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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초기 기독교의 형성

 초기 기독교의 형성 ,에티엔느 트로크메 지음, 유상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3



머리말

두 제국 (파르티안 제국과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의 종교였던 유대교에 대해 어느 정도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며, 기독교 모임이 유대교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두 제국 내 전체 인구의 약 십 퍼센트 가까이 되는 유대인들은 중요한 소수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폭력 사태를 피하기 위해 두 제국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이 특권은 때때로 문제시된 적도 있었으나 당시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분리가 이루어진 것은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유대교가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되면서였다. 성전을 박탈당하고,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어 와해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유대교는 바리새파 랍비들이 주도한 근본적 개혁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1.기원후 초기의 유대교

수세기 전부터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던 디아스포라는 지역에 따라 상이한, 그러나 독자성을 지키고자 하는 소수집단이라면 어느 집단이나 그러하듯, 견고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 회당이라는 제도는 지역 당국에 대해 공동체를 대표하는 임무 뿐 아니라, 교육과 사법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 회당은 유대인 집단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토라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 집단은 끊임없이 주변의 문화와 접촉하고 있었다. 아람어와 그리스어와 같은 주변 문화의 언어를 받아들여 사용했다는 점에서 접촉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히브리 성서의 여러 책들이 기원전부터 아람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회당의 사람들이 더 이상 히브리어를 이해하는 못하는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쿰란 문서와 70인역의 그리스어 번역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어가 많은 디아스포라의 회당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였음을 증명한다.(p16)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애착 덕분에 전통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 성전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냈으며,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가 되면 열성적으로 순례여행을 했다. ...모세 율법의 계명 또한 그 해석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결속시키는 요인이었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는 양적인 측면에서 디아스포라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p17)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활동가들은 파벌적이라고밖에 형용할 수밖에 형용할 수 없는 태도를 취했다. 최고 특권층은 사두개인들로 이뤄졌는데, 이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직하던 성직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그룹은 매우 보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리스의 영향에 대해 가장 개방적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토라의 핵심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에 있었다. ...도덕적, 사회적 관점에서 계명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옳지 않은 일로 보였다. ... 이들에 대항하여, 그 경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일부 제사장들이 분리되어 나갔다. 성전 생활에 있어서 잘못된 관습, 각양각색의 정치세력과 타협하는 고위 성직자들, 제사 일정을 바꾸는 등 시대의 조류와 타협하는 상황 등에 분개한 에세네파 사람들은 광야로 들어가 금욕과 고행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운동은 근본적으로 분파적이었으며 유대인 일반 대중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유대인 대중은 이들의 종말론과 메시아에 관한 사유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엄격한 규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풍부한 문헌을 만들어 냄으로써 디아스포라에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고 실천 불가능한 사회적 율법을 윤리적 율법으로 변화시켜 유대인 개개인에게 제시하는 방도를 택했다. ...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사회를 조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토라를 윤리적인 법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유대인 개개인에게 제안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법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형제단체"로 규합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이들은 계명을 해석함에 있어 개인의 일상적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최후의 상급과 의로운 자들의 부활에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들의 열성적 노력은 어느 정도 팔레스타인 유대 민중의 윤리적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이른바 '땅의 사람들'을 경멸했다.

젤롯파의 경우, 이들과 나머지 유대 백성들 사이의 관계는 모든 테러 조직들과 그들의 출신 사회 사이의 관계와 같았다. 이들은 반로마 저항 행동으로 민심을 얻으면서, 제사장 비느하스를 본받아, 힘을 잃은 권력기구를 대신하여 율법을 어기는 자들을 폭력을 사용하여 제거하였으며, 백성들에게 더욱 완벽하게 계명을 지키도록 강요했다.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엄격한 규율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모두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민중과의 접촉을 멀리한 채 따로 떨어져 제한된 모임을 이루며 사는 수밖에 없었다. (p18~21)

2.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

소수 집단들이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 대중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들과 민중을 갈라놓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기원후 30여년 동안 있었던 이러한 시도 중 두 가지가 바로 세례 요한과 예수의 경우이다. (p23)

세례 요한이 전했던 임박한 내림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지 어느 정도 인간의 모습을 한 메시아가 아니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가 죽은 후에도 충성스럽게 남아, 디아스포라에게까지 계속하여 그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요한복음서의 앞부분 몇 장은 세례 요한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가 대립하는 논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이것은 기원후 1세기 말 이 복음서가 저술될 무렵에 세례 요한을 종말의 예언자 또는 메시아로 생각하는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이 공동체는 기원후 1세기 말 배교자 제명 때 회당으로부터 축출되어 분파로 담게 되었음이 거의 확실하다.(p26~7)

세례 요한의 설교와 비교할 때 예수의 설교는 어떤 점에서 새로웠는가? ...요한 설교의 몇몇 요소들은 그의 옛 제자들에 의해 그대로 유지되었다. 예수의 청중들 속에는 모든 사회 계층과 모든 종교 분파들이 섞여 있었다. 하나님의 오심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재차 선포되었고,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가 되풀이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비는 여전히 백성을 향한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열쇠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 바뀐 것은 무엇인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가 신비로운 임재로 변화되었으며, 회개에로의 부름을 가능하게 했던 은혜의 시간과 세례의 표적은 이제 끝이 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부터 점유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내일을 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이다. ... 이 역설적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백성들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예수는 조직된 집단들로부터 방치된 시골의 하층민들 가운데 있었다. 이들 조직된 집단이나 종교 당국에 대항할 용구를 가지고 있던 예수를 분명 자신의 사명에 관한 ,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매우 강한 자의식이었다. (p30~1)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중을 하나님에게로 되돌아오게 하려던 두 번의 시도는 모두 지속적인 추후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 후로는 젤롯당들이 민중을 동원하고(70년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로 끝남), 다음에는 얌니아에 정착한 바리새파 서기관들이 유대인들을 장악하게 되었다.(p33)

3.예루살렘의 처음 교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15:3~7)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앙고백의 내용구성을 볼 때 현현이 두 갈래의 집단과 관련된다는 사실 뿐이다. 그 하나는 예수의 첫 제자들 중의 하나인 베드로와 관계된 무리, 즉 열두 제자와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의 공동체이고, 다른 하나는 주의 형제인 야고보와 관계된 무리로 "모든 사도들"이 이에 해당한다. ... 베드로를 둘러싼 집단은 베드로와 옛 사이에 유지되었던 밀접한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권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적 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는 반면, 야고보는 혈통의 정당성을 힘입어 수임자에게 권위를 위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이 두인물은 머지않아 예루살렘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나란히 자리를 잡게 된다. (p39)

최초의 핵심적 인물들은 갈릴리로부터 온 예수의 제자와 친척으로 이루어졌다.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은 부동산을 팔았으며, 그 판 돈을 공동으로 소유한 것처럼 보인다. 예루살렘 이들 집단에 가담한 형제들 중 일부도 이와 같이 했는데, 그들은 이러한 희생의 대가로 "성도"의 무리에 받아들여졌다. ...공동 기금은 "열두 제자"가 맡아서 관리했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처음 교회에 끼친 에센파의 영향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다. (p41)

공동체 지도자들의 활동이 운영, 훈련, 예식 등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신도들에게 자신들의 주님을 빼앗아간 비극적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삶과 형제 개개인의 삶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삶과 형제 개개인의 삶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데 있었다. 예수의 역설적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 성서는 몇몇 열쇠를 제공했다. 의로운 자, 또는 야웨의 종이 받는 고난에 관한 구절들이 그것들이다. 게다가 이러한 구절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승리와 압제받는 불행한 자들이 새 삶을 얻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에세네파와 마찬가지로 처음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구약의 텍스트를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계된 예언으로 간주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유용성을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초기 사도들이 베푼 가르침의 또 다른 원천은 에센파가 성서 구절들에 기초하여 수립한 메시아 칭호들로 이뤄진 풍부한 보고였다. ...예루살렘의 처음 교회가 기독론을 만들어 냈고, 이 기독론을 기초로 기독교 사상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p45)

