性)과 한 여성(女性)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국가의 정책과 법으로 변경할 수 없는 자연법적 도덕성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담론화(談論化) 해야 한다.
(*) 글쓴 이 / 김기호 교수(한동대)

< 참고 문헌 >
1) Kevin Deyoung, What does the Bible really teach about Homosexuality? Wheaton, Crossway, 2015.
2) Duane Olson, issues in Contemporary Christian Thought,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1
3)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 Phillipsburg: 2004
4) 캐시 루디, 섹스 앤 더 처지: 젠더, 동성애, 그리고 기독교 윤리의 변혁, 서울: 한울, 2012
5) 존 스토트,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서울: IVP, 2011
6) 플로랑스 마뉴, 동성애의 역사 서울: 이마고, 2007
7) Martha C.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8) Craig A. Williams, Roman Homosexual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9) Ryan T. Anderson, Truth Overruled: The Future of Marriage and Religious freedom,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2015.
0)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1)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1999
< 미 주 >
1) Martha C.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1999), 200
2) 국가인권위원회 관련법 30조 2항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2002년 7월에 생물학적 요인과 상관없이 심리적 정체성 장애를 인정하고 성전환자의 경우 호적상 성별을 정정하도록 하는 부산지법의 판결도 있었다. 그 후 2002년 12월 한 성전환자가 법적으로 변 경 된 성별을 갖게 된 적도 있었다.
3) John Stott, Same-Sex Partnerships?(Zondervan,1998) 제4장 참조 26
4) Derrick Sherwin Bailey, Homosexuality and the Western Christian Tradition(London:Longmans, Green, 1955)
5) Homosexuality: Not a Sin-Not a Sickness: Toward an evaluation of pro-Gay heological perspec
-tives, 80 & Russ Tate, John Boswell, Christianity, Social Tolerance and Homosexuality: Gray People in Western Europe from the Beginning of Christian Era to the Fourteenth Century, 90-97을 참고
6) 존 스토트,‘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서울: IVP, 2006) 510-512.
7) Boswell, ibid., 103.
8) R. E. Clements,‘Abomination in the Book of proverbs’in Fox, Michael et al(ed.), Texts, Temples, and Traditions: A Tribute to Menahem Haran(Winona Lake: Eisenbrauns, 1996), 211-225.
9) Victor Paul Furnish, “what does the bible say” in Geis, Caught in the Crossfire, pp. 57-66.
10)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26-30. 가톨릭 역본인 예루살렘 성경은 이 단어를“미동과 남색자 catamites and sodomites”로 표현한다.
11) 존 스토트,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517.
12)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133.
13)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는 1972년에 동성애자였던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목 사안수를 허락한 이후, 1980년 남녀 동성애자들을 목사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최초의 대교단 이 되었다. 1991년 UCC 총회는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가 성직자가 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압도적 표수로 결정하였다. 2005년에는 공식적으로 동성혼을 지지한다고 결의하였다. Mike Schuenemeyer,“Marriage Equality”United Church of Christ Web Site, November 4,2009,
http://www.ucc.org/lgbt/issues/marriage-equality/#Marriage_Equality_and_the_Ucc.
14) 대한민국의 선교에 크게 기여했던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는 1999년 레즈비언 제인 스파 (Jane Spahr)를 그 해의‘신앙의 여성’수상자로 지명하였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이 이혼모는 그 교단 을 섬기는 첫 번째 공공연한 동성애자이었다. 그리고 2015년 현재 미합중국장로교회는 동성혼을 지지하고 그에 반대하는 교회들은 교단을 떠나가고 있다.
15) 2003년 6월 7일 미국 성공회는 주교 관구를 둘로 나누어서 뉴햄프셔의 교구에 공공연한 동성애자 인 진 로 빈손(V. Gene Robinson)을 뉴햄프셔 주교로 선출하였다. 13년 전의 결혼 서약을 어기고, 그의 아내와 두 어린 딸을 버린 후에 진 로빈슨은 게이로 등장했고 그는 남자 파트너와 함께 산다. 그를 주교로 임명하기 위해서 미국 성공회 내 두 단체의 표결이 필요했다. 주교단은 62대 45로 찬 성했고 평신도 사제로 구성된 단체는 128대 63으로 찬성을 했다. B.A. Robinson“Religious conflicts: The Episcopal Church, USA and Homosexuality,” Ontario Consultants on Teligious Tolerance, last updated 2007.9.22., http://www.religioustolerance.org/hom_epis.htm.
16) 2009년 미국 루터교(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America)는 676대 338로 동성애자가 성 직자로 사역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동성결혼 역시 지지하였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교회들은 교단을 떠났다. Mark S. Hanson, “churchwide Assembly Updat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2009.8.22. http://elca.org/Who-We-Are/Our-Three-Expressions/Churchwide-Orginization.
Office-of-the-Presi ding-Bishop/Messages-an-statement/090822.aspx.
17) Duane Olson, Issues in Contemporary Christian Thought, 204.
18)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5.
19) Southern Baptist Convention,“The Baptist Faith and Message,”sbcnet, n.d.,
http://sbc.net/bfm/bfm/bfm2000.asp#i.
20)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2005), 477.
21) Francis Beckwith,“Interracial Marriage and Same-Sex Marriage”
22) John Rawls,‘정의론’40. 이탤릭은 필자의 강조사항이다.
23) Ibid.629.
24) Rawls, Political Liberalism, 84-85. 27
25) Ibid., 467. 각주 60을 보라.
26) John Rawls,‘정의론’106.
27) Ibid., 289.
28) Rawls, Political Liberalism , 192-193.
29) Ibid., 193.
30) Ibid., 193.
31)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서울; 김영사, 2010) 354.
32) John Jefferson Davis, Evangelical Ethics, 133
– 성적 지향(性的 指向, Sexual orientation) / 자신이 이끌리는 이성, 동성, 혹은 복수의 성 또는 젠더를 나타낸다. ‘성적 취향’이나 ‘성적 성향’이라는 용어도 종종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때의 끌림은 감정적이거나, 낭만적인, 성적인 끌림일 수도 있고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대다수의 심리학 혹은 정신의학 단체는 성적 지향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었다.(그러나 복음주의 교회와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성적 지향의 분류에는 크게 반대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이성애, 같은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동성애, 두 성 모두 또는 때에 따라 둘 중 한 성에 이끌림을 뜻하는 양성애, 이분법적인 남성과 여성 외에도 모든 성에 이끌릴 수 있음을 뜻하는 범(汎) 성애, 성적 이끌림이 없음을 뜻하는 무(無) 성애 등이 있다. 이러한 분류는 때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마다 느끼는 이끌림이나 행동의 경향 및 강도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이성애는 종종 동성애로 오해받곤 한다. 젠더 퀴어나 간성에게는 동성과 이성의 판단이 모호할 수 있다. 법률 용어로서의 ‘성적 지향’은 처음에는 판례를 통해서 의미가 형성되었다. 동성애, 이성애 또는 양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에서 주로 사용한다.
– 성 정체성(性 正體性, gender identity) / 자신의 젠더에 대한 자각, 자아의식을 말한다. 성별 정체성, 성 주체성, 성 동일성이라고도 하며, 성적 정체성과는 다르다. ‘성 정체성’의 종류는 남성 정체성, 여성 정체성, 젠더퀴어적 정체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성 정체성이 신체성별과 일치하는 경우를 시스젠더, 성 정체성이 신체성별과 반대인 경우를 트랜스젠더, 그리고 시스젠더에도 트랜스젠더에도 속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가진 경우를 젠더퀴어라 한다.
– 성적 정체성(性的 正體性, sexual identity) / 스스로 어떤 사람에게 연애 감정이 생기는지 혹은 성적으로 끌리는지 자신이 판단한 것이다. ‘성적 정체성’은 더 정확히 말해 성적 지향 정체성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의 인정 또는 내재화를 뜻하기도 한다. ‘성적 정체성’과 ‘성적 행동’은 ‘성적 지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나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생각을 가리키는 정체성, 개인의 실제 활동을 가리키는 행동, 동일하거나 반대, 둘 다의 성별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연애적 또는 성적 이끌림 또는 둘 다에게 이끌리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성적 지향과는 구분된다.
기존에 ‘성적 정체성’의 형성은 성 소수자만이 겪는 과정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보다 현대적인 관점은 ‘성적 정체성’의 형성이 더 보편적이라고 보면서 현대의 다른 주류 정체성 형성과 이론의 넓은 영역 내부에 성적 정체성을 넣으려고 시도한다. 출처 / 위키백과 (주) 위의 내용 중 일부는 본지의 취지와 일치 하지 않습니다.(편집자)

퀴어신학(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에 대한 연구보고서

퀴어신학(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에 대한 연구보고서

예장통합 허호익교수


I. 연구 경위

최근 사회적으로나 교계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퀴어신학의 이단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대사회문제(동성애)대책위원회의 청원을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수임하여 퀴어신학의 이단성 여부를 조사하였다.


II. 연구 내용

1. 퀴어신학의 정의

‘퀴어신학’(Queer theology)의 ‘퀴어’(queer)라는 용어는 ‘낯설고 이상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퀴어신학은 1960년대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동성애(게이/레즈비언) 옹호신학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본다. 1980년대 일단의 사람들은 본래 부정적으로 사용되던 ‘퀴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논리에 비판적이었던 기독교 전통신학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터모던주의의 상대주의적 견해에 동조하면서,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당시 세상에 낯선 것이었던 것처럼 퀴어신학 역시 비록 지금은 낯설어 보이지만 기독교 신학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는 신학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독교 내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억압은 없어져야 함을 주장함과 동시에 성소수자 성애(특히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정립을 추구하려 한다.


2. 퀴어신학의 주요 문제점들

퀴어신학은 하나로 체계화되어있지 않고 퀴어신학자들 내부에서도 서로 이견들이 존재하는바, 이 보고서는 퀴어신학에 대한 상세한 신학적 논의를 하기보다 보편적으로 퀴어신학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①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무시하고, 자의적 해석을 피할 수 없다.

퀴어신학자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편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성경은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기에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은 고대 근동 지방의 시대적, 지역적, 종교-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퀴어신학자들은 오히려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소수자들의 견해를 성경적 관점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퀴어신학의 입장에서 성경 66권을 해석한 주석서(The Queer Bible Commentary, 2008)까지 발행하였다. 그들은 성소수자들의 관점에서 발행된 이 주석서가 성적소수자들뿐 아니라 이성애자 기독교인들 역시 편견과 오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전거(典據)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로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몇 가지 성경해석을 살펴보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가부장적인 해석이며, 소돔과 기브아 주민들의 죄는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불친절과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한 성폭력미수이며, 레위기의 제사법이 신약의 시대에 폐기된 것처럼 동성애를 금하는 율법 역시 더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바울의 동성애 금지는 동성애 자체의 금지가 아니라 성인남성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착취적 형태의 동성애 금지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해석은 정당한 근거를 결여하고 있으며,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틀을 넘어선 자의적 해석이다.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경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해석은 원칙적으로 텍스트의 본래 의미를 파악하는 문자적 해석이 우선이며, 이후에 상징적 해석을 비롯한 다른 해석이 더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는 율법들을 시대적 산물로 환원하여 폐기하는 그들의 논리는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상대화하는 위험한 시도이다.


②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한다.