조직되고 교육된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았다. ...순례지인 성지 안에 살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의 빈번한 접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은 주로 복음 전파를 위한 노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정기적으로 성전에 드나들고 기회가 생기는 댈 무리에게 선교함으로써, 초기 기독교인들은 많은 새로운 가담자들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봄과 가을의 축제는 머지않아 예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리라는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기회였다.(p46)

우리는 예루살렘에 정착했고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비팔레스타인 유대인 집단 중의 하나에 관하여 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은 이 집단을 "헬레니스트"라는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 이름 붙이고 있는데 이들은 교리적 측면에서 주류 유대인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집단은 열두 사도의 승인을 얻어 그리스어 이름을 가진 일곱 명의 지도자를 선출한다. ...일곱자를 선출한 이유는 열두 사도가 처음 공동체 전체에 담당한 것과 동일한 역할을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성전에 대하여 그리스말을 하는 자들의 주 대변인이었던 스데반의 공격성은, 공동체를 이끌고 성소에 기도하러 가는 열두 사도들의 태도와는 완절히 단절된 것이다. ... 유대 권력자들이 악착스러운, 그러나 타협적인 열두 사도와 , 이들보다 한층 더 혼란을 야기하는 일곱 지도자의 추종자들을 구별하기는 했지만, 스데반 박해 사건은 유대 권력자과의 사이에 위기를 가져왔다. 이들 일곱 지도자의 추종자들은 수도 산헤드린의 권위를 피해 예루살렘과 유대를 떠나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열두 사도와 가까웠던 공동체 구성원들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을 수 있었고 계속 용인되었다.(p49)

기원후 44년 초반부로 추정되는, 헤롯 아그립바의 박해로 인해 야기된 위기는, 이미 시작된 이러한 변화에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했음이 확실하다. ...이 사건은 최초 기독교 공동체가 평범한 제도에 가까운 교회 생활로 성격이 바뀌게 하는 전환점으로 기록된다.(p51)

(아그립바 박해)이후로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근본적 문제에 관한 토론에서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그의 발언에 더 이상 결론으로서의 비중을 부여하지 않는다. 거의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영적인 수장에서, 순회 선교사의 위치로 추락한 것이다. 이렇게 그가 상실한 위치는 주의 형제인 야고보에게로 넘어갔다. ...그저 존경받는 인물일 뿐이었던 야고보가 44년부터는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이자 동시에 보편교회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p52~3)

미묘한 상황에서 타협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경향은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나감에 있어서도 적용되었음이 확실하다. 처음몇 년 동안 자리를 잡은 엄격한 제도는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매우 엄격했던 공동체 규율은 느슨해졌으며, 재산 공동체는 사라지고 강도 높은 구제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구제를 위해서는 외부의 기부금도 환영이었다. ...초기 에세네파의 영향은 형제애라는 바리새파의 영향 앞에 후퇴한 것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끈 방침은 엄격했다. 예루살렘의 권위는 팔레스타인과 디아스포라의 기독교 공동체 위에 엄정하게 행사되었다. 이 공동체들은 뚜렷한 원심적 경향을 보였으며, 이러한 사실로 인해 헬라파에 의해 세워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공동체나 바울의 개인적 선교 등 기독교 운동의 결속력이 위태로워졌다. 야고보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위협을 ㅂ다고 있다고 생각됐던 단일성을 수호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바나바를 시리아의 안디옥으로 보낸 것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전해진 복음이 큰 호응을 얻게 되자 그로 인한 탈선을 막기 위함이었다.(p55)

70년 이후 교회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베드로와 야고보 시절 모든 외부의 공동체들 위에 행사되었던 영향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62년 이전 교회를 지배했던 강한 중앙집중제도는 이때부터 모든 흩어진 무리에게 호의적인 통합적 회중교회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 유대교는 얌니아에 강력한 본부를 재건했는데, 이 본부는 개혁의 임무를 맡아 모든 회당에 정통교리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하게 한다.(p59~60)

4."헬라파"의 약진

스데반의 순교에 뒤이어 가해진 박해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난 다른 "헬라파"들은, 베네게와 키프로스와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했다. ...선교활동이 회당의 범주를 벗어난 곳인 국제적 대도시인 안디옥에서였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그곳에서 헬라인, 아니면 적어도 헬라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문을 듣고 키프로스 교인 중의 하나인 레위인 바나바를 보내어 위험한 탈선 행동이 아닌지를 확인하게 한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승인하고, 그곳에 정착해서 지역 공동체의 책임자 중 하나가 되었다. 이리하여 "헬라파"선교단과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단은 하나로 동화하게 된다.(p66)

안디옥 교회는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갖게 되었다. 다소 사람 사울(바울)의 개인적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헬라파" 선교부로부터 온 특색,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인 특징, 그리고 대규모 국제도시의 복합적인 사회가 행사하는 압력이 한데 섞이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계 복음화의 길로 나서는 데에는 안디옥 교회모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전 세계의 순례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주께서 다시 오시기를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다리는 대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녔던 비정통 선교사들의 길을 따라 가게 됐다.(p67~8)

"헬라파"의 사상을 보여주는 이러한 요소들은 매우 산발적이고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집단에서 비롯된 다른 기록에서 보다 정확한 표현과 보충자료를 찾을 필요가 있는데, 마가복음서의 초기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서의 초판은 65년 이전에, 그리고 정경판은 75년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의 서두에 책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즉 예수 그리스도가 전달자이자 동시에 주체가 되는 좋은 소식의 전파에 관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책 전반에 걸쳐 교리보다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강조한다.(p70~71)

이 문서(마가 복음)가 확언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큰 소식"이 구원 역사의 결정적 사건이며, 동시에 모든 이로 하여금 이 사건을 알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점이다. 세례 요한, 예수, 그리고 제자들의 설교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음을 알리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신약의 다른 저자 바울도 "큰 소식"에 관해 종종 언급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큰소식"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이러한 신념 뒤에는 하나님에 관한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 숨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창조주가 아니다. 그분은 자신의 나라를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모든 것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놓으려고 결심했다. 이 거대한 뒤집기를 실행할 도구적 존재가 바로 예수이다. 그는 설교와 사탄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이를 실행한다. ...예수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온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복음을 가지고 온 분이며 악과 고난을 물러가게 할 투사이다. ...마가에게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p73~4)

...마가복음서는 "헬라파"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이들이 언급된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더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이 집단은 신학적 사고보다는 행동에 더 가까웠다. ...첫 세대가 사라지자 초기 선교사들의 비상한 활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헬라파"공동체 중 살아남은 첫 세대들은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지구전에 적합하도록 무장된 경쟁 집단의 공세에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운동은 기독교 세대에 몇몇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예루살렘 교회로 하여금...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는데, 베드로를 중심으로 조직된 선교 활동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기독교를 그리스화하는데 기여하여, 셈계의 아시아보다는 로마 제국으로 팽창하도록 했다. 그리고 마가복음서의 처음 판본을 통해 제2세대와 제3세대 기독교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문학적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복음서가 기독교 신앙의 특별한 표현 양식이 되었다.(p76~77)

5.바울 :첫걸음

바울이 언제 출생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기원후 10년이 조금 못되어 지적인 활동이 활발하던 활기찬 요새 도시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유대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는 태어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 가정의 관례에 따라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성서에서 따온 이름인 사울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다. ...바울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친로마적인 경향을 농후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사실을 앞으로 보게 될텐데, 이는 그가 아시아에서는 아직 드문 시민권자 중의 하나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p80)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그의 가족이 그러했듯 매우 충실한 율법 준수자였다. ..."헬라파"가 주류 교회에 대해 독립적 입장을 취하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사이에 선교 활동을 펼치게 되자,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행동파 무리에 섞인다.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대한 이러한 열성이 그로 하여금 열심당원, 다시 말해 폭력을 사용해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의무로 하는 열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의 회원이 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p82)

...돌연한 방향선회...바울은 세례를 받은 후 이전보다 한층 더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느꼈다. 복음을 전하라고 그를 보낸 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 바울의 회심은 개종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갑작스럽게 이스라엘의 삶속에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p85)

각 교회에서 선교사들은 예루살렘의 모범을 따라 "장로"들을 지명하여 세웠다. ...주목되는 점은, 사도행전 처음 부분에서 사도직을 규정할 때 사도의 숫자에서 제외되었던 바나바와 바울에게 두 번에 걸쳐 "사도'라는 호칭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80-85년경에는 사도직이 첫 세대 때보다 제한적으로 규정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은 성령과 공동체의 지도자들에 의해 파송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교사는 사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를 결여한 순회 사도들이 공동체에 혼란을 야기하게 되자 보다 제한적으로 사도직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p93)

선교여행의 긍정적 결과에 자신을 얻은 바나바와 바울은 이들(유대 기독교인)에게 맞선다. 공동체는 이들의 주장을 배격하지 않은 채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중재를 구하기로 결정하고 대표단을 구성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게 된다. (p94)

베드로와 바울이 나란히 위치함으로써 예루살렘의 "기둥"인 야고보, 게바, 요한 측과 바울, 바나바 측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다. 선교지를 분할하여 유대인 선교는 전자가, 이방인 선교는 후자가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교화의 수장과 선교 책임자, 그리고 신학자가 하나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 다시 말해 궁핍한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을 돕는다는 조건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인정하는 호의를 베푼다.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으로 개종한 신자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을 포함하지 않은 합의에)바울은 그러한 조건이라면 예루살렘의 합의가 두 종료의 기독교인들의 화합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분노한다. ...바울의 분노가 야고보와 그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음이 확실하다. 그들은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들을 향해, 유대교가 회당 출입을 원했던 동조자들에게 제시했던 노아의 명령에서 따온 몇몇 규칙을 따르라고 요구함으로써 이방인과 유대인이 혼합된 교회를 구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조치가 모든 교회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타협적 유대기독교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시기는 70년부터 90년 사이의 일들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바울이나 그의 추종자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참여 없이 결정된 이러한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p96~8)

6.바울 :전진

이 두 집단(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각기 자신들의 고유한 공동체를 형성해야 했다. 이처럼 사태를 제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도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베드로와 바나바까지도 그 효력을 인정하고 안디옥에 거주하는 이방인 출신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와해를 의미했다.(p99)

결과는 결렬이었다. 야고보,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와도 관계를 끊었고, 베드로와도 헤어졌으며, 오랜 동료 바나바와도 단절했고, 안디옥 교회와도 결별했다. 실라만이 예루살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바울과 연합하여 새로운 선교 여행에 나섰고, 안디옥 신도 몇몇이 계속 바울을 신뢰했다.(p100)

바울에 의하면 이방인들이 공동체 생활을 위해(갈라디아서) 근본적인 반론을 편다. 바울에 의하면 이방인들이 공동체 생활을 위해 모세의 율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선물, 그리고 이로부터 기인하는 자유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선물을 폐기하고 부인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이는 실재하지도 않는 "다른 복음"에 가담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뒤집어엎는"일이다. 바울의 가르침과는 양립할 수 없는 이러한 교의를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든 "저주를 받아"마땅하다. (p101)

새로운 기지의 취약함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방인을 맡기신 사명의 중대함을 잘 인식하고 있던 바울은, 로마로 가서 그 도시를 비유대인 선교를 위한 중심지로 삼아 유대인 선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균형을 이루게 하기를 원했다. ...마케도니아는 한 단계에 불과했다. 갈라디아 남부와 로마의 중간에 위치한 마케도니아는 바울에게 목표 지점에 가까운 중간 기지였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자마자 ...로마의 식민지 빌립보로 향했다. ...로마로 가는 도상에 중간 기지를 찾는 사람에게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p105)

...그들은 비아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서 ...중요한 두 도시(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젖혀두고, 곧장 유대인 회당이 있으며, 지방의 수도이자 로마 총독의관저가 있는 데살로니가로 갔다. 바울에게 이 도시는 이탈리아로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중간 지점이었다. ...바울과 실라는 주변에 몇몇 유대인과 유대교에 동정적인 그리스인들, 그리고 적지 않은 숫자의 지역 상류사회 부인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자 회당의 지도자들이 거리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바울과 실라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던 야손과 몇몇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선동죄로 고발하며 관원에게 넘겼다. ...(베뢰아로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그곳에서 회당 지도자들의 방해를 받자) 바울은 가능한 한 신속히 대피해야 했다. (p107~8)

아테네로부터 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고린도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바울은, 완전한 실패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절반의 실패를 경험한 헬레니즘의 지적 중심지를 떠나 다시금 로마로 가는 길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 실아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수집된 기금을 가지고 합류하자, 바울은 전적으로 설교하는 일과 유대인 학자들을 상대로 예수의 메시아 됨에 관하여 토론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사도 바울은 회당과의 관계를 끊고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섰다. ...고린도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로마로 가는 길이 클라우디우스의 칙령에 의해 봉쇄된 상황에서 아가야의 수도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위해 선교 기지로서의 역할을 매우 잘 수행했다. ...바울은 열여덟 달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게 되는데, 이는 이전에 그 어느 도시에 머물던 기간보다도 훨씬 긴 것이다.(p111)

바울은 에베소의 유대인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기를 거부한 채 곧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갔다. 그곳으로부터 교회를 방문한다. 이러한 그의 거취는 다섯 단어로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분파에 대해 사소한 양보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안디옥으로 가는데...(실패였다) 바울은 이전에 활동하던 장소로 돌아가서 교회들을 견고히 하고 독자적 선교활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이다.(p113)

7.바울 : 교회의 우두머리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은 몇 해 전의 여정을 되풀이 밟으며 갈라디아 남부와 부르기아의 제자들 굳세게 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활동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듯, 그 영향이 에베소라는 도시의 영역을 벗어나 아시아 전역에 퍼졌으며 바울의 동역자들이 아시아 곳곳에서 여러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명실 공히 아시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선교사 그룹의 우두머리로서, 바울은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앞서 자신이 세운 모든 교회들에 대해서도 권위를 회복했다.(p115~6)

바울에 반대하거나 경쟁하는 자들의 침투가 고린도 교회를 어려움에 처하게 한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이교적 환경, 사회적 구성, 그리고 영적인 무경험 등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이리저리 표류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바울의 서신 속에 나타난 고린도 교회는 한창 탐색중인 집단이다. 유대 도덕이 여전히 준거로 작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바울은 기독교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해결책의 일부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를 둔 것이고, 다른 일부는 종말이 가깝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거나, 아니면 성령 체험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이 중 마지막 요소, 즉 성령 체험에 관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는 말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위로부터 오는 이러한 능력에서 복음이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열쇠를 보았다. 그러나 바울이 생각했던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공동체적 삶이었던 반면, 고린도 교인들은 개인적 차원을 생각했으며 방언, 예언, 치유의 능력등 초자연적 은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바울은 성령의 선물이 다양하다는 점과, 모든 신도들이-가장 미천한 자까지도-한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성령 감화의 개념을 최대한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이리하여 그는 교회 안의 모든 신도들이 따라야 할 가장 높은 길을 규정하기에 이른다.(p119~122)