성소수자 성애 옹호론자들은 성소수자적 성애를 선택한 것이 의지적이라기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타고났기 때문에 동성애는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그들의 선택과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비일상적이고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들을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고 주장한다. 퀴어신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퀴어철학의 관점에서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의 구별조차 상대화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렌스젠더’(LGBT) 옹호신학자들은 남성/여성 또는 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이분법적 성정체성을 대체로 수용하는 데 반하여, ‘퀴어’(Q) 신학자들은 이러한 고정된 성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성(性)은 고정적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유동적인 것으로 본다. 신학적으로 그들은 ‘양성/그리스도’(bi/Christ)를 주장하며 예수는 이성애자도, 게이도, 레즈비언도, 트렌스젠더도 될 수 있는 배타적이지 않은 그리스도라는 ‘퀴어 그리스도론’(queer Christology)을 주장한다. 따라서 퀴어신학은 성소수자 옹호신학 중 가장 급진적이며 전복적인 신학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의 성애를 선천적 유전성이라 해석하는 견해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이라는 여러 논문이 발표되고 언론들에 의해 대서특필 되기도 했지만, 동성애의 경향이 후천적인 것이며 의지적 차원이 더욱 중요하다는 반론적 연구들도 많다. 설사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성애가 간접적으로, 미약하게나마 유전적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나 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는 가장 단순한 창조질서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국내외 통계를 볼 때, 에이즈 확산을 남성 동성애 집단이 주도하고 있음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 성애가 의지와 교육을 통해 교정가능하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성애의 선천성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 성(性)의 유동성을 주장하며 성정체성 구분 자체를 부인하며, 정통신학의 왜곡을 가져오는 퀴어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할 뿐 아니라, 사회적, 논리적, 신학적으로도 불합리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③ 퀴어신학은 인본주의적 신학이다.

퀴어신학은 성소수자들을 위한 맞춤형 신학이다. 그들은 성정체성과 젠더의 전통적 체계에 반대함으로써 사회적, 종교적으로 침묵 되어온 목소리들을 재발견하며, 감춰진 관점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시도 이면에는 분명 성소수자들의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열정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것처럼, 진정한 기독교라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하고, 그들에게 연민과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공동체는 성소수자들을 정죄하기보다 사랑과 보살핌을 통해, 그들이 치유되어 진정한 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정신이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의하여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다. 칼뱅의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은 인간의 정의의 잣대로 판단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과 정의가 참 정의의 기준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라”(Let the God be the God)는 개혁신학의 외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가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은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신 기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와 신학은 물론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시대에 따라 낡은 옷을 벗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본질적 진리는 변화될 수 없다. 교회는 세상의 교회(the Church of world), 세속적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 안(in)에 있으나, 세상을 초월하는(above) 하나님의 교회 (the Church of God)이다.

따라서 인본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성경의 기본적 진술과 기독교 정통신학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퀴어신학은 매우 위험한 신학이자, 왜곡된 신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III. 연구결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퀴어신학은 성경의 규범적 권위를 부인하며, 자의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성소수자의 성애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보며 더 나아가 성정체성의 구분마저 부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상대화한다. 더 나아가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기준에 의하여 전통적인 신학의 체계와 가치관을 파괴하는 세속화된 신학이다. 따라서 퀴어신학은 이단성이 매우 높은 신학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교단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퀴어신학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 해야 하고, 신학교에서도 신학도들에게 이 위험성을 교육하여 퀴어신학의 확산을 막아야 하며 퀴어신학을 옹호하는 어떠한 신학적 입장도 용납될 수 없다.


IV. 참고문헌

길원평 외 5인.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서울: 라온누리, 2014.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진실』. 서울: 밝은 생각, 2013.

Tamagne, Florence. 『동성애의 역사』. 서울: 이마고, 2007.

김명숙. “퀴어신학과 관음신학” 종교와 문화, 25집, 2013.

김영계.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비판과 대안” 칼빈논단, 35집, 2015.

김종걸.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이해” 복음과 실천, 40집, 2007.

길원평, 민성길.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고찰” 신앙과 학문, 19호, 2014.

허호익. “동성애에 관한 핵심 쟁점” 장신논단, 38집, 2010.

그 외 다수의 기고문과 기사들

2018년 6월 19일 화요일

도르트 신조(The Canons of Dort A.D. 1619)

도르트 신조(The Canons of Dort A.D. 1619)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적 진리를 결정해 왔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양성의 통일성, 예정론 등의 중요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동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앙에 관한 진리를 보수하며 그 진리를 보존해 온 것이다. 그 노고가 문서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조항 하나 하나를 살필 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매우 겸허하며, 신중해야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진리에 대한 논쟁이 나의 주변에 있다면, 그것이 나의 신앙의 고백의 본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리의 형태로 결정된 신조들이 하나님께서 성자 안에서, 그리고 성령에 의해, 역사 속에서 교회들의 입술을 움직이셨다고 믿는다.
여기서는 특별히 많은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의 작성과정 중에서 많은 논란으로 얼룩진 "예정론"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프랑스를 제외한 전(全)유럽의 교회들이 모여 정립한 "도르트 신조"는 세계적인 칼빈총회의 결정체정체이며, 꽃이라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의 모임의 원인은 비록 알미니안주의의 항변에 대한 반항 변으로서 기독교 교리의 일부분만 핵심 사안으로 다루어졌지만, 그 내용은 복음의 본질이며, 바른 구원관을 정립해 놓은 중요 교리이기도하다.
먼저, 그 신조를 낳은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다음으로 본 신조를 핵심 조항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본 신조와 관련된 제반문제를 논하고 결론짓기로 할 것이다.



1) 도르트회의 이전까지의 화란의 역사적 배경.


① 정치․사회적 배경

지금부터 2000년 전에 겔트족, 게르만족이 살았던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는 400년 정도 지난 뒤에 로마가 위태로워지자 이 땅에서 물러나고, 이곳은 임자 없는 땅이 되고 여기저기 여러 다른 부족들이 옛날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의 왕래가 잦지 않아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치던 프랑크 왕국이 이 땅 네덜란드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프랑크가 여기까지 신경 쓸 형편이 아니어서 네덜란드 지방의 여러 부족들은 사실상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프랑크 왕국을 유럽의 제일 강대국으로 이끌고 이슬람 세력이 서유럽에 뻗는 것을 막은 카알대제 (프랑스어로 샤를르마뉴)가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이 지방에도 자신의 신하나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귀족들을 지배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다가 서기 816년 카알 대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자녀들이 세력다툼을 하는 동안, 네덜란드 각 지방은 왕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 후 프랑크 왕국은 몇 개의 나라로 갈라졌고(프랑스, 도이칠타트 등), 네덜란드도 후에 남부(벨기에)는 프랑스에, 북부는 도이칠란트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나 도이칠란트가 허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1300년대까지 무역과 공업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발전한 네덜란드를 누르고 막대한 세금을 요구하게 되고, 무역까지 간섭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중심 지역이었던 플란더즈 상인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무역국이었던 영국으로 하여금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100년 전쟁, 1337-1453). 이렇게 하여 네덜란드가 영국 편의 입장에 서서 싸웠는데, 프랑스 안에서도 프랑스 왕을 배신하고 영국과 한편을 든 지방이 있었다. 그곳은 부르고뉴 지방이었는데, 부르코뉴는 이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와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1369년 부르고뉴의 필립왕과 플란더즈의 왕위 계승자인 마아가렛 공주가 결혼하여, 플란더즈지방은 부르고뉴와 합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르고뉴 왕족이 네덜란드 지방을 지배하게 되었다.
후에 부르고뉴의 왕 필립 왕이 세상을 떠나자 1477년 부르고뉴의 공주며 왕위 계승자인 마라아가 오스트리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시집을 갔는데, 이로써 부르고뉴는 물론 네덜란드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막시밀리안 12세의 손자 카알 5세(1500-1558)가 황제의 위를 계승하였는데, 당시의 종교개혁의 바람이 책을 많이 읽는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 네덜란드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 동안 네덜란드에 대하여 관용 정책을 폈던 카알 5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므로, 종교재판의 절차를 이용해 신교도들을 처형하였다. 이러다가 나이 들어 쇠약해진 카알 5세는 황제의 위를 에스파니아의 왕으로 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여왕의 남편이면서 아들인 필립 2세(1527-1598)에게 넘겨주었다. 필립 2세는 더욱 악한 정책으로 네덜란드 각 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 중 독립에 눈을 뜬 몇몇 의식 있는 사람들은 그 힘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립 2세는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임시 휴전이 이루어짐으로, 그 전쟁에 동원했던 에스파니아 군대를 네덜란드로 보내, 네덜란드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더욱 그들을 격분시킨 것은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신교를 믿으려는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네덜란드 교회를 더욱 엄격한 카톨릭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1566년 우상파괴폭동 등 독립의 운동이 강화되자, 필립2세는 '지옥의 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알바장군(1567- 1573년 네덜란드 통치)'과 수 천명의 에스파니아 군대를 네덜란드에 보내 무자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포정책에 따라 세 독립 지도자 중 호론과 에그문드는 잡혀 참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사람 오렌지공 윌리암(William of Orange, 1533-1584)은 네덜란드를 빠져나가 1568년 자주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였다(1648년까지 80년간의 독립전쟁). 결국 견디다 못한 카톨릭을 믿는 남부 10주(남부 네덜란드, 現 벨기에)는 무릎을 꿇고(1579년), 홀란드주를 비롯한 북부 7주(州, 독립정부-現, 네덜란드)는 끝까지 전쟁을 계속하였다.
독립전쟁을 이끌던 지도자 윌리암은 1584년 델프트란 곳에서 사망하고, 그의 아들 '모리스'(Maurice, 7주 연합의 최고 행정관이면서 군사 사령관)와 정치가인 올덴바르네 벨트(Jan van Oldenbaneveldt)가 뒤를 이어 독립전쟁을 이끌었다. 이처럼 에스파니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펼치던 네덜란드는 에스나니아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1609년 두 나라는 휴전이 이루어졌다.
1609년 휴전이 체결되자 두 지도자는 의견의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독립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지지하였고, 홀랜드 주(州)를 지배하고 있던 올덴바르네벨트는 지방 자치제를 원하였다. 신학적으로 올덴바르네벨트는 항변파를 지지했고, 모리스는 반항변파를 지지했는데, 두 사람의 의견충돌이 격화되자 올덴바르네벨트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지방 민병대를 소집하자 모리스는 군대를 파견하여 그를 체포했다(도르트회의 직후에 그는 반역죄로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가 체포된 상황에서 역사적인 도르트회의가 소집되었던 것이다.


② 종교적 배경

ⓐ 종교개혁 이전 배경

네덜란드는 프랑크 왕국에 의해 카톨릭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프랑크 왕국은 알프스 북쪽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카톨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랑크 왕국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지만, 잘못된 가르침과 우상 숭배 등의 미신적 의식(儀式)의 숭배로 말미암아 그 내용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1517년 이후의 종교개혁운동이 어느 지역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종교 개혁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교회 내에서 개혁운동을 추진했던 대표적인 기수는 베긴(Beguines)선교회와 '공동생활 형제단'(the Brethren of Common Life)이라는 것이었다. 베긴은 남녀 평신도들로 구성되었으며 검소하고, 경건된 삶을 추구하고 공동생활을 선호하였으며,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데 전력하였다. '공동생활단'도 수도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신비로운 명상의 삶을 가르쳤으며 이의 영향으로 후대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79- 1417)의 명상록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나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보고 학문연구를 강조하였고 그 중 고전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였다. 베젤 간스포르트(Wessel Gansfort)와 에라스무스(Erasmus)같은 위대한 인문주의자들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이러한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교회의 죄를 민첩하게 간파하였고 교회의 타락에 대하여 항의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당시 기독교 인문주의자들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써 로테르담 출신의 에라스무스를 들 수 있는데 그의 교회와 사회에 대한 비평이 그의 '어리석음에 대한 예찬'에 잘 기록되어있다.
또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대한 비평적 견해가 간스포르트와 요한네스 루이스브리크(Johannes Ruysbroeck)에 의해 일찍이 표명되었다. 간스포르트는 성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반드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됨을 주장하였다. 그는 교황의 무오성과 교회회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면죄부에 대해 이의를 표명함으로써 이단으로 정죄를 받게 되었다. 종교 이처럼 개혁의 열기가 있기 이전에 이미 화란에서는 순교가 있었고, 미신적 의식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 종교개혁의 시작

네덜란드 개신교를 이야기하자면, 칼빈주의가 이 나라에 대표적 교파이기는 하지만, 먼저 소개된 것은 루터의 사상이었다. 매우 일찍이 루터의 저작들이 네덜란드에 도입되어 두루 읽혀졌다. 즉 루터의 가르침은 어거스틴 수도사에 의해 가르쳐졌으며, 이미 1523년에 어거스틴파에 속한 두 사람인 헨드릭 부스(Hendrik Voes)와 요한 반 에센(Johan van Essen)이, 그들의 열정적인 열심 때문에 화형 당하였으며 그들은 신앙 때문에 죽은 첫 번째 순교자들이 되었다. 이처럼 로마카톨릭교회의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점차 많은 추종자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개신교 그룹 가운데서 루터의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성찬 배척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성찬배척론자들은 성찬시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재 한다는 주장을 반대하였으며, 다만 성찬은 "거룩한 교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이 성찬 배척론자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코넬리스 호엔(Cornelis Hoen)을 들 수 있으며, 그의 성례관은 스위스 종교 개혁자 쯔빙글리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그는 곧 위협을 받고, 이단자로 정죄 되었으며, 급기야는 1526년에 교수형과 화형을 합친 형벌을 받고 죽음에 넘겨지게 되었다.
이렇게 루터주의와 성찬배척론자들은 로마 교황의 보낸 종교재판관에 의해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계속 선포하기 위하여, 새로운 설교자들은 성밖의 광야에서 계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성례배척론자들의 활동 이후에는, 재침례주의자들이 그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네덜란드에서 종교개혁운동의 중요한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임박한 전천년왕국설을 지지하면서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던 재침례주의자들로서, 신자들간의 평등을 외치고 신자들 간의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면서 초대 기독교로 돌아가려고 시도하였다.
재침례주의자들은 수 십년 동안 많은 네덜란드인의 열정적이며, 광란적이라고 할만큼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과격한 침례주의자들의 아성인 뮌스터(Munster)가 함락되자 그들의 활동은 거의 사라져 갔다.
이렇듯 루터교, 성례배척론자, 그리고 재침례운동이 몰락의 길을 걷자 이제는 칼빈주의가 로마 카톨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융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박해가 가혹하여 칼빈주의자들은 해외에 망명하였으나 칼빈주의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형태의 개신교에 대해서 극심한 박해가 가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칼빈주의 교회(1548-1550)는 국내가 아닌 국외에 세워지게 되었다.
즉 런던, 엠덴(Emden),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ort am Main), 그리고 팔라티네이트에 네덜란드 칼빈주의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폴란드 출신의 귀족이자 위대한 조직가인 요한네스 라스코(Johannes a Lasco)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러나 1553년 메리가 왕위에 등극하자 영국 내의 네덜란드 교회는 대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엠덴이 화란의 새로운 칼빈주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엠덴에서 성경 전권이 1562년에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었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560년 디르키누스(Dyrkinus)에 의해 번역되었으며, 1571년에 총회가 엠덴에서 개최되었을 때, 엠덴총회는 화란 개혁교회의 조직 체계와 예배 의식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였다. 즉 장로교회적 교회정치제도가 채택되었고, 구교에서 볼 수 있었던 위계 계층적 교직제도를 거부하였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주안에서 형제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총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서로 분리 하였지만은, 목사가 다른 직분보다도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총회는 개혁교회의 신조적 선언인 벨기에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를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이 총회는 루터파와 칼빈파 사이의 일치를 도모하려는 과거의 시도에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
그리고 엠덴에서 있었던 또 다른 논쟁거리는 비칼빈주의 교회에 대해 개혁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칼로서, 어떤 사람들은 각인의 양심에 따라 어떤 종파를 선택하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엠덴 총회는 신학적, 교회적인 문제만 다루지 않고, 실제적인 생활에 관한 문제도 역시 취급하였다.
한편 소수이기는 하였으나 칼빈주의자들은 대(對) 에스파니아 전쟁을 주도하였으며, 스페인군을 내쫓은 지역(북부 네덜란드)에서 칼빈주의는 공적인 종교가 되었으며 7주(州)의 독립 정부의 후원과 인가 받게 되었다. 이처럼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독립정부의 호의적 태도에 적지 않게 힘입어 1570년 이후 화란 개혁교회는 성장을 하게 되었고 더욱 그 체계를 견고하게 다져 나갔다.


2) 도르트 신조의 독특성

① 신학적 배경

그러나 1609년 휴전이 성립되기 전, 개혁교회는 신학적 논쟁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다. 문제의 발단은 야콥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제네바에서 예정교리에 '타락 전 선택설'을 첨가했던 베자에게 베웠으며, 158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목사가 된 후, 그는 벨직 신앙고백의 개정작업에 참여한바 있는 유니우스(Francis Junius)의 계승자로 1603년에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 라이덴은 오렌지공 윌리암이 1575년에 세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개혁주의 대학교였다.
교회는 그 대학교의 확고한 정통성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사상가 더크 쿠른헤르트(D. V. zoon Koornheert)는 개혁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예정설'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그의 저서를 검사하라는 암스테르담 시장의 요청을 알미니우스가 받았는데, 오히려 알미니우스가 그 내용이 더 설득적이라고 생각하고 보편적 은총과 구원에 있어서의 의지의 작용을 역설하였다. 그는 선택과, 유기의 작정을 부인하고, 원죄교리를 약화시켰으며,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벨직 신앙고백서의 수정을 주장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타락 전 선택설을 주장하는 동료 교수 프란시스 고마루스(F. Gomarus)와 공개적인 논쟁을 하였는데, 사실 고마루스는 알미니우스에게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람이었으나 최대의 적수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불붙어 가자 그는 정부가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공적으로 논쟁할 것을 청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처럼 알미니우스와 개혁교회와의 논쟁은 1609년 알미니우스가 사망하므로써 잠시 중단되었다. 그로 인해서 알미니우스 신학은 17세기 초엽에 철저히 분석 당했고 그의 주요 저서는 대부분이 출판을 금지 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소시니주의자도 펠라기우스주의자의 관점도 아니었지만, 고백적인 개혁교회 정통신앙과는 달랐다. 즉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총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가졌고 타락 전 예정설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려 한다고 우려했다. 계속해서 그는 기독교 생활에서 믿음과 성결이 중요함을 강조했고 칼빈주의 신학의 몇 가지 요소들이 도덕을 와해시킨다고 우려했다.
그의 저서인 '예정론의 순서와 형태에 관한 윌림암 퍼킨스의 논문에 대한 고찰'(1602년 작품)에서 그는 선택에 관한 퍼킨스의 견해에 비칼빈주의적인 접근방식을 보였다. 그는 믿음에 이르기 위해 특별한, 효력 있는 은총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에 이의를 제기했다. 알미니우스의 죽음은 교회 내에서 분출한 논쟁을 잠시 연기시켰을 뿐이다. 실제로 그의 추종자들은 교회 내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용인 받기 위해 단호하게 싸워나갔다.
그후에 요한 위텐보가르트(John Uytenbogaert)가 이끄는 43명의 알미니우스주의 목사들은 1610년에 희합을 가지고 탄원서, 즉 항변서를 작성했고 자신들의 지위를 보호해 줄 것을 홀란드 정부에 요구했다. 아울러 그들은(당시 화란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벨직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신조가 항변서의 입장을 따르도록 변경해야 한다고 교회에 청원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5가지로 천명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은 세계가 생기기 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며 불변한 목적을 가지시고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를 믿고 이 신앙과 신앙의 순종 안에서 이 은혜를 통하여 마지막까지 견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신자들을 ....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대로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지예정'이란 표현은 피했지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은 그들의 저술 속에 나타나듯이 '예지에 입각한 예정'이다.

b) ....그리스도 예수는 ....자기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구원과 죄의 용서를 성취하셨다. 그러나 ....믿는 사람 이외에는 죄의 이 용서를 실제로 받을 수 없다....

c) 사람은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의 상태에 처하여...구원하는 은혜도 갖지 못했고 또한 자기의 자유의지의 힘도 갖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나며, 이해하는 일과 원하는 일과 뜻하는 일과 ....참으로 선한 것을 올바로 이해하며 생각하며 뜻하며 실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요하니.... 요15장 5절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d) 하나님의 이 은혜는 ....거듭난 사람이라 할 지라도.... 협력하는 은혜 없이는 악의 유혹을 견디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선한 행위와 운동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돌려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은혜가 작용하는 양식에 있어서는 그 은혜를 사람이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니(사도행전 7장)

e) 참된 신앙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그의 생명을 주시는 영생을 받는 사람은 사탄과 죄와 세상과 또 자기 자신들의 육에 대항하여 싸워서 승리를 얻는 충분한 힘을 얻는다. 이것은 언제나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를 통해서 ....요한복음 10:28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태만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생활의 처음 시작을 다시 저버리거나, 이 악한 세상으로 되돌아가거나, ....은혜를 무효로 돌릴 수 있느냐의 가부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설득하여 우리 자신이 그것을 가르칠 수 있기 전에 성서적으로 더 독특하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로 구성된 알미니안 신학은 칼빈주의신학에서 조명해 볼 때, 이것은 펠라기안주의의 재현이다. 알미니우스는 예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덕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준비시키는 은혜 덕에 믿고, 결과적 은혜 덕에 견인케 될 이들이라고 하나님이 예지하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그리고 믿지 않고 견인하지 못할 이들은 심판하시려는 신적 장정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도 알미니우스는(펠라기우스와는 다르게) 구원을 이루는 데는 신적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과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변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추종자들도 위의 작성된 『항론서』제3조와 4조를 통하여 그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점차 사람을 그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절대적 결정권자가 되게끔 하였다.
그렇지만 이 "항변서"를 알미니우스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널리 가르치고자 하며, 이 이론을 구원의 이론으로서 충분하다고 보고서 그 이상으로 높이거나 그 이하로 낮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향으로 후에 도르트회의 전의 몇몇 칼빈주의 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알미니우스와의 논쟁에 휘말리면서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으며 또한 몇몇 도시에서 칼빈주의 자들이 항편파 설교자가 있는 교회에서 탈퇴하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1615년에 일부 목사들은 비밀교회회의를 조직할 것과 국가 주도의 교회에서 탈퇴하는 문제를 놓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617년 윌리암의 아들 왕 모리가 공개적으로 위텐보가르트가 설교자로 있는 하구에서의 궁정교회에서 예배보기를 거절함으로써 반 항변파인 칼빈주의를 찬동하고 나섰을 때에 사회는 완전히 양분되었다. 그래서 홀란드는 정치가인 올덴바르네벨트, 나머지는 모리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618년 8월 29일 마우리스가 올덴바르네벨트를 체포하자 항변파의 원리를 주장하던 여러 지도자들은 네덜란드에서 도피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모리스가 확고한 통제권을 장악하자 국가의회는 작년에 포고했던 칙령을 즉시 시행하여 전국교회회의가 1618년 11월에 도르트에서 열리게 하였던 것이다.