빌립보와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볼 때, 바울은 자신을 영적인 아버지로, 또 영감 받은 복음 메시지의 해석자로 생각하는 선교사들 집단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아가야, 마케도니아, 아시아와 갈라디아에 위치한 열두 개 남짓한 지역 교회들의 인정을 받는 최고 권위자였다. 이들 교회들은 거의 모두 바울에 의해 세워졌으며, 또 회당과의 관계를 단절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도덕과 공동체 생활과 예배의식을 정립해야 하는 필요성과 씨름을 하고 있던 이 교회들에게 사도는 가장 오래된 전승의 증인이었으며, 동시에 영적인 아버지요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지혜의 전달자였다.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인 결과 바울은 그들의 유일한 안내자요 대변인으로 남는 데 성공했다.(p123~4)

당당한 (예루살렘) 사절단의 우두머리로서 바울은 두로,돌레마이,그리고 가이사랴 교회로부터 엄숙한 영접을 받았다. 이 교회들은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후 계속된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헬라파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이끄는 일행은 도착한 다음 날 바로 야고보와 그를 둘러싼 장로들의 영접을 받았다. ...바울은 서약으로 말미암아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하는 네 명의 형제와 함께 성전에 올라가 그들을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하라는 매우 단호한 충고를 받게 되었다. 신도가 된 이방 사람들에 관해서는 협상이 필요 없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바울은 사절단과 떨어져 나와, 부과 받은 임무를 이행하는 등,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패배했다.(p128~9)

8.바울 : 신학자, 순교자

대체적으로 바울의 서신은 수신 교회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선택된 특정 문제들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바울은 독립된 사역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신자들로 하여금 강한 응집력을 갖는 하나의 공동체로 뭉치게 해야 된다는 자신의 소명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리적 차원의 혁신을 꾀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들을 자연스레 묶어 주었던 틀을 이런 식으로 박탈당한 유대인과 이방인 출신 바울 추종자들에게는 새로운 공동체를 조직해야할 확실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부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일부는 특정 계명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전혀 다른 데서 삶의 기준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기독교를 당시 로마 제국 내에 널리 퍼져 있던 비교와 매우 유사한 자유로운 성례 정도로 변질시키려는 이런 분산의 위험에 직면하여 바울은, 모든 신도들을 포괄하는 공동체를 구성하라는 자신의 권고를 교리화해야만 했다. 도시마다 직면하게 된 이러한 필요성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일종의 고등 교리문답이 탄생했다. 이 교리문답은 신앙의 기본 조항들....에 대해서는 간단한 암시로 만족하고, 두 개의 주요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그 하나는 모든 신자들에게 값없이 앞당겨 주어진 죄 사함이고, 다른 하나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집단 안에서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 생활의 필요성이다.(p131~2)

로마서를 통해 표현된 바울의 사상이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차후의 기독교 사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여기서 그 큰 줄기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1세기와 2세기 기독교인들은 이 서신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서간이 문제를 삼는 것이 인류의 운명이지 인류를 이루는 개개인의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p135)

우리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몇 년 후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도 매우 분열된 상태였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조금씩 단결하여 잘 조직된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은 64년 네로의 박해라는 끔찍한 시련을 당하고 난 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교회는 1세기가 지나기 전 다른 교회들 사이에서 진정한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p138)

...수도를 떠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이 희망했던 것처럼 로마의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 놓지도 못한 채 바울이 사망한 것은 63년 아니면 64년이었다. ...바울 말년의 5~6년은 시련의 시기였다. 그 활동적인 선교사가 ...예루살렘, 가이사랴를 거쳐 로마에 이르기까지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된 무력한 상황에 처해지고 말았다. 게다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는 방치되고, 자신이 세운 교회들과는 단절된 상태였으며, 매우 분열된 상태였던 로마의 신자들로부터는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던 바울의 주변에는 몇몇 충실한 동역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했든 지간에,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가 항상 신뢰했던 로마 정권이었다. ...이 소외된 인물의 순교는 로마의 신자들 사이에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문학이나 기독교 예술에서 바울이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로마 사람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4세기에 이르러서였다.(p142)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길을 걷는 사람_ 최주훈

<길을 걷는 사람>
얼마 전 루터교회 목회자 연장 교육에서 박윤만 교수의 강의를 매우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첫 번째 주제가 “초기 기독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라는 문제였습니다. ‘기독교’, ‘교회’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서 이 질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첫 질문이 저에겐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1세기엔 예수 따름이 스스로 뭐라고 불렀을까, 그리고 밖에선 또 어떻게 이름했을까.
그 답이야 예수님 만나봐야 알겠지만, 강의를 맡았던 박윤만 교수는 성서의 다양한 구절(행 9:2; 19:9, 23; 22:4; 24:14)을 근거로 초기 기독교는 “그 길”, 또는 “나사렛 이단” 같은 말로 불렸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다”라고 선언한 구절, 그리고 성경 곳곳에서 “길”(도)이란 표현이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름을 지을 땐 아무렇게나 짓지 않지요. 그 이름에 소망을 담는 건 상식입니다. 1세기 교인들이 스스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건, 자신들이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의식이 담겨 있다고 봐야합니다.
마가복음 전체 내용이 바로 이 길을 중심으로, 이 길이 도대체 무엇인지 설명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일단, 막 1:1절은 마가복음이 교회 공동체 예배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운율을 통해 감지 할 수 있습니다. 한글 번역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인데, 헬라어는 “아르케 투 에방겔리우 예수 크리스투 후이우 데우”라고 읽습니다. 여기, ‘우~’라는 음이 반복되는데, 고대인들에게 이 운율의 반복은 경건한 분위기를 깊게하는 예전적 음운이예요.
그다음 2절에 저 유명한 이사야의 예언이 나오지요. 여기서 마가복음서 기자는 구약을 인용하면서 ‘과거에서 현재로’라는 시간의 길을 닦아 놓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길을 준비하리라..., 길을 곧게하라”라는 인용구를 살포시 넣어둡니다. 이로써 마가복음 전체 내용이 바로 이 길을 밝히는 의도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특별한 것은 그 길의 출발지가 ‘광야’라는 점입니다.
5절을 봅시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이 다” 광야로 나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요? 잘 정비된 지역, 사람들의 밀도가 높은 대도시이지요. 여기서 복음서 기자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살짝 숨겨 놓은 것 같아요. ‘유대, 예루살렘’이라는 용어로 정작 말고 싶은 단어는 ‘성전’이었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지요. 그곳에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야말로 유대인의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고, 생명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유대인들의 통념으로 봐서는 성전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시온의 대로’라는 탄탄한 대로를 거쳐 갑니다. 그런 대로를 걸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거기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기존의 통념이지요.
그런데 마가복음은 이를 뒤집어 버립니다. 대도시, 성전, 탄탄대로로 가야 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나와 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 땅의 사람들, 예루살렘에 모여 살던 도시인들, 성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예측할 수 없는 황량한 땅, 광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이동 경로가 완전히 바뀌어버렸지요. 길 없는 곳으로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광야라는 곳은 족장과 예언자들의 땅이기는 하지만, 이 광야에 그 어떤 나라가 세워진 적도 없고, 안전이 보장된 체계가 세워진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광야는 과거의 역사는 있지만, 제도와 틀이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복음은 도시 사람들을 불러 이곳으로 인도한 다음, 진리의 길을 걷게 만듭니다. 물론 모두가 이 길 걷기에 동의하고 그 길을 걸어간 건 아닙니다. 고향 가족들과 가진 자들은 이 길을 거부했고, 제자들은 이 길에 올라섰다 탈선하기를 반복합니다.
중심지 예루살렘을 비우고, 광야에서, 그리고 외곽 갈릴리에서 걷기 시작한 사람들이 광야 한 가운데서 예수를 만나 눈을 뜨기 시작하지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맹인이 시력 회복하고 “모든 것을 밝히 보는” 구절일 겁니다(8:22-26). 새롭게 눈을 뜬 사람에게 이 길이 어떤 길인지, 그 방향이 어디인지 확실해집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 그 길의 종착지는 무덤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길이 끊어진 어두운 무덤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며 복음서를 마무리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무덤 안에서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길인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부활’, ‘십자가 복음’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교회력의 새해는 마가의 해입니다. 그래서 이번 해 교회 주제를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분명히 오늘 우리의 상황도 코로나 때문에 암흑 같은 상황입니다. 무언가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으니 대비할 수 없는 무덤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탈선하더라도 일단 일어나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골머리 쓸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고유의 것, 우리 교회 말고는 다른 곳에선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나눌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예수의 길 위에 있기 기도하며, 서로를 돌아보는 것, 즉 복음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가장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이들의 지혜로운 나눔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 중앙루터교회 2021 정책 당회 설교 막 1:1-5 ‘길을 걷는 사람들’
최주훈 목사 (2020.11.20.토)

2020년 8월 19일 수요일

우리시대 실패한 정치의 징후들

공생의 정치신학: 캐서린 켈러의 ‘(성공)보다 나은 실패’(a failing better)를 위한 정치신학 (1)

본고는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16집(2020): 327-358에 게재된 논문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 연재하는 것임을 일러둔다. - 저자 주

우리 시대 정치신학의 필요성 혹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의 전제는 우리는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다. 우리의 정치는 삶을 더 정의롭고 풍요롭고 공평하고 넉넉하게 만드는데 실패했다. 근대로부터 이어진 인간해방의 꿈은 소위 ‘호모 데우스’라 불릴 극소수 특권계층의 형성으로 신기루처럼 부서지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던 경제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정치(政治)는 결코 정치(正治)로 이어지지 못하고, 거주지와 삶을 의미하는 단어로부터 유래하는 경제(eco-nomy)는 결코 삶을 가능케 하는 체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자유도 온전한 평등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의 물질적 성장엔진이었던 자본주의는 그 성장의 끝이 도래했다고 말해진다.

자본주의는 폐허들을 양산하면서, 불안정하고 취약한 인생들의 숫자만을 성장시킨다. 안나 씽은 이를 “불안정성의 범지구적 상태”(1)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정처없이 표류하고, 가치가 의미를 상실하고, 기준은 권력의 힘과 크기를 의미할 뿐인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제들 중 하나가 ‘정명’(正名, to retify names)의 실패라고 크로켓(Clayton Crockett)은 주장한다. 즉 사물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기호자본주의의 시대, 법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 등과 같은 이름들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 이름은 금융통화처럼 정처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2)

이런 가운데 신자본주의의 범지구적 질서에 맞서 지역주의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와 종교의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이를 “종교의 귀환”(the return of religion)으로 부르기도 한다.(3) 모든 것이 불분명해진 시대를 종교적 전통의 가치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종교의 귀환은 곧 샹탈 무페의 표현처럼 “정치적인 것의 귀환”(4)이기도 하다. 이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종교의 부흥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인 것’이란 “모든 인간 사회에 본래부터 있으며 우리의 존재론적 조건을 결정하는 ... 차원”으로서, 우리의 모든 정체성은 관계성, 말하자면 내외의 경계성으로 구성된다. 이는 외부 타자에 대한 적대관계를 통해 우리의 경계가 설정된다는 칼 슈미트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5)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이러한 모습으로 귀환하는 것은 도착적 귀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가 맞이하고 있는 급박성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예외 없이’ 모든 생명이 존재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급박성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친구/적의 경계를 설정하는 예외적 주권권력의 힘을 자신의 정치신학(6)의 토대로 삼았던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논리는 그 어떤 예외도 허용치 않는 오늘 우리 지구행성의 위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 시대에 정치신학을 재규정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생태계 위기와 기후변화는 지구 위에 살아가는 생명의 공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제 정치신학의 주제는 해방이나 반란 혹은 저항보다는 ‘공생’(co-life)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공생’이란 그저 관계적으로 얽힌 존재들이 서로 좋게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신학적 의미에서 혹은 기독교 신앙적 의미에서 ‘공생’이란 서로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끼리의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기존사회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들을 하나님의 동등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는 기획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현사회구조 하에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를 예를 들어, 노예와 여자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고 품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황제를 정점으로 모든 존재가 신분제 위계질서로 규정된 사회구조 하에서 그들은 기존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기준으로 재구성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 박해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즉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기존과는 다른 정치체재를 전개하는 정치적 공동체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모두를 적/아군의 이분법으로 재구성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아군을 결집해 정치세력화해내는 칼 슈미트적 정치신학과 정반대로, 적/아군 혹은 친구/적의 이분법을 허물고, 동등한 존재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인간이하의 존재(the inhuman)를 형제와 자매로 호명하며, 존재를 회복시켜주는 정치, 즉 공생의 정치였다. 캐서린 켈러는 이를 ‘정치적인 것의 귀환’으로 선포하고,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신학은 제도권 정치를 넘어, “우리의 우주정치적 얽힘들의 위태로운 유한성과 ‘다중다성적 리듬’(polyrhythmic)의 복잡성”(7)을 포착하고, 거기서 “새로운 정치적 행동주의를 위한 시간”을 열어(8), 현재의 제도권 선거정치를 넘어서는 “민주적 투쟁성(democratic militancy)”(9)을 모색하는 신학이다.

여기서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은 배제와 혐오의 정치 즉 친구와 적의 이분법적 정치신학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논리를 기후변화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종말의 상황 속에서 대안적으로 실현하려는 신학적 노력이다. 신학을 세속의 한복판에 실현할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는 “세속화된 신학”(theology secularized)(10)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배제와 혐오가 아니라 “창생 집단체”(the genesis collective)(11)의 관계성 속에서 비존재로 밀려난 이들을 존재로 회복하여, 피조세계에 참여시킨다는 의미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정치신학이기도 할 것이다. 

미주 
(미주 1) Anna Lowenhaupt Tsing,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6.
(미주 2) Clayton Crockett, Radical Political Theology: Religion and Politics After Lib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1.
(미주 3) Ibid., 2.
(미주 4) Ibid., 2;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이보경 역, 『정치적인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Political), 4쇄 (서울: 후마니타스, 2012), 11.
(미주 5)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2012), 13.
(미주 6)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라는 용어가 독일의 보수적인 법 이론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1921년 출판된 책 제목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매우 역설적인데, 그는 “국가에 관한 근대 이론의 모든 중요한 개념들은 세속화된 신학적(theological) 개념들”이라고 주장했다(Catherine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Our Planetary Emergency and the Struggle for a New Pub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8).
(미주 7)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2018), 39; 폴리리듬(polyrhythm)은 서로 다른 리듬이 중첩되어 연주되는 것으로서, 재즈같은 분야에 쓰이는 음악용어로부터 유래한다.
(미주 8) Ibid, 39.
(미주 9) Ibid, 40.
(미주 10) Ibid, 162.
(미주 11) Catherine Keller, On the Mystery: Discerning Divinity in Proces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8), 47.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교회를 위한 5가지 행동 강령_ 이정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개인의 안전과 위생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그렇다고 더럽다는 말도 아니다). 삶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 만큼만 적당히 조심하고 적당히 씻는 사람이라 처음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질 때만 해도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확진자 수가 20명 언저리 넘어갈 때. 뉴스는 연일 코로나19였고, 주변 사람들이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도 '메르스 때도 그렇고 대충 넘어갔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먹고 마셔 댔다. 다시 말하지만 부끄럽다.