② 도르트 신조의 신학적 가치

우리는 신조의 역사와 가치를 연구하는 과정 속에서 도르트 신조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정신을 잃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도르트 총회처럼 비(非)개혁교회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한 신조의 역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다른 신조들도 나름대로 각 시대에 있어서 철저하게 개혁신앙의 입장을 표명하기는 했어도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인 배경으로 인해서 대외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개혁교회의 신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당시의 총회가 이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또한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도르트 총회에서는 우리가 도르트 신조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개혁신앙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非)개혁신앙을 주장했던 자들은 당시의 지역에서 목회를 할 수 없도록 파면을 하고 또한 국가 위정자들은 이들은 감금하는 체포령을 내리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 도르트 신조의 마지막 선언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도르트 신경은 벨기에 교회에서 논쟁되어 왔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 교리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선언한 것이며, 동시에 얼마 동안 말썽을 일으켰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하여 이를 배격한 것이다. ---이 도르트 신조는 모든 진리와 공의와 은혜를 거스린 채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말로 현혹시키려는 몇몇 사람들의 잘못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이상과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 즉 개혁교회가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배척하는 것을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 더 나아가 종교 회의에서는 개혁교회의 참 신앙고백을 중상 모략하고 거짓 증거를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그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약한 사람들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진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조의 역사는 단순히 신앙의 내용만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곳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신조를 채택하는 정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개혁교회라고 했을 때 개혁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우선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예배와 정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한다고 하는 것은 개혁신앙과 다른 비(非)개혁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 포용하지 않고 반드시 이단으로 정죄하고 또한 이단으로 정죄되면 교회의 교제에서 축출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인 입장까지 표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비(非)개혁 신앙의 무리들에 의해서 교회는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 교회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정신을 도르트 총회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선언문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개혁교회의 신조 채택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표현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이 종교 회의에서 결정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동시에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것이다. --- 위에서 말한 잘못된 사람들의 중상 모략으로부터가 아니요 또한 옛날이나 지금의 가르치는 자가 정직하지 못하게 인용했다든지 또는 전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곡해해서 인용하는 등의 사사로운 표현으로부터도 아니요, 교회들의 공적인 신앙고백, 즉 종교회의의 모든 교회가 다같이 찬성하여 확정지음으로 정통교리로서 선포한 것에서부터 판단해 주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위의 선언문을 보게되면 역사적 개혁파교회라는 것은 어떤 한 개인의 신앙과 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서 초대교회의 신앙과 어거스틴과 칼빈과 웨스트민스터에 이르기까지 신조를 통해서 성경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교회가 참된 역사적 개혁파교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개혁교회에서 채택하는 신조의 채택정신은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조를 확립하며 또한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의 내용들을 소중하게 이어 받고 그 교리적 내용을 세워 가는 정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사도적 신앙과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들과는 상관없이 단지 현재 시대의 요구나 문화적 바람으로 채택하는 신조는 역사적 개혁파의 신앙적 정신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르트 신조에서는 비(非)개혁신앙의 교리적인 입장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인 것이다. 즉 다른 신앙고백서들은 이단의 무리를 전체적으로 또는 큰 주제를 따라서 그 내용을 정죄하고 있는데 도르트 신조에서는 문장 하나 하나, 그리고 단어 하나에 있어서까지 참된 성경의 의미 바르지 못한 성경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취급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는 개혁교회에서 신조를 채택할 때 그 정신이란 대충 타협하고 또한 혼합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고라도 철저하게 성경의 의미를 살피는 정신임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도르트 총회의 참석자들이 항론파가 제시한 내용들을 단어 하나에서까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살펴 들어가는 그 신학적 깊이에 놀랄 수밖에 없다.

③ 도르트 신조 배경 및 진행

네덜란드 칼빈주의자들은 전국 교회회의에서 공정한 심문을 받을 수 없으며 단순히 지역적인 개인 문제가 투쟁을 야기했다는 항변파의 주장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재판절차의 공정성을 보증하고 증명하기 위해 칼빈주의자들은 그 교회회의 정식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럽 전역에 있는 개혁교회들로부터 대표들을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각국 대표단이 구성되어 105인이 참석한 세계적인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파견된 대표위원은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 대표단은 18인의 정치위원과 게더란드, 남 홀란드, 북 홀란드, 절렌드, 위트레히트, 프리슬란드, 오베리셀 그로닝엔, 드렌테, 및 다른 지역 교회회의에서 목사 37인과 장로 19인이 파견되었다. 또한 네덜란드 신학교수 대표단은 요한네스 폴리안더, 프란키스쿠스 고마루스, 안토니우스 티시우스, 아토니우스 왈라에우스 및 시브란두스 루베르투스의 5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국제대표단은 영국(5인), 팔라티네이트(Pfalz, 3인), 헷센(Hessen, 4인), 낫산(Nassan, 3인), 브레멘(Bremen, 3인), 엠덴(Emden, 2인), 독일어 사용권 스위스(취리히 1인, 베른 2인, 바젤 1인, 샤프하우젠 1인), 제네바(2인)에서 파견되었으며, 프랑스와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에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대표단이 오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유감스럽게도 영국과 분리되어 초청 받지 못했다. 제임스 왕은 뒤늦게 스코틀랜드인 한 사람을 대표단에 추가했지만, 그는 월터 발컨컬(Walter Balcanqual)인데, 영국교회 소속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구성된 도로트회의는 칼뱅주의 교회가 이전에 개최해 본 적이 없는 유일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총회적인 성격을 띤 교회회의인 것이다.
이 회의의 진행은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29일까지 6개월간 지속된 회의였다. 6개월간 154회의 공식회의를 가졌으며, 화란의 대표들은 교회문제와 관련하여 추가로 22회의 회합을 가졌다. 모든 경비는 국가에서 책임졌는데 10만 길더(guider) 이상이나 들었다. 회의는 공개로 진행되어 방청객이 많았고, 회의의 회장이나 서기는 모두 철저한 칼빈주의자로 선출되었다. 회의 진행은 1618년 11월 12일 모든 대표자들이 도르트에 도착, 13일부터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교회회의의 기본임무는 항변파의 견해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에서 달아나지 않은 항편파 지도자들은 교회회의에서 자신들의 관점을 밝히도록 소환되었다. 따라서 항론파들이 1618년 12월 6일에 도착하여 논쟁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대변인 시몬 에피스코피우스(Simon Episcopius)를 통해 교회회의의 진행을 연기시키고 대표들을 이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계략을 이용했다. 나중에는 그들이 한달 이상 그들이 거부하면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교회회의의 의장인 요한네스 보겔만(Johannes Bogerman)은 항변파들을 해임하고 그들이 쓴 저서를 근거로 결정 내릴 것을 선언했다.
각양각색의 대표자들 각 자는 알미니우스 교리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변을 작성했고 더 저명한 대표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채택된 도르트 교회의 법령의 최종 형태를 준비했다. 따라서 항변파에 대한 법령, 즉 4개의 조항이 작성되었는데, 이것은 1619년 5월 6일 공식적으로 선언되었다. 항변파의 3조항은 4조항과의 관계에서만 오류가 있기 때문에 교회 법은 교리의 3, 4조항을 하나로 묶었다.
이 법령이 완성됨에 따라 1619년 5월 9일 폐회하고, 당일 외국 대표자는 출국하였다. 그러나 화란인은 1586년이래 전국 교회회의가 소집되지 않은 까닭에 교회의 생활과 활동에 대한 다른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회의의 결과 이후 향변파의 정치적인 지도자 올덴바로네벨트는 참수형을 당하였고, 당시의 정치가요, 법률가요, 알미니안 신학자였던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는 종신형을 살게 되고, 200여명의 알미니안 목사들은 파면 당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개혁교회는 국교가 아니더라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종교였기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 당국은 "참된 종교(칼빈주의 기독교)"를 옹호할 의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참석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개혁교회는 뒤에 도르트 신조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1620년 알레(Alais)의 23차 총회와 1623년 사렌톤(Charenton)의 24차 총회는 돌트 대회의 결정을 모든 목사들에게 주지시켰다.
이와 같이 개혁교회에서 실시되었던 회의를 필립 샤프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도르트 총회는 개혁교회의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준(準) 세계교회의 총회의 성격을 가진 회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르트 총회는 신학자들의 모임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매우 중요한 교리적 표준문서들을 제정하긴 하였으나, 그 참석자들이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신학자들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식이나 경건함에서 사도시대 이후 어떠한 회의보다 뛰어났다". 스위스 교회의 큰 별이었던 브라이팅거(Breiting)은 화란 대표들의 지식과 역량의 풍부함에 놀라서 마치 회의에 늘 성령께서 임재해 계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도 도르트 회의에 열심히 참석했다. 그리고 팔라티네이트의 대표로 참석했던 스쿨테투스(Scultetus)는 자기가 도르트 총회의 대표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회의를 말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지극히 거룩한 총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 카톨릭 역사가들까지도 도르트를 극찬했고, 한 세기가 지난 뒤, 뛰어난 화란의 사학자 캄펜기우스 비트링가(Campegius Vitringa)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많은 지식이 한 곳에 모인 것은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트렌트 회의도 이렇지 못했다"

④ 도르트 신조의 교리적 독특성

이 신조의 내용은 4개의 조항아래 93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는데, 59개항은 반항변파의 입장을 기술한 것이고, 34개항은 항변파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었다.

a) 제 1 조 신적 예정에 관하여(De Divina Praedestinatione)
이 항목은 18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5항>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이 불신앙의 원인과 그 죄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그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사로서 다음과 같다(엡2:8)---"

6항>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다 멸망 받기에 마땅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자비롭고 의로우신 택함과 유기의 작정이 있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대로 사악하고 범죄하여 요동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멸망 가운데 빠지게 하지만, 거룩하고 경건한 영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로 도우시는 것이다.

7항> 선택이라는 것은,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 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일정한 수를 뽑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 분과 교통하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참 믿음을 주시어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엡1:4-6)

9항>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는 것은 그 선행조건이나 원인 등으로서 인간 속에 있는 어떤 예지적인 믿음이나 그 믿음에 대한 순종, 거룩함 또는 그밖에 다른 어떤 착한 성품이나 기질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선택을 받아서 믿음에 이르고 그 믿음에 순종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등의 순서를 갖는 것이다.

10항>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 되는데....

11항> ...택자와 유기자의 수가 감소될 수 없는 것이다.

12항> 구원의 확신에 대한 정도와 방법은 다양할 수 있긴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불변한 택정함의 확신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오묘한 일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난 바 구원받는 자의 확실한 열매를 잘 지켜나감으로 이루어진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과 충성스런 경외심, 죄에 대한 탄식, 그리고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갈증 등이다.

13항> 이 선택을 잘 깨닫고 확신을 갖게 될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며, …이 선택의 교리를 이해할 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킴으로써 나태한 자리에 있지 않도록 하며, 세속적인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지만, 선택받은 자로의 행위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이 있게 된다.

14항>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인한 이 선택의 가르침이 선지자들과 그리스도 자신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서 선포된다. …우리는 이일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북돋우고 위로해 주시기 위하여 일어남을 알 수 있다.

16항> …이 선택된 유기의 가르침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 넣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

17항> …경건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 거룩한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도록 하기 위해 자녀들이 택함받아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창17:7; 행2:39; 고전7:14).

18항> …"네가 감히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5절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불완전하고 비결정적인 상태로 택함을 받았다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예지된 믿음과 회심, 거룩함, 경건함 등의 생활 등을 이미 시작했거나 얼마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고 결정적인 선택은 믿음과 회심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에 끝까지 이르도록 하는 견인(참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과 이 믿음에 순종 그리고 거룩함과 경건함 또한 성도의 견인 등은 …선택의 열매가 아니라 완전히 선택될 사람들에게 보여질 일이며, 이러한 주장은 성경과 모순되는 주장이다(9:11; 행13:48; 엡1:4;요15:16; 롬 11:6; 요일4:10)."
6절 "택함 받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작정에도 불구하고 택함받은 사람들 중의 얼마는 여전히 멸망 받을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그러하다. 이것은 성경의 모순된다(마24:24; 요6:39; 롬 8:30)(택자의 유동성).

b) 제 2 조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구속을 통한 인간
(De morte Christi et hominum peream redemptione)

본 항목은 다음과 같이 9항목을 구성되어 있다.

1항> 하나님은 가장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운 분이시다.
8항> …즉 영원 전부터 구원에 이르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구원토록 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있었다.
9항> …따라서 정한 시간이 이르면 택함 받은 성도는 한 곳에 모이게 될 것이며,…
ⓐ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1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돌아가시도록 세우신 것은 누구를 구원토록 하기 위한 분명한 계획 없이 되어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일 그리스도의 공로로 얻은 구원이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적용된 적이 결코 없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공로의 필연성과 유익성과 그 가치는 그대로 존속할 수 있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성경과 모순된다(요10:15, 27; 사53:10)
5절>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화해로 은혜 계약에 들어감으로써 그 누구도 원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기에 충분한데, 이것은 원죄로 인해 저주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원조의 죄의식에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주장도 성경에 모순(엡2:3)."
6절>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유익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다. …죄사함을 받고 못 받고의 차이는 그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이것은 예외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은혜일 뿐 영생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 속에 역사하는 어떤 특별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를 잘 선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펠라기우스의 오류이다.

c) 제 3, 4 조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께로의 회심과 그 태도
(De hominis corrptione etconbersione ad Deum, ejusque modo)

본 항목은 다음과 같이 17항목으로 구성되었다.

2항> 인간은 타락 한 후에 자녀를 낳았고 타락한 조상에게서 또한 타락한 후손들이 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
4항> 그러나 인간에게는 타락 후에도 자연의 빛과 편광(片光)이 남아있어서 그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의 사물과 선악의 구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지식을 보유하고 있고, 선행과 사회의 질서에 관하여 또 규칙을 지키는 행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가 못되며, 인간은 그것을 자연과 사회의 일에 있어서도 정당하게 쓸 수 없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인간은 본래의 그 광명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아주 더럽혀서 불의한 가운데 그것을 억제하였으므로 이러한 일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
5항> 이 자연의 광명에 비춰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선민인 유대인에게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의 율법을 생각해야 한다. …율법은 죄의 중대성을 밝히며, …이 율법에 의하여 구원의 은혜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6항> 따라서 광명과 율법이 해낼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은 자신의 성령의 역사로 말씀과 화해의 사역을 통하여 실현하신다.
10항> 그리고 복음으로 부름 받은 어떤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적절한 행사에 돌릴 것이 아니고 …때가 차매…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이다.
12항>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사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시되 죽음에서 부활의 새 생명을 얻도록 하신 것은 성경에서 강조하는 중생케 하는 힘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복음을 외침으로나 도덕적 권면으로, 또는 인간적인 수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초자연적이고 가장 능력 있으며 동시에 가장 기쁘고 놀라우며 신비스럽고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듯이 이 중생의 능력은 창조나 죽음에서의 부활 등에 못지 않게 놀라운 것이다.
14항>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자기의 뜻을 따라 받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한 정도의 것으로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영접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믿게 할 능력이나 힘을 제시해 주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 도 주시고…믿게 되는 행위 역시 주신다는 것이다.
15항> …죄와 거짓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의무감도 있을 수 없다.
17항> 무한한 자비와 선하심으로 택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그의 가르침의 길이 있는데, 중생케 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은 복음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중생케 하는 씨앗으로, 또한 영혼의 양식으로 정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사도들과 그들의 뒤를 이은 교사들은 경건하게 하나님의 이 은혜에 관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모든 교만을 낮추도록 인도하였으나 동시에 말씀과 성례전과 훈련의 실시에 있어서 복음의 거룩한 교훈으로 사람들을 보존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에 이르러서도 …은혜는 훈계에 의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고…우리의 의무를 즐겁게 수행하면 할 수 있도록…
ⓐ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4절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실상은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 아니요, 영적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의로운 삶에 굶주리고 목말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모순(엡2:1. 5. 창세기 6:5. 창 8:21)"
6절 " 우리가 처음으로 회개하여 신자라 불리게 된 이 믿음이란 하나님에 의하여 받아들인 자질이나 은사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일 뿐이다. 이 믿음에 따라 얻게 되는 능력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믿음이란 어떤 선물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의 새로운 자질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마음을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주셨다고 선언한다(렘31:33; 겔36:27).
9절 "은혜와 자유의지는 회심하는 데 필요한 부분적인 요소가 되는데, 회심의 과정에서 볼 때 은혜는 자유의지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여 결정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 자유의지를 돕기에 충분하도록 역사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주장은 펠라기우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과 모순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롬9:16; 고전4:7)

d) 제 5 조 성도의 견인(De perseverantia sanctorum)

본 항목은 15항목으로 구성되었다.

4항> …회심한 이후에라도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성령 안에 항상 거하지는 못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 죄에 빠져 육체의 정욕에 유혹되기도 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혹되기도 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게을리 할 때 성도라도 …죄에 빠질 수 있다. …다윗과 베드로…
6항> …전적으로 타락되어 영원한 멸망에 빠지도록 하시지는 않는다
7항> 믿음의 씨를 보존해 주신다. …그들 자신이 구원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역사 하신다…
8항>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거나 실패하지 않는다.…
10항> …만일 하나님의 택한 받은 자들이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과 영원한 영광에 대한 약속을 소유하지 못한 때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이다.…
11항> 심한 유혹으로 믿음과 성도의 견인에 대한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하나님은 성도를 견인토록 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감당케 하시고, …피할 길을 내사…
12항> 그러나 성도를 인내하도록 하신다는 이 확신은 교만한 마음으로 이 세상의 안일함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겸손한 마음과 충성심, 참된 경건함과 모든 시험 중에서의 참음, 그리고 뜨거운 기도와 인내심, 그리고 진리를 고백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6절 성도의 견인이나 구원에 대한 확신은 그 본성을 따져보면 나태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거룩함이나 선한 행동, 또는 그 밖의 다른 경건한 행위를 행하는 데 방해할 뿐이요, 오히려 그러나 확신을 의심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위의 주장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내재하는 성령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예정론"의 계속되는 논의.

① 유기의 원인

알미니안주의는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하나님을 죄의 원인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항론파의 입장은 타락전 선택론자든, 타락후 선택론자든 목소리가 같다. 신조 1조 5항의 표현처럼, 불신앙과 죄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이 불신앙의 원인과 그 죄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항론파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기자'는 예정하시지 않은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그의 의로우신 뜻에 따라서 그 누구도 아담의 타락에 빠져 죄의 상태에 놓임으로 저주를 받게 하지도 않으셨고, 또한 믿음과 회심에 필요한 하나님과 은혜로운 사귐에서 벗어나도록 하지도 않으셨다"(항론파의 잘못된 진술 제1조 8절).
이와 같은 진술에 대하여 신조는 다음과 같이 성경으로 대답한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9:18).
그러나 진술을 마치게 되면, 이중예정에 대한 답은 주지만, '유기의 원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진술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이 진술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엄한 유기에 대한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대답할 수 있다. 이 사람아 네게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5).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롬11:33-36)". (제1조 18항) 따라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성경을 직접 살핌으로써, 유기의 원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출7:3)". "(개구리 재앙때)…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의지)을 완강케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8:15)", "(이 재앙때)…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가 마음이 바로가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8:19)", "(파리 재앙때)…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8:32)" "(독종 재앙때)…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9:12)", "(우박재앙때)…바로가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볼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그와 그 신하가 일반이라(출9:34)", "(메뚜기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에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10:1-2, 20).
이 사실에서 우리는 바로의 마음의 완강케 된 사실에서, 하나님께서 주어로서, 또는 바로가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작정하심에 있어서, 그 대상의 의지를 대상의 뜻과는 반대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자유한 의지를 그대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위 기술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유기의 원인이 되고 마는 '불신앙과 죄'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곧 하나님의 작정하심 안에서 그 '불신앙과 죄'가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기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 불신앙과 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런 죄의 책임이 없다. 유기의 예정과 죄의 작정만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유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유기의 원인을 인간론에서 사려할 때는 '죄와 불신앙'에 있다고 진술할 수 있다(도르트), 그러나 유기의 원인을 궁극적으로 신론에서 사려해야 하는데, 곧, 하나님의 예정(선택과 유기)하심 속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불신앙'이 유기의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선행과 믿음이 예정의 원인이 될 수 없음과 '죄와 불신앙' 그리고 '선행과 믿음'은 드러난다면 열매로서 드러난 것이다.
칼빈이 그의 자필로서 기록한 이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모든 것들이 그의 원함과 질서에서 일어난다 고하여 하나님이 죄의 저자라고 말하는 자는 미련하고 중상하는 일이다. 이는 그들이 인간의 명백한 부패와 하나님의 신비한 심판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②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 논쟁.