이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때에는 신천지 관련하여 집단감염이 대규모로 터진 2월이었다. 대규모 감염 뉴스를 들은 날은 우리 교회의 청년부 수련회를 출발하기 전날이었고, 나는 이 수련회를 취소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실 대규모 감염이 터지기 전부터도 수련회 취소에 대한 말들은 나왔지만, 열심히 준비한 청년들이 낙심할 것이 염려되기도 해서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대구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이후에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서둘러서 여러 회의를 열었고, 그날로 수련회 취소를 결정했다. 그 주에는 주일예배를 축소해서 드렸고, 그다음 주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일에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후 많은 분이, 한국교회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태 앞에서 여러 주장과 논의를 쏟아 냈다. 특히 주일 공예배 회집 방법과 연관하여 엄청난 논의가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쏟아지는 듯하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담론들에 보탬이 될 정도로 사태를 잘 알지 못하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현실 목회자로서 실천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행동 강령 몇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실천하고 있고, 또 실천하려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다. 가능한 한 교파와 교단을 막론하고, 공예배와 교회 형태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지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들 간 자원 흐르게 하기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도 아주 많은 성도가 경제적으로 급속히 어려워졌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교회 상황이 그럴 것이다. 이 와중에 관찰한 현상이 하나 있다. 이 상황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지 않은(심지어 이 상황 때문에 더 형편이 좋아진) 성도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 많은 수는 자신들만 경제적으로 평탄하다는 사실에 심지어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고, 가진 자원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 예로, 분당우리교회에서 진행하는 미자립교회 월세 대납 운동에 20억 넘는 거액이 몰려들었다는 것을 보라. 목회자들은 여기서 신실한 중개인이 될 수 있다. 설교와 광고 시간을 이용하여 교회에 연약한 사람들을 돕도록 호소하고, 방법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두 가지만 예를 들겠다.

- 구제 지정 헌금

성도들끼리 교제가 활발했다면, 성도들은 이미 같은 구역이나 소그룹 내의 어려워진 형제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받는 상대방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두렵기도 할 것이고, 또한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 6:3) 해야 하는 원칙에 위배될까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의기소침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돕고자 하는 성도들이 자신이 구제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는 헌금을 교회에 하고, 교회가 누가 헌금했는지 밝히지 않고 대상자에게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헌금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원할 경우) 헌금한 사람에게 투명하게 밝히면 된다. 성도들 모두에게 이 시스템은 잘 알려져 있고, 제직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교회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볼 것이다.

- 마스크 나눔

마스크 대란이긴 하지만, 성도들 중에는 많은 마스크를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정죄받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스크 대란 뉴스를 보며 찔림을 받는다. 교회는 이들에게서 마스크를 기부받아 없는 집에(그리고 지역사회에) 나누어 줄 수 있다. 실제로 필자는 마스크를 기부받아 배달하러 다니기도 했다. 마스크가 쌓여 있는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챙길 수 있다는 마음에 기쁨을 누릴 것이고, 마스크를 받은 사람들 역시 돌봄을 받고 있다는 확신에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목회자는 이 사이를 중개함으로 굉장한 보람을 누릴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발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동체 구성원들 간 교제 흐르게 하기

코로나19 이후의 교회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공동체 내의 활발한 교제가 없었던 교회는 정말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전에 교회 내에서 교제와 사랑을 나누어 본 적은 없고 그냥 예배하기 위한 종교 기관으로서만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온라인으로 예배하면 되는데 왜 내가 예배당까지 가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공동체 내에서 사랑과 교제를 누리고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 시기를 힘들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이 시기에 더 많은 전화 심방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의 첫째 방안을 행하려고 하면 자연히 전화 심방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지, 어느 집에 마스크가 없는지 알지 못하면 도울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전화로 심방할 때, 서로 사정을 돌아볼 수 있도록 연락하라고 권면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착하다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가 성도들이 잘 순종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서로를 돕고 살피라"고 권면하면 즐거이 따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권면을 따르지 않는 많은 경우는, 따지고 보면 동기 부여를 제대로 해 주지 못했든지, 권면의 내용이 터무니없기 때문일 수 있다. 서로를 섬기라고 권면하는 것은 성경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수준 높은 동기부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간에 연락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어색한(?) 통화라도 나누어 보도록 권면해 주라. 특히 교회 내의 약자들을 세심히 살피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세속 사회 향해 자비 흐르게 하기

개신교는 천주교나 불교처럼 모두를 관할하는 기구가 없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주일에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교회가 세속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아무리 "우리 교회는 달라요!"라고 말해 봤자 말이다). 그렇다면 그냥 세속 사회 평가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지역사회에 마스크를 나누는 일도 할 수 있고, 어려운 분들을 찾아 도울 수도 있다. 두 가지만 더 제안해 보려고 한다.

- 공무원들에게 따뜻하게 협조하기

물론 정부로서는 교회가 안 모이는 것이 최선이겠고, 또한 많은 교회가 동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 모이는 것을 선택하지 않겠다면, 최소한 방역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정부에 할 수 있는 한 협조하는 것이 옳다. 하나 확실한 것은, 최소한 일선 공무원들이 '흠, 이번 기회에 기독교를 박해해야겠어. 예배를 금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만일 더 윗선의 정치인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틀렸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그냥 그분들은 '빨리 이 코로나19 사태 끝났으면 원이 없겠다' 하는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주말에 누군들 돌아다니며 일하고 싶겠는가. 따뜻한 웃음으로 대해 주고,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작은 선물(예컨대 작은 음료수라도)이라도 내밀라. 그리고 꼭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잊지 말자.

- 복지 기관들 돌아보기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도 복지 기관에 기부를 많이 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런 시기에 가장 먼저 지출을 제한하는 돈 역시 기부금이다. 따라서 복지 기관은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 전체가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기부금이 끊긴 상황에 대해 하소연할 곳도 없을 것이다. 구제 헌금으로 걷은 돈을 약간이라도 전달한다면, 그리고 작게나마 연락을 통해 사랑을 전한다면 감사를 표현할 것이다.

여담으로, 이러한 상황은 선교사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님이 한국교회가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회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번 주 선교비를 보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전화를 받고서도 아무 데도 말하지 못한다. 사실 이들은 미자립 교회보다도 더 약자인 경우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보내 드릴 돈이 없을 수 있다. 따뜻한 전화와 기도 제목 요청이라도 해 준다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예배 형태 바뀌면서 생기는 약자들 챙기기

특히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교회는 이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교회 내의 어르신들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송출해도 보시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누르면 바로 볼 수 있는 링크를 전달해 드리거나, 그것도 힘들면 누군가 도와줄 사람들을 붙여 주어야 한다. 예배할 마음이 없으셨다면 모르거니와, 예배하고 싶은데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예배할 수 없게 되면 대단히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역시 전화로 세심하게 심방하며 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챙겨 드린다면 쉽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신경 써야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 중 믿는 사람이 자기 혼자밖에 없는 분들이다. 청년들 중에도 이런 분이 많고, 특히 자녀와 배우자 모두가 신자가 아닌데 자신만 신자인 경우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가족끼리 모여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혼자 방에 숨어서 몰래 핸드폰으로 예배를 시청해야 하는 경우도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자기 방이 따로 있지도 않고, 어디 나갈 곳도 없는 분들은 온라인 예배도 그림의 떡이다. 이런 분들 중 원하는 분들은 방역상 아주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극소수가 모여서 예배하도록 배려해 줄 수도 있고, 그것도 어렵다면 연락을 지속하며 목양적인 배려를 받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설교하기

이러한 사태에서 가장 지혜롭지 않은 방식의 설교는, 정부나 특정 단체를 비난하며 공격하고 자신을(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회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정부는 ~을 하고 있습니다!"라든지, "지금 모여서 예배하지 않는 저들은 ~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는 "지금 모여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메시지들이다. 물론 설교자들은, 성도들이 이 사태 때문에 교회의 본질과 예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질까 봐 조바심이 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들은 "나는 의롭고 저들은 악하다"는 식으로만 들리기 쉽다. 성도들은 결국 "나는 이런 좋은 교회를 다니고 있어! 저런 나쁜 교회들과는 다르지!" 하며 자기 의에 빠지든지, "나는 설교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저 설교자는 왜 저렇게 교조적이지?" 하며 반감만 품게 되기 쉽다(덩달아 무의미한 죄책감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성도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고 싶어 한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는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정당화되는지, 또는 이러한 상황까지 왔는데도 꼭 모여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 원리도 궁금해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과연 함께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짧은 지면에서 신정론에 관한 논의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교파나 교단마다, 혹은 설교자 개인마다 신정론에 관한 견해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그분의 섭리는 선하다는 것.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신다는 것. 때로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나쁜 일이지만,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사실 말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고통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합의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답이 아닌지는 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건 답이 아니다! 만일 이것이 답이라면 왜 하나님 자신이 고통으로 뛰어드셨겠는가? 왜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겪으시며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겠는가?

그분은 고통을 안 주시는 하나님도 아니고, 우리를 고통 가운데 버려 두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고통을 허락하시지만, 고통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섭리와 사랑. 은혜를 사랑 어린 마음과 눈물로 전하라. 정말 성도들은 위로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로가 고난 가운데서도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는 힘을 공급할 것이다.

세속 언론이 교회를 호의적으로 언급해 줄 일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호의적으로 보도해 줄 만한 일을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냥 억울해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이 낫다. 최소한 우리의 선행을 받는 사람들은 안다. 혹여 그들이 몰라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보신다. 이 위기는 우리가 은혜를 행하는 연습을 할 기회이다. 교회가 코로나19를 전염시키는 원흉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 억울하거나 괴롭다면, 은혜를 전염시킬 수 있도록 힘을 내 보자. 특별히 지역 곳곳에서 교회를 섬기느라 분투하는 모든 목회자가 은혜 안에 거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힘내세요!

이정규 / 시광교회 담임목사, <야근하는 당신에게>(좋은씨앗), <새가족반>(복있는사람) 저자

[출처: 뉴스앤조이]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교회를 위한 5가지 행동 강령

동성애를 죄로 간주하는 나는 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는가

 1. 동성애는 성경적 관점에서 죄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 나는 우리 신앙과 행위를 위한 최고 기준을 성경이라고 받아들인다. 어느 것도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성경보다 높은 권위는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인정하거나 열린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만, 나는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동성애를 사랑으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게 참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륜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동성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으며, 이 경우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경우에도 신앙적 관점에서 여전히 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우리는 모두 탐욕적 성향과 이기적 성향을 안고 태어난다. 선천적으로 도벽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동성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성경적 관점에서는 죄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차별도 성경적 관점에서 죄다

하지만 동성애가 성경적 관점으로 볼 때 죄라는 말은 동성애자들을 차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들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을 죄라고 가르친다(약 2:8-9).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롬 2:11).

누군가 죄를 짓는다고 그를 미워하거나 박해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께서 세리를 용납하고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만났을 때 원수 지간인 유대인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게 옳다(약 3:9-10). 우리가 사랑할 이웃은 우리에게 문안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마 5:46-47). 오히려 우리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누군가 도둑질했다면 그것은 죄다. 범죄행위에 맞게 적절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전과자라고 하더라도 사적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물건을 팔지 않거나 출판물로 공개적으로 모욕해서도 안 된다. 도둑질이 옳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더라도 적절한 처벌을 벗어난 대응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녀 훈육은 부모에게 주어진 의무다. 어떤 자녀가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해서 밥 먹이지 않고 폭력적으로 대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부모는 처벌받게 될 것이다. 국가에서 훈육을 금하지는 않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자녀를 죽였기 때문이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성경적 관점에서 동성애는 죄다. 하지만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대부분 처벌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신정국가가 아닌 이상 성경적 규범은 대한민국 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샤리아나 불교의 법이 대한민국 국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성경 속 모든 규정이 대한민국 법이 될 수는 없다. 간음이나 이혼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국가에서 처벌하는 일이 불가하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가 가장 큰 죄이지만, 우상숭배를 대한민국 국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동성애자라서 모욕한다거나, 왕따한다거나, 능력이 있는데도 회사에서 여러 불이익을 주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 차별금지법은 그러한 차별을 미리 방지하자는 법이다. 아무리 신앙적 관점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법이다.

범죄 혐의자에게 미란다원칙을 적용하고, 변호인 도움을 받도록 보장한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피의 사실을 미리 공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죄를 짓는 게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보면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경찰이 자기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을 보호하는 모습을 볼 때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죄를 지었다고 피해자 가족에게 폭행당하고 죽임 받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 사람이 행한 게 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의미에서다. 이와 비슷하게 차별금지법은 차별이라는 불합리를 막자는 법이다. 이것은 성경적 가치에 해당한다.

인간은 악해서 다수가 되면 횡포를 부리기 쉽고, 소수는 다수의 횡포에 차별을 받아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기 쉽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하지 못하게 해서 모두가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성경적 가치를 담고 있다.


3. 신정국가가 아니기에 불신자들 행태에 상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우상을 찍어내 버리고 산당을 제거하라고 규정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을 인정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절간에 잠입해 기드온처럼 용감하게 부처상들을 파괴하는 일이 옳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시내산 언약을 통해 계약 맺은 신정국가에서나 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는 곳은 신정국가가 아니다. 성경 율법을 국가의 법으로 가지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이 세상 법칙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우상을 찍어 버리지는 않았다. 바벨론은 신정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를 향한 가르침은 바울서신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9-10)." 바울 사도는 교회 안에 우상숭배하거나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출교시키라고 명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상숭배한다고 해서 절교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신경 쓰지 말라고 권면했다.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니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고전 5:12-13). 교회가 할 일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에 참견하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들을 찾아가 죄라고 지적할 게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니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불신자들과 거래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상에게 바친 물건일 가능성이 있어도 묻지 말고 사서 먹을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고전 10:25). 우리는 지금까지 불교도들에게도 장사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동안 불신자들이나 악을 행하는 자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한다.

동성애자에게 케이크 주문이 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케이크를 파는 일은 신앙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집을 타 종교인들에게 파는 일도 문제가 아니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타 종교인이나 불신자나 악을 행하는 자들과 관계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불교도들처럼 산속에 들어가 혼자 고고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기 때문이다.


4.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은 동성애자들과의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력이나 반기독교적 성향이 있는 세력을 우리의 영적 대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물리적 방법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를 과시해 입법을 막고, 단체로 몰려가 시위하는 방법으로 굴복시키려 한다. 전화 돌리거나 문자 폭탄을 돌려 우리 힘을 보여 주어 온갖 이 세상 세력을 굴복시키는 일을 영적 승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대적은 그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영적 싸움 대상은 마음속에서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고, 탐욕적으로 만들고, 음욕을 품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게 만드는 사탄이다(엡 6:12). 사탄은 우리의 신앙 열정을 교만으로 바꿔서 망하게 만든다. 사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공로로 바꿔 버리고, 주님을 향한 헌신을 자랑거리로 바꿔 버린다. 이러한 영적 대적과 싸워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우리 대적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다. 그 대적이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들이며, 힘겨루기를 통해 그들을 짓밟아 버리는 것을 영적 승리라고 속삭이는 사탄의 속임수에 곧잘 넘어갔다. 그래서 베드로는 칼을 빼서 말고의 귀를 잘라 버렸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자들을 칼을 써서라도 물리치는 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는 무리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셨다.

타락할 대로 타락했던 중세 기독교는 십자군을 동원해 이슬람 사람들을 박멸하는 것이야말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전쟁에 순수한 신앙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자원했다. 그러한 성도들의 순수한 신앙을 이용한 자들은 정치권이고 장사치였다. 자신들의 정치적·물질적 이익을 위해 신앙으로 십자군 전쟁을 포장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이 이용만 당했다. 역사는 십자군 운동이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기록한다. 기독교는 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칼을 쓸 때 오히려 기독교는 망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동성애자들을 향해 기독교가 힘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싸움에서는 반드시 질 수밖에 없다.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5. 빛과 소금 역할 감당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힘을 과시하는 방법으로는 동성애자들 마음을 얻을 수 없고, 그들을 회개로 인도할 수 없다. 힘으로는 우리보다 이 세상이 더 세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기신 싸움을 하고 있으며,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은 힘을 쓰는 게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 때,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동성애는 죄이자 하나의 우상이기에, 결코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그들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성경 가르침대로 아름답고 건전한 가정을 이루어 산다면, 그들은 비로소 우리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옛날 다신교를 믿던 사람들이 유일신을 섬기던 유대인을 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돌아섰던 것처럼 말이다.