알미니안의 항변내용이 칼빈주의 안에서 심판되고 해결되었지만, 모든 조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정확한 일치를 본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제 1 조항에 대해서 즉, 항변파의 예지예정은 모든 칼빈주의자들이 거부하는 내용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이 타락전이냐, 타락후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칼빈주의자들이 합일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참여자들의 '타락후 선택설'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도르트신조의 공식적 입장은 '타락후 선택설'로 종결지어졌다. 그러나 화란의 엄격한 신학교수의 고마루스(F. Gomarus)는 '타락 전 선택설'을 고집하였다. 고마루스 외에도 마코비우스(Maccovius)가 있었다. 그리고 남부 화란, 오베리셀(Oversel), 그리고 프리슬란드에서 온 대표자들은 이 문제를 결정치 말고, 양 파 모두를 만족시키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선호했었다. 곧 도르트회의 '타락전 선택설'을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은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의 진술을 먼저 살펴보자.
타락전 선택설을 지지하던 고마루스는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먼저, 선택에 대해서 "권에 이르는 인간의 예정은(권에 이르기에 충분하고 그 자체가 역시 절대 자유롭고 참되고 은혜로우신 주의 기뻐하심에 따라(살후2:13; 롬8:28-30, 빌2:13) 그의 영광의 찬양을 위해서 온 인류 중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능력 있게 역사하고 있는 영광과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이다."
다음 유기에 대해서 "궁극적 유기는 하나님의 가장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징벌하시는 의에 대한 선포를 위해서 온 인류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은혜나 영광을 주시지 아니하고, 그 같은 자들을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에 다라 죄 가운데 타락하도록 내버려두시고 죄 가운데 있도록 하시며 결국 공으로 그들의 죄악된 의지를 징벌하시기로 결정한 하나님의 결정이다(마11:26; 7:23; 요6:44,65; 10:26; 롬11:7,8; 계20:13; 롬9:18,20-22).
그러나 도르트회의 법령으로 결정된 공식 입장에 제 1 조 7,10,15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항> "선택이라는 것은,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그들의 최초의 상태로부터 타락하여 죄와 파멸의 결과를 낳게 됨에 따라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중보자로 또한 택한 자의 머리와 구원의 기초로서 세우신 그 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일정한 수를 뽑으시는 것이다.… 택함 받은 자들이 그 본성에 있어서는 그밖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거나 더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똑같은 비참한 속에 있었다."
10항>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이 은혜로운 선택의 유일한 원인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을 세우신 것은 인간의 어떤 능력이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범죄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기꺼이 얼마를 뽑아서 자기에게 속한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인데 이는 …"
15항> "모든 인간이 택함받은 것이 아니라, 그 중(타락한 온 인류) 얼마가 택함을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자비로우신 불변하는 사랑에서 제외되어 스스로 파멸에 빠져 구원의 믿음과 회개하는 은총을 받지 못한 채, 그들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여 끝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진술을 정리하여 언급하자면, 타락전 선택설은 선택이 타락의 작정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타락의 작정을 예정의 가치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타락후 선택설은 타락이 선택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들 양 주장의 논증을 간략하게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도표화면 다음과 같다.

타락 후 전택설
타락 후 선택설
1. 창조 전에 창조될(타락될) 온 인류 중 몇몇 사람을 구원하고, 그 나머지 사람을 영원히 심판하심으로써 드러내실 것을 예정.
2. 온 인류(택자와 유기자)를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에 타당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작정, 곧 타락 안에 있게 하려는 작정.
3. 택자들을 위해 중보자를 제공, 그에게 신앙과 견인의 은사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유기된 자들에게는 죄가운데 버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려는 작정
1. 창조 전에 사람을 창조하고 타락의 허용하시려는 작정(허용적 작정).
2. 어떤 이들은 이 부패한 무리로부터 영생에로 선택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있는 그 상태대로 내어 버려 두시는 예정. 따라서 선택과 유기 모두가 타락한 인간성을 전제로 한다.
3. 택자들을 위해 중보자를 제공, 그에게 신앙과 견인의 은사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유기된 자들에게는 죄 가운데 버려두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려는 작정

이들 양 주장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타락후 선택설'의 강점은 이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게 되었지만, 그 중에, 선택이라는 '은혜'와 나머지는 아담 안에서 그 죄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른다는 '공의'가 타락전 선택설보다 더 강하게 논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무 계획 없이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리고는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신 다음에야 선택과 유기를 하셨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지와 죄에 대한 허용의 작정은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예정의 대상에 대하여 타락의 작정에 선행하는 더 깊은 신적 작정이 있는 것이다. 이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는 것은 타락전 예정론이다.
타락전 예정론의 강점은 타락후 예정론의 "은혜와 공의"에 비하여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있다. 전자와 후자가 모두, 모든 유기자는 자기 자신의 죄가 그의 저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하나(인간론), '타락전 선택설'론자는 유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타락에 선행하는 '은밀한 신적 작정'(신론)에 있다고 하는 점에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신학자들이(쯔빙글리, 칼빈, 베자, 피스카토르, 퍼킨스, 호민스(Hommins), 보게르만(Bogerman) 등 때때로 강력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최종 목적은 '타락후 선택론의 은혜와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택자에 대한 은혜와 죄인에 대한 공의'는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 후의 대부분의 교회가 신조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은혜'와 '공의'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타락후 선택설'이 선호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이 희미하게 그 선을 따라가고 있다.

③ 조직신학에 있어서의 예정론의 위치

종교개혁은 바울과 어거스틴에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고백에서 로마카톨릭의 펠라기우스주의에 대립하는 입장을 제시할 능력을 얻었다. 처음에 루터는 쯔빙글리나 칼빈과 같이 예정론을 옹호했다. 비록 재세례파에 반하여 후에는 말씀과 성례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크게 강조했지만, 그는 결코 예정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에는 멜랑히톤도 철저히 루터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1527년 이후로 그는 점차 예정론에서 떠나, 결국에는 공개적으로 '신인협동설'(synergism)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루터 역시 점점 더 사변적 예정론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 숨기우신 하나님보다는 은혜를 부여하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에 집중하였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바리심(이를 그의 표현된 뜻이라고 했다)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래서 예정론에 대한 멜랑히톤의 견해가 점차 변해 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으며,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변증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였다. 예정은 독자적, 신학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그저 이차적인 중요성만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리에 대한 종합적 접근방법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명하고, 하나님에 관한 교리로부터 보다는 사람의 잃어진 상태로부터 예정을 이끌어내는 분석적 접근을 애호하였다.
이렇듯 점차적으로 루터의 초기 입장과 전체 종교개혁의 입장을 희생시켜 나간데 비해서, 개혁파의 입장은 종교개혁의 원리에 충실한 것이었다. 쯔빙글리는 그의 논의를 단순히 인간학적 근거에만이 아니라, 특히 신론적 근거에 두면서, 즉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그 논의를 이끌어내면서 예정론과 관련하여 논의하였다. 이점에서 그들은 로마서 9-11장에서 죄론과 은총론에서 시작하여 선택론에로 나아가고, 에베소서1:3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을 그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도 바울의 예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후에 바울이 선택을 언급하면서 선험적으로 구원의 모든 축복을 선택으로부터 이끌어내었던 것과 같이(롬9:29이하, 엡1:4이하), 개혁신학자들 중에서도 종합적 접근방법이 점차 분석적 접근방법을 대신하게 되었다.
곧 신앙의 생활은 참으로 선택론을 고백케 하는 조건이 되나, 선택의 사실은 모든 영적 은사의 원천이요, 모든 축복의 원천과 첫 원인인 것이다. 이것은 칼빈만이 아니라 , 멜랑히톤, 해밍(Hamming), 부쳐, 올레비아누스 등의 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정이 신론의 한 부분인가(선험적 순서), 아니면 구원론의 시작과 중간에서 다루어져야 하는가(후험적 순서) 하는 것이 꼭 원칙상 본질적 차이를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개혁신학자들은 선험적 순서를 따랐고, 루터파와 알미니안, 그리고 로마카톨릭과 대부분의 근대 교희학자들은, 점차 후험적 순서를 취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 차이는 개혁파가 사변적인 방식으로 예정을 선험적이고, 철학적이며, 결정론적 신개념에서 이끌어내고, 다른 이들은 성경에 제시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에 충실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열렬한 칼빈주의자도 신론과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칠 때마다 성경의 교리 외에는 아무 것도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차이의 참된 원인은 칼빈주의에게 있어서는 예정론이 단지 인간론적이고 구원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특히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개혁파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예정의 주된 목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 의식보다는 성경의 계시에 더욱 충실하여 우선 순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주관적인 의식을 우선한다면, 신론이든, 삼위일체든, 인간론이든 모든 교의가 구원론 이후에 자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교의학을 다룰 때에, 진리를 신자들의 의식에 주관적으로 들어온 것인양 다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계시한 것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바빙크는 이러한 방법만이 종교적 관심으로서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타당한 것이라고 하였다.


4) 도르트신조 이후 '예정론'의 흐름.

1618년 이후 화란 개혁교회는 개신교 국가임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화란 당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과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교회회의 조차도 개최와 진행에 따른 제반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였다. 또한 국가의 허락과 지원에 의해 원어성경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성경번역사업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이런 성경번역사업에서 나온 성경은 "국가성경"으로 명명되었다. 참된 개혁신앙에 대한 치안관의 관심이 이 유명한 번역성경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관심도 얼마되지 않아 변질되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국가는 교회의 행정적 조직적 업무에만 간섭하였다. 그러나 교리에 대해 관용적인 성격으로 변하면서, 국가는 도르트신조가 허보름대 케르프(Hervormde Kerp)의 신조의 하나로서 인정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미 도르트신조가 선언된 직후 얼마되지 않아 알미니안은 정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세계의 모든 교회들과 모든 나라들에게 번져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 동안에 성장해 나간 모든 소종파들과 종교운동들은 거의 모두가 그 성격상 알미니안적이었다. 이는 자연신론(deism), 퀘이커 사상(Quakersim), 감리교 사상(methodism) 등에 다 적용된다. 몇몇 신학자들만이 굳건히 개혁주의의 본래 입장을 취하였으니, 화란의 콤리(Comrie), 홀티우스(Holtius), 브라헤(Brahe), 스크틀랜드의 보스톤(Thomas Boston, 1617-1732)과 얼스킨(Erskines, -1870) 그리고 미국의 요나단 에드워드(1703-1758)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바빙크가 언급하듯이 전통적인 '예정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세기가 되어버렸다. 그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교회의 예정론을 결정론적 의미 즉, 무의식적 운명, 맹목적 자연, 비논리적인 이해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폰 하르트만의 진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각 사람이 악에로 성향지어졌을뿐만 아니라, 그리로 결정되었음이 분명한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선에로(미리) 성향지어졌을뿐만 아니라 그것에로 결정지어졌다. …절대적으로 유기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분명하듯이 절대적으로 선택된 이들도 하나도 없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가장 버림받은 개인들조차도 그 자신 안에 일정한 양의 은혜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은혜 받은 개인도 실제적인 악에서 완전히 면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이러한 생각은 슬라이허마허의 입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비록 그의 출발점이 교회론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에 집착한다고 해도, 그는 선택과 유기를 오직 시간관 관련해서만 구별하기 때문이다. 결국, 엄격히 말해서 (그에게는) 유기된 이들이 없다. 아직 변개치 못한 이들은 좋지 못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아직 변개치 않은 이도 후에는 변개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바빙크가 지적한 이러한 정식 뿌리는 이전 알미니안 사상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알미니우스와 그의 후계자들의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의 바르트의 신학의 등장은 "자유주의자들이 놀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다.",혹은 '신정통주의다'라는 평가를 하지만, 그의 신학은 전통신학을 통하여 다시 재평가해야 될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은 칼빈과 17세기의 신학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정론에 있어서, 그는 선택이 창조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온 인류가 선택되었다고 진술하면서, 역사선상에 나타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속죄되었다고한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대신한 유기의 대상이면서, 선택의 대상이요, 선택의 주체라고 언급한다.
오토 베버가 요약한 『칼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이란 저서를 보면, Barth는 칼빈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분리시켜 놓았다는 비판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은 없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며 인간에게는 첫 번 것 즉 선택과 축복과 생명을 허락하셨고, 자신에게는 둘째 것 즉, 저버림과 형벌과 죽음을 돌리시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본시 택함받은 자와 저버림 받은 자 사이에는 구별이 없고 不敬한 자와 믿는 자 사이에 구별이 있다"라고 언급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선택(만인구원설) 받은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질문 가능성에 대하여 그는 "그것은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쉽게 답한다. 당대의 같은 학자인 에밀 부룬너는 '유기'는 성경에서 표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기'를 삭제해 버렸다. 이 두 학자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사실 바르트의 주장은 이미 과거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 속에서 발견되어, 17세기 학자들에 의해서 정죄되었던 것이고, 바빙크에 의해서 확인된 내용이다.
이미 칼빈은 그의 자필로 된 짧고 명료한 예정에 대한 고백조항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을 지라도, 순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것들로 결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는 일보다 앞선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도로트회의 참여자 중 화란의 신학교수 대표단이었던 Sibrandus Lubbertus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택의 마땅한 원인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고마루스(F. Gomarus) 역시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이 선택의 추진하거나 움직이는 원인은 유일하고 전적으로 자유로운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그리스도의 공로"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이런 선택의 추진하거나 움직이는 원인은 오직 전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기뻐하심이요,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요 하나님밖에 어떤 것도 아니다. 특별히 더구나 그리스도를 선물하신 것은 위의 세 번 째 대조에서와 같이 구원을 인간의 선택아래 정해진 어떤 수단이다. 그 때문에 이것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선택의 후속적인 역사이다." 헷센의 신학자들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따라서 Dort회의에 바르트가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이다. 바빙크 역시 17세기 전통 신학자의 글을 확증해준다.
선택이 그 안에서 그를 통해서 실현되는 한, 그가 선택의 원인과 근거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또한 선택의 목적인 구원의 공적적 원인이며, 또한 택자들의 중보자와 머리이시다. 그리고 선택의 경륜이 성자와 관련하여, 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선택작정의 '실현적, 공적적 원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로마카톨릭 신학자들과, 알미니안, 루터라, 그리고 많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리스도가 그런 의미에서의 선택의 원인이라고 불리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자들은 항상 이런 견해에 대립하여 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예정의 대상이시며, 따라서 그가 동시에 원인이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성자의 파송에 앞서 있는 성부의 사랑에서 나온 은사이시다(요3:16; 롬5:8; 8:29; 딤후1:9; 요일4:9). 성자가 아버지로 사랑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시는 사랑의 아버지 자신의 자발성이란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칼빈, 고마루스, 마르크(Marck), 그리고 드 무어(De Moor) 등은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예정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자들의 선택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미리 정하신 것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곧 그리스도안에서와 통해서이지 그리스도 때문에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선택의 주체로서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전통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용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르트의 아래와 같은 글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펠라기우스의 얼굴에 가면을 쓴 것처럼, 자유주의의 얼굴에 가면을 쓴 것으로 판단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부활과 그 분의 기도를 주목하고 마음에 두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선택받은 것이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그 분 안에서' 신적인 은혜의 선택의 대상이다.
이렇듯 순서적으로 전통신학과 유사하지만, 성격상, 기독론으로 출발하는 그의 신학은 전혀 전통신학(계시신학, 개혁신학)을 받쳐 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알미니안의 정신을 계승하여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신학이 단순히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교파도 아니고 장로교에서 '개혁신학(?)'으로 판단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 다른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예정론'에 대한 관심과 '예정론'에 대한 교회교육의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

본 장에서는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칠 목적으로 형성된 도르트 신조 외에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통하여 '예정론'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고, 다음에 '예정론' 교육의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를 기술하기로 한다.

① 다른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예정론'에 대한 관심.

초대교회에서 예정론은 그리 많이 발전되지 않았으니, 이교의 운명론과 영지주의적 자연주의에 반하여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펠라기우스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초대교회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나, 그의 합리주의와 고행적 도덕주의는 그로 하여금 이전에 모든 사람에 인정되고 받아들여지던 "원죄교리"를 약화시키도록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에베소 공의회(431)에서 정죄 되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은 크리소스톰로, 그리고 헬라교부들의 글로 둘러싸여서 진술되었다. 이렇게 완화된 입장에 대해서 중세기에 '유사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란 이름이 붙여졌다.
카시아누스에 의하면, 인간성은 참으로 죄에 의하여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죄에 의하여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병든 것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치 스스로는 치유하지 못하나 약을 복용하고, 오랜 후에는 회복될 수 있는 병든 사람과 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물에 빠져서 스스로는 구조할 수 없으나 그를 구원하기 위해 던져진 줄은 잡을 수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을 따르는 이들과 유사 펠라기우스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계속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후에야 이 논쟁은 그쳐져서 오렌지 공의회(529년)에서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이 실패의 결과로 유사 펠라기안주의가 기에르시 공의회(The Synod of Chiersym, 853)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로마카톨릭의 트렌트공의회는 절대적 예정교리를 거부함으로써 진리에서 완전히 덜어져 나갔다.
이것은 결국 뒤따르는 교리인 불가항력적 은혜와 견인의 교리까지도 반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항상 진지들을 고수하고 그 진리를 위해 역사 속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예정론'에 대한 진술이 뚜렷하게 드러난 교회회의, 신조, 신앙고백, 요리문답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신조가 '예정론'을 제외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으로부터 구원에 관한 교리를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 '믿음'의 성격을 자유의지로 되었다는 펠리기우스주의자들이나, 성령의 도움으로 의지가 회복되어 믿었다는 유사펠라기우스(알미니안)주의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을 언급하기 때문에 '예정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강조하면서, 그 은혜의 성격이 위로부터 곧, '신의 작정과 예정'에서 인식되지 않는다면,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고백은 항상 유동적인 될 가능성이 많다.
'예정론'에 대한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관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루터교회의 기본신조인 『아우구스신앙고백, 1530년』은 의식(儀式)행위를 강조하는 카톨릭교회를 의식(意識)한 고백서인 성격을 띠고 있어 '이신칭의'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다(제4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브로스의 글의 인용은 그 믿음의 원인을 하나님의 작정에 두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구원될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셨으며 그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우리의 신앙만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제6조).
칼빈의 『네바 요리문답, 1542년』과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가 작성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563년』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선택'을 잠시 언급하는데, 전자는 제 93문, 후자는 54문에서이다. 그리고 『제1스위스 신앙고백, 1536년』에는 '예정론'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다만 하나님의 유일한 긍휼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강조되어 있다. 즉 "모든 설교에서 역설하여 사람의 심중에 새겨져야 할 것은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유일한 긍휼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주시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복음적 교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중요한 주요 신조가 되어야 한다"(제12장)고 기술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 신조(39개조), 1563』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영생에로의 선택만을 인정하고 있다(제17조). 곧 유기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예정교리'의 유익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볼링거가 작성한 『제2 스위스 고백서』(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년) 역시 '선택'에 관하여만 언급되어 있는데, 특별히 살펴지는 것은 '선택'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문장이다. 즉, "그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잘못된다는 사실이 틀림없이 믿어질 경우, 우리는 택함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제10조) 그리고 존 낙스가 작성한 『제1 스코틀랜드 고백서』(The First Scotch Confession, 1506년 제8조)는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제 8 조, 교회와 관련하여 16조에 '선택'에 관한 언급이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제네바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처럼, 사도신경의 순서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 데 브레이(Guy De Bres)가 작성하고 1561년 엠덴(Emden)개혁교회노회에서 채택한 『벨직신앙고백서, 1561년』16조에서 타락후 선택론을 따르는 '선택과 유기'를 둘 다 언급하나, 도르트신조나 웨스트신앙고백처럼 다른 교리와 유기적인 관련이 없다.
즉, 도르트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선택'을 택자로 제한된 속죄, 선택으로 말미암은 믿음, 칭의, 성화, 견인과 관련하여 언급하지만(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적 경륜), 벨직 신앙고백서는 '우리'라는 대상에 대하여 경륜적으로 역사하는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즉, 선택은 성부 하나님에 근거하고, 우리의 속죄, 칭의는 그리스도, 믿음, 성화는 성령에 근거하여 기술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선택이 속죄와 믿음과 칭의와 성화와 유기적인 관련 없이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칼빈주의적이고, 명백하게 진술된 신조와 고백은 도르트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리고 스위스 공통신조이다. 『도르트신조, 1619』는 위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예정론을 다룸에 있어서, '선택과 유기'를 둘 다 다룬 것은 물론이요, 벨직신앙고백서에서 결여된 '선택과 다른 교리와의 유기적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도르트 신조의 영향을 받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7』역시 도르트 신조와 같이, 다른 교리와의 유기적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니 오히려 조직적인 면에서 더 잘 설명해 주고 있다(3장 6항(선택과 구원의 서정의 유기적 관계의 서론격 8장 6항(속죄), 10장 1항(소명), 11장 4항(칭의), 14장 1항(신앙), 17장 1항(견인)). 그리고 『스위스공통신조, 1675』가 있는데, 이 신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신조보다는 '변증서'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신조는 쮸리히의 존 헨 하이데거(J.H. Heidegger)가 스위스 국회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스위스공통신조, 1675』인데, 이것은 당시의 수정주의적 칼빈주의 신학이 점점 강성하여 갔을 때 그곳의 보수파는 점점 더 엄격한 보수 신학을 제창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 작성된 것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축자영감설에 대한 강한 주장(2,3항)과 아울러 도르트신조의 선택과 서정의 유기적 관계를 더 강하게 드러냈고, 도르트신조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 즉, 그리스도는 선택의 대상이지만 원인은 아니라는 점을 더 강하게 변증하여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였다(5항, 6항). 그런데 이 스위스 일치신조는 스위스에서 약 반 세기동안 사용되다가 그 후로는 점점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 신조 이후 어떤 교회회의나 신조나 요리문답이나 신앙고백도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반면에 스콜라적인 이성이나 알미니안의 사상이 신앙고백과 신조와 교회회의에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1829년의 『컴버랜드 신앙고백』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하고 알미니우스적인 요소를 내포하였고, 한국의 장로교 12신조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를 기본문서로 받아들이면서도 '유기'에 대한 내용을 포기하였다. 칼 바르트가 기초한 『바르멘 신학선언, 1934』에서도, 미국 연합장로회의 『1967년 신앙고백』에서도 찾을 수가 없으며, 저 세계적인 모임인 W.C.C.(세계교회협의회)는 온통 알미니안으로 채색된 대표적인 모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미래의 교회회의, 신조, 신앙고백은 '구원관'에 대한 아무런 교육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이가 "예수믿고 구원받느냐?"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성격과 원인'을 묻는다면, 17세기의 화란의 국민처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시대의 교회는 과거의 논의(도르트신조, Wm)는 역사적 산물로 이미 지나간 것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것으로 논쟁하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으며,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겠다는 것으로 구원에 관한 모든 논의를 마치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곧, 세계적으로 교회교육의 관심은 '구원론'을 제외한 선교와 봉사와 세계평화와 세계복음화와 교회일치와 행복추구의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21세기의 교회에 대해서 선교와 봉사와 평화와 복음화의 교회일치와 행복추구는 더한 낙관을 예상할 수 있으나, 구원에 대해 깊은 은혜를 느끼면서, 순교적인 신앙관과 구원관을 확신할 수 있는 인물을 낳는 교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낙관할 수가 없다.