진리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은 가장 강력한 전도 방법이다. 우리가 음란하게 살며 온갖 매체를 통해 목사들 비리와 성 추문이 방송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동성애가 죄라고 외치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만 들을 것이다. 이 세상은 오히려 동성애자들 편에 서게 될 것이다.

- 보수 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진정한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 연합'을 창립했다. 


6. 차별금지법은 신앙의자유 억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에 하위법인 차별금지법에 따라 제한될 수 없다. 일각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성경이 불온·금지 서적 취급받게 되고, 신앙의자유가 박탈될 것이며,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온갖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외국 사례들을 언급하며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과도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 시행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신앙의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이나 직업 문제에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는 학교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행정 서비스를 받을 때 차별하는 일을 금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네 가지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는 문제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설교하거나 동성애 관련 주장이 담긴 책을 쓰는 일 등은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다가 경찰에 잡혀가고 직장에서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러한 주장도 억지다. 동성애를 반대해서 경찰에 잡혀가거나 직장에서 해고된 게 아니다. 현행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을 하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했거나, 집회 신고까지 마친 정당한 집회를 방해했거나, 반동성애 강의를 하는 중에 성희롱적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가 처벌받기도 하고 불이익당하는 것이다. 동성애에 반대하지만 법을 위반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벌되지 않는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동성애에 반대했기 때문에 핍박당한 것이라고 우기는 일은 옳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악마가 되기 쉽다. 그게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방식이다. 우리는 자녀가 잘못했을 때 윽박지르거나 가혹하게 때려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범죄행위다. 교회 분쟁이 일어났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무찌르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옳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다른 편 예배를 방해해도 괜찮고, 반대편 사람들이 교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폭력을 써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생각이 들면, 종종 동성애를 반대하는 모든 행위가 정당할 것이라고 착각하고는 한다. 법을 어기거나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신고를 마친 그들의 집회를 물리력으로 방해해도 괜찮다고 여기기도 한다. 강의할 때 동성애를 반대한답시고 성희롱적 발언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이런 일들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을 때 동성애를 반대했기 때문에 받는 억울한 처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칭찬받을 게 없기 때문이다(벧전 2:20).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더라도 강단 위에서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종교의자유는 헌법적 권리이고, 일개 법이 헌법을 능가할 수는 없다. 길거리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외치는 일은 제지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신정국가가 아니고, 다양한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인정받는 민주국가이기에 당연하다. 아무리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민주국가 내에서 남의 집 우상을 부술 권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길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선포하고 싶겠지만, 그러한 행위는 결코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에게 했던 것처럼 먼저 접촉점을 찾아 대화하며 마음을 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외치는 일은, 팀 켈러 말처럼 다이너마이트를 바위 옆에서 터트리는 것과 같아서 바위를 그슬리게 할 뿐 쪼개지는 못한다.


7. 서구 교회 몰락은 차별금지법 때문 아니다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퍼트리는 주장이 있다. 프랑스에서 차별금지법을 막지 못했기에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하고, 교회에서 동성애 반대 설교를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교회가 문을 닫고 술집으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에서 교회가 문을 닫은 게 정말 차별금지법 때문일까. 인과관계가 맞는가? 오히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꼰대처럼 굴어서 우리에게 그런 꼰대 같은 종교가 필요 없다고 느끼게 만든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

나그네든 과부든 고아든, 약자를 돌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게 성경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이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하는 옹졸한 바리새인 같은 마음이 더 문제 아닐까.

프랑스에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교회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교회 내에서 동성애가 죄라는 가르침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칼뱅주의·개혁주의적 교회도 프랑스에서 성장하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들도 잘 활동하고 있다. 세상은 동성애를 잘못된 방식으로 반대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적어도 생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다원화한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지내야 한다.

사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었다. 미국에서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대우하면 처벌받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미국 내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교회에서 그렇게 설교하고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모욕 주거나 사회생활할 때 차별하는 일은 금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아주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지만 수많은 교회가 여전히 부흥하고 있다.

지혜롭지 못한 어머니는 아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다 너의 그런 행동 때문"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에 갖다붙이는 방식으로는 아이 행동을 교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승전 동성애, 기승전 차별금지법이라고만 외치는 일은 일부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8. 차별금지법은 미래의 우리를 위한 법이다

사실 차별금지법은 결국 결국 우리를 위한 법이다. 우리가 지금은 다수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사회에서 소수가 될 수 있다. 청소년 중 기독교 신자 비율이 3% 미만이라 한다. 머지않아 기독교는 소수가 될 게 자명하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혐오하면서 왕따하고, 거래에서 불이익을 주고, 직장에서 차별 대우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없다면 말이다. 여당일 때 했던 말을 야당이 됐을 때 뒤집고 야당일 때 했던 말을 여당이 됐을 때 뒤집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처럼, 우리도 그때 가서는 말을 뒤집을 것인가. 항상 역지사지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살기 위한 최소한의 법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유리한 법이다. 옛날 바울 사도가 로마법 보호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차별금지법 때문에 보호받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소수가 됐을 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집을 매매하는 것이나 세입자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할 수 있다. 우리가 소수가 됐을 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아 승진을 거부당할 수도 있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입사를 거부당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그러한 행위 자체를 못 하게 돕는 좋은 법이다.

그래서 나는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는다.


9. 학교에서 동성애가 나쁘다고 가르칠 수 없게 된다는 우려에 대하여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경우 학교에서는 동성애를 비판하는 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되고, 만일 이를 위반하면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분이 많다. 그건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함부로 동성애에 대해 비판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다시 질문해 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믿는 바를 공적 영역에서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하는 게 옳은지 말이다.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개인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자신에게 기독교 신앙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일을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하더라도 부하 직원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공적 영역에서 강요할 수 없다. 부대 지휘관이라 하더라도 다른 종교를 가진 부하들을 존중해 줘야 한다. 부대 내 다른 종교 시설물들을 함부로 처분해서도 안 된다.

내가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칠 수는 없다. 물론 진화론과 창조론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소개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신앙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우상숭배가 악한 일이라는 신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학교에서 불교인을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종교의자유가 있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믿는 바를 공적 영역에서도 강요할 수 있게 허용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면 우리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개인의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강요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법이다. 

학교에서 동성애가 나쁘다고 가르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학교 영역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아무리 성경에서 금하더라도, 이혼하는 것이 죄라고 가르칠 수 없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 우상숭배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칠 수 없고,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칠 수 없으며, 이슬람이 나쁜 종교라고도 가르칠 수 없다. 그렇게 가르치는 일이 가능하다면, 타 종교가 대한민국 다수를 차지할 때 기독교는 사악한 종교라고 가르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이제 전적으로 사적 영역이다.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세상은 비로소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보이게 될 것이다. 진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국진 / 신학 박사, 전주 예수비전교회 담임목사, 전북극동방송 신앙 상담 프로그램 '아그런가' 진행자, 이국진TV 운영 유튜버, 각종 매체 칼럼니스트. 아가페 성경 편찬책임자를 역임했고, 저서로는 <아, 그런가?!>·<두들겨 보기>(WBS), <사람이 여물어 교회가 꽃피다>(홍성사), <사랑>(아가페북스), <예수는 있다>(국제제자훈련원) 등이 있다.

[출처: 뉴스앤조이] 동성애를 죄로 간주하는 나는 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는가