② '예정론'에 대한 교회 교육이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

이 교회가 성경의 내용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며, 교육적으로 가르쳐야할 당위성을 가지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는 몇 가지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로서 줄곧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교리를 교회에 소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오해하여 '예정론'을 악행의 동기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칼빈의 언급처럼, 사람들이 이 교리를 이상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이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성경을 대한다면 이 진리는 뵈트너(Loraine Boettner)의 표현대로, 바다의 고기처럼, 숲의 나무처럼 풍성하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아름다운 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엡1:4~6).
따라서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침묵'하는 것에 항상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곧 예정교리를 인정하기는 하지마, 그 교리가 이야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을 묻어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공통된 입장인 것이다. Calvin은 그러한 자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그러한 자들은 선지자, 사도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의 입을 통하여 그 교리를 가르쳐 주신 성령을 통제하는 사람이다. …이 교리를 침묵케 하기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앞에 무한한 자비의 보화를 펼쳐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보화를 발밑으로 던져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제정신이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아울러 칼빈은 '예정론'을 가르침에 대한 두 가지 교육적 효과를 드러냈는데, 오직 겸손하게 됨과 구원의 확신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저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예정론이 우리의 신앙에 주는 유익은 큰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예정론'이 주는 실질적인 유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기술하기로 한다.

ⓐ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만 되는 이유를 깨닫는다(1조 13항).
Calvin은 이 교리이외에는 우리에게 올바른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만 하시고 부름에 응답하고 선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를 무색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이 단순히 선택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서정에 가지 유기적 관계로서 우리에게 설명되어진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믿음으로, 내가 선을 행함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교만함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구원'에 관계해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제네바요리문답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문 121. 하나님은 한 번 우리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답.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자유롭게 받으시기 때문이며 그러한 행위에 속한 고유한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문 122. 어떻게 해서 그런가? 그러한 행위는 성령에서 생겨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가치가 없는 것인가?
답. 없는 것이다. 그 행위 안에는 언제나 우리의 육의 취약성이 얼마만큼 있기 때문입니다.
문 123. 그러면 그러한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 만일 그것들이 신앙 안에서 행하여진다면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그의 양심 가운데서 다음의 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즉 하나님은 그 행위를 아주 엄격하게 평가하시지 않고, 완전하다고 여겨주신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모든 불완전한 것들과 오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가지고 덮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구원'에 이르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무력하다.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예정과 그 예정으로 말미암은 선행과 믿음과 칭의와 견인과 성화와 영화는 즉, 구원은 우리 힘의 협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 삼위하나님의 통일성 있는 역사가 그 원인이라고 설명될 때에,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성(전적타락)을 깨닫고 겸손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구원에 대한 확신에 도움을 준다.
㉮ 예정교리는 신자들이 위험한 자리에 있게 될 때에 안전감을 주며 언제나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 안전한 길인 것을 알게 되며 비록 박해를 받는 경우에도 꾸준히 덕행을 지켜 나아가게 한다. 설령, 순교의 자리에 있어서도, 그들은 사단과 악인들이 악한 뜻을 이룰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룰 뿐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정론은 우리에게 '유기되었다'는 공포에 떨게 하기보다는 구원의 확신을 준다(도르트신조, 1조 16항). 바빙크는 이렇게 진술했다. "첫째, 그 누구도 자신이 유기된 자라고 믿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진실로 부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를 믿을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그 누구도 자신이 유기되었다고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삶과 그의 행위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럴 수 있는 이미 지옥에 있는 자인데, 그러려면 그가 이 땅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도르트신조 1조, 16조는 이렇게 진술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사망의 몸에서 해방되기를 열심히 바라면서 아직 그들이 바라는 만큼 거룩과 신앙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저버림의 교리 때문에 위협을 받을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선교에 확신을 갖게 한다.
예정론에 대하여 확실한 가르침을 받은 선교사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선교지에 땀흘리며 전도한다고 하자. 만일 그 선교사에게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영접하게 하지 못한다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기쁨이 여전히 있을 수 있다. 예정론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정론'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지닌 선교사는 아마도 자기나 자기의 뒤를 이을 사람이 단 한 영혼도 그 선교지에서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되도록 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는 결코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거나 자신을 복음전도자로 쓰시지 않았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바울도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했지만, '예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서 항상 열심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 도르트신조의 가치

알미니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위텐보게르트는 '항의서'가 기초되던 1610년에 이 운동의 영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교회를 신학자들의 학교로 만드는 데 반대하였다. 알미니우스와 함께 그는 종교의 신앙적 중요성만을 강조하였다. 성서만이 권위로 인정되어야 하며 신조나 교리문답은 구속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의 후계자들도 모든 신조에 대항하여 싸워 왔다. 그런데 이 항위자들이 에피스코피우스의 '신앙고백(1622)'를 통해 신앙의 표준에 관한 그들의 소신을 밝힐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 신조는 그들이 정죄를 받고 화란에서 추방을 당하고 난 후에 출판되었다. 모든 신조에 거절하고 대항하여 싸워 왔던 그들이(항론파)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 출판하게 되었다. 그들의 진술에 의하면 "교회에는 신앙고백적 진술을 필요로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믿어야 되는가를 결정하는 명령이 되어서는 안되며 또 진리와 오류를 판단하는 신앙의 규범이나 표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신앙고백적 진술의 목적은 단지 종교에 관한 그 진술자의 소신의 표현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것이 성서에 일치되지 않는다고 양심으로 확신하게 되면 그 신조의 입장에 얽매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소신이다.
그러나 그들의 단점은 이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각양각색의 성경관과 신앙의 색깔로 믿는 자들이 누가 신앙의 동지이며 누가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데 곧,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며, 교회의 순수성은 인간 각 개 개인의 이성에 따라 파괴된다는 데 있다. 이미 17세기에 개혁교회의 신조에 있어서 전제가 되는 '예정론'에 대한 배척은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곧 예정론을 배척한 알미니우스주의가 인간 이성을 절대시하는 17, 18세기 합리주의 낳은 것이다.
교회도 이러한 사상적 조류에 편승하여 복음을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으로 채색해 놓았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목소리는 '복음'은 인간의 이성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되며,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대로 받되, 통일성 있는 신조나 고백을 확립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정론'은 '복음'의 핵심이며, 그 뿌리이다. 로레인 뵈트너는 복음은 '예정'교리에 기초한 것이므로 희소식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칼빈 역시 그의 『에베소서강해』에서 "이 교리를 침묵케하기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편이 나올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였듯이, '예정론'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 신앙과 교회 신조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따라서 '예정론'에 대한 도르트회의의 결정은 단순히 알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하기 위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바빙크가 언급한 것처럼, '예정론'은 개혁교회만의 고백이 아니라, 또한 어거스틴과 칼빈의 의견이기만 한 것이 아닐, 모든 기독교권의 교리(all of Christendom)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알리려는 선지자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손을 거쳐 기록된 성경의 기록이며,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 회의의 결정은 모든 교회의 축복이며, 우리는 그 계시 (예정론-도르트회의의 결정)를 먹고 마시는 주의 백성이다.
그런데 이제 20세기가 넘어가는 이 시점에선 대부분의 교회가 '예정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칼 바르트의 '예정론'에 대하여 논의없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르트가 '독일 기독교당'이 히틀러와 그의 획일화된 정책을 하나님보다 숭배하는 것에 반대하여 '바르멘 선언'을 작성한 것은 그 역사 속에서 높이 평가받을 일인지 모르겠으나, 진리를 보수하는 그의 신학에 있어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후속역사는 그를 바르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1967년 신앙고백이 그 예이다. 그 안에는 복음이 없고 바르트의 얼굴과 그의 신학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열려져 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빙크가 몇몇 사람을 진술했듯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 정신을 이어가는 몇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 몇 사람은 지금 '복음(예정론)'을 확립하고 변증하여 성경이 살아 있음을, 신앙이 살아 있음을, 구원의 감격이 살아 있음을 소개해야 될 책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네덜란드에 꽃이 피었듯이, 우리의 땅에도 그 꽃은 피어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에 의해 정통과 비정통이 분리되는 분위기를 우리는 도르트 신조를 통해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쿠른헤르트가 절대예정론을 반대하는 내용의 저서를 내게 되고, 거기다가 유니우스의 계승자로 라이덴 대학의 교수인 아르미니우스가 그의 사상에 찬동하며 나섰을 때, 이 도시는 절대예정론과 예지예정론의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은 이런 정신에 입각해 볼 때 당연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아르미니우스가 자신의 학적 사상(學的 思想)을 신학교수로써 주장한다는 것은 좋게 평가될 일이나 역사적 개혁주의 대학교에서 개혁주의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 기본적인 주체와 근거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버린 문제는, 그의 학위논문뿐만 아니라 그의 성경적 신앙에도 역시 회의적 평가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만이 홀로 존재의 근거이시며, 또한 존재의 궁극적 목적(롬11:36)이라는 神論(삼위일체론)의 신앙․신학적 정립인데, 알미니우스는 이 근본 원리를 포기하였음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도 그에게 있어서는 재해석된 것이다.
결국 알미니우스는 로마 카톨릭(보편구원설)으로부터 교리적 조정을 받은 것에 불과하며, 로마카톨릭의 미신적 구원론에 교리적 체계를 세워, 다시 로마카톨릭으로 인도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사상은 예지로 출발하여 자신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의 자신의 믿음의 과정(연속적인 명)을 보고 예지(됨)를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 알미니안주의의 교리는 결국 인간의 성향을 만족시켜 주기에 최적의 약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향은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함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없다. 오히려 불안함만을 더해줄 뿐이기에,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긴장 속에서 마치 의심스러운 부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각고의 노력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당위성에 순종한 행위에 의한 만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은혜가 아니라, 오직 은혜의 통로는 나 자신의 노력이라는 것을 명료히 한다. 결국 이와 같은 교리적 투쟁은 관점의 투쟁이고, 관점의 투쟁은 하나님 중심사상과 인본주의사상의 투쟁이다. 결코 인간의 사상에는 중립이 없다.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드러나는 입장이 각기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적 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리와 사회의 양분되어진 현상은, 비(非)진리에 대한 칼빈주의자들 입장의 당위였으므로 초래된 결과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명히 알며 따르기 때문에(요10:27) 비진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르트 규정이 성립된 후 사후 정비에 있어서 정치적 관렴문제는 그 당시의 세계관을 따른 듯하다. 앞서 서술했듯이 당시의 세계관은 하나님의 교리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었으므로, 도르트회의 후의 각종의 결정들은 역시 그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겠다.
실로 도르트총회의 칼빈주의 5대교리 성립은 화란 역사에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칼빈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서, 영광스런 하나님께서 칼빈주의자들을 통해 승리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성경의 내용(敎理)을 인간중심으로 돌리려는 무수한 부류들에 대하여,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성경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서로 작성함으로 우리는 이 내용을 믿는다(creed)하여 끝까지 싸워온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진리를 지키려는 싸움에서 표면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여진 때도 있었으나, 개혁주의자들 이 진리의 내용을 지킴으로 잠시의 안전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품으로 속히 가는 길을 택하여 왔던 것이다. 사실, 아직도 도르트 신조의 진리에 대한 논쟁은 종결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지금 21세기가 시작하는 시기에까지 과제로 전달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요구는 위와 같지 않고, 성경 전체를 기록론으로 통하여 구원의 근거를 인간 편에 두는 사상적 체계와, 종교의 일치(WCC, ICCC)를 향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남겨 주신 과제는 명확한 것이다. 전통적인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계승한 도르트 총회의 후손으로 우리는 얼마나 그 규정에 충실해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비(非)성경적이고 비(非)개혁주의적인 것을 단호히 배격하고, 성경적인 참된 교회로 되돌려야 하겠다. 많은 사람과 화합하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이때에 차라리 하나님 편에서 고립됨으로 각오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의 성경에 의한 만족만을 가지고, 계속적인 진리 제시의 투쟁을 해 나가야 하겠다. 왜냐하면 아직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